임경선, <엄마와 연애할때>를 읽고
가끔 혼자 외출을 하거나 친구들을 만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시간여행을 하는 기분이 든다.
길을 걸을 때 아이의 손을 잡고 긴장하며 걷지 않아도 되고 아이가 마실 물, 손수건, 가디건, 간식 등을 넣은 큰 가방대신 립스틱과 핸드폰만 겨우 들어갈 미니백을 메고 음악을 들으며 걸을 수 있는 시간이 끝나가고
다시 '엄마모드'로 돌아가는 시간. 터널의 끝에는 하원이나 밀어둔 집정리, 끼니 걱정이 기다리고 있다.
잠시 느꼈던 해방감을 마지막 한모금까지 놓지 않고 달린다.
"개인적으로 가장 잊을 수 없는 나의 천국의 시간은
녹음이 끝나고 혼자 강변북로를 타고 귀가할 때였다.
넘실거리는 밤의 한강을 무끄러미 내다보며
방송 중 후회되고 반성되는 내용, 당면한 소설 쓰기 과제,
앞으로의 일에 대한 고민 등 온갖 상념에 잠기곤 했다.
그 순간만큼은
고민의 주인공이 라디오에 사연을 보면 청취자들도,
내 아이나 남편도 아닌
오롯이 나 자신일 수 있어서
조금은 벅찼다
조금은 벅찬 그 마음. <엄마와 연애할 때> 책을 읽으며 눈시울이 조금 붉어졌다.
저자가 '라디오 천국'에서 세상 쿨한 언니로 연애 조언을 해줄 때 애청자로서 결혼과 육아도 무심한 듯 시크하게 이를테면 단호한 프랑스 육아에서 볼 법한 스텐스로 지낼 줄 알았다. 그녀도 아기가 예뻐서 어쩔 줄모르는 허둥지둥 '처음 엄마'일 뿐이었다니! 들여다보면 다들 각자의 방식으로 '어지러운 마음을 단정히 정리하려 애쓰는 시간'이 꼭 필요했나보다. 그 시간이 헛된 것이 아님을 느꼈다.
내 나름의 육아가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고 생각할 무렵, 남편이 '육아 휴직'을 냈다.
문장을 쓰고 나니 실감이 난다. 아이의 여름방학부터 남편은 회사에 나가지 않는다. 휴직을 선언한 그날부터
닥치는대로 일하고 알바를 뛰어야지 매일 다짐하면서도 내 안에서 어떤 에너지도 느껴지지 않았다.
아이와 함께 잘 잠든 밤에도 느닷없이 화를 내는 꿈을 꾸다 깨기도하고 울기도 했다. 휴직의 이유에 붙은 '육아'라는 말 때문일 것이다. 우는 아기를 안고 마감을 할 때 필요했던 그 '육아 휴직'을 지금 한다고? 억울하기도 하고. 이미 타의로 일을 그만둔 나로서는 답답하기만 했다.
내가 당장 해야할 일. 정확하게 말하자면 좀 편해보이지만 당장에 가계에 도움이 되는... 말도 안 되는 꿀잡을을 찾는 중이었다. 왜 '엄마'는 나의 경력에 넣을 수 없는지 속이 상했다. 내가 살아오면서 이렇게 인내한 적이 없었는데 육아기간 동안 전문적인 일을 하지 못한 나는 무엇으로 설명해야할지 길을 잃었다. 나는 불행했다. 그래서 멋져보이는 여성들, 아이를 기르면서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들의 책을 찾았다. 그러다 <엄마와 연애할 때>라는 책을 보게 되었다.
엄마가 불행한 것보다 불완전한 게 백 배 낫다.
내가 맞는 걸까, 잘하고 있는 걸까 의심이 들 때 가장 먼저 눈에 띄인 글귀였다. 고민하고 화를 낼 수록 아이가 나에게 이렇게 물었다.
"엄마 화났어? 무슨 생각해?"
누가 뭐래도 아이에겐 '내 엄마'가 가장 완전한 엄마인 것이다. 일을 하고 있지 않아도, 살이 찌고 예전처럼 예쁘지 않아도, 요리를 못해도. 집이 좀 어지러져 있어도 아이는 그냥 내엄마가 제일 좋다고 말해준다.
그러니까 우리는 그 기적같은 아이의 확신을
있는 그대로 행복하게 받아들이면 된다.
나를 가장 괴롭히는 건 구직에 성공하지 못한 것보다 앞으로 무얼해야할지 그려지지않고 의욕이 없었다. 저자는 말한다. '내 아이가 내 또래즈음 되어있을 때를 위한 책'을 쓰고 싶었다고. 얼마나 멋진 타임머신이 될지 들뜬 마음으로 말이다. 나도 그럴 수 있지 않을까?
일도 살림도 불안전한 엄마이지만 마흔이 될 무렵 엄마는
이런 생각으로 너를 돌보고 나를 돌보려 노력했다고.
"가끔 엔진이 덜컹거릴 수 있어. 그래도 나만의 무늬가 있는 타임머신 하나를 만들고 싶었어."
루아는 읽으면서 어떤 생각을 할까? 단 한 문장이라도 "오 쫌 멋진데?"라고 코끝을 찡긋한다면 너무나 근사한 타임머신이 될 것 같다.
더운 여름이 다 지나가기 전에 조금씩이라도 타임머신의 부품을 모아보고자 한다.
부끄러워도 쓰는 일을 놓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