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고 있었던 나의 X직업
"자니?"
문자 한 번에 마음이 이상해지는 전 남자 친구의 문자처럼
잊고 있다가 한 번씩 내가 방송작가였지 떠올리게 해 주는 것이 있다.
일 년에 한 번 추석에 쌀을 보내 줄 때와 협회에서 보내주는 <방송작가> 웹진을 읽을 때다.
대부분 제일 유명한 드라마 작가님이 표지모델로 있다. 아~ 이런 인상이시구나. 즐겨보는 드라마가 아니었다면 곧바로 '인생 2막'이라는 연재 코너를 먼저 본다. 이 페이지에는 방송작가 업을 기반으로 한 N잡을 하고 있거나 아예 다른 인생을 살 고 있는 작가들의 인터뷰다. 인터뷰의 말미에는 고정 질문이 있다.
Q. 방송작가로서의 경험이 도움이 되었나요?
인터뷰이는 단언한다. 방송작가 경험이 있었기에 못할 것이 없었다고.
험하기로 소문난 방송판을 견뎠고, 많은 사람들과 장소를 섭외하고, 이야기를 전달하려고 글을 요리하기에
마음만 먹는다면 할 수 있다는 응원이 가득하다. 알면서도 그 응원들은 자꾸만 나를 비껴가고 내 것이 아닌 것만 같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20대엔 막막했고 30대엔 어리석게도 하고 싶은 일을 이뤘다고 생각했다. 40대인 지금은 무엇을 하면 행복할까 고민 중이다. 지속 가능한 삶을 위해 어떻게 환경을 만들어야 할지 나는 여전히 헤매고 있다.
아이와 사랑할 시간이 충분하면서도 내 이름이 지킬 수 있는 환경이 필요했어요.
결국 저 스스로 여건에 맞게 노동 강도와 노동 빈도를 조절할 수 있는 현재의 일에 충실하기로 한 거죠.
...
신념만 있으면 됩니다. 누구에게나 양보하기 싫은 신념 하나쯤 있을 거예요. 그게 사소해도 됩니다. 연필을 깎을 때 장인 정신을 가지고 깎는다면 그게 콘텐츠가 되기도 해요. 피부가 안 좋아 피부를 좋게 만들고 싶다면 그게 콘텐츠가 되기도 하고요.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면 먼저 주말에 두 시간이라도 내 관심사, 내가 살아온 삶을 글로 써보세요. 나를 아카이빙 하는 거죠. 자주 검색하는 나만의 검색어들이 있을 거예요. 거기 무의식이 들어 있거든요. 반복적인 검색이 나일 확률이 높아요. 나를 괴롭히는 게 있다, 그럼 그걸 극복하는 이야기도 콘텐츠가 되겠죠. 절대로 의미 없는 삽질이 아닐 거예요. 노후에 잘 사는 사람은 나와 잘 지내는 사람이 아닐까요? 내가 나와 잘 지내는 연습을 하다 보면 분명 나만의 콘텐츠가 두드러질 거예요. 특별해서 쓰는 게 아니라 쓰면 특별해집니다.
-파워블로거 '미세스찐' 한혜진 작가 인터뷰 중
관심사가 옅어도 그냥 일상의 기록만으로도 나의 콘텐츠가 될 수 있을까.
아직은 애써보기로 한다. 생각 없이 지나는 하루에도 쓰려고 애쓰는 사람. 그게 시작일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