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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gun Seo Sep 16. 2018

30년 만에 처음입니다만 -Ⅱ편

한남이라뇨, 한국남자입니다. - 4편

오늘 우연히 본 신문기사에서 명절 성차별 1위로 '여자만 하는 가사노동'를 남녀가 공통적으로 뽑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남성도 함께 하고 싶은데 하지 못하는 분위기를 개선하고 싶어 했다'라는 문구도 함께 실렸습니다.

하지만 마지막에는 다음과 같은 남성들의 메시지도 함께 담겼습니다. '명절에 힘쓰는 일, 운전, 벌초 등을 모두 남자가 해야 한다는 것에도 불편함을 드러냈다' 라고 말이죠. 그냥 그렇다고 하네요.




30년 만에 처음입니다만 -Ⅱ편

‘6시’ 퇴근 시간이 되자마자 집으로 달립니다.
집에 도착한 저는 짐을 내려놓고 손부터 깨끗이 씻습니다.
미리 장을 봐주신 부모님 덕에 요리만 해서, 상을 차리고, 설거지만 하면 될 것 같습니다.


평소에는 입에도 잘 안 대던 생선을 두손으로 만지고,
난생처음 나물을 데치고 간을 하고 버무려봅니다.

나물은 대충 대충 버무리면 될 줄 알았는데, 뭉게 지지 않게끔 살살 보다듬어줘야하는군요.

다진 마늘 한 스푼, 소금 반 스푼 넣고, 참기름과 깨는 듬뿍 넣어 양손으로 버무려봅니다.

짜지 않게 간이 된 나물 위에 대파를 얇게 썰어 고명으로 올려줍니다.

할머니 제삿상만 차리면 되는 오늘은 밥도 조금만 하면 됩니다.
쌀은 3 스쿱이면 될 것 같습니다. 덜어낸 쌀은 흐르는 물로 3차례 헹궈줍니다.

쌀뜬물은 버리지 말고, 생선탕에 부어줍니다.

친절한 전기 밥솥이 시키는대로 백미에 맞추고, ‘구수구수구수’울리는 소리와 향을 느끼며 이제 국을 끓입니다.


깊은 맛을 내기 위해 무, 생선머리를 넣어주고, 맛나게 드시라고 생선의 몸통, 홍합도 넣어줍니다.

국간장과 소금으로 간을 해보지만, 국만큼은 자신이 없어 어머니께 간을 봐달라고 부탁해봅니다. 국이 어느 정도 끓기 시작하니, 이제 ‘전’을 부쳐봐야겠죠.


전은 제가 제삿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음식입니다. 당연하게도 평소에 전을 반죽하거나 부쳐본 경험이 전무한 저이기 때문에 처음부터 배워야합니다. 전의 레시피는 아버지가 도와주시기로 합니다. 반죽을 만들어 놓을 볼에다가 밀가루를 부어주고, 튀김 가루를 조금 섞어줍니다. 저희 아버지만의 레시피는 카레가루를 조금 넣는 것입니다. 전의 느끼함을 잡아 줄 수 있죠. 이제 분말들을 잘 섞었으니 물을 붓고, 부추와 양파, 당근을 넣어서 반죽을 시작합니다. 어디서 본 것만 많아서 손으로 섞어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아니라고 하사네요.

제사 음식이 다 그렇지만, 특히나 전은 정성인 것 같습니다. 뜨거운 열기를 참으면서 정성껏 지켜보면서, 뒤집어 줘야만 바삭바삭 구워진 전을 만날 수 있으니까요. 처음에는 어설프고 두꺼웠지만, 땀을 뻘뻘 흘리면서 몇 장 굽다보니 이제 조금은 감이 잡힙니다. 마지막에는 얇고 바삭한 전도 몇 장 뽑아냈습니다.


제삿상 음식 준비는 이제 끝났습니다. 남은 건 할머니를 모실 상을 차리는 것!

창고에서 제사용 접시와 그릇을 꺼내고, 물에 씻어 둡니다. 그리고 오늘을 위해서 미리 공부해둔 홍동백서, 조율이시를 떠올리며 음식들을 올려봅니다. 

우선 시접, 잔반을 놓고 밥을 놓습니다. 어동육서라는 말처럼 생선은 동쪽에 놔주고, 푹 끓여진 탕을 담아 올려봅니다. 상의 왼쪽 끝에는 포를 올리고, 옆으로 전과 나물들을 차례대로 올립니다. 맨 앞 줄에는 홍동백서라 하여 흰 과일부터 차례대로 놓아줍니다.

따로 가족들이 모이지 않아, 음식이 많지는 않았지만.
저에게는 ‘처음’이라 참 힘들었던 제삿상 차리기가 이렇게 끝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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