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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비 Oct 04. 2019

히말라야 콩데 트레킹 4

= 2019년 8월 1일 : 남체(3440m) - 타메(3820m) =    


한 발자국의 차이가 종국엔 커다란 차이를 만든다. 어쨌거나 한 발을 더 내딛는 것이 중요하다. 할 수 있는 한 힘을 다해서 한 발을 더 내디뎌야 앞서 갈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달리는 것이다. 하다 마는 것은 소용이 없다.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마지막까지 끈기 있게 밀어붙이는 것이 중요하다.


   


  

아침 일찍 일어나 가이드 잠조와 함께 남체 마을 상부의 에베레스트 뷰 전망대로 향했다. 전망대라고 하는 곳이 가서 보니 남체 산악 박물관 뒷마당과 이어진 언덕 위에 있다. 운무가 끼어 기대했던 일출이나 에베레스트는 볼 수 없었다. 그래도 상쾌한 아침 공기를 마시며 산책을 하니 기분이 좋아졌다. 아직까지 머리가 약간 무거운 것 말고는 고소 증세는 느낄 수 없다. 다른 대원들의 상태도 양호한데 이장님만 죽겠다, 힘들다, 머리가 아프다, 얼굴이 부었다 진짜인지 엄살인지 고통을 호소한다. 타이레놀과 소염진통제, 스테로이드, 이뇨제를 복용토록 했다. 증세가 심해지면 폐혈관을 확장시키는 비아그라 복용을 고려해야 한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아침을 먹고 스트레칭 체조 후 파이팅을 외치고 힘찬 발걸음을 내딛는다. 삼일 째 트레킹이 시작됐다. 오늘은 타메 마을까지 간다. 비교적 완만한 길을 오르고 내리며 고도를 400m 정도 올리면 된다. 이번 트레킹 기간 걸은 길 중에 가장 예쁜 길이 아니었나 싶다. 오전 내내 화창한 날씨 속에서 푸른 나무가 우거진 숲길을 걸었다. 네팔의 국화인 랄리그라스 나무가 많이 보였다. 꽃이 피는 봄에 오면 장관일 것 같다. 십 년 전에 히말라야에 왔을 때 이 ‘타메 가는 길’에 매료되어 꼭 다시 오리라 다짐했었다. A dream come true. 꿈이 현실이 됐다.     





남체를 둘러싸고 있는 설산 탐세르쿠(6623m)와 쿠숨캉구루(6367m)를 뒤로 하고 남체 언덕을 올라 타메 가는 길로 들어섰다. 20분 정도 걸으면 타메 가는 길과 상보체 가는 길이 갈라진다. 십 년 전에는 상보체에서 이 갈림길까지 내려와 남체로 돌아왔었다. 오늘은 갈림길을 지나 타메 마을까지 계속 걷는다. 이제부터는 나로서도 처음 걷는 길이다. 마음에 약간의 흥분이 일렁인다. 중간중간 만나는 스투파와 초르텐이 아니라면 마치 우리나라 지리산 어느 구간을 걷는 듯 숲이 울창하다. 꽃과 풀들은 아침 이슬을 잔뜩 머금고 있다.   



  

돌로 단을 쌓아 만든 돌단은 포터들의 쉼터다. 포터들은 짐을 들고 내리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이렇게 단을 쌓아놓은 곳에 등짐을 잠깐 기대며 쉬다가 길을 이어간다. 우리도 쉼터가 나올 때마다 발길을 멈추고 쉬엄쉬엄 길을 걸었다. 어제 남체에 오를 때까지는 두드코시 강을 따라 길이 이어졌다면 남체 이후 타메 가는 길은 보테코시 강과 함께 하는 트레킹이다. 계곡 빙하수 흐르는 소리가 우렁차다. 우기라서 수량도 많고 물살도 세다. 그래서 타메에 수력 발전소가 있는 모양이다. 여기서 생산한 전력으로 남체와 인근 마을에 전기를 공급한다.     



 

중간에 타모(3440m) 마을에서 밀크 티라도 한 잔 하고 가려고 하였으나 문을 연 롯지가 한 군데도 없었다. 비수기라 겪는 어려움이다. 비수기이기 때문에 얻는 이익이 있고 손해가 있다. 모든 것을 다 얻을 수는 없다. 한 가지를 얻기 위해서는 한 가지를 포기해야 한다. 2 년 전 가을 성수기에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ABC) 트레킹을 한 적이 있는 재일 씨는 북적이던 당시보다 호젓한 지금이 더 좋다고 한다.    




길 가에 아담한 롯지 하나가 보였다. 마침 주인아주머니가 마당에 나와서 빨래를 널고 계신다. 혹시 차나 커피 한 잔 할 수 있겠냐고 물어보니 들어오란다. 다행이다. 닫혀있던 커튼을 열어젖히니 보테코시 강이 훤히 내려다보였다. 전망이 좋은 롯지다. 창문을 여니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땀을 식혀준다. 그곳에서 밀크 티도 마시고 음악도 들으며 한참을 쉬었다. 급할 것이 없었다.  




   

휴식을 마치고 화장실도 다녀오고 다시 길을 나서려는 참인데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다행히 큰 비는 아니다. 배낭에 커버를 씌우고 우비를 꺼내 입었다. 오르막으로 이어지던 길이 산허리를 끼고 고개 마루를 돌자 다시 내리막이다. 내리막을 돌아 나오자 눈앞에 거대한 바위와 협곡이 나타난다. 바위에는 린포체의 화상이 그려져 있다. 달라이 라마는 인도에 망명해서 티베트 불교를 이끌고 있는 14대 지도자이고, 린포체는 라마의 전생에서 환생한 ‘전생 활불’ 영적 스승을 일컫는 말이다.    


 

협곡의 위세가 장난이 아니다.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는 기괴하고 위압적인 풍광이다.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누른다. 남는 건 사진뿐이다. 구도를 달리하며 여러 장 찍어두면 개중 한 장 정도는 건질 만한 사진이 나온다. 타메가 가까워짐에 따라 남체와는 점점 멀어지고 있다. 지나온 길을 뒤돌아본다. 과거는 지나갔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다. 확실한 건 지금 현재뿐이다. 지금 여기 서 있는 나.    

 



타메 마을 입구에도 관문이 서 있다. 큰 마을에는 이렇게 사찰의 일주문처럼 관문이 있다. 세속의 번뇌를 씻고 액운을 걷어내는 의미 이리라. 타메에서는 ‘나마스테 롯지’로 숙소를 정했다. 오기 전 사전 조사에서 ‘밸리 뷰 롯지’가 좋다는 말을 들었다. 가이드 잠조를 넌지시 찔러보았지만 거기보다 여기가 좋단다. 가이드마다 선호하는 롯지가 따로 있다. 알고 보니 나마스테 롯지의 주인장과는 아주 특별한 관계였다.    



 

롯지의 주인인 파상 셰르파는 현재 미국에서 살고 있고 그의 처남이 롯지를 대신 꾸려가고 있었다. 파상 셰르파는 에베레스트 정상을 스물한 번이나 올라갔다고 한다. 한 번 올라갈 때마다 천만 원 정도의 수입이 생긴다고 하니 돈을 제법 모았을 법하다. 미국의 모 기업인으로부터 후원도 받아서 나중에는 미국 시민권도 취득했다고 한다. 네팔에서는 보기 드물게 자수성가한 인물이다. 가이드 잠조(나이 49세)는 젊었을 때 그를 따라 에베레스트 정상 등반대의 포터로 일을 한 적이 있다고 한다. 셰르파에도 급이 있어서, 정상을 올라가는 upper 셰르파와 베이스캠프에서  아래 캠프만 오르내리는 lower 셰르파가 있다고 한다. 우리 가이드 잠조는 로워 셰르파로 파상을 돕는 헬퍼 역할을 수행했다고 한다.    


 

가옥 구조가 여느 롯지와 상이하다. 보통의 롯지는 1층을 거실 겸 식당으로 쓰고 객실이 2층에 있다. 이 롯지는 1층에 따로 별채처럼 객실이 이어져 있고 반 지하 공간에 샤워실과 창고가 있다. 남체에서처럼 점심을 먹고 쉴 사람들은 쉬고 타메 곰파에 가 볼 사람들만 모아서 곰파에 가보기로 했다.     



오후 들어 비가 추적추적 흩뿌린다. 타메 뒷산 중턱에 자리 잡은 타메 곰파는 남체 곰파보다 규모가 훨씬 컸다. 건물도 크고 요사채에 보살들이 많이 들락거렸다. 신발을 벗고 대법당 안에 들어섰다. 예불이 진행 중이다. 한쪽 벽에 기대어 신도들이 줄지어 앉아있다. 우리도 구석 한 편에 조용히 자리를 잡았다. 예불은 진중하고 나직했다. 경건한 마음이 절로 들었다. 라마승들 사이로 어린 동자승도 보였다. 특이한 체험이었다.     



곰파 구경을 마치고 마을로 돌아오는 길에 예티 마운틴 홈, 타메 호텔에 잠시 들렀다. 내일 가게 될 콩데 호텔과 같은 체인점이다. 예약도 확인하고 정보도 얻을 요량이었다. 그 큰 호텔을 홀로 지키고 있던 매니저 아가씨가 반갑게 맞아준다. 웰컴 티라며 커피도 내온다. 커피도 마시고 탁자에 놓여있던 북처럼 생긴 네팔 전통 악기도 두들겨보면서 흥겨운 시간을 가졌다.     



돌담을 가지런하게 쌓은 마을길을 지나 나마스테 롯지로 돌아왔다. 샤워를 하고 저녁을 먹었다. 밖에 비가 내리면서 기온이 떨어지자 주인장이 거실 난로에 불을 피워주었다. 나무와 야크 똥을 연료로 함께 쓴다. 나무가 없는 곳에서는 야크 똥이 유일한 땔감이다.   


  

저녁을 먹고 난 후 난롯가에 모여 젖은 옷을 말리고 책도 읽으며 모처럼 한가한 시간을 보냈다. 훈훈한 온기가 실내를 감싸니 살살 졸음이 밀려온다. 나무 타는 타닥 소리만이 고적을 깨고 있다.     


히말라야 깊은 산골에서 맞이하는 적요한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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