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쿵스레덴 피엘라벤 클래식 트레킹 2014

by 산비


2014년 스웨덴의 유명한 아웃도어 브랜드 ‘피엘라벤’에서 주최한 ‘피엘라벤 클래식’ 행사에 참가했다. 세계 각국에서 모여든 트레커들이 ‘쿵스레덴(왕의 길)’을 함께 걸으며 우의를 다지는 도보여행자들의 축제이다. 우선 출발 전에 겪었던 우여곡절 몇 가지를 털어놔야겠다. 아슬아슬한 위기상황을 여러번 맞닥뜨렸다. 지난 일 년간의 계획이 모두 물거품이 될 뻔하기도 했던 아찔한 순간들이었다.


작년 시월, 행사 참가 등록을 마치고 제일 먼저 한 일은 비행기 표 예약이었다. 고려사항은 저렴한 가격과 효율적 시간의 확보. 돈도 돈이지만 시간 활용을 극대화하는 전략이 우선이었다. 모스크바를 경유하는 러시아 항공을 이용하면 밤 10시 넘어 출발하는 야간 기차를 이용할 수밖에 없고 그러면 일요일 아침에 7조로 출발하게 된다. 그러나 토요일 마지막 조의 출발시간에 맞출 수만 있다면 어쨌든 하루의 시간을 수 있다.


이런 생각들을 가지고 항공편을 뒤지다 보니 카타르 항공의 스케줄이 눈에 들어왔다. 요금도 왕복 128만 원으로 다른 항공사에 비해 비교적 저렴한 편이었고, 무엇보다도 금요일 새벽 1시 30분 출발해서 스톡홀름 알란다 공항에 금요일 오후 1시 45분에 도착하는 스케줄이 아주 매력적이었다. 그러면 키루나까지 직행하는 6시 21분 출발 야간기차를 탈 수 있다. 그 기차는 키루나에 토요일 오전 10시 11분 도착하게 되고, 오후 1시 30분 니칼루오크타로 출발하는 버스에 탑승해서 토요일 오후 4시 출발 조인 6조에 합류할 수 있다. 아주 완벽한 계획이었다. 이 계획을 수립하고 얼마나 스스로 의기양양했던지.

- 비극의 시작 -


비극은 여행 출발 3일 전에 도착한 한 통의 이메일에서 시작되었다. 영어도 아니고 꼬부랑 스웨덴어로 표기된 메일이라니. 참 어처구니없이 불친절하다. 구글 번역기로 돌려봐도 해독이 잘 되지 않는 엉뚱한 내용. 아무튼 뭔가 변경된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스치고 지나갔다. 이제 와서 어떡하라고. 여행자 카페에 글을 띄워 도움을 청했다. 같은 메일을 받은 분이 또 계셨고, 몇 명이 머리를 맞댄 끝에 결국 기차 스케줄이 변경되어 도착을 오후 2시 20분에 하게 된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게 되었다. 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아 답답한 마음에 스웨덴 철도 고객센터에 몇 번이나 전화를 넣었지만 연결이 잘 되지가 않았다.


결국 기차표는 현지에서 어떻게 해결해보기로 하고 급하게 다음날 아침 출발하는 SAS 항공편을 예매하게 되었다. 다행스럽게도 일곱 자리가 남아있어 그중 다섯 자리를 확보할 수 있었다. 무려 315 USD라는 예상치 못한 출혈이 생겼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기차표는 환불되지 않는 저렴한 등급의 표였지만 우리쪽 잘못이 아니고 기차 회사의 스케줄 변경으로 인한 것이니 충분히 환불이 가능할 것으로 생각했다. 사건이 이렇게만 마무리되었어도 마음고생이 그리 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스톡홀름 알란다 공항에 도착 후 다른 일행들에게 수하물 찾기를 부탁하고 알란다 공항역 안내소로 급히 달려갔다. 환불 수속을 빨리 마치고 예약된 웁살라행 기차를 타려는 계산이었다. 메일 인쇄해간 것을 내보이고 우리는 이 새로운 일정에 따를 수 없으니 기차표를 환불해달라고 요구했다. 안내원은 여기저기 연락해보고 컴퓨터 자판을 두들겨보더니 이 기차는 문제없이 키루나에 간다는 것이다. 그리고 정확히 토요일 오전 10시 11분 도착 예정이고. “그러므로 환불은 불가능하다.” 허걱. “그럼 나에게 이런 쓸데없는 메일은 왜 보낸 것이냐?” “그것은 그 기차를 이용하는 모든 승객에게 일괄적으로 보낸 것이다. 너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다.” “분명 너네 홈페이지에서 변경된 스케줄을 확인했다. 한번 들어가 봐라.” “아, 이 표 말이냐. 이 표는 너의 행선지와는 관계없는 것이다. 키루나가 표기되어 있지 않잖아.” 이런, 정말 어이가 없었다.


정신을 좀 차려보자. 그러니까 이 기차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말이지. 그럼 그냥 기차를 이용하고 비행기 표를 취소하고 환불받도록 하자. 그런 결론을 내리고 공항 도착지로 와보니 일행 중 두 명만 밖으로 나와 있고 두 명이 보이지 않았다. 한 명의 배낭이 아직 나오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건 또 무슨 일이람.’ 명실 공히 오성 급이라는 카타르 항공 아니던가. 믿었던 카타르 항공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시간은 계속 흐르고. 한참 만에 풀이 죽은 모습으로 두 명의 일행이 나타났다. 수하물 분실에 대한 수속을 밟고 증명서 한 장을 들고 나오는 길이었다. 짐은 내일 아침까지 기다려봐야 한다는 비보였다. 상상도 하지 못한 일이 벌어지다니. 결국 야간 기차는 이래저래 어차피 타지 못할 운명이었던 것이다.


- 이미 벌어진 일 -


결과적으로 보면 그 와중에 다음날 비행기 표를 확보하고 있었던 것이 오히려 잘된 일이 되고 말았다. 만약에 아무 대책 없이 짐이 나오지 않고, 다음날 비행기 표도 매진이었다면 우리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클래식을 포기하는 절망적 결과를 초래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마침 도하에서 스톡홀름으로 오는 다음 비행기가 다음날 아침 6시 50분에 도착하는 것도 불행 중 다행이었다. 아침 8시 30분 키루나로 출발하는 SAS 항공을 타려면 가급적 빨리 배낭을 회수해서 체크인 수속을 밟아야 했다. 그 도하 비행기가 아침 8시 넘어 도착하는 항공편이었다면 짐을 찾았어도 절망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미 벌어진 일은 어쩔 수 없다. 다음 날 아침까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기다리는 수밖에. 시간이 많이 흐른 상태였지만, 짐을 보관함에 넣어두고 웁살라 관광에 나서기로 했다. 김이 새고 진이 빠진 상태였지만 공항에 죽치고 있다고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겨우 마음을 추슬러 버스를 타고 웁살라로 향했다. 야간기차 계획이 무산되었을 때 번득 스톡홀름 근교의 웁살라를 떠올렸다. 박수영의 <스톡홀름, 오후 두 시의 기억>이라는 책을 읽으며 웁살라에 한 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던 차였다.

피리스 강이 도시 한가운데를 유유히 흐르는 웁살라는 오래된 대학 도시답게 고고한 멋을 풍기는 아름다운 도시였다. 마침 축제 기간 이여서인지 열정과 패기가 넘치는 젊은이들이 거리를 점령한 활기찬 모습이었다. 대성당과 웁살라 대학을 둘러보고 웁살라 성에 올랐다. 웁살라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멋진 전망 포인트다. 웁살라 성 아래의 잔디밭에는 시민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자유롭게 음식을 먹으며 여유와 낭만을 즐기고 있었다. 우리도 한쪽 편에 자리를 잡고 간식을 먹는데 타이밍이 절묘했던지, 동양인을 발견한 이유인지 디제이 박스에서 갑자기 ‘강남 스타일’을 틀어준다. 어깨에 저절로 힘이 들어가서 가만 앉아있을 수가 없었다. 그대로 뛰쳐나가 디제이와 말 춤으로 한바탕 흥을 겨뤘다. 우울한 기분이 싹 달아나고 흥이 솟아난다. 아싸 ~ 강남 스타일~~

알란다 공항에는 밤 10시가 넘어 돌아왔다. 이제 공항 노숙에 들어간다. 공항 노숙은 서울에서 올 때부터 각오했던 일이다. 이미 노숙자 한 명이 출입구 유리문 바로 옆 긴 의자에 자리를 잡고 누워있었다. 이불도 없이 다리와 허리를 구부리고 모로 누운 모습이 애처로웠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분이 바로 히드로 공항에서 우리처럼 짐이 오지 않아 공항 노숙자가 된 세라님이었다.) 우리는 지하 보관함 한쪽 편에 맞춤한 장소를 발견하여 그곳에 터를 잡았다. 지하 공간이라 조용하고 한산하고 화장실도 바로 옆에 있어 하룻밤을 보내기에는 아주 쾌적한 곳이었다. 배낭을 풀어 의자 위에 매트를 깔고 침낭까지 펼쳐서 본격적인 취침 모드에 들어갔다.


- 말이 씨가 된다더니 -


다음 날 아침. 운명의 시간이 도래했다. 만약 짐을 못 찾게 된다면?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본다. 그렇다고 클래식을 포기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최소한 텐트와 침낭은 새로 구입해야 할 것이다. 배낭도 있어야 할 게고, 옷은 어떻게 좀 나눠서 입더라도. 짐이 나올 때까지 정말 좌불안석의 시간을 보냈다. 담당 직원을 채근도 해보고. 초조한 시간이 흐르고 마침내 배낭이 눈앞에 등장했을 때는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죽으라는 법은 없구나.’


이 정도에서 대충 사건이 마무리되었다면 그냥 한 편의 해프닝일 수도 있겠다. 짐을 수습해서 키루나행 항공을 이용할 국내선 터미널로 이동했다. 체크인은 공항 키오스크를 이용해 스스로 해야 하고 수하물 텍도 직접 붙여야 한다. 두 번 세 번 확인하고 짐을 부치고 비행기에 탑승했다. 비록 생돈 날리고 비싼 비행기 탔지만 웁살라 관광도 했고, 16시간 걸리는 기차에 비하면 1시간 40분이면 키루나에 도착이니 그 값어치는 하는 셈이다. 다들 이제 한시름을 놓고 농담을 하는 여유까지 생겼다. “이거 비행기는 제대로 뜰까?”


말이 씨가 된다더니... 무슨 일인지 정비사가 조종석에 올라 기장과 이야기를 나눈다. 조종간을 만져보는가 싶더니 갑자기 안내 방송이 나온다. 다 내리란다. 으윽. 구명조끼 시범까지 보이고 막 출발하려던 비행기가 돌연 ‘운항 금지’ 내리란다. 도대체 유럽의 선진국이라는 나라에서 이 무슨 해괴한 일이란 말인가? 스웨덴이 점점 미워진다.


속이 탄다. 대체 비행기를 불러오고 짐 옮기고 새로 정비하려면 도대체 얼마의 시간이 필요할까? 적어도 두세 시간은 걸리겠지. 그러면 키루나에 몇 시 도착하게 되는 거지? 걱정과 불안이 엄습한다. 결국 6조 출발은 불발이 될 것인가? “아, ‘키. 루. 나.’ 가기 정말 힘들다.” 다른 승객들은 별로 초조한 기색들이 없다. 늘 있어왔던 일이라도 되는 것처럼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이다. 결국 비행기는 원래의 도착시간을 지나서 출발, 12시가 다되어 키루나에 도착했다. 비록 악전고투였지만 이런 정도로도 감내할 만은 했다. 캠프 리판으로 이동해서 얼른 수속을 밟으면 1시 30분 니칼루오크타행 버스는 탈 수 있을 것이었다.

불행은 여기서 끝이 났을까? 그랬으면 좋았겠지만 결정적인 또 하나의 실수가 있었다. 그러나 그 실수에 대해서는 차마 말을 할 수가 없다. 창피해서. 정말 바보 같은, 멍청한, 어리석은 실수였다.


- 왕의 길 -

쿵스 레덴(KUNGS LEDEN). ‘쿵스 레덴’이 뭐지? “킹스 로드(King’s Road)래.” 말이 정말 멋지지 않은가? ‘왕의 길’이라니. 그러나 그 길은 왕이 만든 길은 아니고 왕이 걸었던 길도 아니다. 그래도 ‘쿵스레덴’ 그러니까 왠지 멋지지 않은가? 이름은 잘 짓고 볼 일이다. 그곳에 다녀온 사람으로서 사실대로 밝히자면 ‘왕의 풍경’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결코 왕이 걸을만한 길은 아니었다. 왕이 그렇게 돌과 자갈이 많은 거친 길을 걸었을 리가 없지 않은가? 가마를 타고 갔다면 몰라도.


사이토 마사키의 책 <세계 10대 트레일 걷기 여행>을 통해 스웨덴의 멋진 트레일 ‘쿵스레덴’을 알게 되었다. 그곳에서는 매년 여름 트레킹 대회 <피엘라벤 클래식>이 열린다고 했다. ‘피엘라벤’은 스웨덴의 유명한 아웃도어 회사이다. 회사 이름을 걸고 매년 여름 특별한 이벤트를 연다. 다분히 상업적인 냄새가 풍기는 행사지만, 북유럽의 대자연을 소개하고 아웃도어 라이프를 고취시키고자 하는 그 취지만은 딴죽을 걸 이유가 없다. 덕분에 편하게 백패킹의 진수를 맛볼 기회를 얻지 않았는가? ‘아무 곳에서나 머물 수 있고, 어느 곳에서나 모닥불을 피울 수 있는 자유가 있는 곳.’ 가히 백패커의 천국이라 할 만했다. 우리나라에서는 감히 엄두도 낼 수 없는 일이다.


이번 걷기 여행은 구민체육센터에서 아침 운동을 함께 하고 있는 다섯 멤버들이 함께했다. 같은 동네 주민들인 데다가 주말마다 산행도 자주 함께 다니니 마음이 아주 잘 맞았다. 길고 힘든행에서는 팀워크가 중요하다. 서로에 대한 배려와 희생이 없다 함께 걷는 여행을 지속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