쿵스레덴 피엘라벤 클래식 1

트레킹 1일 차

by 산비


- 역경을 딛고 드디어 출발 -


인생의 반은 모험이고, 반은 추억이라고 한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걷는 것, 아무도 하지 않은 일을 하는 것,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던 것을 상상하는 것, 그것이 모험이다. 모험은 비록 실패로 끝난다 하더라도 경험과 추억이라는 값진 선물을 우리에게 던져준다. 우리가 자주 여행을 가고 모험을 해야 하는 까닭이다.


두둥~~ 온갖 역경을 극복하고 ‘피엘라벤 클래식’의 출발지, 니칼루오크타(Nikkaluokta)에 도착했다. 출발 전부터 기차표가 꼬이고, 배낭을 분실하고, 비행기가 지연되는 예기치 않은 사건들이 벌어지면서 공항 노숙까지 완전히 진이 빠진 상태였지만, 이제부터는 진짜로 힘을 내야 한다. 쿵스레덴은 원래 북쪽 ‘아비스코’에서 남쪽 ‘해마반’까지 이어지는 총 440km의 트레일이다. 1996년 유네스코에 세계 자연유산으로 등재되었다고 한다. ‘피엘라벤 클래식’은 그중 일부 구간에서만 행사가 개최된다.


6조 출발 시간인 오후 4시까지 잔디밭에 앉아 잠시 휴식을 취했다. 화장실도 다녀오고 식수도 보충하고. 출발선에 마련된 첫 번째 체크 포인트에서 여행의 시작을 알리는 스탬프도 미리 찍어두었다. 대회는 세계 각지에서 온 2000여 명의 참가자를 총 8개 조로 나눈 후 금, 토, 일 삼일에 걸쳐 차례차례 출발시키며 진행된다. 너무 번잡하지 않게 하려는 안배일 것이다. 총 6곳의 체크 포인트를 지나면서 지급된 하이킹 패스에 스탬프 도장을 모두 찍어야 완주로 인정받는다.

기온은 18도. 햇살은 강렬하고 하늘은 드맑고 푸르다. 미세먼지로 누렇게 뜬 서울 하늘과는 천양지차이다. 간밤 공항 노숙으로 인한 피로를 말끔히 씻어내는 상큼한 날씨다.


- 천천히 그러나 끈질기게 -


드디어 오후 4시. 오, 사, 삼, 이, 일. 카운트다운과 함께 트레커들이 일제히 땅을 박차고 힘찬 걸음을 내딛는다. 우리는 맨 뒤에 남아 기념사진도 찍고 우리끼리 구호도 외친 후 여유롭게 길을 나섰다. 우리의 이번 대회 슬로건은 ‘천천히 그러나 끈질기게’였다. 누구보다 빨리 걷지는 못해도 누구보다 질기게 걷는 것은 자신 있었다. 자작나무 숲 사이로 오솔길을 지난다. 생각보다 자작나무가 잘다. 추운 지역이라 생육에 문제가 있는 걸까? 영화에서 본 시베리아 자작나무들은 길쭉길쭉하던데 스웨덴의 자작나무들은 우리나라 산에서 마주친 토종 자작나무들 마냥 키가 작고 구불거린다.


첫 번째 목표지점은 랍티오야우레(Ladtjojaure) 호숫가에 위치한 ‘카페 코탄’. 호수를 건너는 보트 선착장이 있고 코카콜라와 순록 고기 패티를 넣어 만든 햄버거를 맛볼 수 있는 매점이 있는 곳이다. 맥도날드가 아니고 ‘랩도날드’라나. 순록 고기라고 해서 약간의 주저함이 있었지만, 한 입 베어 문 햄버거의 맛은 정말이지 끝내줬다. 이러다가 이참에 겸사겸사 살 좀 빼보려던 계획이 모두 수포로 돌아가는 것은 아닐까?


오후의 태양이 찬란하게 빛나는 호수 앞에서 멋진 톨파고니(Tolpagorni)산을 배경으로 기념사진 한 컷을 남기고 다시 걷기를 이어갔다. 처음 눈길을 잡아 끈 것은 블루베리였다. 말로만 듣던 블루베리가 정말 지천으로 널려있었다. 쿵스레덴의 진짜 주인은 블루베리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가는 길, 쉬는 자리 곳곳에 블루베리가 열려있다. 새콤달콤한 맛이 아주 일품이다. 지친 트레커들에게는 축복의 열매이다. 바구니에 잔뜩 따서 블루베리 장사나 해볼까나?


길을 걷다 보면 두 줄의 긴 나무 길을 자주 만난다. 이 나무 길이 왜 반가운지는 조금만 걸어보면 금방 깨달을 수 있다. 그만큼 돌길과 진창길이 많다는 뜻이다. 길에 대한 기대를 너무 크게 하고 오면 실망하는 사람도 있을 듯하다. 허나 그것 또한 있는 그대로의 자연의 모습이니 그저 즐길 수밖에. 철판 길, 고무 길이 아닌 걸 다행으로 여기고. 이곳의 나무 데크 길은 ‘쿵스레덴의 심벌’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산길과 동화되어 있다. 악재를 호재로 반전시킨 창의적 발상이다.



- 클래식의 첫 밤 -


톨파고니에 운무가 자욱하다. 북구 라플란드 지방에서 햇볕이 있고 없고는 체감 상 십도 이상의 온도 차가 난다. 해가 있을 때는 조금 더운 감이 있다가 해가 들어가고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금방 한기를 느끼게 된다. 시간은 저녁 9시를 넘어서고 있지만 하늘은 여전히 훤하다. 백야가 지속되는 북구의 여름은 밤 10시가 되어야 해가 진다. 해가 지고 나도 완전히 캄캄해지지 않고 빛이 흐릿하게 남아있다. 이번 트레킹 준비 목록 중 가장 쓸모없던 물품이 바로 ‘헤드랜턴’이었다. 여유분 건전지까지 가지고 갔었는데...


오후 4시에 6조로 출발한 우리로서는 오늘 안에 19km를 걸어 케브네카이제 산장까지 진행하는 것은 무리한 일정이었다. 그래서 진작부터 산장 4km 전의 강가를 오늘의 야영지로 점찍어 두고 있었다. 호수가 끝나는 지점에 개울이 흐르고 그 개울을 지나 조금 더 진행하면 또 하나의 개울이 나온다. 지도를 보며 그 지점을 야영 후보지로 미리 표시해두었었다. 지도가 정말 정확하다. 개울 위쪽 편평한 언덕에서 피엘라벤 클래식의 첫 밤을 맞았다.


우선 불부터 피운다. 야영의 꽃은 모닥불이다. 둘째 날과 셋째 날은 주변에 나무가 없어 모닥불을 피우기 어려웠지만, 첫날 야영지와 마지막 날 키에론(Kieron)에서는 죽은 자작나무 가지들을 구할 수가 있어 불을 피울 수가 있었다. 불을 피우는 것은 추위를 막고 온기를 모으려는 실용적인 목적도 있지만 숭고한 정신세계로 입문하는 일주문의 역할이 크다. 멍 때리며 불을 바라보는 일이야말로 무념무상 명상의 끝판 왕이다.


저녁을 막 지어먹고 치우고 일어나는데 한 무리의 십 대 젊은이들이 노래책을 들고 몰려와 같이 노래를 부르자고 한다. 스페인에서 온 친구들이었다. ‘별일이네. 무슨 게임 벌칙이라도 받은 걸까?’ 말 한마디에 까르르까르르, 정말 티 없이 맑고 순수한 애들이다. 목록에 ‘파이널 카운트다운’이 보이기에 입으로 “빠바밤바 빠라빠빠빠 ~~” 하고 흥얼거렸더니 리액션이 엄청나다. 우리는 영어로 된 노래책을 함께 보며 그날 밤 ‘파이널 카운트다운’을 소리 높여 외쳐 불렀다. 기분 좋은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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