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킹 3일차
: 세느 고개(col de la Seigne,2516m) - 엘리자베따 산장(Ref. Elisabetta,2195m) - 산장 아래 강가에서 점심 - 콤발 호수(Lac Combal) - Arp Vielle super - 메종산장(Ref. Maison Vielle,1956m) - Col Checrouit 리프트 탑승 - Dolonne - 쿠르마유르(Courmayeur,1226m) 석식 - 베르토네 갈림길 삼거리 야영
운이 좋은 사람은 계획대로 일이 잘 풀리는 사람이 아니라, 일이 안 풀려서 임시로 세운 대책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사람이다. 여행지에서 생긴 문제는 위기가 아니라 기회이다. 문제는 늘 반전을 일으키고 추억을 선물한다. 여행은 계속해서 우리에게 새로운 문제를 제시한다. 그때마다 실마리를 찾아 문제를 해결하고 역경을 헤쳐 나가는 것, 그것이 진짜 살아있는 여행이다.
오늘도 5-6-7 작전이다. 5시를 기상 시간으로 정해두었지만, 대개는 4시가 지나면 저절로 눈이 떠졌다. 잠시 뒤척이며 누워 있다가 슬그머니 일어나서 급한 볼일도 해결하고 슬슬 아침 식사 준비를 한다. 밥 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이다. 고도가 높은 곳에서는 밥 지을 때 특별한 기술이 필요하다. 평소보다 물을 두 배 가까이 부어서 팔팔 끓이며 아래위 밥을 섞어주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위쪽은 생 쌀밥이 되고 만다. 충분히 끓고 나면 불을 최소로 줄이고 뜸을 오래 들인다. 뜸 들이는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서둘러 밥부터 지어 놓아야 한다.
유럽은 여름에 서머 타임제를 실시한다. 그 때문인지 9시가 넘어도 훤하다가 10시쯤 되어야 날이 어두워진다. 반면 아침엔 해가 늦게 뜬다. 5시에는 컴컴해서 헤드랜턴을 켜야 하고 6시가 넘어야 어슴푸레 동이 터온다. 헤드랜턴이 밤 시간용이 아니라 아침에 필요한 물건이 되고 말았다.
아침을 먹고 짐을 정리한 후 도수 체조를 실시한다. 여기서는 몸이 재산이다. 몸이 고장 나면 일의 진행이 꼬이고 만다. 허리며 발목 관절을 충분히 풀어주었다. 날씨는 맑고 공기는 상쾌하다. 오늘도 멋진 날씨가 기대된다.
오늘은 출발부터 가파른 오르막이다.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국경인 세느 고개를 넘어야 한다. 아침 일찍 출발한 산장 사람들이 봉주르를 외치며 지나간다. 작년 스웨덴에서는 ‘안녕’하는 인사말이 ‘헤이 헤이’였다. 만나는 사람마다 ‘헤이 헤이’를 외치더니 이곳 프랑스에서는 모두가 ‘봉주르’다. 정확히는 그냥 ‘봉주’다 끝에 ‘르’ 발음은 거의 하지 않는다. 마라톤 선수 이봉주가 이곳 몽블랑에 왔다면 정말 반갑고 신기했을 것 같다. 모든 사람들이 이봉주를 알아보고 인사를 건네니 말이다. “봉주~~” “네 제가 봉주입니다. 아임 봉주.”
해는 떴지만 산이 높고 골이 깊어 산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진다. 다들 컨디션이 좋은지 경쾌한 발걸음이다. 성철 님만 느릿느릿 자기 페이스로 길을 걷는다. 알프스에 오기 전에 걱정이 많았었다. 지금까지는 아주 잘 하고 계신다. 배낭의 무게를 줄이기 위해 지출한 장비 값만 수백만 원이라고 한다. 그 돈이면 편하게 패키지여행을 했어도 될 뻔했다고.
경사도가 심한 오르막이지만 길이 지그재그로 나있어 우리나라 깔딱 고개처럼 힘들지는 않다. 가벼운 짐을 멘 서양인들이 성큼성큼 우리를 앞질러간다. 우리는 비박 배낭을 메고 있어 속도를 낼 수가 없다. 그저 각자의 페이스대로 묵묵히 걸을 뿐.
한 팀을 보니 여성이 맨 앞에서 팀을 이끌고 네 명의 건장한 남성들이 그 뒤를 따르고 있다. 알프스에서는 유독 여성 가이드들이 눈에 많이 띈다. 나중에 이야기를 들어보니 정상에 오르는 산행은 남자 가이드들이 많고, TMB 같은 트레킹은 주로 여성 가이드가 맡는다고 한다. 전문 가이드를 하려면 프랑스 국립 스키 등산학교(ENSA)에서 4년을 공부하고 2년간 가이드 보조로 일하며 실무 경험을 쌓아야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다.
드디어 세느 고개에 도착했다. 채 두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제 이탈리아로 넘어간다. 국경선이라고 해봤자 그저 비석 하나 덩그러니 서 있을 뿐이다. 울타리가 쳐져 있거나 금이 그어져 있지는 않다. 비석의 앞면엔 프랑스를 뜻하는 F가 반대쪽에는 이탈리아의 이니셜 I가 새겨져 있다. 모두 기념사진 한 장씩을 찍고 다리를 들어 국경선을 넘는 퍼포먼스를 펼친다. 나중에 이탈리아에서 스위스로 넘던 국경에서의 참혹한 상황을 생각해보면 정말 평화로운 월경이었다.
세느 고개에는 단체로 트레킹을 나온 초등학교 학생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사진도 찍어주었다. 신 단장님이 발가락 상태가 안 좋아 아이들을 대동한 선생님에게 반창고가 있는지 물어보았다. 마침 응급 키트를 가지고 있던 스텝 한분이 직접 치료를 해주었다.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와 치료 과정을 구경한다. 아이들은 어느 나라 애들이든 호기심이 많다.
이제부터는 이탈리아 땅이다. 가까이 쌍둥이처럼 생긴 피라미드 봉(les Pyramidee Calcalres, 2696m)이 나란히 서있고 그 뒤로 유명한 그랑 조라스(Grandes Jorasses, 4206m)가 살짝 조망된다. 앞에 펼쳐진 광활한 계곡은 이탈리아의 베니 계곡(Val veny)이다.
세느 고개 바로 아래에 낯선 건물 하나가 있다. 산장은 아니고 간이 대피소 겸 산악 뮤지엄이다. 알프스에 자생하는 꽃들에 대한 설명과 옛날 산악 장비들이 전시되어 있다. 이후부터 엘리자베따 산장(Refuge Elisabetta Soldini, 2195m)까지는 계속해서 평탄한 길이 이어졌다.
엘리자베따 산장의 정식 명칭은 ‘엘리자베따 솔디니’ 산장으로 이탈리아의 유명 여성 산악인의 이름에서 따왔다고 한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도 방문한 적이 있는 유서 깊은 산장이다. 이곳에서 보는 일출이 그렇게도 아름답다고 한다. 산장에 잠시 들러 맥주로 갈증을 풀었다. 빙하 녹아내리는 빙하수를 바라보며 시원한 빙하 맥주를 마신다. 지도를 보니 빙하 덩어리에도 각각 이름이 있다. 이곳 엘리자베따 산장에서 바라보이는 빙하는 에스텔레뜨 빙하(Glacier de Estelette)와 레 블랑쉬 빙하(Glacier de la lex Blanche)이다.
배가 출출해진다. 이제 점심을 먹을 시간이다. 점심은 미리 점찍어 두었던 계곡 가에서 먹기로 했다. 산장을 내려오면 얼마 안가 시원한 물줄기가 흘러내리는 계곡이 있다. 맑은 물이 흐르고 평평한 초지가 형성되어 있어 쉬어가기 좋은 곳이다. 야영을 하기에도 아주 좋아 보였다.
물을 보자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옷을 벗어두고 물로 뛰어든다. 오랜만에 즐겨보는 알탕이다. 물이 무척 차서 꺅꺅 저절로 비명이 나오지만 묵은 때가 확 씻겨나가는 개운함이 아주 그만이었다. 물놀이를 즐기고 나서는 점심으로 맛있는 라면을 끓여먹었다. 두말이 필요 없다. 점심을 먹은 후에는 모두 그늘에 매트를 펼치고 잠시 눈을 붙였다. 솔솔 불어오는 산들바람이 심신의 피로를 날려준다. 참 좋다. ‘우리 이렇게 편해도 되는 거야?’
에너지를 충분히 충전하고 다시 길을 나섰다. 베니 계곡을 따라 계속 평평한 길이다. 간간히 무리를 이룬 산악자전거 팀이 지난다. “봉주르~” 아니, 이탈리아에서는 “차오”다. “차오”
콤발 호수를 지난 후 다리 앞 갈림길에서 잠시 망설였다. 다리를 건너면 계속 평지를 걷다가 버스를 타고 쿠르마유르 시로 갈 수 있다. 비가 올 경우를 대비해 세워두었던 플랜 B이다. 그러나 오늘은 날씨가 좋다. 능선으로 올라가자. 그 선택은 백번 옳은 선택이었다. 우리는 그날 그랑 조라스(Grandes Jorasses Mt. 4208m)를 비롯한 베니 계곡 너머 알프스 몽블랑의 비경을 원 없이 볼 수 있었다.
한 가지 괴로웠던 것은 날이 너무 더웠다는 것. 알프스의 불타는 여름 태양이 능선 위에서 무섭게 이글거렸다. 우리는 조금만 그늘이 보이면 무조건 비집고 들어가 쉬었다. 나중엔 그냥 아무데서고 쉬었다. 힘들어서.
그렇게 더위와 싸우며 지쳐갈 무렵 발걸음을 멈추지 않을 수 없는 멋진 전망 포인트가 나타났다. 눈앞에 어마어마한 풍경이 펼쳐졌다. 다른 트레커들도 모두 쉬어가는 곳이었다. 우리가 단체 사진을 찍으려 할 때 독일 아주머니 한 분이 다가와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하신다. 우리가 한국에서 온 것을 알고는 자기 여동생이 한국에서 오래 살다가 왔다며 굉장히 반가워하셨다. “빨리, 이리 와, 감사합니다.”하며 몇 마디 서툰 한국말을 구사하신다. 하하. 우리가 하는 독일어도 그들에겐 저렇게 어눌하게 들리겠지.
삶의 근간은 조화와 중용이다. 너무 느슨해도 안 되고 너무 팽팽해도 안 된다. 긴장이 극에 달하면 줄은 끊어지고 만다. 근육과 인대에 과도한 부하가 걸리면 결국 파열되는 것처럼. 여행에 가서도 너무 늘어지거나 너무 정신없이 과하게 움직이는 것은 좋지 않다. 적당한 긴장을 유지한 채, 적절히 휴식하며 충만한 기운을 불어넣는 것이 중요하다.
너무 느긋했을까? 메종 산장(Ref. Maison Vielle, 1956m)이 생각보다 얼른 나타나지를 않았다. 거기서 케이블카를 타고 쿠르마유르(Courmayeur, 1226m) 시로 내려갈 계획이었다. 이 구간을 걸어서 내려가면 1시간 반 이상을 지루하게 걸어야 한다. 체력을 소진하면 내일 베르토네 산장까지 치고 오르기가 무척 힘들 것이었다. 케이블카가 분명 마감 시간이 있을 텐데...
일단 좀 서둘러야겠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5시에 케이블카가 마감될 거라고 대원들을 독려하며 선두에 서서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열심히 걸었지만 시계는 이미 5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5시 10분쯤 되어 언덕을 돌아서니 드디어 메종 산장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그 바로 옆에 리프트 역사도 보였다. 다행히도 리프트는 운행을 하고 있다.
한 걸음에 내달려서 매표소에 도착한 시간이 5시 15분. 리프트 마감시간은 5시 20분이었다. ‘휴~~ 겨우 시간에 맞췄군.’ 언제쯤 이 막차 인생을 마치려나. 빨리들 오라고 손짓하며 소리 지르자 모두들 허겁지겁 매표소로 달려온다. 그런데 어라 한 명이 보이지 않았다. 재일 씨가 그만 퍼졌다는 것이다. 5시가 마감이라더니 5시가 돼도 산장이 보이지 않자 그냥 포기하고 중간에 퍼져버렸다고. ‘아이고 그래도 일단 끝까지 최선을 다해봐야지.’ 이런!
이거 어떡하나. 순간적으로 머리가 이리 돌고 저리 돈다. ‘일단 우리만 내려가?’ 아니지 어떻게 대원을 놔두고 내려가나. ‘그럼 다 같이 타지 말고 걸어서 내려갈까?’ 그것도 아니지. 모두 지쳐있는데. 갈팡질팡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데 안내원은 리프트 출입문의 문을 닫으려 한다. 결단을 내렸다. 김샘만 남겨두기로. 김샘 짐은 우리가 가지고 내려간다. 김샘이 재일 씨를 챙겨서 내려오게 하고 나머지 대원들은 일단 내려가서 기다리자. 할 수 없다.
콜 체크루(Col Checrouit)에서 리프트를 타고 200m 정도를 내려온 후 중간에 플라 체크루(Plan Checrouit)에서 돌로네(Dolonne)까지는 케이블카로 환승을 해야 한다. 케이블카로 갈아타고 돌로네에 내려와 보니 케이블카 마감시간은 5시 50분이라고 적혀있다. ‘아! 이제 어떡하지.’ 정신이 멍하다. 재일 씨와 김샘이 걸어서 내려온다면 최소 1시간 반에서 2시간 정도의 차이가 벌어질 것이다. ‘오늘 일정은 여기서 마쳐야겠구나.’ 지도를 펼쳐놓고 열심히 머리를 굴린다. ‘오늘은 쿠르마유르 시에서 민박을 하자.’ ‘그러면 내일 일정은 어디서 끝내야 할까?’ 바닥에 주저앉아 한참 이 궁리 저 궁리하고 있는데 떡 하고 재일 씨가 눈앞에 나타났다. 이거 뭥미??
얘기인즉, 리프트는 사정사정해도 운행이 안 되어 그대로 리프트 아래 경사지를 달려서 환승하는 곳까지 내려왔다는 것이다. 거기서 막 케이블카를 세우고 문을 닫으려는 안내원을 붙잡고 두 손 두 발 다 빌면서 애처로운 눈빛을 보였더니 문을 다시 열어 주었다고. 눈빛이 얼마나 가련했으면...
차도를 건너고 고가 밑을 지나자 쿠르마유르 시내로 길이 이어진다. 저녁은 이곳 이탈리아 쿠르마유르에서 정통 이탈리안 화덕 피자와 파스타로 해결했다. 시원한 맥주 한 잔을 곁들이니 아주 기분 좋은 저녁 만찬이 되었다. 이쪽 사람들은 피자를 정말 좋아하는 것 같다. 우리가 떡볶이나 만두 먹듯 일상으로 피자를 먹는다. 먹는 양도 엄청나서 우리는 피자 한 판을 몇 명이 나눠 먹는 게 보통인데, 여기서는 일인당 피자를 한판씩 시켜서 각자 한판을 먹어치운다.
식사를 마치고 까르푸에 들러 장을 보았다. 저녁에 야식으로 먹을 고기와 내일 아침 먹을 빵과 치즈, 주스 등을 구매했다. 장을 보고 시내를 빠져나와 다시 TMB 길로 들어섰다. 몸 상태로 보아 오늘 베르토네 산장까지 올라가는 것은 무리다. 오늘은 산 들머리까지만 이동한 후 적당한 곳에서 야영을 하기로 했다.
이리저리 야영할 만한 곳을 찾으며 산길을 터벅터벅 걷는다. 저녁을 먹었는데도 모두 진이 빠져 있다. 더 이상 갈 힘이 없어 이제 그냥 길바닥에서 노숙을 해야 하나 고민하는 순간, 텐트를 칠만한 평지를 발견했다. 소똥이 더러 눈에 띄었지만 똥오줌을 가릴 계제가 아니었다.
시계는 밤 9시를 가리키고 있다. 날이 어둑해지면서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많이 지쳤지만 딴전을 피울 새도 없다. 부랴부랴 텐트부터 치고 타프를 설치했다. 사위는 이제 완전히 어둠에 잠겼다. 텐트 설치를 마치고 모두 타프 아래로 모여 앉았다. 빗줄기가 점점 거세진다. 타프 위로 빗물이 흥건하다. 고인 비를 한 번씩 밀쳐냈다. 입맛은 없었지만 비도 오고... 고기 몇 점을 구워서 안주 삼아 이탈리아의 국민 술이라는 40도짜리 그라파 한잔씩을 들이켰다. 무척 독했지만 이거라도 마시지 않으면 잠이 올 것 같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