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블랑 일주(TMB) 6

트레킹 6일차

by 산비


: 트리앙(Trient,1279m) - 르 쁘티(le Peuty) - 발므 고개(Col de Balme,2191m) - 발므 산장(Refuge do Col de Ba1me) 점심 - 뽀제 고개(Col des Posettes,2201m) - 트레레 샹(Tre le Champ,1417m) - 몽툭(Montroc) 샤모니행 버스 탑승 - 알펜로즈 산장 복귀


내 모든 에너지를 다 쏟아부었다는 느낌이 든다면 후회는 남지 않는다. 내 할 만큼의 온 힘을 다했고 더 이상 어찌해볼 도리가 없다면 결과에 대해서는 기다리고 받아들이면 된다. 대추 한 알도 몇 날 몇 밤을 땡볕과 폭풍과 벼락을 견뎌야 비로소 붉어진다고 한다. 이 세상에 저절로 되는 일은 없다. 전력을 다해 걷고, 온 힘을 다해 생활하자. 그러면 된다.


잠은 비교적 편하게 잤다. 바닥이 잔디라 푹신해서 좋았다. 아침은 카레를 해 먹었다. 샹페 마트에서 감자와 당근과 버섯을 살 수 있어서 채소를 듬뿍 넣은 카레를 만들 수 있었다. 전날 먹고 남은 고기도 잘게 썰어 넣었더니 풍미가 살아난다. 짐을 정리한 후 캠핑장 입구로 나와 택시를 기다렸다. 정확히 8시에 택시가 도착한다. 혹시 착오가 생겨 택시가 오지 않으면 어떡하나 걱정했었다. 택시는 꼬불꼬불 산길을 지나고 제법 넓은 도로로 나왔다가 다시 산길로 접어들어 40분 만에 트리앙(Trient, 1279m)에 도착했다. 발므 고개에 올라간다고 하니 TMB 들머리가 있는 르 쁘티(le Peuty)까지 와서 내려주었다. 트리앙과 르 쁘티는 도보 10분 거리로 붙어있는 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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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풀고 기념 촬영을 한 뒤 오늘의 일과를 시작한다. 드디어 마지막 날이다. 만감이 교차한다. 택시로 시간을 벌었으므로 오늘은 가볍게 걷기 여행을 마무리할 수 있을 것이다. ‘발므 고개까지 고도를 올려야 하는 일이 만만치는 않겠지만 쉬엄쉬엄 걷다 보면 어느 순간 정상에 서게 되겠지. 지금까지도 잘 해오지 않았는가?’


- 저마다의 방법으로 몽블랑 즐기기 -


우리는 모두 각자 다른 삶의 중심 추를 가지고 있다. 각자가 추구하는 삶의 모습은 각자의 가치관과 주관에 따라 모두 다를 수밖에 없다. 내 삶을 타인에게 강요할 수 없고, 누군가의 삶을 그대로 따라 할 필요도 없다. 내 앞에 놓인 길을 나의 방식대로 그냥 걸어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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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에 반짝이는 트리앙 빙하(Glacier du Trient)의 위용이 대단하다. 다들 마지막 힘을 내어 오르막길을 오른다. 숲길을 지나다가 자전거와 조우했다. 산악자전거를 탄 한 여성이 홀로 힘차게 하강 중이다. 얼굴엔 미소가 가득. 역동적인 모습이 에너지가 넘친다. TMB 길을 걷다 보면 조그만 미니 배낭을 메고 트레일 러닝을 즐기는 사람들과 산악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을 자주 볼 수 있다. 모두 저마다의 방법으로 몽블랑을 즐기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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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략 30분 간격으로 쉼터가 있어 쉬어가기 좋다. 해발 2000m를 넘어서자 나무가 사라지고 초지가 펼쳐진다. 2000m가 수목 한계선인 모양이다. 히말라야에서는 4000m가 수목 한계선이었다. 몽블랑의 만년설은 3000m 이상이면 볼 수 있고 히말라야에서는 6000m가 넘어야 만년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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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아래로 르 쁘티 마을이 멀어지면서 언덕 위에 발므 산장이 보이기 시작했다. 고도를 높여갈수록 발므 산장이 조금씩 더 크고 명확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르 쁘티 마을에서 출발한 지 2시간 반 만에 발므 고개에 올라섰다. 3시간 정도는 걸릴 걸로 예상했었는데 의외의 선전이다. 모두들 마지막 안간힘을 쓰고 있다.


- 여한이 없다 -


배낭을 내려놓고 우선 점심 요기부터 했다. 감자튀김을 곁들인 스테이크를 주문해서 맥주와 함께 먹으니 맛이 아주 그만이다. 그동안 가공 고기만 먹다가 진짜 소고기를 먹는다. 발므 산장 주인 할머니가 인심이 고약하다는 소문을 들었었다. 대해보니 진짜 나쁜 사람인 것 같지는 않고 우리나라 욕쟁이 할머니들처럼 말투가 좀 투박해서 그런 말을 듣는 듯하다. 점심을 먹고는 발므 고개 언덕에 그늘 막을 치고 쉬면서 알프스 걷기 여행의 마지막 여정을 음미했다. 서양 사람들은 해만 나오면 훌렁훌렁 벗고 일광욕을 즐긴다. 우리는 해를 피해서 그늘 밑으로 찾아들기 급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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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앞에 펼쳐진 조망이 정말 끝내준다. 그동안은 몽블랑 산군의 뒷면만 보고 걸었다면 오늘은 드디어 앞 얼굴을 생생히 목격한다. 늘 하얀 만년설로 덮여 있어 ‘하얀 산’ ‘몽 블랑’이라지. ‘아! 언제나 이곳 알프스에 다시 와 보게 될까?’ 풀밭에 뒹굴어도 보고 드러누워 하늘도 보고 바람을 느끼며 잠도 청해 본다. 여기가 알프스 파라다이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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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스위스에서 프랑스로 다시 넘어간다. 국경선에 한 발을 들고 서서 다시 한번 국경 넘기 퍼포먼스를 펼친다. 공중부양 샷도 멋지게 찍고. 스위스로 넘어올 때의 전쟁터 같았던 상황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이다. 발므 고개에서는 리프트를 이용해서 바로 내려갈 수도 있다. 우리는 걸어서 하산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마지막 여정을 남겨두고서 못내 아쉬운 마음들이 들었던 모양이다. 성철 님은 끝까지 리프트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혀를 끌끌거리다가 결국 대세에 동참을 해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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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통 TMB 길은 에귀에트 뽀제 산(Aiguillette des Posettes) 정상을 넘어 능선을 따르는 코스지만 우리는 사면으로 이어진 변형 TMB 길을 택했다. 길을 걷는 것은 좋지만 능선을 오르내리는 험한 길보다는 편안하게 걸을 수 있는 우회로의 유혹을 뿌리치기 힘들었다. 어차피 능선의 끝 부분에서 두 길은 만나게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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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선의 사면으로 난 지그재그 길을 따라 조금씩 하강한다. 중간에 블루베리도 따먹고 몽블랑의 비경을 마지막으로 사진에 담으며 여행이 끝나가는 아쉬움을 달랬다. 오후 4시가 넘어 마침내 알프스 몽블랑 걷기 여행의 종착지 트레 레 샹(Tre le Champ, 1417m)에 도착했다. 원래는 근처의 캠핑장에서 하루를 보내고 다음날 락 블랑(Lac Blanc, 2352m)에 오른 후 브래방(le Brevernt, 2525m)까지 걷는다는 계획을 세웠었다. 그러면 몽블랑의 전면을 충분히 감상할 수 있었을 것이다.


끝까지 밀어붙였다면 불가능한 계획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렇게 했다면 걷기 여행이 아니라 걷기 노역이 될게 뻔했다. 기쁜 마음으로 여행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고통스러운 몸으로 오로지 임무를 완수하기 위한 빨치산 작전을 수행하는 꼴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됐다. 걸을 만큼 걸었고, 볼 만큼 보았다. 여한이 없다.


- 기록적인 일을 해내다 -


트레 레 샹으로 하산하면 바로 버스가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샤모니로 들어가는 버스를 타려면 몽툭(Montroc)이라는 마을까지 좀 더 걸어가야 했다. 발므 고개에서 케이블카를 타거나, 케이블카 아래로 난 지름길을 따라 르 뚜르(le Tour)로 내려온다면 거기서는 버스를 바로 탈 수 있다. 르 뚜르에서 출발한 1번 버스가 몽툭을 거쳐 샤모니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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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 레 샹에서 십분 정도를 걸어서 몽툭에 도착했다. 이제야 정말로 모든 여정이 끝이 났다. 서로를 얼싸안고 완주의 기쁨을 나눈다. “모두 수고하셨어요.” 서로의 등을 두드리며 벅찬 감동을 나누었다. 모두 두 손을 꼭 잡고 만세를 불렀다. 정말 대단한 일을 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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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를 기다리는 사이,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꾹꾹 참았다가 우리가 여행을 마친 걸 알고 그제야 비를 내린다. 운이 참 좋았다. 버스를 타고 30분 정도 걸려서 샤모니에 귀환했다. 첫날 묵었던 알펜 로제 산장에 배낭을 풀고 휴식을 취했다. 저녁 식사를 미리 예약해두었었지만 한국에서 온 단체 팀이 갑자기 들이닥치는 바람에 순서가 밀리고 말았다. 엘레나 산장에서 베드를 독점했던 바로 그 팀이다. 우리야 직접 라면도 끓여먹고 김치에 된장국도 해 먹었지만 이 팀은 계속 산장 스테이크와 양식만 먹었을 테니 한식이 무척이나 그리웠을 것이다.

숙소에서 기다리는 동안 <알프스를 걷다>라는 책에 등장하는 아이크 박현호 씨를 만났다. 단번에 그를 알아보았다. 알프스에 오기 전에 검색하고 공부한 수많은 블로그에 그가 등장한다. ‘꿈꾸는 산’이라는 다음 카페를 개설해서 알프스 몽블랑 여행팀을 꾸려 매년 몽블랑을 찾아오는 분이다. 그와 대화를 나누면서 유럽의 다른 트레일들에 대한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사실 TMB 코스는 ‘오트 루트’나 코르시카 섬의 ‘GR 20’ 코스에 대면 산책 수준의 길이란다. 강호엔 숨은 고수들이 정말 많다. 우리가 5박 6일 동안 야영하며 이렇게 저렇게 돌았다고 하니 정말 대단한 일을 하셨다며 엄지를 치켜든다. 보통은 비박 배낭을 메고 걸을 경우 8박, 9박은 해야 하는 코스라는 것이다. 거의 기록적인 일을 해냈다며 놀란 표정을 짓는다. 우리가 그렇게 대단한 일을 해냈단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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