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한 지인에게 연락을 했다. 웬지 당분간 계속 파리에 있을 것 같은 지인이었는데, 그새 파리를 떠나 오스트리아에 머무르고 있다고 소식을 전해왔다. 그리고는 파리가 싫은 이유를 쓰라면 논문도 쓸 수 있다는 말을 덧붙였다. 알고보니 학사를 마치고 석사 신청을 했는데 중간 과정 미숙으로 학사 논문 심사가 되지 않아 신청이 자동 취소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설마했던 이 말을 들었다. “파리는 다시 가지 않으려구요.” 원래 밝은 성격인 그녀가 파리에서 심한 우울증을 겪었던 것을 알고 있었기에 곧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해당 지인 뿐 아니라 심심치 않게 파리에서 공부하던 유학생들이 학업을 중도에 그만두거나, 학업을 마치고도 이런저런 이유들로 파리 생활을 접고 한국에 돌아갔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유학 생활 동안 결코 힘든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텐데도, 꼭 곁다리로 함께 끝맺는 문장은, ‘학위만 받고 쿨하게 프랑스는 뒤도 안 돌아보고 갔다’는 소리로 이야기는 막을 내린다. 유학생이나 이민자가 한국에 돌아가는 경우 마치 본인의 잘못으로 뭔가 현지 생활이 삐그덕 거렸으리라는 오해가 있을 수 있는데, 나의 알량한 파리의 거주 경험으로 이는 결코 사실이 아니라고 주관적이고도 객관적인 경험으로 증언할 수 있다.사실 이미 프랑스의 마비된 행정 시스템에 관한 문제의식은 유학생이나 거주민 사이에도 꽤 오랫동안 공유된 것이며, 프랑스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미 클리셰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프랑스 파리 여행’으로 포털사이트 검색을 할 때 프랑스는 우리에게 매혹적인 손짓을 한다. 샹송이 들리는 샹제리제의 길거리와 명품 샵들, 라듀레로 대변되는 색색가지 마카롱들, 시크한 표정으로 빠르게 걸어다니는 패션피플들, 와인 한 병 들고 센느 강변에서 피크닉을 하고 있는 파리지앵들의 사진들까지, 파리와 프랑스의 그런 부분은 확실히 프랑스를 매력적으로 보이게 한다. 프랑스의 행정 절차와 엮이지 않을 사람에게 확실히 프랑스라는 나라는 명품, 제과, 철학, 문학, 예술 등 역사적으로 근본이 있는 문화의 힘으로 사람을 유혹하는 연성권력이 강한 나라이다. 오래된 프랑스의 멋과 아름다움, 정신세계에 대해서까지 사람들은 파리를 꿈꾸고 프랑스를 예찬한다. 프랑스는 그런 의미에서 충분히 낭만적이고 철학적인 나라이다.
하지만, 거주자는 당연하게도 프랑스의 몇가지 민낯(어쩌면 파리 위주의 민낯)을 보게 된다. 이는 대개 행정 문제로 시작해서 거주 상황 관련 문제(집 구하기, 집세, 집주인과의 관계, 세금), 병원 문제, 치안 문제(길거리, 지하철), 기타 문제(각종 오염) 등을 돌고돌다가, 다시 초반 우리를 힘들게 했던 행정 문제로 학을 떼고 프랑스를 떠나는 경우가 많다. 프랑스의 행정 절차에 대한 악명은 이미 프랑스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들어는 봤을 것이다. 프랑스는 싸데펑(ça depends)의 나라이다. 영어로는 It depends, 그때 그때 다르다는 뜻이다. 이 문장은 내가 봉쥬르 다음으로 배웠던 불어였던 것 같다. 프랑스에 관심을 가졌던 초반기 사람들에게서 프랑스에 가거들랑 싸데펑을 기억하라고 조언으로 들었던 말이다. 역시나 프랑스에서 지내면서 관공서에 방문하다 보면 매번 담당자마다 다른 방식을 적용하여 일을 진행하는 일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 일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만나게 되는 담당 직원들마다 말이 다른 건 일반적으로 일어나는 일이다. 거기에 과정이 느려서 한 절차를 끝내기 위해 몇달을 기다려야 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그런데 이런 느린 행정 절차는 외국인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프랑스인 자국인이 부딪히는 대민 행정에서도 마찬가지다. 나의 경우는 단신으로 오는 유학생처럼 혼자 부딪히지는 않아 사정이 좀 낫겠지만 현지인 남편을 두었음에도 행정 절차는 여전히 느리게 돌아갔다. 현지인 남편이 있어서 좋았던 점은 그나마 버벅대지 않고 잘 따질 수 있다는 점이다.
프랑스는 종이행정 공화국
프랑스에서 겪는 행정은 기본적으로 종이행정으로 이루어진다. 그렇기에 이곳에서 프랑스식 서류 제출하는 방식에 익숙해지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글로벌 전자행정 시대라는데, 프랑스에 살면서 익숙해진 것은 서류를 종이로 출력해 우편으로 보내는 아날로그적인 방식이다. 주고받은 편지, 우편, 서류는 최소 몇 년 간은 보관을 해놓고 있어야 만일의 상황에 대비할 수 있다. 한번은 집 정리를 하다가 남편 서랍에서 10년은 된 은행 우편 서류가 쏟아져 나와 이걸 버려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어안이 벙벙한 적도 있었다. 이렇게 종이로 많은 것을 처리하니 프랑스에서 얼마나 종이 소비를 많이 하는지 카운트 하는 웹사이트도 있다. 플래닛투스코프 (planettoscope)에 따르면, 프랑스에서는 2016년 한해 동안880만 톤의 종이가 소비되었는데 이는 마치 1초에 279kg의 종이를 쓴 것과 마찬가지라고 한다. 세계자연기금(WWF) 에서 프랑스 공공 및 민간 기관의 종이 소비량과 환경보호에 관한 보고서(Le Baromètre PAP50)를 내놓기도 했다.
세계자연기금(WWF), 프랑스 기관의 종이소비량 평가 보고서
그나마 최근에는 온라인 서류 제출 방식으로 선회하거나 이메일로 커뮤니케이션하는 경우도 많아지긴 했지만, 관공서, 보험, 은행 등 공공 행정, 민간 행정 가릴 것 없이 여전히 우편을 주고 받는 방식으로 소통하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이런 식으로 종이 서류를 매번 우편으로 제출하고 확인받는 방식으로 인해 서류를 잃어버리거나 늦게 처리하게 된다는 것이다. 하도 서류 제출 문제로 크고 작은 행정이 버벅대니, 프랑스에서는 잘 받았으면 잘 받았다고 확인증(attestation)과 약속증(lettre de convocation)을 보내는 문화가 있다. 참고로 이 확인증, 약속증은 나중에 출력해서 가지고 가지 않으면 약속 장소에 들여보내지지 않는다.
왜 서류는 항상 중간에서 사라질까? 6개월 이상 걸린 사회보장보험 가입
2014년 학생비자로 처음 프랑스에 갔을 때다. 프랑스 사회보장보험인 시큐리떼 소셜(Securité sociale)에 가입하기 위해 서류를 바리바리 준비해 우편으로 보냈다. 크게 아픈 데도 없고 급한 건 아니었지만 시간이 지나도 답신이 없어 전화를 해봤더니 서류를 못받았다고 했다. 우편사고인가 싶어 수취인 확인이 되는 우편으로 두번째로 보냈다. 우체국 사이트에 잘 도착했다고 떠서 안심하고 넘어갔다. 그런데 그렇게 어언 6개월이 흘렀다. 날이 흐려 집 안에 무기력하게 누워있다가 갑자기 생각이 났다. 아차싶어 전화를 해보니 서류를 못받았으며 내 이름으로 만들어진 서류철이 없다고 한다. 분명히 잘 도착했던 것까지 확인했는데 통화하는 사람 말로는, 찾아봐도 내 이름의 서류가 없단다. 아직도 의문스럽다. 열심히 테이프칠해 보낸 2개의 우편 서류는 어디로 사라진 거며, 6개월은 무얼 위한 기다림이었던지.
그 사이 우리 부부는 혼인신고를 했고, 나는 프랑스인을 대상으로 하는 보험지점에서 남편을 통한 사회보장보험 가입이 가능해졌다. 가입 자체는 꽤 빨랐고 온라인으로 번호발급이 이루어졌다. 꽤 놀라웠다. 한큐에 끝내버리자는 생각에, 실물보험증(carte vitale) 발급을 신청하는 우편을 보냈다. 그런데 한 달을 기다렸지만 메일도 전화도 우편도 아무것도 오지 않았다. 메일로 공손히 문의해보니 서류가 없다고 한다. 담당자는 당황한 기색 없이 서류를 잃어버린 것 같으니 다시 보내달라고 했다. 딱히 외국인이라서 서류를 잃어버림당하고 차별받았다기보다는 프랑스인을 주대상으로 하는 경우에도 프랑스 대민 행정은 매우 비효율적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생각되었던 순간이었다. 결국 다시 서류를 꾸역꾸역 뽑아서 사진을 풀칠해 붙이고 양식에 맞게 서류철을 만들어 보내는 일을 똑같이 한번 더 했다. 다행히 며칠 후 잘 받았다는 확인 메일이 왔고, 덧붙여 “실물 보험증은 1년 정도 기다리면 받을 것이다”라고 했다. 신청한 사실을 잊어버리고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우편이 왔다. 보험증이었다. 그나마 신청한 지 한달밖에 지나지 않았기에 매우 위안이 되었다.
지나고보니 프랑스에서 행정처리를 할 때 한달 안에 처리가 되면 매우 빠른 편에 속한다. 기본이 3~6개월이고 그나마 늦더라도 처리가 되면 다행인 축이다. 목을 빼고 기다렸는데 결국 일처리마저 잘못되면 희망고문을 당하고 손에 남는 것이 없게 된다. 그래서 프랑스에서 행정을 처리할 때는 서류를 보내도 한번에 처리가 될 거라고 생각하고 보내지 않는다. 행정의 결과물을 얻기 위해 끊임없이 투쟁해야 그나마 마무리를 볼 수 있다.
담당자마다 기준이 다른 프랑스식 싸데펑, 5개월 만에 겨우 혼인신고 완료
프랑스에 도착해서 학교를 다니기 시작함과 동시에 준비를 같이 시작했던 것이 혼인신고 서류였다. 필요한 서류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파리 마레지구 구청에 방문했다. 예쁜 성 같은 오래되고 예쁜 인테리어의 구청이 인상적이었다. 결혼 신고에 관한 업무는 어디에서 보는지 몰라 안에서 남편과 한참을 헤맸다. 어떤 작은 살롱 안에 담당자들이 앉아있길래 물어보자 그곳에서 업무를 본다고 했다. 혼인신고 필요 서류 목록과 혼인신고서를 받아왔다. 필요 서류는 총 8개였다. 시간을 들여 열심히 준비해 파일철을 만들어갔다.
두번째로 방문해 같은 살롱으로 들어가 서류를 제출하러 왔다고 했다. 하나씩 검토하던 중 담당자가 매의 눈으로 거주증명서 부분이 잘못되었다고 다시 해와야 한다며 말했다. 거주증명(justificatif domicile)을 위해서는 ‘전기세 납부요금 영수증’이 있어야 된다고 했다. 당시 우리 집에 프랑스전기회사(EDF)에서 정기적으로 보내는 납부 영수증 우편이 몇달간 안오고 있는 상황이었어서 거주증명을 하려고 온라인으로 보이는 영수증 화면을 출력해 간 차였다. 깐깐하게 보이는 담당자는 그건 ‘우편으로 받은 정식 영수증’이 아니라고 우리를 돌려보냈다. 담당자에게 이름을 물었더니 갑자기 의자를 뒤로 물러나 앉으며 우리에게 알려주지 않겠다고 했다. 당시 사회보장보험에서도 서류를 보내도 6개월 간 깜깜무소식이었던 터라 우리는 다른 식으로 증명할 방법도 없었다. 한 기관의 행정 절차가 늦어지면 그 서류가 필요한 다른 행정절차까지 연쇄적으로 늦어지는 것은 매우 기가 빠지는 일이다. 이때까지는 아, 프랑스가 싸데펑이라더니 원리원칙을 철저히 지키는 나라구나 하는 착각을 하기도 했다. 담당자의 말에 따라 프랑스 혼인신고를 올스탑하고 몇달 간 무력하게 거주증명을 위한 전기세 영수증 우편이 오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흘러 연말이 되자 드디어 전기요금 납부 영수증이 든 우편이 도착했고 이번에야말로 다른 소리 못하게 만들겠다는 집념으로 철저히 서류를 챙겼다. 같은 살롱에 들어가니, 예전에 봤던 담당자가 아닌 다른 담당자가 앉아 있었다. 푸념하듯 그간 거주증명서때문에 오래 걸렸다고 말하니 “어, 그 거주증명 전기세, 온라인 영수증으로 해도 되는데요?”라고 중얼거린다. 5개월 전, 애초에 방문했을 때도 가능했던 거였다. 이 담당자는 되고 이전 담당자는 안되는 것은 무슨 상황인지 당췌 혼란스러웠다. 지난 몇 개월이 무상했다. 이 사례에서 알수있듯 담당자마다 말이 다르다. 최고의 ‘싸데펑’을 경험한 순간이었다. 여담으로 시청결혼식 날 프랑스의 가족수첩을 받았는데 가족수첩에 남편과 내가 둘다 서로에게 남편(남자끼리 결혼)이라고 적혀 있었다. 작게 병기된 호칭이라 신경써서 보지 않았다면 그대로 지나갔을 생각을 하니 아찔하다.
참고로, 프랑스에 거주하면서 행정 절차에 이골이 난 사람들은 요구받지 않은 서류들까지 준비해 같이 가져가는 센스가 생긴다고 한다. 싸데뻥에 대비해 거절받지 않는 요령이 생기는 거다. 첫 서류에서 안된다고 우기던 직원도 두번째 서류를 내밀면 된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식으로 파리에 살면서 행정이 비효율적일 것을 예상하고 거기에 미리 대비하는 조금의 대처방법이 생기기도 한다. 물론 늘 예상을 뛰어넘고 허를 찌르는 일이 발생하기는 하지만.
총체적 난국, 비자 갱신을 위한 파리 경시청 방문기
파리 시테 경시청
파리 거주 외국인을 상대로 비자 갱신 등의 업무를 하는 파리 경시청은 외국인들 사이에서 비효율의 대명사로 유명하다. 그걸 직접 경험해보니 비자 갱신기간이 다가오면 머리가 지끈거리게 된다.
보통 비자 만료 3개월 전에 경시청에 비자 갱신을 신청하라고 안내받는다. 내 경우는 11월달에 온라인으로 신청하려고 보니 비자 만료 월인 1월 ‘이후’에만 가능해서 2월달로 방문약속을 잡았다. 결국 1달간은 내 잘못이 아닌 불법체류 신분으로 머물게 되는 현상이 일어났다. 그래도 경시청 약속증(convocation lettre)이 있으면 불체자 신분은 아니라는 게 위로가 되었다. 그 한달 간 비자없다고 무슨 일이 일어나겠냐만은 내심 이때부터 프랑스 행정 절차에 대한 불신이 싹트기 시작했다. 비자 만료 3개월 전에 약속 잡으면 된다고 해서 진짜로 3개월도 안남기고 약속을 잡으려고 하다니 내탓이오를 연발하며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날짜를 맞춰서 2월에 파리 경시청에 방문을 했다. 약속시간은 오전 10시 30분이었고 시간맞춰 갔더니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이미 파리 경시청 앞에 진을 치고 줄서있었다. 줄을 서고 가방 검사까지 받고 안으로 들어갔다. 서류 접수하는 본진으로 들어가기 전에 번호표 받는 곳에서 나를 막았다. 오늘 안된다고, 미안하지만 사람이 많아서 10시 이후에 약속잡고 온 사람들은 다 돌려보내라는 상관의 지시가 있었단다. 물론 나는 그것에 대한 어떤 고지도 받지 못했다. 어쩔 수 없이 그날 나와 비슷한 시간에 방문한 사람들은 방문했다가 접수를 못하는 헛탕을 쳤을 거다. 매우 비효율적이고 고압적인 방식이다. 이쯤되니 헛웃음이 났다. 당일 약속시간에 맞춰서 갔는데 번호표 발급조차 거절당했다. 조금 전에 와서 똑같은 사유로 거절받고 얼굴이 빨개진 채 창구에 항의하고 있는 사람 두 명이 보였다.
계속 물어보니, 접수 창구 직원이 하는 말로는 창구가 5개밖에 없는데 40명이나 있어서란다. 창구 1개에 8명씩 처리하면 될 것 같은데 1 인당 1시간씩 잡고 하루에 창구 1개당 8명만 소화하나 보다. 대기실을 돌아보니 이미 앉아서 순서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다 가진 자’의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여유나는 창구에서 하면 안되냐고 사정해도 안된다고 단호히 말한다. 마치 내가 그들의 룰을 부정하기라도 한 것처럼. 원칙이 그렇게 중요하다면, 왜 그보다 더 이전에 약속된 원리원칙인 개개인의 방문 약속 시간은 지키지 않는 걸까? 경시청이 보이는 행정 처리 태도는 혼란스러웠다. 울분을 참고 어쩔 수 없이 다음 약속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 다음 방문이 가능한 시간은 3개월 후인 5월이었다.
5월에 다시 경시청을 방문했다. 그 사이 내 신분은 비자발적 불체자 신분이었을 것이다. 기가 막힌 것은 내 당일 방문 약속이 방문자 약속 리스트에 업데이트가 안돼 있었다. 3개월 전에 받았던 약속증 종이를 보여주니 창구직원은 “약속이 리스트업돼있지도 않다. 이 종이는 뭐냐”며 난색을 표했다. 당황스러운 건 나였다. 결국 같은 절차를 처리하는 직원들 간 업무 인계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다.
수기로 수정되었던 약속증, 다음 번 약속에서 거절당할 뻔...
바로 이게 프랑스식 싸데펑이다. 약속을 잡고 갔는데 거절 당하고, 된다고 해서 약속시간을 수정한 종이만 믿고 기다렸는데, 다음번 약속에서 마주한 직원은 그 종이의 효력을 부정한다. 담당자들끼리도 통일된 원칙이 없어서 담당자가 바뀌면 또 새로운 말이 나온다. 세번 약속을 잡아서 가면 세번 다시 설명을 해야 한다. 한 기관에 행정 처리를 하러 찾아갈 경우 몇개월을 입씨름하며 난리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그나마 일처리가 잘되면 다행이다.
나중에 남편 동료(북아프리카 출신 프랑스 거주자)가 말을 해준 걸 들어보니 10시 30분 약속이라도 오전 6시 30분에 나가서 일찌감치 줄서고 진을 치고 있어야 한단다. 조금 늦어서 7시 30분에 경시청 앞에 갔더니 이미 40명이 서 있었다. 비자 갱신 서류를 접수하는 과정에서도 요구하는 것이 순탄치는 않아 결국 다음날 다시 방문해야 했다. 그 과정에서 또 뭔가 삐걱삐걱댄다. 전날 지문등록을 했는데 다음날 다시 지문등록을 해야 했다. 등록이 안돼 있단다. 바로 전날 등록하고 왔는데 왜 안돼있는지는 모를 일이다. 프랑스에 살다보니 이런 자잘하게 삐그덕거리는 상황은 애교다. 이때 비자 갱신때문에 의도치 않게 경시청을 총 3번 들락날락했다. 비자만료일로부터 최종적으로 체류증을 받기까지 걸린 시간은 5-6개월이었다.
의사를 만나려면 내년에 오세요, 병원 방문기
이곳에 살며 병원에 가야할 때 프랑스라는 나라의 민낯을 또다시 맞닥뜨린다. 병원 문제 역시 외국인에만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라 프랑스의 병원을 이용하는 현지인에게도 느리기는 마찬가지다. 일례로, 노르망디에 사시는 시아버지께서 얼굴에 작은 사마귀가 나 노르망디에 있는 피부과를 전부 찾아보셨더니, 당시 가장 빠른 방문시간이 6개월 후였다고 한다. 10월에 사마귀 하나 빼러 전화했더니, 내년 3월에 오라는 얘기를 과연 한국사람들은 상상이 가능할까? 시아버지는 결국 사마귀가 나신채로 이후 한국에 방문하셨을 때 피부과 당일 방문으로 잘 치료하셨다. 이후로 평생 프랑스에서 산 인생 동안 오래 기다리는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프랑스식의 기다리는 의료 시스템’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는 말씀을 종종 하신다. 정말 ‘급해서 죽겠다’는 것을 피력하지 않으면 이 기다리는 기간은 줄여지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남편이 안경을 하나 맞추기 위해 안과의사 약속을 잡으려고 안과 의사에게 전화해봤더니 가장 빠른 시간이 역시 6개월 후라고 했다. 결국 안경도 당시 결혼 때문에 한국방문을 했을 당시 한국에 온 김에 빠르게 맞출 수 있었다.
이런 이야기를 한국 지인들에게 하면 실화냐며 반문하고 나 역시 농담처럼 사례들을 전하곤 한다. 파리가 유독 심하다고 하기에 몇가지 사례로 전체를 일반화한다는 것은 어려울 수도 있다. 프랑스는 넓으니 상대적으로 인구가 적은 지역에서는 의료 접근성이 조금 더 수월할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사람이 덜 모인 지역에는 그만큼 개업 의사의 수가 적고, 또 새로운 환자는 안받겠다고 하는 경우도 있어 이사를 새로 갈 경우 평시 진료를 봐줄 일반의를 찾아 헤매야 하는 경우도 많다고 봤다. 이러나 저러나 의사 만나기가 참 힘든 나라다.
프랑스에서는 병원을 가고자 하면 예약을 잡고 일반의를 만나서 전문의를 볼 필요성이 있는지를 상담한 후, 전문의에게 연락해 약속을 잡는다. 보통 전문의가 약속이 밀려 있기 때문에 몇 개월씩 기다렸다 의사를 만날 가능성이 농후하다. 어느날 걷다가 발을 삐끗해 발에 열이 나고 부어오르는 상황에 있었다. 연락해보니 일반의나 전문의가 시간이 나기를 기다리려면 최소한 3일 정도 걸리는 상황이었다. 평소같으면 놀랍게 빠르다고 생각했겠지만 결국 파리 집에서 멀지 않은 노트르담성당 앞 병원의 응급실로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절뚝거리며 센느강을 건너 응급실에 갔고 다행히 사람이 없어 빠른 처치를 받을 수 있었다.
프랑스가 사회보장이 잘되어있다고들 한다. 세금을 많이 내는 만큼 보험으로 커버되는 의료 금액도 크다. 약국에서 처방전대로 사회보장보험 커버되는 약을 사고 500원만 낸 적도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들에게 돌려주려 하니 개개인에게 돌아가는 의료의 접근성과 의료의 질은 낮은 편이라는 생각이 든다.
프랑스 정착 초반, 한국에서도 받곤 하던 정기 여성 검진을 받으러 여성의원에 들렀던 일이다. 프랑스의 여성의원은 어떤지 궁금하기도 했고 검진이 필요한 시기기도 해서 방문해보자고 간 것이었다. 한국에서처럼 옆에 화면이 있어 필요시 눈으로 확인가능한 시스템일거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전문의 왈, “똥배가 있어 난소가 건강한지 확인이 잘 안된다”며 아랫배를 계속 꾹꾹 눌러보는 것이었다. 그 역시 해당 의사가 진료를 보는 한가지 방식일 수 있지만, 나는 한국과는 매우 다른 그러한 진료 방식에 충격을 받은 채 집에 돌아왔다. 개인적으로 이때가 프랑스에서 살면서 가장 당황했던 순간 중의 하나로 꼽는 순간이다. 임신 출산이 아닌 때 평시 초음파 검진이 보편화되어 보이진 않았다. 물론 프랑스에 사시면서 임신, 출산과 프랑스 공립 병원들의 친절을 경험하신 분들도 많은 걸로 안다. 알고보니 프랑스에서 평시 부인과 진료는 산부인과에서 받고 초음파는 에코그라피(초음파)해주는 곳에 따로 방문해 받는 방식이 많다고 한다. 다만 일반 전문의 중에서도 초음파 기계가 있는 곳은 많지는 않아 어느 부인과 의사가 초음파기계를 구비하고 있더라 하는 정보를 잘 찾아서 방문해야 한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프랑스의 의료 인프라와 제도를 경험해 보니 살다가 초기 염증이 암으로 발전하고 검진을 못해 시기를 놓치면 갑자기 쓰러져 죽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명의 위협까지 느껴졌다. 한 여성 교민 분은 무려 파리에서 가장 좋다는 부인과에 갔는데 이곳의 기술로는 가능하지 않다고 해 급하게 한국에 가 날짜를 잡고 수술을 받고 왔다고 한다. 프랑스를 즐기며 별탈없이 살려면 평소 병원이 필요 없을 정도로 건강하고 튼튼한 몸을 가져야 가능한 것 같다. 병원을 몇 번 가보니 이곳의 의료체계에 기대하는 것이 적어졌다. 가벼운 증상은 병원에 가지 않고 약국 제품으로 해결하게 되게 되었다. 장염에 걸린 것 같은데 “그냥 약국 장염약 먹고 잘래…”라는 말이 제일 먼저 나온다.
마치 숙변처럼 느리게 나오거나 정체되어 지긋지긋하게 기다리게 만드는 프랑스의 행정 절차를 겪었던 순간들, 제일 처음 프랑스를 도로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일반의나 전문의를 만나기 어렵다는 것과 의료 검진의 질에도 만족스럽지 않았던 점 때문에 이곳의 생활에 계속해서 확신이 들지는 않았었다. 물론 주변을 둘러보면 프랑스가 가진 ‘무언가의 매력’을 발견해 계속 살고 있는 사람들도 많지만, 그건 젊고 건강한 몸을 가졌을 때나 가능한 일이라는 생각이다.
내 경우는 정착 초반기가 지났기에, 느린 행정과 병원 문제는 기대도 없고 실망도 없는 안정기에 접어들었다. 그럼에도 이 문제들로 인해 프랑스에서 정착하려고 했던 결심이 맞는가 반문을 하던 수많은 나날들이 있었다. 결혼하고 계속 프랑스에서 사니, 주변에서는 여행으로 2주일 가도 아쉬운 유럽인데 거기서 몇 년 사니 얼마나 좋겠느냐는 시선을 많이 받았던 것 같다. 그런데 나는 주변의 누군가가 유럽국가 중 프랑스에 오래 살았다고 해도 부러워할 것 없다고 생각한다. 아마 그 누군가도 굳이 말을 안할 뿐이지, 프랑스에서 겪은 행정 절차 문제, 병원 문제에 관한 한 홍역을 한탕 치른 경험을 가지고 있을 테니까.
주변에서 이런 저런 이유로 프랑스를 떠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리고 그 이유는 위에 언급한 행정, 병원 문제로 인한 경우가 많다. 크고 작은 행정 문제로 적시에 처리되어야 했던 일이 처리가 되지 않아 인생의 계획에 변경이 생기게 된 경우, 행정 절차가 잘 완료되었음에도 결국 그밖의 자잘한 행정 문제 등으로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은 채 제3국으로 떠나거나 한국으로 돌아가는 경우다. 프랑스를 좋아하는 마음으로 왔어도, 1년 이상 이곳의 행정절차에 발을 들여놓고 살고 나면 왜 이렇게까지 하면서 있어야 하는지 격렬히 고민하게 된다.
만약 프랑스가 너무 좋아서 지내보고 싶은 마음이 크다면, 가장 좋은 것은 행정 절차와 엮이지 않고 비자도 관광비자로 가능한 3달 정도의 기간만 지내기를 추천하고 싶다. 굳이 현지 은행계좌나 핸드폰을 트지 않아도, 충분히 한국 은행출금카드, 로밍, 와이파이 등으로 불편함없이 지낼 수 있다. 1달 정도면 에어비앤비로 간단히 거주를 해결할 수도 있고, 굳이 프랑스인 보증인이 필요하거나 집주인과 엮이지 않아도 되는 셰어아파트(collocation)를 찾아 머무를 수도 있다. 프랑스에서 행정 절차는 가능하면 엮이지 않는 것이 최고다. 주변 한국인 뿐 아니라 외국인, 심지어 프랑스 내국인들까지 고생하는 걸 많이 봤기 때문이다. 프랑스에 잘 정착해 사느냐의 각자의 상황과는 별개로, 이 두 가지 문제는 프랑스 내의 외국인 뿐 아니라 현지인들까지 포함해 많은 사람들의 문제의식을 불러일으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