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5.30 삼쇠섬 21일차(덴마크25일차)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명쾌한 방식. 내 의사를 잘 표현하고 상대방의 의사를 잘 받아치는 것. 그 별 것 아닌 해답을 나는 이들과 함께 지낸 겨우 며칠 동안에서 얻었다.
오늘은 덴마크의 또 다른 공휴일이다. 주말까지 이어지는 휴가 덕분에 식당은 오픈과 함께 사람들이 물밀 듯 몰려왔다. 단체 예약부터 가족 단위 예약까지 테이블을 치움과 동시에 새로 세팅을 해야 했다. 더불어 스티니네 돼지가 새끼를 낳은 덕분에 스티니가 잠시 자리를 비우기까지 해서 더욱 정신없이 몰아치는 일을 소화해야 했다. 능숙한 도우미 애나미어도 한숨을 여러 번 쉬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우퍼들은 손발이 잘 맞았다. 베티가 스티니를 대신해 서툴지만 음식을 준비하고 내가 주방과 홀을 오가며 전반적으로 서브하고 히라가 베티와 나를 보조했다. 우리는 실수 없이 음식을 내가고 설거지와 청소까지 깔끔하게 마무리했다.
전쟁 같은 시간이 지나고 우리는 지친 몸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주방에 들어서자마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뮤슬리와 요거트, 빵과 버터를 꺼내 손에 잡히는대로 먹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서로의 피로한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지친 목소리로 베티가 말했다. “난 여기 일을 하러 온 게 아니야. 이건 내 홀리데이라고.” 우리 노동력의 대가는 방과 빵, 거꾸로 말하면 우리는 방과 빵의 값에 해당하는 노동력만 제공하면 된다. 베티는 한 달간의 휴가를 보내기 위해 이곳에 왔고, 여행하는 동안 필요한 숙식을 해결하기 위해 우프를 선택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여행이고 일은 음식을 해결할 만큼만 그에게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는, 주방장을 대신해 일을 맡을 만큼 과한 일을 하고 있다. 피로에 절어 집에 돌아오면 여행도 할 수 없을 지경으로. 베티의 푸념을 시작으로 이런저런 문제점들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사람들과 이야기를 시작하자 2주간 혼자 지내면서 견뎠던 사소한 것들이 다 문제로 보이기 시작했다. 괜찮았던 것들이 누군가의 생각과 의견이 보태지자 괜찮지 않은 것들이 되었다. 결국 이곳도 사람들이 살아가는 곳이라는 것. 사소하지만 일상 속에선 크고 작은 문제들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 어쩌면 이곳에 대한 환상과 기대로 그런 것들을 내 시야 밖으로 밀어내왔던 것일지도 몰랐다. 살아온 방식과 생각이 전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이야기를 시작하자 나라는 사람이 낯선 상황에 적응하고 맞추기 위해 얼마나 내면의 목소리를 누르며 살아왔는지 느껴지기 시작했다. 내 감정을 조리 있게 잘 표현하고 또 그것이 반대 의견에 부딪힐 때 긍정적으로 소화해낼 수 있는 방법을 나는 잘 모른 채 살아왔다. 초콜릿 뮤슬리 논쟁*을 이어가던 끝에 히라가 말했다. “오케이. 나도 원하는 걸 이것저것 달라고 말해볼게. 안 된다고 하면 오케잇, 알았어, 하면 되는 거지 뭐.”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명쾌한 방식. 내 의사를 잘 표현하고 상대방의 의사를 잘 받아치는 것. 그 별 것 아닌 해답을 나는 이들과 함께 지낸 겨우 며칠 동안에서 얻었다.
유쾌한 논쟁을 끝으로 우린 처음으로 다 함께 저녁 식사를 했다. 식당에서 예약 손님 몫으로 준비해둔 음식을 받아왔는데 종류별로 구색을 맞춰 세팅된 것이라 조금씩 덜어 나눠 먹어야 했다. 우선 씻고 편한 차림으로 밥을 먹고 싶었던 탓에 나를 제외하고 먼저들 먹으라고 말했는데 베티가 고개를 저었다. “다들 몇시에 저녁 먹고 싶어? 이 음식은 혼자 먹기 싫어.” 각자가 준비한 혼자만의 음식이 아니라 조금씩 덜어 다 함께 맛보아야 하는 음식 앞에 베티는 이 음식은 혼자 먹기 싫은 것, 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각자 휴식을 조금 취한 뒤 한 시간 후에 우린 다시 모였다. 베티가 자기만의 비법 소스로 샐러드를 만들고, 내가 나만의 레시피로 스크램블 에그를 만들었다. 히라가 식탁을 세팅하고 쉐얀이 설거지를 맡았다. 우린 접시를 돌리며 같은 음식을 각자의 그릇에 조금씩 덜어 먹었다. 누군가 우리가 다 함께 먹는 첫 저녁 식사라고 말했고 모두 웃었다. 우중충한 날씨와 기분이 모두 날아갔다. 식사가 끝나고 쉐얀이 한국에서 나는 밥을 먹은 뒤에 아이스크림 먹는 걸 좋아해, 라고 말했고 베티가 맞장구쳤다. “나도! 우린 지금 아이스크림을 먹어야 해. 왜냐면 오늘은 레이니 데이니까!” 쉐얀과 자주 가던 집 근처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우린 각자가 좋아하는 맛을 고심 끝에 골랐고 천천히 맛을 음미하며 오래 이야기를 나누었다.
*초콜릿 뮤슬리 논쟁은 히라가 오면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쇠얀과 내가 처음 도착했을 때 스티니는 우리에게 초콜릿 뮤슬리와 코코넛 뮤슬리를 각각 하나씩 주었다. 초콜릿을 좋아하는 나와 쇠얀은 초콜릿 뮤슬리를 먼저 다 먹어버렸고 스티니에게 초콜릿 뮤슬리를 더 달라고 요청했다. 그게 두 번 정도 반복되자 스티니는 의심의 눈초리(?)로 다른 뮤슬리도 다 먹은 거냐고 물었고 쇠얀은 초콜릿 뮤슬리를 좋아하기 때문에 먼저 다 먹은 거라고 말했다. 그러자 스티니는 갑자기 엄한 할머니처럼 표정과 목소리를 바꾸더니 “초콜릿은 몸에 좋지 않아. 앞으로 초콜릿 뮤슬리는 이주에 한 번, 월요일에만 줄거야.” 라고 말하고는 일부러 다른 뮤슬리를 사다 주었다. 하지만 베티와 히라가 합류하고 인원이 늘었는데도 뮤슬리는 두어 봉지만 제공되었고 다른 사람들이 초콜릿 뮤슬리도 먹고 싶다고 말했지만 스티니는 쇠얀을 의심하며(아마도 쇠얀이 다른 사람을 시켜서 얻어내려고 한다고 생각한 것 같다) “초콜릿 뮤슬리는 월요일에만, 알지?”라고 말하며 주지 않았다. 힘든 일에 불만이 쌓여있던 우리는 초콜릿 뮤슬리 사태를 시작으로 이런저런 불만들을 터놓았다. 다들 스티니의 태도를 이해할 수 없었고 베티는 우리는 우리의 노동의 대가로 원하는 음식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며 “왜 자기가 쇠얀의 건강을 걱정하려 들지?” 하며 어깨를 으쓱였다. 그 말에 우리는 모두 손뼉을 치며 웃었고 또 그런 태도를 보이면 “왜 당신이 우리 건강을 책임지려 하죠?”라고 대답하자고 단결했다. 물론 아무도 그렇게 말하지는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