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5.08. 코펜하겐 2일차
나는 이미 코펜하겐에 흠뻑 친근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처음 맞이한 덴마크의 하루는 길었다. 저녁 9시 무렵에야 해가 뉘엿뉘엿 저물었고 새벽 5시면 이미 온 세상이 환했다. 8시쯤 늦은 저녁 식사를 하는데도 대낮같이 밝아 꼭 누군가의 시간을 더 가져와 쓰고 있는 것 같았다.
얼결에 쓰고 온 수하물 분실 신고서는 효력을 제대로 발휘했다. 숙소에 도착한 오후, 우리의 짐이 공항에 도착했다는 연락이 왔다. 걱정과 묵은 피로감에 잠도 거의 못 자고 우리는 주덴 한국대사관에 문의했고 분실 상황에 대해 문의할 수 있는 정보들을 제공 받았다. 그 사이 공항으로부터 우리가 머물고 있는 주소지로 직접 운송해주겠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리고 거짓말같이 조그만 벤 한 대가 숙소 앞에 서더니 커다란 짐가방을 내려주었다. 손가락 하나 까딱 않고 숙소까지 30kg짜리 짐덩이를 옮겨온 것이다. 우리는 세면도구며 옷가지를 허겁지겁 꺼내며 새벽녘 헤어진 홍콩 친구를 생각했다. 코펜하겐 시내를 여행하다 그 친구를 다시 만나게 된다면 꼭 공항으로 연락해보라는 이야기를 해주자며 그도, 그의 짐도 무사하길 바랐다.
둘째 날 코펜하겐은 더없이 맑고 쾌청했다. 역시 가벼운 패딩을 걸쳐 입어야 할 정도로 쌀쌀했지만 티끌 하나 없는 맑고 깨끗한 바람이었다. 코펜하겐에 머무는 동안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덴마크에서 지내는 동안 외국인으로서 거주 증명을 하고 ‘CPR 번호’를 부여받기 위해 먼저 ‘생체등록(Biometric features)’이라는 과정을 거쳐야 했다. 쉽게 말하자면 공공기관에 가서 인적사항과 지문을 시스템에 등록하는 절차였다. 그 과정을 마치면 정식으로 덴마크에 거주하는 외국인으로 등록되고 CPR 번호를 신청할 수 있었다.
생체등록은 ‘Islands Brygge’역에 있는 ‘Citizen Centre’에서 할 수 있다. 미리 방문 시간을 예약하고 방문하면 된다. 역에서 나와 조금 헤맨 뒤 코펜하겐 대학교 옆에 선 건물 1층에서 Citizen Centre를 찾을 수 있었다. 사무실에는 다양한 외국인들이 생체등록을 하기 위해 줄을 서 있었다. 큰 어려움 없이 신청 절차와 지문 등록을 마치고 나섰다. 한국에서 떠나오기 전 생체등록이니 CPR이니 하는 낯선 용어들을 찾아보는 동안에는 실감할 수 없었던 감정이 피어올랐다. 나는 정말 이곳에서 살아보기 위해 막 첫걸음을 뗀 것이다.
코펜하겐 시내는 걸어서도 충분히 돌아볼 수 있을 정도로 한곳에 모여 있었다. 덴마크를 검색하면 강을 사이에 두고 색색의 건물이 늘어선 사진을 대표적으로 찾아볼 수 있는데 코펜하겐 중심가에 있는 뉘하운(Nyhavn) 운하의 풍경이었다. 실제로 가본 뉘하운은 생각보다 영화 세트장 같은 느낌이었다. 이미 너무 유명해져서 양 길가에는 비싼 카페와 음식점들이 늘어서 있고 온 거리 가득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고 있어서 인터넷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멋진 사진을 건지기는 힘들었다. 그래도 뻔한 관광지에서 뻔한 관광객이 되어 보는 기분도 나쁘진 않았다. 추위에 약해 예쁜 차림을 하고 오진 못했지만 바람에 머리칼을 휘날리며 찍은 사진은 꽤 만족스러웠다. 뉘하운을 빠져나오며 나는 이미 코펜하겐에 흠뻑 친근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CPR: 덴마크 거주 등록 번호로 덴마크 국민들은 출생과 함께 번호를 부여받는다. 쉽게 말해 한국의 주민등록번호로 외국인 또한 거주 신청을 통해 CPR번호를 받을 수 있다. CPR번호를 통해 계좌 개설, 의료, 구직 등 다양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생체등록(Biometric features): CPR번호를 부여받기 위한 사전 절차로 지문을 등록하고 체류 증명을 하는 과정이다. 장기로 체류할 경우 덴마크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생체등록을 필수로 해야 한다. 사전예약은 필수.
https://www.nyidanmark.dk 에서 예약 가능.
**생체등록은 일반적으로 코펜하겐에 있는 지방관청인 ‘Citizen Centre(Njalsgade 72, 2300 København)’에서 가능하고 CPR신청은 거주하게 될 지역의 관공서 또는 코뮨에서 신청할 수 있다.(거주할 집을 구할 때 반드시 CPR번호를 부여받기 위해 등록 가능한 집인지를 집주인에게 확인해야 한다.)
*Citizen Centre (주소: Njalsgade 72, 2300 Københav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