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성예 마음찻잔 Oct 27. 2024

스물여섯, 엄마가 된 그녀

서투른 앳된 초보엄마


88년 10월. 처음 엄마가 되었다.

가냘픈 몸이지만, 하고싶었던 꿈이 많았던 아가씨는 한 아이의 엄마로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다.

한 남자를 믿고 시작한 결혼생활안에서 그렇게 아이를 키우며 꿈도 키워나갔다. 아이를 잘 기르면 그게

나의 꿈을 이루는 것이리라 굳게 믿었던 순수한 그녀였다. 그렇게 소망으로 이어가는 5년이란 결혼생활을 통해 어느새 세 아이의 엄마가 되어 있었다.


딸 둘에 아들 하나.

친정과 시댁에서 큰 일을 했다며 5년만에 아들을 낳았을 때는 한 걸음에 아기를 보러 왔다고 한다. 유난히 넷째 아들을 이뻐했던 홀어머니인 시어머님을 모시고 세 아이들과 함께 살았을 서른 한살의 그녀는 억척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신랑을 너무도 사랑한 그녀는 외벌이로는 무리인 가정경제를 위해서 사회로 발을 내딛었다. 직장에서 근무하며, 퇴근 후에는 아이들을 돌보고, 아이들이 잠들고나면 졸린 눈을 부비며, 부업을 통해 돈을 차곡차곡 모아갔다. 주말이면 아이들은 부업을 하나의 놀이라 생각하며 까르르 웃으며 함께 봉투를 접기도 했고, 장난감을 플라스틱통에 넣는 부업을 하기도 했다. 그런 순수한 아이들이 고마웠을것 같다.


막내 아들이 두돌도 채 되지않았던 그해. 신랑이 갑작스레 쓰러지면서 가슴도 함께 쿵 내려앉았을 것이다. 

돌미나리가 간에 좋다는 말에 막내 아이는 등에 엎고, 두 딸들의 손을 꼭 잡고 산으로 향했다. 그렇게 몇 시간을 헤매며 돌미나리를 한 움큼.. 한 움큼.. 한 봉지를 챙겨 내려오는 발길에는 다시 건강해질 신랑의 건강을 바라며 희망과 함께 집으로 내려왔을 것이다. 




24년 10월. 세 살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아이를 키우며 엄마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답답했다. 왜 그렇게 고생을 하며 살았고, 형제 많은 아버지의 집안에서 굳이 왜 아빠가 할머니를 모신다고 했으며, 그렇게 살기 힘들면서도 아이 셋을 낳아 길렀고.. 등등


그러다, 남동생이 두돌이 안되었던 해에 아빠가 쓰러졌던 얘기를 들으며 그때가 지금의 내 나이보다 훨씬 어린 서른한살에 어린 엄마가 얼마나 무서웠을까..생각하니 참으로 안쓰러웠다. 지금도 그 당시 이야기를 할때는 엄마는 울음을 계속 흘리면서 말씀하셨다.


"내가 얼마나 무서웠는지 아니..너희는 다 어리고..그때는 너무 무서웠어. 혹시나 잘못되면 어쩌지..나 혼자 이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어떡하지.."


그때의 감정이 아직 남아있어서 그럴것같다. 기억이 너무도 강렬해서 너무 아팠어서 지금도 그 당시 얘기를 할때면 울음이 자동으로 나오는 것이 아닌가한다. 그리고, 나도 이제 엄마가 되었기에 얘기를 꺼내신 것 같다. 엄마가 되어보니, 엄마의 어린날의 앳된 그녀가 참 가엾다. 그때의 그녀를 만나게 된다면, 있는 힘껏 안아줄것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