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의 정취 (2)

by 공치사

겨울은 고요하다

지금 사는 도시, 포항에는 눈이 내리지 않는다. 위도 상으로는 크게 남쪽이라 보기는 어려운 데도, 바닷가라 그런지 일 년 내내 다른 곳보다 기온이 높은 것 같다. 나는 수년간 이곳에 살며 눈이 내리는 모습을 딱 두 번 목격했다. 그렇게 어렵게 내리는 눈도 내가 자라며 보아왔던 것과는 질감이 달랐다. 보송보송하고 날아갈 듯 가벼운 눈이 아니라, 두툼한 무게감을 가지고 충실히 중력이 실린 묵직한 눈이 내렸다. 바닷가 습기를 머금어 그렇게 질어진 것일까. 그렇게 내리는 눈조차 귀해서인지, 포항은 눈에 연연하는 도시는 아니다. 뺨에 살짝 와 닿는 시린 얼음 조각에 잠깐의 낭만을 느끼면 그뿐, 공장도, 학교도, 도로도 평소와 다를 바 없이 굴러간다. 포항 겨울 생활은 과메기를 즐길 수 있다는 것 외에는 다른 계절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장성의 겨울은 다소 다르다. 일단은 눈이 많이 온다. 앞서 서술한 봄, 여름, 가을과는 한층 다른 공간이 된다. 장성에서 겨울을 나면 왠지 전혀 다른 공간을 향유하는듯한 기분에 빠지게 된다. 포항의 과메기처럼 겨울에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얼어붙은 듯 명상하는 계절

나는 청각 자극에서 다른 계절과 겨울의 차이를 가장 극명하게 느낀다. 장성의 봄, 여름, 가을은 요란하다. 봄은 농기계 소리의 시절이다. 작물을 심는 파종기니 트랙터 소리는 봄철이면 일정한 진동과 소음으로 겨울의 끝을 알린다. 해야 할 일도 많아 사람들이 다들 혼이 쏙 빠져있는 계절이다. 여름은 기계보다 자연이 시끄러운 시기다. 곤충이나 작은 생명체들은 수천수만 개체가 모여 거대한 소리를 낸다. 때때로 찾아오는 매서운 장맛비와 태풍도 있다. 타닥 타닥, 창문을 때리는 굵은 빗줄기와 유리를 긁는 바람소리는 거대한 자연의 생동을 느끼게 한다. 가을이면 다시 기계와 사람이 소리를 낸다. 그해 꼬박 키워낸 작물들을 수확하고 가공하는 시기다. 많은 것들이 생명 활동을 마치고 쿵, 쿵, 쿵 땅으로 떨어진다.(물론 사람이 수확하는 과일 등은 상품성을 해치지 않기 위해 조심스레 내려놓아진다. 소리 한 줄 없이 한데 빼곡하게 모아진 작물들에 비치는 햇빛이 시끄럽게 느껴질 때도 있다.) 반짝거리는 주홍 껍질을 입은 단감도, 탈곡 후 남은 벼의 짚단도, 알록달록하게 몸을 태운 잎사귀도 모두 바닥으로 온다. 생명 활동을 멈추고 물을 잃은 흔적들은 사람의 체중에도 쉽게 바스라진다. 때로는 산들하게 부는 바람에도 바스라질 정도로 연약하다. 가을은 그런 소리가 들리는 시기다. 다시 조각조각 부서져 땅이 되는 소리가. 사람들은 이것들이 완전히 땅으로 사라져 버리기 전에 가로채 겨울을 날 준비를 한다. 떼어 낸 고추를 말려 가루를 내고, 탈곡한 깨로는 기름을 짠다. 이탈리아에서는 햇볕에 말린 토마토에서 태양의 향수를 느낀다는데, 나는 잘 마른 고추에서 비슷한 감정을 느끼는 것 같다. 몇날 며칠 볕을 쬐어 매끄럽게 마른 고추에서만 느껴지는 생동감이 있다. 얇은 겉껍질을 투과해 안쪽까지 바짝 말린, 볕 좋은 날에 잘 말린 수건의 뽀송함 같은 것 말이다.

그렇게 요란스런 계절을 한 세월 보내고 나면 어느 순간 겨울이 온다. 사소한 소리에도 예민하게 반응하게 만드는 고요함이 오는 것이다. 강렬한 색채만으로 떠들썩한 분위기를 자아내던 작물들은 차곡차곡 창고로 가 버린다. 나무 꼭대기에 달린 감을 쪼아 먹느라 비비적대던 새들도, 짚더미 안에서 낱알을 갉아먹던 벌레들도 어디론가 숨어 버리는 시기다. 자연의 것들은 모두 움직이지 않고 열도 내지 않는 계절인 것이다. 그렇게 생명의 소리가 한바닥 사라지고 나면 이전에는 활기참 아래에 묻혀 인지되지 않던 울림이 귀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가을 내 썩지 못하고 한 구석에 쌓인 낙엽들이 건조한 바람을 맞아 으스러지는 소리, 자박이며 걷는 사람의 발걸음 소리. 아, 이런 소리도 있었지. 불현듯 그동안 잊었던 감각을 떠올리는 시간이 오는 것이다. 그 자극을 찾기 위해 한참 신경을 곤두세우고 나면 어딘가 풍족한 기분이 든다. 음식도, 움직임도, 생각도 아니지만 듣는 것만으로 채워지는 풍요로움이 있다.

다른 소리에 묻혀서 듣지 못한 것이 아니라, 겨울이 아니라면 존재하지 않아서 듣지 못하는 작은 소리도 있다. 미처 얼어붙지 못한 수로의 물길이 얼음을 타고 미끄러지는 소리, 무게를 이기지 못한 고드름이 한다발 바닥으로 떨어지는 소리, 가볍게 쌓인 눈더미가 압력을 받고 우드득 압축되는 소리. 여실 없이 계절감을 드러내는 소리다. 마을 전체에 희게 눈이 쌓인 날이면 온통 하얀 시야 속에 청각이 더 예민하게 느껴진다. 햇살만큼이나 소리도 흰색에 반사되어 사방으로 퍼지는 모양이다.


눈이 쌓이고 차가 가지 못하는 곳이면 어디든

장성은 전라남도, 대한민국 중에서도 남쪽에 위치해있는데도 눈이 많이 온다. 산으로 둘러싸여 구름이 눈을 한참 토해내는 지역이라고 얼핏 들은 기억이 난다. 어렸을 때는 허벅지까지(어린이 기준으로) 쌓이는 눈을 한참 헤집고 다니곤 했다. 겨울철 옷장에는 늘 방수 바지가 있었다. 온갖 바닥에 주저앉아 뒹굴던 나에게는 빼놓을 수 없는 필수품이었다.

장성에는 눈썰매장이 없다. 그렇지만 어린 시절 나에게 겨울의 기억은 전부 썰매에서 온다. 우리 집 창고에는 플라스틱으로 된 빨간 썰매가 네 대 있었다. 우리 가족과 아빠 친구네 가족은 겨울이면 트럭을 끌고 우리만이 아는 썰매장으로 향했다. 근처 야산이 우리의 목적지였다. 아주 가파르지 않은 산길에 트럭으로 주욱 길을 내고, 그 위를 따라 썰매를 탔다. 일반적인 썰매장과 다른 점은, 다시 시작점으로 되돌아가는 일은 셀프라는 점이다. 우리는 플라스틱 썰매를 매단 줄을 들고 정신없이 뛰어 위로 향했다. 길이가 꽤 되었기 때문에, 사실 세네 번 왕복하고 나면 기력이 쭉 빠졌다. 그 때쯤이면 고구마를 먹었다. 아이들이 뛰어 놀기 시작하면 어른들은 작은 바비큐 장비에 불을 피웠다. 거기에 호일에 여러 번 감싼 고구마를 넣어 두곤 했는데, 정신없이 놀고 나면 노란 채소의 섬유질은 움푹 패인 집게 자국을 남길 정도로 딱 알맞게 익어 있었다. 그렇게 불 앞에서 한바탕 오후를 보내고 나면 축축히 젖은 옷은 어느새 춥지 않을 정도로 적당히 말라 있었다. 우리는 너무 늦지 않게 집으로, 마당으로 향했다. 그러면 마당에는 어디 시장에서 구해 온 커다란 석화 자루가 놓여 있었다. 가끔 굴이 아주 신선한 날이면 생으로 한두 점씩을 맛보기도 하며, 밤새 숯불에 그것들을 구워 먹었다. 타닥타닥 타는 숯, 나뭇결이 찢어지는 사이사이로 굴이 입을 벌리는 소리, 그 안의 살점이 끓는 소리가 고요한 겨울 하늘을 가득 채웠다.

이렇게 본격적인 하루에만 눈썰매를 즐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어느 정도 경사가 있고, 눈이 쌓여 있고, 차가 다니지 못하는 길이면 우리는 어디든 썰매를 탔다. 하지만 차로 길을 낼 정도로 커다란 눈썰매장이 아니라면, 두 명은 족히 탈 수 있는 플라스틱 썰매는 사치다. 엉덩이를 가리고, 눈 위를 미끄러질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족하다. 바로 포대 자루다. 앞서 언급한 아빠의 친구 집 근처에는 아주 야트막한 경사로가 많았다. 성인 발걸음으로는 기껏해야 다섯 걸음쯤 될 만한, 폭도 좁고 길이도 아주 짧은 샛길이었다. 우리는 오후 두세 시쯤 그곳에 가는 것을 좋아했다. 그 무렵이면, 슬며시 내리쬔 겨울 햇살이 가장 높은 데 쌓인 눈송이를 몇 번이고 녹이고 얼려 완벽한 미끄럼틀을 만들어 두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거기에 무턱대고 앉아 서로를 밀었다. 딱딱한 얼음 위에 압력을 받아 녹은 물이 우리를 거칠게 경사로 아래로 내몰곤 했다. 아주 짧은 길이었는데도 우리는 종종 주로를 이탈했고, 올라가는 길에는 몇 번이고 다시 아래로 넘어지곤 했다. 아무리 새 바지를 입어도 속옷까지 엉덩이가 훤히 젖곤 했다. 조금 성장하고는 보다 담대해졌다. 내가 다니던 여자중학교 뒤로는 야트막한 산으로 올라가는 샛길이 하나 있었는데, 우리는 눈이 오면 그곳으로 향해 썰매를 탔다. 어디선가 가져온 걸레짝이 된 종이박스를 타고, 빨간 체크무늬 교복 치마를 흩날리며. 당연하게도, 교복과 그 아래 받쳐 입은 옷들은 방수가 되지 않는다. 이렇듯, 눈이 쌓여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미끄러질 준비가 되어 있는 나날을 보냈다.

단점이라면, 자율적인 이동성을 확보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시골에서 자동차의 발목을 잡는 가장 큰 요소라는 점이다. 서울이나 도시와는 달리, 시골에는 제설이 제대로 되지 않는 곳이 많다. 물론 읍내의 도로라던지, S면과 읍내를 잇는 도로 등 유동인구가 확보된 도로에는 제설차가 다닌다. 그렇지만 그 외 실제 주거지로 들어가는 길은 제설차는커녕 발자국도 몇 없다. 나도 그런 곳에 살았던 탓에, 눈이 펑펑 내리던 날 고등학교 시절 방학 보충학습에 참여하지 못한 적이 있다. 조금 억울한 일이지만 그날 반장선거를 하는 바람에 의도치 않게 선거권을 박탈당한 기억이 있다. 집 바로 근처에서의 풍류는 느낄 수 있지만, 어디론가 훌쩍 마음먹은 대로 떠나기는 어려운 계절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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