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의 정취 (1)

겨울이 아닌 계절에는

by 공치사

어렸을 때는 S면에 위치한 단독 주택에 살다가, 스무 살 때 부모님이 장성읍내의 아파트로 이사하셨다. 시골에 아파트라니, 무슨 소리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부동산 강국 대한민국에 아파트가 없는 읍내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여하튼, 스무 살 때 나는 이미 타지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읍내의 아파트에서의 기억은 많지 않다. S면의 단독주택과 읍내의 아파트 생활은 사실은 크게 다르지 않다. 정확히는 읍내의 아파트 생활은 S면 단독주택 생활의 부분집합 같다. 어차피 편의시설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읍내까지는 가야 하기 때문이다. S면에서 읍내로는 차로 10분 정도가 걸린다. 카페를 가든, 체육관을 가든 집과 자연에서 할 수 없는 일이라면 운전대를 잡을 준비를 해야 한다. 여기서는 먼저, 읍내 편의시설과는 관련 없는 S면, 소위 깡 시골에서의 삶에 대해 적어 보겠다.


풍성한 자연 안에서

S면의 단독 주택에서는 그야말로 ‘시골 생활’하면 떠오르는 바로 그 생활양식으로 살았다. 마당에는 닭장이 있었고(빗장 풀림 이슈로 어느 순간 죄다 가출했다), 작은 화단에는 양파와 고추, 상추 같은 작물이 절기에 맞추어 익어갔다. 담벼락을 기댄 무화과나무와 석류나무는 때가 되면 열매를 맺었다. 한창 더운 열기가 맺히는 날씨면 무화과나무는 파란 열매를 담장 너머로 내어 놓곤 했는데, 나는 성질머리가 급한 탓에 푹 익기도 전에 맛을 봐 제대로 익은 열매를 맛본 기억은 거의 없다. 마트에서 사온 무화과를 먹기 전까지는, 밍숭맹숭한 풋내가 무화과의 맛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그걸 꽤 좋아하기도 했다.

화단을 가꾸는 추억은 오래 간다. 물론 성공 여부와는 관계없이. 우리 집의 뜰에 관해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기억은 블루베리 나무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블루베리를 참 좋아했는데, 어느 날은 아빠가 블루베리 나무 묘목을 한 그루 사온 것이다.

“너 먹는 양을 생각하면 나무를 사 오는 게 더 싸겠더라.”

미운 소리 한 구석을 덧붙이며 말이다. 그래도 나무가 마음에 들어서 함박웃음을 지었다. 나는 그렇게 예쁜 나무를 처음 보았다.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은 적당한 크기의 이파리가 부서지는 햇살을 맞고 유리알처럼 빛났다. 초여름의 쌉살한 바람이 나무를 뒤흔들 때면 파도가 일렁이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 예쁜 나무에서 내가 좋아하는 블루베리까지 맺힌다니. 최고의 선물이었다. 그게 처음 마당에 온 날, 나는 그 반들반들한 잎사귀를 바라보느라 한참을 보냈다. 물론 백미는 그것이 익혀낸 검푸른 열매다. 처음에는 못생긴 초록색 알갱이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는데, 열매들은 어느 순간 서로의 거리도 가늠할 줄 알게 되더니 삽시간에 달콤하게 익었다. 한동안은 손에서 보라색 물이 가실 날이 없었다. 그러다가 달콤한 냄새에 벌레가 많이 꼬였는데, 온갖 거미줄이 나무에 들어선 순간부터는 지레 겁을 먹고 열매에 손을 대지 않았다. 아쉽게도 그 블루베리 나무는 마당에 심긴 뒤 일 년을 버터지 못했다. 토질이든, 정성이든 무언가가 모자랐던 모양이다. 전자라고 굳건히 믿고 살아가고 있지만... 나는 무언가를 기르고 키워내는 데는 여전히 재능이 없다.(선인장 하나 제대로 키우지 못 하는 사람이다.)

자연이 풍성한 곳에서는 기억도 필치가 선명하고 풍부하다. 화단뿐만이 아니다. 뒷산에서도, 학교 옆 냇가에서도, 심지어는 길가에서도 속속들이 추억이 생긴다. 하루는 아빠와 차를 타고 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차를 세우는 것이 아닌가. 알고 보니 도로 옆에 핀 봉숭아를 발견하고 차를 세운 것이었다. 옆에는 연보랏빛 도라지꽃도 듬성듬성 피어 있었다. 우리는 차에 있던 일회용 커피 컵에 봉숭아꽃을 한 움큼 채집했다. 그 중 한 줄기에는 진드기가 잔뜩 붙어있어 기겁하며 창밖으로 내다 버리던 기억도 난다. 그날 저녁에는 그걸 짓이겨 손톱을 물들였다. 백반을 넣지 않은 탓인지 손톱에는 거의 염색이 되지 않았고 손톱 옆 살갗에만 잠시 주홍색 물이 옅게 들고 말았다. 그게 김칫국물에 손을 푹 담갔다 뺀 것 같이 보여서 얼마나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하루 종일 손가락을 벅벅 문대고 있었다.


좋은 것만 풍성하지는 않다

이렇듯 시골에는 아무래도 생명체가 많다. 문제는 보기 좋은 생명체만 많은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손에 닿으면 풀독이 올라 근질근질한 잡초도, 뒷목에 소름을 우수수 몰고 오는 벌레도 많다. 여름이 특히 심하다. 모든 생명체가 태동하는 계절에는, 소름끼치는 것들도 잔뜩 자라고 성장한다. 잡초는 성장이 너무 빨라 성가시다. 아무런 과장 없이, 한여름의 마당은 딱 사흘만 방치하면 20 퍼센트 정도는 잔디로 뒤덮을 수 있다. 우리 집의 마당은 화단을 제외하고는 자갈이 깔려 있었는데 잡초들은 조금만 관심을 끄면 자잘한 돌 틈 사이로 금세 머리를 비집고 올라왔다. 뭐랄까, 머리카락이 아주 짧을 때는 자라는 속도가 눈에 보이게 빠른 것처럼, 발아부터 발목께까지 생장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기이할 정도로 짧다. 아파트로 이사를 한 뒤 엄마가 가장 만족한 점 중 하나 역시 잡초였다. 더 이상 잡초와 전쟁을 벌일 필요가 없다니! 엄마에게는 큰 숙제 하나가 영영 사라진 모양이다. 만약 마당이 있는 집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한여름 땡볕 아래 일주일에 한 번은 잡초를 뽑을 각오를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순식간에 사람이 살지 않는 폐가 같은 꼴이 될 지도 모른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아예 잔디가 깔려 있는 곳은 오히려 관리가 상대적으로 쉬운 것 같기도 하다. 쪼그려서 호미질을 하는 것 보다는, 서서 청소기를 밀듯 잔디를 베어내는 쪽이 낫지 않을까? 한 번도 해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다.

잡초는 아주 성가시지만, 여름의 불청객 중에서는 귀여운 축에 속한다. 자라는 것이 빠를 뿐, 그것의 이동 반경은 분명하게 제한되어 있지 않은가. 동물들은 그렇지 않다. 특히 단독주택에서는 동물들을 아주 많이 마주하게 된다. 주변은 죄 첩첩산중으로, 음식물 냄새가 폴폴 풍기는 아늑한 곳은 인가밖에 없기 때문이다. 온갖 동물 중에서도 특히 곤충은 피할 수 없다. 모든 생명이 생동하는 여름에는, 벌레들도 생동한다. 여름 곤충을 이야기 할 때 모기를 빼놓을 수 없다. 장성은 모기들이 특히 독하다.(산 모기가 독하다는 말을 들어 보았는가? 포항과 비교해 보았을 때, 생체 실험상 이는 진실이다.) 여름 밤, 마당에서 무언가 활동을 하고 싶다면, 팔다리 정도는 모기에게 내어 줄 각오를 해야 한다. 기피제도 소용이 없다. 주변에 피를 빨 수 있는 대상이 나 뿐이라, 그들도 앞뒤 가릴 것 없이 달려드는 것이다. 모기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활동하는지, 마당에서 풀을 캐다 보면 팔뚝이 우둘투둘해지는 것은 순간의 일이다. 팔에 토시를 입는 것은 필수다. 나는 피부가 약해서(또는 참을성 없이 상처를 벅벅 긁어 버려서), 모기 한 방에 온갖 진물을 흘리며 몇날 며칠 달고 살았던 기억이 난다.

그 외에 파리나 개미의 출몰 빈도는 도시와 비슷하다. 의외인 점은, 바퀴벌레는 오히려 드물다는 점이다. S면의 주택에서 10년 넘게 살며 바퀴벌레는 본 적이 없다. 바퀴벌레는 오히려 읍내의 학교, 포항의 시장에서 자주 목격했다. 아무래도 음식물이 많이 모이는 곳에서 서식하는 것일까? 잘 모르겠다. 이렇게 평이한 곤충들을 제외하고, 시골에서나 볼 수 있는 곤충이 있다. 바로 땅강아지다. 사실 나도 자주 본 것은 아니고, 화단에서 탈출해서 현관에 기어 다니는 개체를 한두 번 관측했을 뿐이다. 땅강아지는 상당히 웃기게 생겼는데, 곤충인 주제에 거대해서 괜히 기세에 눌리는 기분이 든다. 문제는 일단 눈앞에 등장한 개체를, 누군가는 치워야 한다는 사실이다.

모든 곤충이 이렇게 징그럽기만 한 것은 아니다. 꽤 사랑스러운 종도 많다. 나는 특히 물잠자리를 좋아한다. 어렸을 때는 집 뒤로 흐르는 냇가가 놀이터 역할을 했는데, 우리의 주 콘텐츠는 잠자리 잡기였다. 아주 얇고 투명한, 그물 구조가 눈에 보이는 일반적인 잠자리와는 달리 물잠자리는 검고 두꺼운 날개를 가졌다. 일반 잠자리를 쥐고 있을 때는 바스락거리는 날개가 언제 찢어질까 걱정되어 마음이 편치 않았는데, 물잠자리를 쥐고 있을 때는 묘한 안정감이 들었다. 물잠자리는 다른 잠자리들에 비해 순하기도 했다. 일반 잠자리들은 한 번 날개를 잡히면 어떻게든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을 치곤 했는데, 꼬리를 이리저리 뒤집으며 내는 웅웅 소리가 무섭기도 하고 가엾기도 했다. 그에 반해, 물잠자리들은 날개를 잡히고도 고고했다. 언젠가는 놓아주겠지, 하고 기다리는, 여유가 넘치는 자세였다. 이렇게 고상하고 기품 있는 곤충도 꽤 많다.

이 생명체들이 시각(과 촉각)을 지배한다면, 청각을 지배하는 생명체는 따로 있다. 가장 대표적으로는 개구리와 귀뚜라미. 각각 여름과 가을의 불청객을 맡고 있다. 내가 살던 곳은 집 바로 앞에 논과 수로가 있었기 때문에, 여름이면 밤새도록 끝없는 개굴개굴, 소리를 견뎌야만 했다. 개구리 울음 소리 군데군데 꺼억 거리는 두꺼비, 황소개구리 소리도 빼놓을 수 없다. 시골의 여름밤은 양서류가 지배한다. 그렇지만 물속으로 직접 들어가지 않는 한 밤에 개구리를 만나는 것은 어려우니 안심해도 좋다. 개구리를 볼 수 있는 것은 오히려 아침의 일이다. 이슬이 마르기 전, 볕이 아직 따끔하지 않을 때에야 개구리들은 밖으로 나다닌다. 축축한 피부를 가진 청개구리가 문고리에서 고개를 갸웃하는 모습은 꽤 귀엽다. 물론, 귀여운 것과 별개로 나는 개구리 만지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서, 그게 사라질 때까지 빤히 기다리느라 시간을 많이 낭비했다. 별개로, 집 앞에 두꺼비가 있다면 절대 만지면 안 된다! 두꺼비는 등 뒤의 피부에서 독을 분비하기 때문이다.

개구리 소리는 사실 꽤 신경을 긁는 소리다. 개구리 소리를 들으면 내 기분을 알 수 있다. 청명하고 아름다운 여름 밤 소리처럼 들리면 그날 기분은 최상인 것이다. 보통은 창문을 꽉꽉 닫아두고 살며, 창틈을 비집고서도 끈질기게 들려오는 개굴개굴 소리에 진저리를 치곤 한다. 기찻길 소리, 자동차 소리, 심지어는 비행기 이륙하는 소리에도 비견할 만 하다고 나는 믿는다.

반대로, 귀뚜라미는 소리는 들어줄 만 하지만 외양은 참 부담스럽다. 그 외양을 마주할 일이 잦다는 점에서 더더욱. 밤에는 물 밖으로 잘 나오지 않는 개구리와 달리, 귀뚜라미는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며 세력을 과시한다. 개체에 따라 다르지만, 크기 자체도 꽤 거대하다. 밤길 산책을 나섰다 그 튼실한 다리..에 놀란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여름철 긴 바지를 입는 이유는, 저런 불청객들을 맨다리로 느끼고 싶지 않은 데에도 있다.

시골에 살게 된다면, 특히 마당이 달린 단독주택에 살게 된다면 이런 생명체들에 익숙해져야한다. 집 안에서 같이 사는 것을 견디던가, 쫓아내는 법을 배우던가 둘 중 하나는 배워야 하는 것이다. 나는 벌레를 그렇게 무서워하는 편은 아니어서 괜찮을 것 같다. 개굴개굴 소리는... 도처에 물가가 없는 곳을 찾아봐야 할 것 같다.


IMG_1665.HEIC 길가의 봉숭아꽃
IMG_3273.HEIC 어디선가 따온 대추
IMG_3283.HEIC 이제 막 열매를 맺어가는 담장 위 무화과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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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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