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에게 보내는 스물세 번째 편지
나아야 뉴욕 야경 너무 아름답다. 보스턴에 산 지 일 년 가까이 되어 가는데 아직 뉴욕을 못 가봤어. 이렇게 나아 덕분에 사진으로나마 대리만족 할 수 있어서 너무 좋아, 고마워! 나아도 종종 공동묘지에 가봤다니, 너무 의외야. 보스턴은 도시 역사가 오래돼서 그런지 묘지가 참 많은 것 같아. 삶과 죽음의 명확한 경계선이 한국에 비해 흐릿한 느낌이야. 덕분에 죽음이란 언제나 삶과 함께 있는 거라고 자각하며 살 수 있는 듯해!
어제는 정말 오랜만에 남편과 차를 빌려서 하루종일 보스턴 교외 여행을 다녀왔어. 3월 말 뉴올리언스 여행을 다녀온 후로 하루 코스 렌터카 여행은 처음이라 설렘 가득한 벅찬 가슴을 안고 출발했어. 여행 코스는 이번엔 내가 짜봤어. Nahant beach(나한트 비치)에서 여름 해변을 즐기고 Applton farm(애플톤 팜)에서 트레일을 걸으며 4세기를 버틴 유서 깊은 농장의 기운도 받기로 했어. 마지막 일정은 남편이 미국에서 일을 시작하기 전에 갔던 Rockport(락포트)에서 랍스터 먹기야.
특히 기대했던 건 내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던 "사람들 가득한 곳에서 비치 요가하기" 프로젝트였어. 단단히 마음먹고 집에서 요가 매트를 챙기고, 요가복까지 풀장착 한 후에 아침 일찍 떠났어. 도착하니 8시 조금 넘었던 것 같아. 미국인들은 일요일에 교회나 성당을 많이 가니까 해변이 여유로울 거라는 우리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고, 아침 일찍부터 주차장은 만차. Nahant Beach가 현지인들 사이에선 꽤나 유명한가 봐.
아무리 버킷리스트가 사람들 가득한 곳에서 요가하는 거라지만, 생각보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있어서 잠시 고민을 했어. 나와 남편 둘 다 요가를 잘하는 것도 아니고, 몸매가 좋거나 세련된 사람들도 아니라서 사람들 앞에서 요가를 하는 게 맞나 하고 말이야. 요리조리 눈치를 보다가, 여긴 미국인데 뭘! 그냥 해보자! 하고 당당히 걸어서 바닷가 바로 앞까지 걸어갔어. 보란 듯이 가장 앞 줄까지 걸어가서 매트를 깔고 남편과 이어폰을 하나씩 나눠가진 후 약 40분간 요가를 했어.
요가를 하는 내내 하늘과 바다가 이리저리 바뀌고, 새파란 하늘이 눈을 가득 채우기도 했어. 거꾸로 숙이는 자세를 할 땐 사람들은 하늘 위로 걸어 다녔고, 반짝이는 조개껍질들은 별이 되었어. 너무 기분 좋은 경험이었던 것 같아. 무엇보다 "자유로움"을 한껏 느낄 수 있어서 좋았어. 내가 요가를 하든, 하다 넘어지든, 옷을 입던 벗던 사람들은 아무런 신경을 쓰지 않았거든.
만약 한국에서 똑같이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내 질문에 남편은 이렇게 답했어. "요가를 잘하는지 못하는지 평가당하고 몸매 평가부터 돌출 행동을 한다며 흘겨보는 사람들의 시선으로 난도질당했을 거야"
요가를 끝내고 농장에 가서 점심을 먹은 후 돗자리에 누워 이런 생각을 했어.
한국에 가서도 이렇게 자유롭게 살고 싶다-
눈치 보지 말고 내 인생을 즐기며 살고 싶다-
마지막 코스인 락포트에 도착해서 랍스터를 먹으려고 하는데 둘 다 점심을 거하게 먹어서 그런지 배가 안 고프더라고. 그래서 과감히 랍스터는 다음 기회로 미루고 여름 항구 도시를 구경하기 시작했어.
그런데 나도 모르게 지나가는 관광객들을 평가하고 있더라. 옷이 어떻고 얼굴이 어떻고, 너무 시끄러우면 흘겨보기도 하면서 말이야. 집에 오는 차 안에서 하루 종일 찍은 사진을 보다가 문득 깨달았어. 나는 사람들의 평가와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으면서 미국에서도 시시각각 다른 사람을 쳐다보고 평가하지 않았나.
내가 자유롭게 비치에서 요가를 하고 싶다면, 다른 이들 또한 그럴 수 있게 해줘야 하는 거 아닐까.
솔직하게 말하면 아직도 나도 모르게 사람들과 행동, 말투 하나하나를 쳐다보고 평가하게 돼. 안 그러려고 노력하는데도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하는 내 모습을 발견해. 너무 고치고 싶은 모습이야. 지금 당장은 어렵겠지만 의식적으로 안 보려고 하고, 평가하고 관심 가지려는 알고리즘을 끊어보려고 할 거야. 적어도 미국에 있는 동안은 이건 꼭 바꾸려고 반복해서 노력해 볼게.
아! 그래도 비치 요가 버킷리스트는 너무 황홀한 경험이었어!
마! 눈치 보지 말고, 주지도 말고 즐기며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