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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isplay Dec 19. 2018

내가 나에게 미안해

죽을 만큼 아팠던 그날, 나는 나에게 미안했다.


 그날 나는 난생처음으로  '아파서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안개가 짙게 낀 초겨울의 월요일이었다. 늘 그랬듯 새벽에 출근해 아침 뉴스를 진행했고, 라디오 녹음도 막힘없이 잘 마쳤다. 나만의 페이스대로 체력을 분배해가며 나름 괜찮은 월요일을 보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무엇이 잘못되었던 건지, 오후에 커피 한 잔을 마신 이후부터 몸이 으슬으슬하기 시작하더니 거짓말처럼 온몸에 힘이 빠져나갔다. 감기인 걸까. 감기라면 따뜻한 물에 샤워를 하고, 약 먹고 푹 자면 나을 터였다.


 하지만 이른 저녁부터 몸에 열이 나기 시작하더니 심각한 두통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약기운에 잠이 들었다가도, 머리를 쥐어짜 내는 듯한 통증에 1시간 간격으로 깨곤 했다. 앉았다가 누웠다가 엎드렸다가를 반복했다. 이 와중에도 모든 신경은 아침 뉴스에 집중돼 있었다. 5시에 일어나 샤워를 하고 출근을 해야만 했다. 혹시나 일어나지 못할까 봐 엄마에게는 5시에 연락이 없다면 몇 번이고 전화를 해서 꼭 깨워달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오늘이 주말이었으면 했다. 그러나 야속하게도 고작 화요일에 불과했다. 5시가 되자 알람시계가 울렸고, 으슬대는 몸을 어찌어찌 이끌고 출근을 했다. 일단 생방송만 제대로 마치자는 생각으로 정신을 똑바로 차렸다. 어떤 초능력이 나왔는지는 몰라도 무사히 뉴스를 마쳤다. 얼마나 몸에 힘을 준건지 와이셔츠는 축축이 젖어있었다. 생방송만 마치고 병원에 갔다. 의사 선생님은 내게 '몸살'이라고 했고, 따끔한 주사를 놓고 약을 처방했다.


 자취방 침대에 누웠다. 온수매트를 틀고 두꺼운 이불을 두 겹이나 덮었지만 온몸이 추웠다. 게다가 제대로 식사를 하지 못한 채 약을 먹어 배탈까지 온 건지, 그날 밤에는 연실 화장실을 들락날락거렸다. 내 인생에 이렇게 아팠던 적은 없었다. 정말 이러다가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생전 처음 느껴보는 고통에 두렵고 외로웠다. 길고 긴 밤, 무엇보다 사람이 그리웠다. 옆에 누군가가 있어 주는 것만으로 얼마나 큰 위안이 되는 것인지 그때서야 깨달았다. 엄마의 품처럼 따스한 이불이 얼마나 의지가 되었는지 모른다.


짙은 안개가 낀 의암호 (2018.11.26.)


 수요일 아침에도 몸 상태는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이렇게 오래가는 몸살은 처음이었다. 팔다리가 쑤시고 느른했고, 오한은 계속되었다. 그래도 생방송은 해야 했다. 그 새벽에 다른 선배들한테 부탁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 택시에서 거의 누운 채로 출근했다. 문득 바라본 창밖의 안개는 더욱 짙어져 있었다. 그날도 온 힘을 다해 뉴스를 진행했다. 얼굴은 창백해져 있었고, 목소리에 힘이 없었다.

 

 퇴근 후 다시 침대에 들어갔다. 방송을 시작한 지 3년 남짓. 지금까지 거의 매일 생방송을 진행했다. 저녁 뉴스를 진행했던 한 계절을 빼고는 전부 이른 아침에 방송을 했다. 경제방송에 다닐 때는 새벽 3시에 일어났고, 날씨방송을 진행할 때도 4시에는 일어나야 했다. 불안정한 신분 탓에 쉴 수 있는 날도 많지 않았다. '일이 있을 때 놓치지 말고 하자'는 생각에 빨간 날에도 일하는 경우도 허다했다. 치열했던 일상 속에서 나는 지칠 만도 했다.


 처음으로 30대라는 이름으로 한 해를 보내면서, '서른의 나'는, 어릴 적 내가 그려왔던 '서른의 나'에 크게 벗어나 있다고 생각했다. 어느 정도 안정적인 사회인이 되어 있을 줄 알았는데, 아직 나는 불안하기만 했기 때문에 초조하고 실망스러웠다. 일도, 사랑도, 돈도, 나 자신도, 어느 것 하나 온전한 게 없기에.


 그래서 올해 나는, 나를 괴롭혔다. 아주 엄격했고 비관했으며, 소중하게 여기지 않았다. 아주 쪼잔했다.

 죽을 만큼 아팠던 그날, 나는 나에게 미안했다.



 다행히 목요일쯤 되니 몸이 회복되기 시작했다. 열도 내리고 배탈도 멈췄다. 죽이 아닌 일반식도 가능해졌다. 체중계에 올라 봤다. 3킬로그램이나 빠져있었다. 몸 구석구석 쌓여있던 노폐물이 다 빠져나간 것처럼 가뿐했다.


 지금까지 살아온 것에 대한 후회는 없다. 그때로 돌아가도 같은 선택을 했을 테니까. 어느 하나 지금의 나에게 도움되지 않은 건 없다. 그날 그 순간, 나는 마음속에서 미세한 온기를 느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제대로 알 수 없었지만 서서히 따뜻하게 가득차고 있었다.


 지금의 내가 과거의 나를 만난다면, 아마 이런 말을 할 것이다.


 미안해.

 괜찮아.

 그리고, 잘하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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