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와 가스라이팅에 대하여
꼰대와 선비 같은 유형을 싫어한다. 나는 맞고 네가 틀리다는 내용을 이상한 논리를 만들어서 주입하는 사람들과는 안 맞다. 나도 나름 연애에 대해 이론과 실전 경험을 구비했다. 인간관계에 서툴지만 그래도 이성 간의 관계에 이제 더 이상 그렇게 서툴지는 않다. 인간관계도 이제는 서툴다기보다 이제는 선택적으로 취하지 않는 것에 가깝다.
나는 이런 특성을 가졌다, 나는 이런 사람이라 이런 것들이 불편하고 어렵다고 말하는 사람은 좋다. 그런데 내가 용납하지 못하는 마인드는 “네가 문제다”라는 마인드이다. 나 역시 어떤 특성을 가졌고 어떤 것들이 불편하고 어렵기도 하지만 나에게 치명적인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둘 사이에 어떤 문제가 있다면 둘 사이의 문제이지 내 문제가 아니다.
거짓말을 하지도, 바람을 피지도, 선을 넘지도 않았다면 내가 문제인 것은 없다. 나와 사람들 간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문제고 세상이 문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아주 굳건하지만 매우 편협한 사고의 성곽을 쌓아 놓았다. 그들의 논리를 따라가다 보면 결국 문제의 원인을 남 탓으로 돌리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이런 사람들은 아주 좋은 것을 누릴 가능성이 아주 낮고 누릴 자격도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세상에는 아주 특별하고 소중한 것이 있다고 믿는다. 왜냐하면 그 아주 특별하고 소중한 것들을 누려봤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에게 소위 이런 것들이 따라오는지 알고 있다.
아주 특별한 것들은 믿는 사람에게 온다. 첫눈에 느낌을 알 수 있는 사랑이 있다고 믿는 사람, 내가 잘해줘도 상대방이 나를 우습게 보지 않는다고 믿는 사람, 상대방을 재단하고 평가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그 특별한 사랑이라는 것을 경험해 보게 된다. 그리고 세상에 이런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남탓하기 좋아하는 꼰대, 선비의 이상한 논리와 가스라이팅에 휘둘리지 않는다.
꼰대, 선비와의 연애의 끝에 남는 것은 분노와 체념, 그리고 잔잔하지만 오래가는 엷은 혐오감이다. 꼰대, 선비의 말도 안 되는 논리를 참교육으로 하나하나 반박해주고 싶은 욕망을 실행에 비로소 옮기고 나야 분노가 체념과 엷은 혐오감으로 바뀐다. 참교육을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내 문제로 귀결시키며 사과하며 끝난 관계는 엷은 혐오감이 아니라 잔잔히 타오르는 꺼지지 않는 분노로 남는다.
거짓말을 했더라도, 화를 냈더라도, 집착을 부렸더라도, 이기적인 행동에 실망해 헤어졌더라도 서로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사랑에 직진했던 연인들과의 관계는 시간이 지나면 더 이상 분노로 남지 않는다. 완전히 다 타고 재로 남은, 하지만 한 때는 불꽃이었던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는다. 하지만 참교육을 하고 싶은 욕망을 실현했거나, 실현하지 못했던 꼰대들에게는 분노 또는 혐오감이 남는다.
분노하지 않으려면 참교육을 해야 한다. 그래야 내가 다시 이성적이고 차분하고 차가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