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와 감상에 대하여
연애에 있어 취미를 공유하는 것이 중요하다. 취미는 관찰이다. 보는 것, 샅샅이 보는 것, 보고 감정을 느끼는 것을 좋아한다. 자연, 그림, 건축, 인테리어, 패션, 소품 등을 본다. 보는 것은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나무, 나무를 그린 그림, 자연을 그린 그림, 자연을 연상시키는 패션, 동화를 떠올리게 하는 물건들은 특히 감정을 진하게 만든다.
딱딱한 회색 마음이 아름다운 시골 풍경, 도시의 건축물, 생동감 넘치는 그림 등을 보면 색깔로 물들여지고 조금은 말랑해진다. 아름다움과 생동감에 압도되는 감정을 느낀다. 마음의 온도에도 변화가 생긴다. 사무실에서 일을 할 때 못생긴 키보드와 전화기를 보면 감정이 없어서 죽은 듯한 기분이 드는데, 아름다운 건축물의 갤러리에서 생동감 넘치는 그림을 보면 마음의 온도가 올라가고 살아있는 느낌이 든다.
화가는 자연을 보고 진한 감정을 느끼고, 진한 감정을 캔버스 위해 온몸으로 표현했다. 감정을 진하게 느끼는 건축가는 건축물에 들어올 사람들의 감정을 떠올리며 건물을 설계했다. 건축의 직선과 곡선이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킬지, 시시각각, 매일의 조금씩 다른 햇살이 창을 통해 어떻게 들어와 단 한시도 똑같지 않은 빛의 그림을 만들어 낼지, 그리고 그 빛은 사람들의 마음에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킬지 떠올리며 건물을 그리고 지었다.
감정이 진한 예술가가 설계한 곳, 만든 작품, 그린 그림들 속에 있으면 삶이 선명해진다. 살아있음이라는 느낌이 생생해진다. 연애라는 것도 감정이 조금 더 진해지는, 빨라지는 심장박동과 따뜻해지는 마음으로 살아있음이 생생해지는 경험이다. 보는 것, 무언가를 함께 보는 것, 연인과 손을 잡거나 몸을 밀착해서 서로의 체온을 느끼는 동시에 건축과 예술작품이 주는 감동으로 마음에 빛과 색이 물들여지는 경험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무언가이다.
살아있는데 살아있는 느낌이다. 살아있는 나와 살아있는 나의 연인이 연결되는 경험이다. 같은 것을 보고 감상에 빠진 두 사람이 한 공간에서 강하게 연결되는 느낌이다. 이 느낌 때문에 나는 누군가를 오래도록 잊지 못하고 그리워했다. 생각이 안 날 수가 없었다. 다른 사람과 함께하는 것은 재미가 없었다. 여행을 해도 전시를 봐도 좋은 카페나 와인바에 가도 무언가에 함께 몰입해 감상하고 그 속에서 또 하나의 예술을 창작해 내는 서로의 창의성의 결합만이 줄 수 있는 교감을 다른 누군가와 나누기 어려웠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함께 해주는 사람을 만났었다. 아트뮤지엄에 데려가주고 함께 전시를 보며 내가 바라던 대로 삼각대로 같이 사진을 찍어줬다. 작품에 대해 설명하는 영상을 끝까지 같이 봐주고, 내가 건축물에 들어오는 빛과 그림의 생동감에 대해 말하는 것을 들어줬다. 하지만 나는 근래 몇 년간 함께 무언가를 감상하는, 작품을 보고 진한 감정을 느끼는, 예술을 보고 또 다른 예술을 함께 창작해 낼 수 있는 연인을 원했다.
나는 예술 속에 있을 때, 예술을 볼 때 행복하다. 내가 행복하면 행복하다는 나를 사랑하는 그와 함께 하는 것이 행복했다. 하지만, 그림을 보면 감정이 느껴지냐는 질문에 감정에 별로 요동이 없다는 그의 대답을 듣고 마음이 복잡했다. 사실 질문하기 전에도 이미 그의 옆에 있으며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요즘 너무나도 일을 많이 하고, 바쁘고 지쳐있어서 예술을 느낄만한 상태가 아니라고 했다.
데이트를 할 때, 상대방이 예술, 감각적인 것들에 몰입하고 감상하지 않으면 공감이 안된다고 느꼈다. 미술, 경치, 사진, 건축, 인테리어, 음식의 플레이팅, 향수, 미식 그 어느 것에도 감정이 진해지지 않는 사람과는 여전히 만나기 어려울 것 같다.
연인과 수많은 시간을 보내는데 함께 심미적 즐거움과 교감을 나누지 못하면 삶이 너무나도 외로울 것 같다. 나에게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아름다움이라는 감정을 느끼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