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게임이 아니라 연애가 끝이 났다

파워게임의 룰 : 당신은 딱 받을만한 대접을 받는다

by 해센스

왜 만났는지를 한 문장으로 서술하는 것보다 왜 헤어졌는지를 한 문장으로 서술하는 것이 더 어렵다. 하지만 한 문장으로, 그리고 풀어서 적어보려고 한다. 100% 솔직하지는 못할 테지만 그래도 공개할 수 있는 만큼의 내용을 적어보려고 한다.


갑자기 이 사람한테 기대고 싶단 생각이 들었는데 적극적으로 나한테 행동을 취하길래 만났고, 생각했던 것보다 마음이 넓은 사람이 아니길래 헤어졌다. 미래를 생각했을 때도 결격 사유는 없어 보여서 내가 평소에 좋아하는 유형과는 거리가 있지만 장점들을 보고 만났는데, 결격 사유가 수면 위로 드러나서 헤어졌다.


연애와 결혼 상대의 일 순위 반드시 필요한 조건이 평온한 성격인데, 성격이 평온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돼서 헤어졌다. 그렇게까지 화낼만한 일인가 싶은데 수화기 너머로 고성이 들려와서 수화기를 잠시 귀에서 뗐다. 그리고서도 나를 향한 날것의 공격과 짜증이 쏟아지길래 존중이 깨졌구나, 이 사람과 계속 만난다면 살면서 이런 일이 다시 생길 수도 있겠구나 싶어서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헤어졌다.


왜 그랬을까 이해가 안 돼서 그냥 두고 봤는데, 오늘 아침 문득 깨달음이 왔다. 애초에 나와는 사고방식과 표현 방식이 많이 다른 사람이었는데, 내가 불편하다고 해서 스스로를 계속 억누르고 검열하느라 지치고 힘들었던 게 건수를 잡아 나에게 공격으로 쏟아졌구나 싶었다. 누군가가 공격성을 표출할 때 내가 같이 공격성을 표출하지 않으면, 대체로 무마될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사과에도 타이밍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먼저 적절한 시기에 사과할 것 같지도 않아서 정리했다.


만나는 동안 고민이 많았던 이유는 여러 가지였다. 말투와 화법, 어휘 선택, 매너가 드러나는 사소한 행동들, 취미나 취향의 공유 등. 하지만 마음이 멀어지게 된 것은 역시나 파워게임의 룰에 따라서였다. 연애라는 인간관계에서 파워게임의 룰은 이렇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결국 마음에 따라 행동하고, 상대방은 딱 받을만한 대접을 받는다. 내가 생각하는 나의 가치나 격을 떨어뜨리는 대우를 받는다고 느낀다면, 그때가 바로 게임을 종료할 때이다. 그래서 게임을 종료했다. 스트레스와 오만 억눌린 감정이 공격적인 방식으로 드러나 분노로 표출될 때, “날 이렇게 만든 건 너야. ”라는 화살 돌리기를 받아내고 싶지 않아서 헤어졌다.


사실 연애하면서 파워게임 같은 것은 하고 싶지 않다. 그냥 사랑하고, 마음을 주고, 표현하고, 돈과 시간도 쓰고 주고 싶은 만큼 다 줘도 마음 다치지 않을 사람과 만나서 복잡한 세상 속 둘만의 사랑으로 가득 찬 작은 세상에서 마음껏 사랑하고 싶다. 밀당 같은 것은 하지 않아도 사랑이 변하지 않는다고 믿는 사람과 소소한 것들을 공유하고 함께 좋아하는 취미를 즐기며 행복하게 지내고 싶다.


그런데, 어느 정도 게임을 한다는 것이 느껴졌다. 사소한 요구도 일부러 들어주지 않으면서 마음을 불편하게 하고 내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지켜보는 느낌이었다. 내가 반응을 한다면 대응할 완벽한 논리도 만들어놓았을 것이 예상됐다. 그래서 반응하지 않았고, 기대도 접었고, 마음도 서서히 접었다. 난 휘둘릴 생각이 없고, 아주 사소한 것도 완강히 거부하면서, 또는 도리어 내게 교묘하고 집요하게 요구하면서 통제감을 누리는 것에 내심 만족하는 그를 지켜보고 싶지 않았다.


타인에게 통제력을 직접적인 방식으로든, 미묘한 방식으로든 행사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본성에는 공격성이 내재해 있다. 역시나 내가 그에게서 느꼈던 통제받는 느낌에 거부를 드러냈을 때 아주 강렬한 공격성이 표출됐다. 사랑은 특수한 감정이고, 타인을 향한 이해에는 끝이 없기에 그의 마음을 헤아려주고 관계 유지를 위해 한 번 더 자존심을 내려놓을 수도 있었지만, 그의 메커니즘이 훤히 읽혀서 시간을 끈다면 어떤 식의 관계로 거듭날지 뻔히 보였다. 헤어지는 것이 자존감을 지키는 길이라는 것이 확실했다.


스스로에 대한 통제권을 유지하기 위해 대화를 여러 번 시도했다. 그를 만나고 처음부터 감지했다. 내가 만나왔던 사람들하고는 조금 다르구나, 성격이 강하구나, 외강내유가 아니라 외유내강에 가까운데 그 강함이 연인에게 영향을 끼치려 하는 정도의 강함이구나라고.


나 역시 그에게 어떤 방향의 영향력을 행사하려고는 했고, 관계를 유지하고 싶었던 그는 일부 수용했다. 꽤나 빠르게 적용하고 노력해서 달라지고 있었다. 이성적으로, 그리고 섬세하게 들여다보면, 그는 내가 떠날 만한 사유가 되는 부분에서는 자신이 변화하려고 했고, 내가 마음이 안 좋더라도 수용할 것 같은 부분에 있어서는 지나치게 완고하고 단호했다.


예를 들면, 내가 외적인 매력을 중요시한다고 하니까 다이어트를 하고 운동을 한다고 했는데, 내가 표현을 하면 맞춰서 어느 정도 표현해 달라는 요구는 거부했다. 표현하는 것은 자기 마음이라는 말에 수긍해서 그대로 두었는데, 내 이야기를 듣고도 일부러 반대로 행동하면서 수동공격성을 표출하고 있다고 느껴졌다. 하트 이모티콘을 보냈는데, 하트로 답장하지 않는다고 해서 내가 헤어지지는 않겠지만 외적으로 흐물거리는 모습을 유지하면 동기부여가 안 돼서 헤어질 것 같다고 느꼈던 것 같다.


하지만 실제로는 내가 원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일부러 하트로 답장하지 않는 그런 사소하지만 수가 보이는 행동들이 마음을 식게 했다. 이런 류의 게임은 다른 곳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상대방의 감정을 배려하는 것이 아니라, 이상한 욕구를 자극해서 가지기 어려운 사람처럼 만들고 싶었나 본데 그런 식의 수에 응할 생각이 없고, 배려심 있고 마음 넓은 사람을 만나고 싶었다.


본인은 보통 연인에게 맞춰주는 편이라고 했는데, 상대방을 잘 관찰하고 수용해서 연인이 원하는, 떠나지 않을 만한 모습으로 변모하고 나면, 행동하는 것에 있어서는 자기 마음대로 하며 상대방의 감정에 조금은 무신경하게 행동할 것 같았다. 그리고 나는 이상적인 연인의 모든 요건을 가지고 있다며 그러니 너는 아무 문제도 제기할 필요가 없다고 말할 사람이었다. 실제로 그가 했던 말이다.


다 주면 질려서 떠난다는 말이 있다. 맞춰주고 희생했더니 버려졌다는 말이 돌아다닌다. 밀당이 적절히 필요하다는 말에 조금은 공감한다. 그런데 나는 단기기억력에 약간의 문제가 있어서 그런지, 다 주고 넘치게 표현하고 희생적이고 다정다감한 연인을 원한다. 나에게 적당한 혼자만의 시공간만 확보해 준다면, 그리고 외적으로, 성격적으로 매력을 느끼는 상대라면 게임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절대 떠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더 사랑하고, 아껴주고, 내 모든 것을 쏟을 것이다.


잘 맞는, 그리고 타인의 감정을 배려하는 그래서 파워게임 따윈 할 필요가 없는 연애를 하고 싶다. 나 역시 상대방에게 미안할 일을 만들지 않기 위해 앞으로는 이상형이 아니라고 판단되면 처음부터 마음을 주지 않을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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