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분함이 고양이를 죽였다
만나는 동안 내게 크게 나쁜 사람도 아니었고 나쁜 연애도 아니었다. 나와는 사고방식이 안 맞는 점들이 있었고 성격도 달랐지만, 사고방식의 차이가 당장의 문제를 만들어내지도 않았고 성격도 나름대로 보완이 됐다. 결혼적령기의 남녀가 만나 서로에게 직진했고, 솔직했다. 연애가 잘 흘러간다면 결혼이라는 목적지를 염두에 두고 이런저런 대화를 솔직하게 나누었다. 연락도 잘 되었고, 표현도 너무 힘들진 않을 정도로 적당히 해줬다. 일주일에 보통 한 두 번 정도 만나 평범한 데이트를 했다. 거리도 그리 멀지 않았고, 만나는데도 크게 문제 될 것은 없었다.
연애 초기부터 동기부여가 안된다는 생각과 말을 달고 다녔다. 주말에 데이트 약속이 잡혀 있는데 특별히 기대가 되지 않았다. 밤에 통화하는 것도 그렇게 기다려지지가 않았다. 막상 만나면 생각했던 것보단 괜찮았다. 그의 얼굴이 잘생겨 보일 때도 있었고, 데이트도 막상 나가면 생각보다는 나쁘지 않았다. 그에게 분위기를 전환시키는 타고난 재주가 있었어서 이런 사람이랑 만난다면 이렇게 만성 동기부여 부진에 시달려도 꽤 오래 만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100일도 안 만났지만 이런 상태로 만나는 것 치고는 내 기준에선 아주 짧은 연애는 아니기는 했다. 전화통화에 대한 기대치도 비슷했다. 전화를 받으면 그의 나쁘지 않은 목소리로, 민원인 상대한 이야기와 일 안 하는 다른 부서 빌런(그의 관점)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다가 딱 30분 정도 지나면 그렇다 할 애정표현 없이 자라며 전화를 끊는 예측가능한 패턴이 그려져 기대된다기보다는 오히려 묘하게 권태롭고 짜증스러운 기분이 드는 것에 가까웠다.
내가 좋아했던 것은 아침에 카톡으로 십분 안쪽의 시간 동안 나름대로 대화를 나누는 것, 그리고 중간에도 카톡을 하면 나름대로 답장이 빠르게 오는 것, 저녁에 비슷한 시간에 매일 전화를 주는 것, 아프다고 하는 등 걱정할 일이 있으면 곧바로 전화한다든지 해서 어떠냐고 물어봐주는 것, 주말 중 하루는 나에게 꽤 많은 시간을 내어주는 것 등이었다.
막상 데이트를 하며 보내는 시간, 전화 통화를 하거나 만나서 나누는 대화의 내용은 시간이 갈수록 재미가 없고, 동기부여가 점점 더 안 됐다. 헤어지기 전 떠난 여행에서도 난 그저 함께 구경하고 놀면서 즐기고 싶었는데, 같이 놀거나 즐기지 못하니 대화를 오히려 많이 나누었고, 그 대화 속에서 내 기준에서는 미래에 대한 비관과 권태가 밀려왔다. 어떻게 바닷가를 놀러 가서도 이렇게 재미없을 수가 있지? 나는 밖에서는 어디 가도 잘 노는 사람인데. 실내에서는 세상 조용해도, 밖에선 세상 활발한데…
미술관도 가고, 영화관도 가고, 백화점도 가고, 와인도 마시고, 고기도 구워 먹고, 사진 찍기 좋은 건축물도 보러 가고, 2박 3일 동안 여행을 가서 또다시 이 중 많은 것들을 했지만 다 재미없었다. 미술관 가서는 사진도 먼저 안 찍어주고 그림도 유심히 보는 것 같지 않아 재미없었고, 영화도 두어 편 봤는데 둘 다 재밌는 영화였는데 별로였다고 해서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고기는 성의 없이 굽는 데다가 겉은 태우고 안은 제대로 익히지도 않아서 내가 열심히 다시 살리려 했지만 이미 너무 맛이 없어졌고, 두 번째 고기를 구워줬을 때도 뒤적뒤적 거리길래 내가 열심히 구웠다. 데이트에서 함께 나눌 수 있는 거의 모든 활동이 재미없어서 미래에 대한 희망이 사라져 갔다.
함께 즐기는 재미, 또는 나한테 무한한 관심을 보여주는 재미, 둘 다의 재미가 없으니까 전 남자친구들과의 기억을 헤매며 정서적 외도를 했다. 바닷가에서 흰 셔츠를 입고 선글라스를 낀 그와 손잡고 사진을 찍는다거나, 안목해변에서 앞서 지나간 커플이 취한 포즈를 그대로 따라 해 어정쩡하고 이상한 포즈로 사진을 찍었던(무려 5년 전) 전 남자친구와의 비디오가 머릿속에서 재생됐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함께 즐기진 않았어도, 나를 봐주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던 사람이 떠올랐다.
어디든 같이 가주긴 하는데 그곳에서의 활동에도, 나에게도 특별히 관심 없어 보이는 그의 머릿속에는 무슨 생각이 떠다닐까 궁금했다. 지루하고 쓸쓸했다. 여행을 가서 좋은 것을 보고 좋은 것을 먹는데도 너무 재미가 없으니까 전에 연애할 때는 어떤 데이트를 했냐, 어떻게 놀았냐고 물었다. 비슷하게 데이트했다고 했다. 드립치고 놀았다고 했다. 뇌 빼고 대화했다고 했다. 그러면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과 더 잘 맞는 것이 아니냐고 했다. 나는 같이 뭔가를 즐기고 추억 쌓고, 섬세하고 아름다운 것 같이 만들거나 하는데서 즐거움을 느끼는데, 조금만 세게 말하거나 내 기준에 어긋난다고 느껴지는 단어 들으면 싫어하는데 함께하면 안 맞아서 서로 힘들겠다고 생각했다.
이런 사람과 시간을 쌓아 나가다가 결혼 생활을 하게 된다면 어떨지 상상했다. 함께 뭔가를 즐기는 재미도 없고, 내 마음을 잘 들어주지도 않고, 내가 원하는 것만큼 다정다감하지도 않은데, 애만 보고 살겠다 싶었다. 대화도 점점 없어지고 남편은 알아주지 않는 기분을 혼자 삭이며 애한테 모든 사랑을 주게 되지 않을까 상상했다. 내가 투자를 잘해서, 또는 콘텐츠업이나 나중에 개인 사업이 잘되면 돈 많이 쓰면서 내가 꿈꾸는 라이프스타일을 즐길 수 있겠다 생각했지만 그 속에 그가 있다면 그 누구와 못지않게 즐거울까 상상했는데, 지금 함께 있는데 외롭다면 그때도 그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따분한 일상, 따분하고 기운 빠지는 대화, 따분한 데이트 속 비관이 싹텄고 혼자만의 시간과 생각을 양분 삼아 무럭무럭 자랐다. 우울 속으로 침전했다. 나쁘지 않은 그가 나쁘지 않게 대해주는 데도 여행할 때마다 죽이 잘 맞던 전연인이 떠올랐고, 그와의 관계를 실패한 나를 탓했다. 이미 실패해 버린 것 같았다. 다정하고 잘 맞는 사람을 이미 실패해서 행복도 실패해 버린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대외적으로 괜찮은 그, 적당히 괜찮은 외모에 적당히 괜찮은 직업, 적당히 지적인 대화가 되고, 적당히 무던한 성격에, 적당히 말장난도 칠 수 있는, 결혼식장에 손잡고 들어가기에, 친구들에게 소개해주기에 손색이 없을 것 같던 그. 만인의 연인이 될 수 있지만 내 짝은 아닌 것 같았다. 여러 사람과 두루 어울릴 수 있지만 나의 평생 단짝이 되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난 섬세한 사람이 필요하구나. 비슷한 사람이 맞을까, 나와 다른 사람이 보완이 되어 오히려 좋을까 많이 고민했는데, 이 연애를 실패하면서 친구 같은 느낌의 비슷한 사람이 맞겠다고 결론을 내렸다. 나랑 둘이 알콩달콩 잘 놀 수 있는 사람, 대화할 때 편안한 사람이 필요하구나 결론 내렸다.
따분함이 고양이를 죽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