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하지 않은 아빠 같은 남자를 만났던 어느 여름
내 인생에서 가장 기묘했던 연애였다. 그에 대한 첫인상은 특이하다, 저 사람과는 친해지지 말아야겠다였다. 가까워질 것이 아니라면 굳이 일부러 가까워지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할 필요가 없었을 텐데 그렇게 생각했다는 것은 경계를 늦추면 가까워질지도 모르겠다고 직감했는지도 모른다.
내가 딱 싫어하는, 말할 때 격 없는 어휘 선택을 하고, 사람에 대한 평가내용을 직설적으로, 그리고 강한 표현으로 전달하는 모습을 보고 혹시라도 친해져서 연인이라도 된다면 상처받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내 취향 외모도 아니라서 먼저 반했거나 관심 있지도 않았는데, 주변에서 은근하게 이어 주려는 눈치도 있었고, 나는 원래 불호의 사람에게도 칭찬할 부분에 있어서는 칭찬하는 말을 주로 하는 편이라 내 말을 듣고 오해했으면 어쩌지 하고 괜한 걱정을 했다.
나는 굳이 필요하지 않다면 관심 있는 사람에게만 사적인 대화를 시도해서, 이 사람이 말을 걸길래 처음부터 나에게 조금 관심 있나 보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들어보니 본인은 원래 말을 잘 건다고 한다. 내가 브런치에 글 쓴다고 했던 것을 어디선가 들었는지, 어떻게 찾을 수 있는지 물어보길래 친해지면 알려주겠다고 선을 그었다. 처음부터 신뢰감이나 좋은 느낌이 드는 사람은 바로 알려주기도 하는데, 이 사람에게는 더 신뢰를 쌓아야 알려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누군가가 나에게 관심을 보인다면 싫지는 않았지만 이 사람은 그 이후에도 일부러 멀리 하려고 했다. 그런데 우연하게 같이 시간을 보낼 일이 생겼고, 나에 대한 정보를 드러냈는데 사람들 앞에서 굉장히 크게 칭찬을 하면서 인정 욕구를 채워주었다. 나의 다른 사생활에 대한 정보에 대해서는 질색이라며, 역시나 내가 싫어하는 직설적인 비난도 들었지만, 전체적으로 나를 좋게 보는 부분이 더 크다고 느껴졌다. 느껴질 정도로 빤히 본다거나, 내가 옆에 있는데 내 글을 읽어본다거나, 대놓고 나 같은 성향의 사람을 만나고 싶다고 표현을 한다거나 해서 전엔 내 착각 속에서만 그가 내게 마음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날은 확실히 나에게 관심이 생겼구나 느껴졌다. 나도 마음이 조금 열려서 과거 연애와 결혼관 등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는데 생각보다 꽤 잘 맞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을 보내고 나서 주말에 그가 조금 생각났는데, 기분이 좋은 것이 아니라 아팠다. 마음도 아프고 몸도 아팠다. 왜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가 나를 인정해 주고 좋아해 주면 나도 그를 좋아하는 건가? 애정결핍인가 싶어서 더 아팠다.
일주일 정도 후, 사랑에 있어서만큼은 누군가가 아무 이유 없이 갑자기 마음에 들어오면 직진해 보는 편이라, 내 마음을 깨달은 이후로 나 역시 적극적이었고 그에게 직진했다. 그와 길지 않은, 하지만 마냥 얕지 않았던 연애를 해보고, 관계가 끝나고 나니 그날 왜 아팠는지 어렴풋이 이해가 된다. 그때는 몰랐다. 갑자기 첫인상이 별로이던 그에게 왜 기대고 싶다는 느낌이 들었는지, 왜 유독 그에겐 처음부터 이상할 정도로 안정감을 느꼈는지 조금 알 것 같다.
그에게 초반에 나와 조금 비슷한 구석이 있다고 느꼈다. 과도하게 솔직한 것, 그리고 직설적인 것, 말을 재밌게 하는 것 등. 나는 아빠와 비슷한 구석이 많고, 나와 비슷한 구석이 있는 그는 아빠와 비슷한 구석이 많았다. 나에게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게 하는 아빠의 모습을 그에게서 처음부터 보았던 것 같다. 아빠의 여러 가지 모습 중 나를 상처받게 했던 모습, 직설적이고 공격적인, 비난하는 화법을 그에게 보았다. 다소 거칠고 좋게 말하면 상남자 같고 나쁘게 말하면 교양 없어 보이는 그의 행동거지까지 아빠를 겹쳐지게 했다. 그가 가진 어떤 열등감이나 수많은 그의 발화에 녹아있는 어떤 테마 역시 아빠가 가진 열등감과 비슷해 보였다.
그래서 싫었다. 익숙하지만 불편했다. 그냥 불편한 정도가 아니라 온몸이 아프고 머리를 싸매고 고민에 잠기게 할 정도로 불편했다. 차문을 세게 닫는 것도 싫었고, 호텔에서 조식을 먹는데 옆 테이블에 두고 간 다른 사람의 핸드폰에서 알람이 울리자 직접 볼륨 다운 버튼을 누르는 것도 놀랐다. 그날 밤에 잠이 안 와서 조용히 유튜브 영상을 틀어놓고 소리를 들으며 누워있는데 그가 내 쪽으로 와서 내 핸드폰을 들더니 소리를 직접 껐다. 깜깜한 상태에서 소리를 줄이려다 보니 핸드폰 플래쉬도 켜지고 핸드폰도 내 얼굴에 떨어뜨릴 뻔했다. 너무 놀라고 화가 나서 사과하라고 했다.
하루 종일 내 열등감까지 같이 자극하는 불편한 순간들을 참았는데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됐다. 누운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자고 있는지 알았다는 핑계가 싫었다. 시끄러우면 꺼달라고 말로 하면 되지 않냐고 했더니, 계속 자는 줄 알았다고 한다. 어떤 마음인지 설명이라도 하고 싶어서 컴퓨터 게임하고 있는데 엄마가 전원버튼을 갑자기 끈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그런데 아무런 감정적인 공감을 못 받았다. 그래서 “오빠, 얘기 좀 해요. ”라며 싸움을 걸었다. 그리고 대판 싸웠고, 무더운 여름을 꼬박 기다려서 간 9월 초의 휴가는 완전히 망쳤다.
아침에 산책하다가 풀에 베여서 다리에 상처 났으니까 로비에 전화해서 연고 받아달라고 했는데, 왜 안 받아줬냐고 했더니 하루종일 운전했는데 그거는 네가 직접 좀 할 수 없냐고 했다. 낮부터 따갑다고 하고, 방에 들어와서는 외할아버지는 누워있으면 알아서 그냥 다 발라줬다고 했는데… 난 그냥 챙김 받고 싶은 것이었다. 싸울 때마다 입을 꾹 다물고 대화가 안 되길래, 속마음 좀 말하라니까 “솔직하게 말해?” 하면서 우리 집은 남자형제 밖에 없어서 생채기 좀 난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고 한다. 이 정도 공감능력이라고? 만나기 싫은데… 헤어지고 싶단 말이 튀어나왔다. 그는 가방을 다 싸서 서귀포에 그 시간에 나를 두고 가려고 했고, 일단 자고 가라고 붙잡았더니 아침 일찍부터 다시 호텔방에 나를 혼자 남겨두고 가려고 했다.
아무리 헤어져도 이건 아니지 않나 싶었다. 아침에 내가 전날 했던 말들 중에 상처 줬던 말들에 대해 사과를 했고 여행 마지막날 그는 나름대로 웃으면서 잘 대해줬고, 함께 서울로 돌아왔다. 그런데, 여행지에 두고 온 일들과 대화, 그리고 섬에 있는 호텔방에 혼자 남겨두고 가려고 했던 일을 극복하지 못하고 결국 일주일간 힘들어하다가 이별을 맞았다.
아빠랑 조금은 비슷한 사람을 만나 안정감을 느꼈고, 한 때 행복했다. 톡톡 쏘는 그를 다정한 남자로 바꾸고 싶었다. 그는 지쳤고, 나도 질렸다. 있는 그대로 사랑해 줄, 마음 편하게 해 줄 자신 없어서 다시 붙잡지도 못했다. 좋아하는 마음이 남았지만 차가운 모습에 실망이 너무 커서 오래 만나도 극복하기 어려울 것 같았다. 보기보다 세상 남자다웠던, 시간 지날수록 카리스마에 놀랐던 남자의 다정함을 원했지만, 가질 수 없는 것을 평생 좇던 어린아이 같았다.
그래서 다시 절대 아빠 같은 남자 만나지 않으려고, 연고 직접 발라주는 외할아버지 같은 다정한 남자 만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