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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센스 Oct 11. 2024

사람인 자처럼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어서

나를 알려면…

마르코오빠에게 독서모임 가냐고 물었다. 고민 중이라고 했다. “저를 위해서 와주세요. ”라고 했다.


안 그래도 남자친구랑 다퉈서 힘든데 혹시 모를 군중 속의 소외감을 느끼고 싶지는 않았다. 이미 몇 달째 봐서 안면이 텄고 나에게 친절하게 대해주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래도 무리 중에 진짜 내 사람이 한 명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였다.


얼마 전 생일에 남자친구가 엄청 큰 케이크를 사 왔다. 내가 먹고 싶다고 했던 종류의 케이크가 사러 간 곳에 그 사이즈밖에 없었다고 했다. 마르코 오빠에게 비싸고 맛있는 케이크이니까 먹으러 오라고 했더니 알겠다며 언제 가겠다고 했는데, 여자와의 약속 때문이랄지, 여자를 만날 수 있는 모임에 참석한다든지 하느라 나와의 약속은 뒷전이었다. 두 번이나 온다고 하더니만 못 온다며 파토냈다.


그래도 전날 힘들다고 말했던 데다, 독서모임에 와달라고 하니 “갈께. ”라며 톡을 보내고 모임에 얼굴을 비췄다.


오빠 나름의 울적한 일로 눈가가 평소보다 촉촉해 사슴 같은 눈망울이 더 반짝여보였지만, 유쾌하고 솔직하게 자기 얘기를 술술 들려주는 것을 듣고 있으니 마음이 묘하게 안정되었다.


이미 아는 얘기를 사람들 앞에서 하고 있는 것을 듣는데, 익숙한 이야기라 그런지 더 마음이 편안해졌다. 들뜨면서도 기분 나쁘게 들뜨는 것은 아닌, 괜한 두려움에 사로잡힐 일도 없고 낯섦에 불편해지지도 않는, 주로 평균선 아래에 머무는 내 에너지를 평균선 근처로 끌어올려주는 딱 적당히 고양된 기분 좋음이 느껴졌다.

 

 데일카네기의 인간관계론을 읽고 진행자가 만들어온 발제문에 돌아가며 답변을 하고 있었다.


“당신은 현재 인간관계를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렇지 않다면 무엇이 문제라고 생각하는가? 문제점은 무엇이며 개선할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라는 질문에 내가 답변할 차례였다.


삶의 여러 요소 중 인간관계라는 지표에 대해 스스로에 설정한 기대치(목표치) 자체가 낮아서 내 기대치 대비한 점수는 한 70% 라고 했다. 문제는 현재는 인간관계를 확장시킨다든지, 주변의 사람들과 더 깊은 관계를 맺는데 의지 자체가 없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도 개선한다면 사람들한테 더 관심을 가져줘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연인관계를 제외한 일반적인 관계에 대해 말한 것이었다. 연인관계는 가장 어렵고, 부족하지만 부족한 만큼 발전하기 위해 노력을 많이 기울이고 있다. 친구관계는 억지로 애쓰지는 않지만 친구가 나를 필요로 할 때는 좋은 친구가 되어주려고 해서 나쁘지 않은 친구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한다.


몇 달 정도 나를 봐온 모임의 진행자가 해일리님은 그래도 자기 사람은 끔찍하게 생각할 것 같다며, 좁고 깊은 관계를 맺는 편이냐고 했다. 그런 것 같다고 했다.


진짜 자기 얘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몇 명 정도면 만족할 것 같냐길래 3명 정도라고 했다. 실시간으로 이야기하고 지내는 사람은 남자친구와 마르코오빠, 이렇게 2명이고, 사실 이 정도로도 너무나도 만족스럽고 잘 살았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냥 관례적으로 보통 좋은 친구 3명이 있으면 성공한 인생이라고 말하니 3명이라고 했다.


내 얘기를 한다면 시간을 내어 들어줄 친구들이 실제론 3명 이상이고, 텍스트로 내 글을 읽어주는 사람들과 이렇게 진입장벽 높은 일을 기꺼이 두 번 이상 해주겠다고 구독해 주는 사람들까지 포함하면 전혀 외롭지 않은 삶이라고 말할 수 있다.


진행자는 내게 이 질문을 하더니, 당장이라도 힘들 때 연락할 수 있는 사람이 몇 명 있냐는 질문을 모두에게 했다. 마르코 오빠 차례가 되니, 오빠는 맞은편에 앉아있던 나를 지목하더니 서로라고 했다.


반우스갯소리로 서로가 서로에게 사람인처럼 기대어 지내는 사이라고 했다. 웃자고 한 얘기지만 진짜 그렇기도 했다.


이른 아침이든, 늦은 저녁이든, 대낮이든 맥락 없이 툭툭 메시지를 던져놓을 수 있는 관계, 고민 있거나 무슨 일 있으면 “통화가능?”이라고 보내고 아무 걱정 없이 모든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는 관계.


남자친구랑도 셋이서 같이 보기도 하고, 남자친구와 함께 있을 때도 스피커폰으로 자랑이나 고민 들어주는 관계.


내 삶의 일부. 그리고 없어서는 안 되는 버팀목.


연애가 끝난다고 해도 세상이 끝난 것처럼 슬퍼지지는 않고, 완전히 혼자가 된 것처럼 외로워지지도 않을 이유.


연애에 마음과 인생, 글까지 나를 너무 많이 쏟아서 연애가 안 풀리면 너무나도 괴로운데, 그래도 친구가 있어서 잘 살았다고 생각할 여유가 있고, 이래도 괜찮고 저래도 괜찮다며 흘러가는 대로 삶을 관조할 여유가 생긴다.


남자친구가 예전에 친구들한테 영향받는 여자들에 대해 부정적으로 이야기한 적이 있다. 나는 그렇게 주기적으로 보는 무리의 여자친구들도 없고, 성대한 생일 파티 돌아가면서 열어주는 친구도 없다고 했다. 비교할 친구들도, 더 잘나 보이고 싶어서 포장할 친구들도 없다고 했다.


그냥 있는 그대로 서로를 받아들여주는 친구밖에 없다고 했다. 서로에게 화려한 것을 해주지는 않지만 진심으로 생각해 주는 친구밖에 없다고 했다.


사람을 알려면 친구를 보라고 하는데, 나를 알려면 마르코오빠를 보면 된다고 했다.


독서모임에서 마르코 오빠는 책에 나온 ”중요한 사람이 되고픈 욕망“과 관련해 그런 욕망을 가지고 있는지나 그렇다면 어떤 중요한 사람이 되고 싶은 욕망이 있는지라는 질문에, 남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망은 없다고 했다. 남이 나를 인정해 주는 것보다 내가 나를 인정하는 것에 가치를 두어서, 내가 설정한 목표를 달성하는 것을 의미 있게 생각한다고 했다.


나는 어렸을 때는 인정욕구가 많았는데, 지금은 타인의 인정을 추구하다 보면 내가 원하는 나와 멀어질 수 있고, 내 본연의 모습을 발현하며 살기가 어려워서, 타인으로부터의 인정 욕구는 추구하지 않고, 그냥 본연의 나 자체를 드러내고 그게 세상에 무언가 가치를 주기를 기대하면서 살아간다고 했다.


오랜 친구는 내 과거이지만, 요즘 가장 친하게 지내는 친구는 내 현재이자 미래이다. 사람인처럼 서로 버티어 서서 서로의 현재가 조금 더 살 만하고, 미래의 스스로를 조금 더 사랑할 수 있게 하는 친구 한 두 명이면 인간관계가 충분히 괜찮은 삶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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