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HD가 아니라 아스퍼거(ASD)입니다

진단명에 속지 말라

by 해센스

나는 ADHD가 아니라 아스파라거스라는 확신이 생겼다.


아스파라거스 : 고급 채소로 통하는 아스파라거스는 숙취에 좋은 아미노산의 일종인 아스파라긴산이 처음 발견된 채소이다. 씁쓰름하면서도 담백한 맛과 아삭한 식감이 특징으로 생으로 먹거나 데치기, 굽기, 튀김 등의 조리법을 통해 샐러드 등 다양한 메뉴에 활용되고 있다.


아스파라거스가 아니라 소위 '아스퍼거 증후군'이라 불리는 고기능 자폐 스펙트럼이라는 확신이 200% 생겼다. 엄마가 말해준 아주 어릴 때 에피소드, 집단에 동화되기 어려웠던 나의 모든 지난 날들, 나의 성향, 습관, 감각추구, 감각과민, 타인의 감정 파악이나 맥락 파악의 어려움, 이 모든 것들은 아스퍼거라는 것을 증명한다. ADHD의 이별과 그 후의 일상 연재 내용도 단순한 ADHD라고 보기는 힘든 감각에 과민하고 규칙에 집착하는 아스퍼거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아스퍼거로 추정되거나 앓고 있다고 공개한 유명인은 아이작 뉴턴, 아인슈타인, 제인 오스틴, 팀 버튼, 스티브 잡스, 빌 게이츠, 일론 머스크 등이 있다. 위대한 발명가와 사업가, 예술가들이 많다.


아스퍼거가 못 견디는 상황은 정해놓은 규칙이 깨지는 상황, 타인이나 집단에서 예측된 범위를 넘어선 행동 패턴이 나타나는 상황, 물건의 위치가 바뀌어져 있는 상황 등이다. 어릴 때 엄마가 내 방을 정리해서 내가 원래 물건을 두었던 장소가 달라져 있으면 난 엄청나게 화가 났다. 난 정말 방에 손대지 않길 바랐다. 화가 그렇게 날 일인가 싶지만 아스퍼거는 신경학적으로 그런 상황을 못 견딘다. 생각해 보니 과거 연인들에게도 물건의 위치 변화와 관련해 스트레스를 토로한 적이 있다. 아스퍼거 연인의 집에 방문해 어떤 물건을 썼으면 제자리에 원래 물건이 향하던 방향대로 두길 바란다. 당신에게 예민하게 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 그들은 그렇게 태어났다.


ADHD가 정리정돈을 안 하고 주변을 어지럽히는 그런 이미지라면 아스퍼거는 모든 것들이 나름의 규칙이 있어야 한다. 물건의 위치, 분류 방식 등. 보기에 너저분해 보일지라도 나름의 규칙은 있다. 내 회사 컴퓨터의 폴더 정리도 누구보다 깔끔한데, ADHD 때문에 정신이 없어서 정리를 안 하면 못 찾으니까 그런가라고 잠시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다. 사물이나 어떤 개념이 정확한 분류 체계 안에 들어가 있지 않은 것을 못 견디는 것에 가깝다.


분류 체계 안에서 안정감을 느낀다는 것은 인간 관계에도 적용된다. 타인이 나를 좋아하는지, 좋아하지 않는지도 나를 좋게 본다는 뉘앙스의 말로 직접 들어야 비교적 확신을 할 수 있다. 나를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모르겠는 사람들을 무수히 마주치는 환경이 피곤하다. 그래서 주로 혼자 있거나 피해 다니기도 한다. 확신을 준 사람에게만 눈을 마주치거나 미소를 보인다. 일상에서 스쳐간 사람 중 나와 제대로 눈을 맞춰본 사람은 손에 꼽을 것이다.


ADHD는 성인 인구의 5%가 가지고 있다고 하면 아스퍼거를 포함한 자폐 스펙트럼 장애(Autism Spectrum Disorder, ASD)는 인구의 1~2%가 가지고 있다고 한다. 지능 발달에 문제가 없는 고기능 자폐스펙트럼인 아스퍼거의 인구 비율은 전 세계 인구 중 0.5% 정도 된다고 한다. 아스퍼거의 남녀 성비는 9:1 정도로 여성 아스퍼거는 정말 드물다. 아스퍼거의 진단 기준이 남성 중심적으로 만들어졌거나 여성의 공감능력처럼 보이는 다른 특성이 아스퍼거의 특징을 덜 부각하는 것일 수도 있다고 한다. 이를 배제하고 단순하게 통계를 기반해 계산해 본다면 전 세계 인구 중 여성 아스퍼거 증후군의 비율은 0.05%이다.


이 수치를 말해야 나를 더 이해할 수 있다. 단순히 ADHD라면 학교에서, 직장에서, 어느 그룹에서 나 같은 사람을 봤어야 했는데 없었다. ADHD 성향이 있는 사람은 나름대로 솎아낼 수 있었지만 나와 비슷한 사람은 없었다. 나는 때로 우울하지만 대체로 행복한 ADHD가 아니라 집단 내에선 거의 늘 불행한 아스피였다. 혼자만의 시간과 공간이 아스피에겐 천국이다.


아스퍼거는 시각적, 청각적 자극에 예민한 경우가 많아 혼자 있는 것을 선호한다. 사람의 눈을 보면 감정을 포함한 수많은 정보가 쏟아지기 때문에 눈 맞춤을 어려워한다. 나의 경우에는 익숙하지 않은 얼굴의 비례를 보는 것 자체를 어려워한다. 내가 자주 보고 익숙한 사람과 비슷한 비례를 가진 얼굴만 편하게 쳐다볼 수 있다. 시간이 많이 흘러 서서히 익숙해진다면 낯선 얼굴에 대한 말 그대로의 낯가림은 좋아진다.


아스퍼거는 나이가 들어도 아이처럼 순수하고 천진난만해 보인다. 아스퍼거 아이들은 심성이 착하고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는 경향이 강하다고 한다. 하지만 사회적인 상호작용에 대한 관심이나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아주 어릴 때부터 왕따를 당하는 게 일상이다. 반복된 상처와 트라우마로 성인이 되면 자발적으로 혼자 있기를 택한다. 유튜브 채널 닥터토마토를 운영하고 계시는 이 분야의 전문가인 한의원 원장님은 아스퍼거 아이들을 "천재적인 두뇌와 천사의 심성을 가지고 태어난 아이들"이라고 칭한다. 이들의 감정상태에는 공격적인 감정의 상태가 매우 적고 두려움이나 공포감이 많이 보인다고 한다. MRI 상으로 뇌 속에 두려움이나 공포감을 느끼는 조직의 편도체가 일반인에 비해 크다고 한다. 그리고 일반인에 비해 감정이나 정서도 풍부하다고 한다. 그래서 더 상처도 많이 받는다. 이들에게는 “자신과 타인의 감정을 빠르고 정확하게 인지하는 능력, 자신의 감정을 타인에게 정확하게 전달하는 능력“이 부족할 뿐이다.


아스퍼거는 타인을 의도적으로 괴롭힐 만큼 대부분의 타인들에게 관심이 없고 대체로 악의도 없다. 아스퍼거는 학교 폭력이나 직장 내 괴롭힘 가해자보다는 피해자가 훨씬 많다고 한다. 조용한 ADHD를 진단 받았는데 지적 성취도가 높았고 특정 분야에 해박한 지식을 보유하고 있으며 왕따와 괴롭힘이 인생에 늘 따라다녔다면 ADHD가 아니라 아스퍼거일 확률이 높다.


그래도 나는 사회화와 학습이 잘 된 아스퍼거인인지라 시행착오를 반복하며 인간관계의 규칙을 암기해서 행동을 해왔다. 사회화의 결과로 이야기를 듣고 리액션을 해주려고 노력하는데, 그것도 기본적으로 좋게 생각하는 사람에게만 가능한 것 같다. 누군가에 대해 감정과 행동을 불일치 시키는 것이 쉽지 않다.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낯가림이 심하고 조용하고 내성적인 여자 사람 정도로 비쳤을 수 있다. 좀 더 나를 부정적으로 본다면 사회성이 부족한 사람. 나에 대해 이런 뉘앙스의 말을 입 밖으로 꺼낸 사람들도 있었다. 사회성이 부족하다는 것은 스스로도 알고 있어 더 이상 상처되는 말은 아니다. 맥락의 문제인데, 나의 다른 역량을 질투해서 나를 깎아내리려고 사회성이 부족하다고 말하고 다니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당연히 기분이 안좋았다.


관심 있는 주제에 대한 것이 아니라면 거의 말을 하지 않는다. 사실 관심 분야가 한정되어 있어 별로 할 말이 없었던 것도 있다. 유치원 때부터 그랬다. 우연히 요즘은 내가 어릴 때부터 좋아하던 리얼리티 TV 장르가 대세가 된 것 뿐이다. 픽션(허구의 이야기) 장르인 소설, 영화보다는 논픽션과 다큐멘터리를 좋아하는 것도 아스퍼거의 특성이라고 하는데 나는 일반인이 출연하는 미국, 캐나다, 호주 등의 각종 리얼리티쇼를 섭렵해왔다. 도전 슈퍼모델부터 프로젝트 런웨이, 빅브라더, 어프렌디스, 각종 요리 리얼리티, 더힐즈, 카다시안 따라잡기, 연애 리얼리티, and many more(그밖에 수많은 것들). 한국 방송도 리얼리티만 봤었다. 스크린을 통해 다양한 사람들의 행동을 관찰하는 것이 내 취미라면 취미였다.


단순한 ADHD가 아니라면 또 한 가지 증거는 일반적으로 아주 효과가 좋다고 판명된 ADHD의 치료제(메틸페니데이트 계열 콘서타)가 나에게 효과보다는 부작용이 컸다는 점이다. 용량이 부족해서겠지 하고 계속해서 늘렸는데도 집중력 향상은 일어나지 않았다. 기분이 좋아져 사회적 관계에 여유가 생기고 신체 각성이 생겨 운동 수행능력은 향상됐지만, 일을 할 때 약을 먹어도 도무지 좋아지기는커녕 오히려 더 산만해지기만 했다. 약을 먹고 나서 단순반복적이지만 여러 정보들을 맞게 매칭해 처리해야 하는 그런 일의 수행능력이 전보다 5배 이상 떨어졌다. 사무적인 업무를 6년 이상 해왔는데 이 정도로 단순한 업무가 헷갈려서 못한 적은 없었다.


콘서타 45mg를 복용한 느낌은 마치 잠을 3시간 자고 출근해 핫식스 6개를 마시고 거기에 커피 3잔을 마신 상태와 같았다. 머리가 쨍하게 각성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집중해서 과업을 수행을 할 수가 없는 그런 상태다. 아주 기초적인 일도 도무지 잘 되지가 않는 그런 상태. 거기에 항우울제 에프람정까지 먹으면 멍해지고 단기 기억력 마저 압도적으로 짧아져 상황은 더 악화된다. 주변의 소음을 커지고 내가 집중해야 하는 일에는 집중을 할 수가 없게 된다. 의욕적이고 기분이 좋아진 행복한 바보가 된다고 해야 하나.


아주 쉽게 말하면 단순하게 ADHD로 분류할 수 없는 사람이 전두엽 각성제인 메틸페니데이트를 복용하면 법인카드 정산이나 출장비 지급과 같은 단순 업무를 할 수 없게 된다. A라는 사람에게 20,000원, B라는 사람에게 40,000원을 지급해야 하는 단순한 정보의 기억과 매칭이 요하는 업무가 주어지면 A라는 사람에게 40,000원, B라는 사람에게 20,000원으로 잘못 기입했다가 지우고 다시 작성하는 일을 반복하게 되고 자괴감에 빠지게 된다.


이런 좌절을 통해 나는 정말 어쩔 수 없는 ADHD야 라는 굴레에 빠지게 되고 약물에 더 의존하게 된다거나 퇴사를 고려하게 될지도 모른다. 정신과 진단 남용하는 사회에 강력하게 경고하고 싶다. 웩슬러 지능검사와 CAT검사만으로 너무 빠른 ADHD 진단과 손쉬운 메틸페니데이트 처방을 경계하라고!


아스퍼거는 딱히 약이 없지만 ADHD에게는 아주 잘 듣는 약이 있다. 더구나 조용한 ADHD라는 병명은 정신적 충격으로 인해 집중력이 떨어진 수많은 사람에게 충분히 쉽게 납득시킬 수 있는 진단명이다. "과잉행동이 없지만 멍을 때릴 때가 많고 주의집중력이 약한 ADHD입니다"라고 하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아, 내가 그런가 보다'하고 모든 지난 일들을 주의력 결핍과 연관시킬까. 직장에서의 고충으로 병원을 찾은 환자에게 "당신이 주의력이 부족해서 돌아가는 상황을 몰랐던 것 같군요"라고 하면 '정신 똑바로 차리고 안 당하려면 콘서타 필수겠군!' 이런 심리가 생기지 않을까.


난 아스퍼거의 동반 질환이라고 알려진 ADHD와 교류하는 몇 가지 증상이 있었지만 성인 ADHD로 정의할 수 없다. 오히려 콘서타라는 약이 나를 ADHD로 만든 것에 가까웠다.


나는 단순한 성인 ADHD나 조용한 ADHD가 확실히 아니다. 나는 산만하기보다 어떤 분야에 몰두하는 것에 가깝다. 내 생각에 몰두하느라 타인의 이야기를 놓칠 때도 있는 것이다. 나는 주의집중력이 부족하다기보다는 관심 있는 것에만 주의를 기울인다. 관심 있는 사람의 특성, 정보는 다 외운다. 이런 지점은 ADHD의 주의력 결핍과 과몰입(Hyper-focus)과도 일맥 상통하는 특성이기는 하다.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ADHD의 시선이 분산된다면 내 시선은 더 집중된다. 내 시선은 보통 한 곳에 꽂혀 있을 때가 많다. 산책을 하다가 비둘기의 머리에 털이 나있는 걸 본다면 난 그 털만 뚫어지게 쳐다본다.


그리고 ADHD가 소위 눈 뜨고 자는 것처럼 멍 때릴 때가 많다면 나는 메틸페니데이트와 항우울제를 복용할 때는 멍을 때리는 일이 잦아졌지만 그 이전에는 늘 뇌가 일하는 중이었다. 끝없이 관심 분야의 정보를 읽거나 듣고 학습하는 중이었거나, 눈이나 귀로 정보를 받아들이고 있지 않을 때는 그 정보에 대해 뇌에서 나름 분류와 응용 작업을 하고 있었다. 중요하게 기억해야 할 정보만 떠올린다음 이렇게 실생활에 적용해야겠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메모장이 비서와도 같은 존재인데 언제든 인생의 새로운 규칙이 생성되면 잊지 않도록 메모에 적었다.


그전에는 뇌가 쉬지 않고 굴러가서 때론 너무 피곤하니 제발 좀 ‘지금, 여기’에 머무르거나 ‘멍 때리며’ 휴식을 취하고 싶었다. 약물을 복용하고 이 두 가지가 되어 이 효과에 나름 만족하기도 했다. 하지만 내 기존 역량에 비해 지능이 현저히 떨어졌다는 걸 체감했다.


조용한 ADHD의 경우 무기력하고 의욕이 없고 어떤 행동을 실행에 옮길 에너지가 부족하며 낮잠을 많이 잔다고 한다. 나도 일상에서 오는 피로도가 너무 커서 낮잠을 종종 잤고, 주말에는 하루 종일 자기도 했다. 아침에 일어나는 것, 시간 맞춰서 어떤 장소에 도착하기 위해 일어나기 싫은 것을 참고 딱 시간 맞춰 일어나는 것이 평생 어려웠다. 시간 계산이 안 되는 것은 아닌데 조절이 어려워서 거의 약속 장소에 딱 맞춰서 도착하거나 약간 늦기도 했다.


하지만 의욕이 없나? 보통 사람들이 하고 싶어 하는 활동에 의욕이 없을 수도 있다. 난 신체 활동을 좋아하지 않는다. 아스퍼거의 전두엽 발달 미숙은 사회성 발달과 운동 능력 발달에 동시에 영향을 미친다. 산책과 같은 쉬운 활동이나 다치지 않는 수영, 정적인 요가, 필라테스는 그나마 낫다. 몸으로 하는 활동을 제외하고 정신적 충격에 빠지지 않았던 이상 의욕은 늘 충만했다. 하고 싶은 것은 늘 많았고 동기부여만 되면 누구보다 몰입했다. 내가 무기력하고 의욕이 없다면 맞지 않고 동기부여가 되지 않는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알랭드보통의 표현을 빌자면 ‘인력 낭비’ 이자 ‘잠재력 낭비’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병원에 가서 이야기를 하려다가 시간과 돈, 에너지만 낭비할 것 같아 단념했다. “당신의 진단이 오진입니다”라는 말에 의사의 반응, 그리고 설득해야 하는 내 상황, 비싼 정신과 검사를 권유하는 상황, 이 모든 게 그려졌다. 장애인 등록이라도 돼서 내 인생에 직접적인 혜택이 된다거나 출간 작가가 될 기회가 생긴다면 진단명을 받아야지. 설문지나 관찰 검사보다는 뇌 MRI 촬영과 신경학적 검사로 확실한 진단을 받을 것이다.


지금으로선 내 30년 넘는 인생 전체를 설명해 주는 너무나 확실한 진단명을 의사에게 들을 필요가 없다고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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