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3월 11일 / 우붓, 발리, 인도네시아
신들의 섬에게, 안녕.
떠나는 날의 아침이 밝았다. 마지막 날의 숙소에 예산을 몰아넣은 덕에 호사스러운 아침식사가 방으로 도착하기로 했고, 우리는 식사를 기다리는 동안 방에 딸려 있는 풀에서 아침 수영을 하기로 했다. 아침의 빳빳한 햇볕이 수면을 따끈따끈하게 데웠고, 적당히 차가운 물이 피부에 부딪히는 소리가 듣기 좋았다. 선베드에 누워 풀 너머로 펼쳐지는 정글을 눈에 담는데, 어쩐지 그 모든 것들을 두고 떠나야 한다는 사실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그러나 자정에 뜨는 비행기 티켓이 버젓이 눈 앞에 있었으므로, 우리는 테라스에서 아침 식사를 하면서 마지막 날의 일정을 조정했다. 밤 12시가 넘어야 출발하는 비행기이다 보니, 여유롭게 공항에 도착한다고 하더라도 우리에게는 약 12시간가량이 남았지만 그 많은 짐들을 다 싸들고 돌아다니는 것은 불가능한 옵션이었기에 하루 동안 현지 가이드와 함께 다니는 차량 투어 같은걸 생각해 보았지만, 그는 썩 열광하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얼마 동안의 검색을 통해 덴파사르 공항에 캐리어를 맡겨 둘 수 있는 서비스 공간이 있다는 것을 알아냈고, 일단 짐에서 해방된 후 공항에서 가까운 스미냑 시내를 돌아보기로 하고 공항으로 향했다.
며칠 동안의 유유자적한 우붓 생활 이후여서인지, 스미냑은 시끄럽고 정신없는 도시 그 자체였다. 구글맵을 뒤져 가까운 오토바이 렌탈샵을 찾아 그가 원하는 모델의 오토바이를 빌려(드디어) 도로로 나오니, 그동안 우붓을 달릴 때 느꼈던 정글의 바람은 온데간데없고 도시가 내뿜는 뜨거운 열기가 다리에 달라붙었다. 우리는 바다 쪽으로 달려 무려 두 군데의 DEUS 매장에 방문했고, (그의 쇼핑은 집요하다) 결국 예쁜 티셔츠 하나씩을 사고(나는 왜 샀는지 모르겠으나, 한국에 돌아오고 나서 그와 바이크를 탈 때마다 잘 입고 있다) 난 후, 발리에서의 첫(그리고 마지막) 바다를 보기 위해 달렸다.
짭짤한 바람이 불어오면서, 머리카락에 소금기가 느껴졌다. 바다는 예뻤고, 근처에는 비치 클럽이나 술을 마실 수 있는 바들이 많이 보였다. 여유롭게 자리를 잡고 앉아 술을 마시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무엇보다 그가 운전을 해야 했고, 굉장히 사람이 많은 해변이라 입구에서부터 혼을 좀 빼앗기는 바람에 우리는 금세 피로해져 그곳을 빠져나왔다. (무척 빠르게 우붓이 그리워졌다) 발리에 가면 바비 굴링이라는 돼지고기 요리를 꼭 먹어보라는 얘기를 들어서 맛집이라도 찾아볼까 했는데, 한 것도 없이 피곤하고 배가 고파지는 바람에 다 집어치우고 큰 해산물 레스토랑에서 만찬을 하기로 했고, 랍스터와 새우 등의 해산물을 잔뜩 주문해 전투적으로 먹어 치웠다. (자극적인 도시의 음식이란)
하늘의 색이 변해 가는 것을 보면서, 돌아갈 시간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았다. 오토바이 반납을 공항에서 하기로 하여, 우리는 주유를 하고 가기로 했는데, 우붓에서처럼 동네 가게의 파란 오일은 보이지 않았고 익히 알고 있는 모양새의 커다란 주유소들이 간혹 있었다. 어쩐지 오토바이 빌릴 때 파란 오일 넣어야 하냐고 확인하니 아저씨가 웃으면서 노랗든 파랗든 상관없다고 하더라니. 우리 시골에서 왔다고 놀림당한 거였다. (도시 인심 너무하네)
어쨌든 오토바이 주유를 마치고 어두워진 길 위를 달려 공항으로 향했는데, 처음 공항을 빠져나왔을 때 톨게이트를 지났던 게 기억이 났다. 톨게이트를 만나기 전에 잔돈을 조금 챙겨두어야 할 것 같아 큰 도로로 진입하기 전에 오토바이를 잠시 세우고, 가방이 들어있는 시트를 여는 버튼을 눌렀는데 잘 열리던 시트가 열리지 않았다. (마스터 키로 연결된 오토바이라서 딱히 손으로 열 수 있는 방법은 없고, 버튼으로만 컨트롤 가능한 스마트한 친구였는데 그게 함정이었다) 시트 아래 넣어둔 가방에는 남은 돈과 여권이 들어 있었고, 공항까지 9분 남짓을 남긴 채로 시간은 흘렀으며, 내비게이션 역할을 해주던 핸드폰의 배터리는 바닥을 치고 있었다. (심지어 두 사람 모두의) 그는 이 상황이 믿기지 않는 눈치였고, 여행 후 처음으로 몹시 당황한 상태가 되어 화를 냈다가 나에게 미안해했다가 짜증을 냈다가, 짧은 시간에 다양한 스펙트럼을 소화하고 있었다.
문제는 다양했다. 톨게이트를 만나면 돈을 낼 수 없었고, 덮어놓고 톨게이트를 지난다고 쳐도 여권을 꺼내지 못하면 비행기는 꿈도 못 꾸는 일이었다. 여러 가지 가능성들을 생각해 보는 동안 길 위에서 그의 영혼이 소진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고, 무슨 짓을 해도 시트가 열리지 않자, 일단 공항에서 기다리고 있는 렌탈샵 아저씨를 만나 도움을 요청하기로 했다. 톨게이트를 만나면 그냥, 빌어보든지 하기로 하고.
그의 뒷자리에 앉아 그새 서늘해진 바람을 맞으며 공항으로 향하는 동안, 제시간에 비행기를 탈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과 동시에 문득, 어쩐지 이 섬이 떠나는 우리를 한번 붙잡은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 좋은 곳을 두고 어디 가려고 그래, 같은 느낌으로. 해서, 딱히 현실적으로 뾰족한 수가 떠오른 것도 아니라 나는 기도라는 것을 해보기로 했다. 우리가 머무르는 동안 다정하게 대해 주어 고맙고, 이번에는 일찍 돌아가지만 꼭 다시 돌아오겠다고. 그러니 오늘은 무사히 보내 달라고. 울컥 눈물이 났다. 아름답기만 했던, 우리에게 오로지 좋은 기억만을 주었던 사랑스러운 섬과의 작별이 실감 나기 시작했다. 나는 소리 내어 말했다. 반드시 돌아올게요.
다행히도 우리가 진입하는 길에 톨게이트는 없었고, 공항에 도착해 오토바이에서 내리는 순간, 시트가 열렸다.
진짜다.
발리는 정말로, 신들의 섬이었다.
불과 몇 시간 만에 조금 살이 빠진듯한 그는 웃음을 되찾았고, 나는 발리와의 약속에 대해 이야기했다. 우리가 집에 갈 수 있는 이유와, 꼭 돌아와야만 하는 이유에 대하여. 무엇인가를 구하고자 한 것은 아니었으나 뒤돌아 서니, 많은 것들이 손에 들려 있는 기분이었다. 우리는 풍요로운 상태로 일상으로 돌아가, 그 동력으로 일하고 살아갈 것이다. 또다시 떠나야 할 순간을 알게 될 때까지. 바퀴가 지면에 닿는 진동이 느껴지고 눈을 떴을 때 창밖으로 먼지가 자욱한 익숙한 도시의 색깔이 펼쳐졌다.
신들의 섬이여,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