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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만세 Aug 06. 2019

노는 기록 - 6일

2019년 3월 10일 / 우붓, 발리, 인도네시아





우붓에서 가장 역동적인 하루를 보내고 난 다음날 아침의 얼굴이란.



방을 둘러싸고 있는 대나무 사이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따끈한 햇살을 느끼며 눈을 떴을 때, 나는 마치 엑소시스트가 침대에 나를 묶어놓은 듯한 기분을 맛봤다. 트래킹의 추억이 새겨진 다리로 몸을 일으켜 세워 화장실에 가는 데만 무려 15분이 소요되었다. 끔찍했지만 날씨는 또다시 좋았고, 커피가 절실하여 아침식사를 위해 그를 흔들어 깨웠다. 지난밤 열정을 불사르는 댄스의 분화구였던 곳은 다시 여유로운 레스토랑으로 얌전해졌고, 나는 비명을 삼키며 계단을 기어가다시피 올라갔다.



추가 메뉴까지 주문해서 야무지게 아침식사를 먹어치우는 나의 연인을, 천천히 커피를 마시며 구경하다가 끝없이 펼쳐진 초록의 논밭과 이따금씩 지나가는 개들을 바라보고 나서, 근처 마을 쪽으로 아침 산책을 나갔다. 보통 내 팔다리가 어디 어떻게 붙어 있는지도 모르고 사는 편인데, 시시각각 팔다리의 근육들이 존재를 알리는 난리 법석을 떨었던 것만 빼면, 더할 나위 없는 아침이었다. 돌이켜보면 기억에 남는 것들이 정말 많았던 발리 여행이었는데, 그 와중에 꽤나 강렬하고 인상적이었던 것은 아주 오랜만에 섭식과 소화가 유려했다는 것이다. 잘 먹고 잘 소화시키고 잘 버렸다는 뜻인데, 가끔 마치 내가 (그도 마찬가지였다) 똥 만드는 (아주 성실한) 기계라도 된 듯한 기분이 들 정도였다. (여담이지만 보라색 용과를 많이 먹으면 달팽이처럼 보라색이다!) 쨌든 몸과 마음이 두루 평안했다는 이야기이다.



체크아웃을 하면서 택시를 불러달라고 부탁하고 하루 동안 우리에게 다채로운 즐거움을 선사해준 숙소에게 작별을 고한 후, 마지막 날의 숙소로 이동했다. 약 20분을 달려 도착한 리조트는, 이전 숙소보다는 시티와 가까워졌지만 여전히 시골 한구석에 덩그러니 동떨어진 곳이어서 우리는 또다시 리조트가 가지고 있는 단 하나의 스쿠터를 빌렸다. (부서질 듯 부서질 듯 부서지지 않는) 체크인까지 두어 시간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우붓의 명물 계단식 논이라도 보고 올까 하여 빌린 스쿠터를 타고 리조트를 나섰다.


우붓에서 스쿠터를 빌릴 때, 주유에 대해 물어보면, 길가에 있는 작은 가게들이 가지고 있는 오일 중에 파란색을 넣으라고 알려준다. (지금까지도 이 파란 오일이 무엇인지는 수수께끼이다) 길을 나서자마자 주유를 해야 할 것 같아, 파란색 오일을 찾다가 길가의 작은 상점에 들렀는데 주인아주머니가 조금 무료하셨던 것 같다. 주유를 하고 음료수를 하나씩 사 마시는 동안 아주머니는 우리와 셀카를 삼백 장쯤 찍었고, 명절에 찾아온 손주들이라도 만난 듯 갓 튀긴 과자(알새우칩 맛)를 주면서 그녀의 가족사진을 보여 줬다. 덕분에 우리는 생각했던 것보다 조금 더 오래 그곳에 머물렀고, 어딘가에서 그녀의 가족들을 만나면 아는 척을 할 수 있을 만큼 가족사진을 많이 보고 난 다음에야 그곳을 떠나 다시 길로 돌아올 수 있었다.



지금이야 관광지가 되어 딱히 '논'의 기능을 하고 있지 않다는 '뜨랑갈랑'은 사실 그냥 논이나 계단식 논을 많이 볼 수 있었던 한국 사람들에게는 특별할 것이 없을지도 모르겠지만, 실제로 보면 아름답기는 정말 아름답다. 물론 정신없는 관광지의 냄새가 많이 나기는 하지만. 키 큰 나무들이 우거진 정글과 끝없이 아래로, 아래로 펼쳐지는 구불구불한 논, 직설적인 하늘의 색깔이 하나같이 예뻐, 그는 나를 여기저기에 세워 놓고 한동안 포토그래퍼가 된 듯한 열정을 쏟아냈는데, 더위에 취약한 탓에 금세 폭우를 맞은 듯한 얼굴을 하고 구해달라는 듯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길래 근처의 그늘진 카페로 데려가 밥을 먹였다. 그렇게 한낮의 시간을 보내다 보니 리조트에 체크인할 수 있는 시간이 다가와, 일단 체크인을 먼저 하기로 하고 리조트로 향했는데 기분 탓인지 계속 새로운 길로 가고 있는 기분이 들어 내비게이션을 확인해 보니, 우리는 리조트와는 반대 방향으로 한참을 달리고 있었고, 내비게이션 언니는 될 대로 되라지, 라는 심경이었는지 말도 안 하고 우리를 버려두고 있었다. (스쿠터에 핸드폰 거치대가 없어 에어팟에 의지해야 했고, 그마저도 인터넷이 불안정할 때가 많아 상당히 변덕스러운 내비게이션 언니와 자주 만났다.) 스쿠터를 돌리려는데 마침 건너편에 사원 입구처럼 보이는 것이 있어 잠시 멈추어 보기로 했는데, 실제로 굉장히 조용하고 한적하며 아름다운 사원이 그곳에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여행을 떠나면 그곳에 있는 사원이나 사찰, 성당에 방문해서 짧게나마 인사를 하는 것이 습관이 되었는데, 생각해보면 이전 네팔 여행이 꽤 많은 생각을 바꿔놓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딱히 엄청나게 큰일을 겪은 건 아니었는데, 많은 것들이 조금씩은 어려웠다. 심지어 입국을 하는 일조차도. 당시 카트만두에 착륙하던 도중 날씨가 도와주지 않아 결국 비행기를 돌려 중국으로 돌아가야만 했고, 다음날도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에서 착륙을 시도해야 했는데 이틀의 시도 후 거짓말처럼 날씨가 좋은 카트만두 공항에 발을 내디뎠을 때 생각했다. 허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방인들에게 길을 열어준 네팔의 땅에게 감사하며, 겸손한 마음으로 머무르겠다고 다짐했었다. 해서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으나, 사원에 방문하여 인사하는 일은 나에게는 존중의 한 방식인 셈이었다.



발리는 우리에게 다정했다. 애써 찾아가지 않아도, 그토록 아름다운 사원에 우리를 데려다 놓았으니. 사원 내부는 아담했지만 정화 사원처럼 물이 나오는 곳이 있었고 성스러운 연못의 눈이 시리도록 맑은 빛깔은 가끔 불어오는 느긋한 바람에만 답하고 있었으며, 작은 건축물들은 그곳의 나무와 풀, 이끼들과 어우러져 세월을 견디고 있었다. 우리는 아주 천천히 숨을 쉬며 걸었고 녜삐데이에 소란스럽게 들어온 우리에게 완벽한 날씨와 풍경, 사람들을 선사한 이 땅의 신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했다.


사원을 나와 이번에는 무사히 리조트에 도착하고 난 후, 딱히 일정이 없어 선베드에 누워 숨이나 쉬어볼까 했는데 아무래도 마지막 저녁이다 보니 조금 아쉬워 우붓 시내에 한 번 더 나가보기로 했다. 그는 우붓 시내 여기저기에 많이 보이는 은 전문 액세서리 매장에서 반지를 사고 싶어 했고, 나는 뭔가를 살 생각은 없었으나 패턴이 너무 예쁜 로브와 엄마에게 줄 같은 패턴의 스카프, 샌들까지 사고 말았다. (그는 보통 사고 싶은 것을 정해놓고 소비를 하고, 나는 눈에 보이는 것들에 소비를 한다) 개인적으로 향 좋은 바디제품들에 굉장히 집착하는 편인데, 우붓에만 있다는 바디제품 전문 브랜드 샵의 제품들이 꽤나 좋아 보였다. 자연스러운 꽃과 풀 향이 나는 (몹시 취향) 미스트나 스킨케어 제품들 사이에서 킁킁거리다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선물을 조금 사고 난 후, 완전히 어두워졌으나 여전히 생기가 도는 우붓의 거리를 조금 걷다가 괜찮아 보이는 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했다.


발리에서의 며칠 동안, 나의 연인은 그곳에서 조금 오래 머물러 보고 싶다고 무척 자주 이야기했다. (예를 들면 한 달이나 두 달) 응, 그래서 되게 많은 사람들이 발리에서 한 달 살기를 한대,라고 알려 주었는데 그는 실제로 어느 정도의 비용이 드는지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생각했다. (나는 보통 '구체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와 나는 달랐다. 여행에 대해서만 이야기하자면, 나는 보통 더 멀리 더 낯선 곳으로 떠나고 싶어 했다. (겁도 많고 이상한 잔걱정도 많은 주제에) 이것은 엄마의 육아 방식과 그녀의 희망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녀는 줄곧 내 사주에 바다를 건너는 게 있다며 나를 더 멀리, 더 낯선 곳으로 보내고 싶어 했다. 열여섯 살 무렵 미국으로 가족여행을 떠날 때라든가, 스물다섯 무렵에 런던에 어학연수를 떠날 때(말이 어학연수지, 졸업하기가 죽기보다 싫어 돈을 벌어 도망을 선택한 거라 술을 정말 많이 마시고 돌아왔다) 그녀가 가장 행복해 보였던 이유였다. 그는 낯선 곳에 잘 가려 하지 않았다. 싫어했다기보다 굳이 가야 할 이유를 찾기 어렵다고 했다. 가끔씩 어딘가 타국의 바다 사진을 보여주면, '제주도 가면 될 것 같은데?'(틀린 말은 아니었다)라며 속을 긁어놓고는 했다. 한 번도 보지 못한 세계를 보고, 우리가 알지 못했던 문화와 사람들을 겪어보는 것, 언어적인 것과 비언어적인 것을 뛰어넘어 인간적인 무엇인가가 작동하는 것을 시험해보고, 끝없는 초행길을 떠나는 모험을 같이 하고 싶어, 라는 설득을 했지만 사실은 겁이 났다. 그가 이 모험을 어떻게 여기게 될지 말이다. (나는 앞으로도 많은 곳들에 가보고 싶으니) 그와 나는 달랐다. 하지만 발리에서, 그와 나는 어느 정도 같은 것들을 보고 느끼고 감사하기 시작했다. (이런 식으로 몇 번 더 떠나면 언젠가 사막에도 갈 수 있겠지) 나는 겁 없이 비행기 티켓팅을 하고 말 그대로 아무 데나 숙소 예약을 하며 그에게 몇 가지 간단한 언어들을 알려준다. 그리고 그는 많은 바퀴 달린 것들을 운전하며 신밧드처럼 길을 찾으면서, 내 손을 잡고 성큼성큼 앞으로 나아간다. (가끔 내가 고장 났을 때 문제도 해결한다)



다행이었다. 우리는 좋은 팀이 되고 있었고, 언젠가 이곳에 돌아와 오랫동안 머무르게 될 때의 '구체적'인 모습을 머릿속에 조금쯤은 그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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