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식열전 (13) 비하리 치킨 마살라

토마토가 들어가지 않은 양파 치킨 커리

by 이그나티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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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하리 치킨 마살라는 인도 비하르 지방 스타일의 치킨 커리이다. 토마토를 사용하지 않고 양파와 닭고기, 그리고 향신료 위주로 강렬한 맛을 내는 독특한 커리이다.


내가 이 커리를 알게 된 것은 극히 최근의 일이었다. 자취를 시작한 이후로 다양한 인도커리를 해먹으면서 조리법을 조사하기 위해 유튜브로 인도 현지의 커리를 찾아보기 시작했고 그 결과 이제는 알고리즘이 나의 선호도를 인식하여 종종 자동으로 인도 커리 영상을 띄워주곤 한다.


인도 음식을 공부할 때 참 좋은 부분은 인도에서 영어가 널리 쓰이다보니 영어로 검색하면 어지간한 커리 레서피는 거의 찾을 수 있다는 점이다. 텔루구어나 말라얄람어 같은 현지 언어로 만들어진 영상이라 할지라도 제목에 영어 표기가 병기되어 있고, 영어 자막이 제공되는 경우가 많아서 어지간하면 영어만 알면 웬만한 로컬 커리 레서피는 다 찾아볼 수 있다.


여담이지만 이런 부분이 어떻게 보면 인도라는 나라의 장점이라는 생각도 든다. 중국은 인구는 많지만 공산당의 통제정책으로 인터넷 상에서는 격리되어 있다. 다른 나라들은 고유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한국어 웹에서는 직접 건너가 현지의 자료를 찾는데 제한이 있다. 하지만 인도의 경우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는 인구가 많다보니 기초적인 영어만 사용할 줄 알면 인도에 관련된 정보를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인도 현지 언어와 영어로 제작된 유튜브 인도 요리 영상의 조회수는 백만이 넘는 것들도 그리 드물지 않다. 그만큼 인도 유저들이 글로벌한 웹 환경에 가깝게 있다는 뜻일 것이다.


아무튼 이 요리에 흥미가 갔던 이유는 이전부터 인도 북부의 비하르 지방이라는 곳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비하르 지방은 우리나라에 잘 알려지 있지는 않지만, 동시에 잘 알려져 있는 곳이다. 불교 신자 분들이 성지순례의 목적으로 많이 방문하는 부다가야(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었다는 보리수나무가 있는 불교의 성지가 위치한 도시)를 비롯한 초기 불교의 많은 성지들이 비하르 주에 위치해 있다.


우리나라에는 과거 한때 엑조틱한 이국으로서의 인도에 대한 관심이 잠시 있었지만, 2010년대 이후 인도에 대한 이미지는 급격히 악화되었다. 치안공백으로 인한 각종 범죄, 비위생적인 환경, 열악한 인프라, 가난한 사람들과 같은 부분들이 우리가 생각하는 인도에 대한 이미지를 많이 차지하고 있다. 심지어 최근에는 젊은 층을 중심으로 ‘린도린도린도’ 류의 인도 관련 밈이 생겨나 인도에 대한 나쁜 인식은 점점 심화되는 경향마저 있다.


이러한 우리나라의 인도에 대한 나쁜 인식과 연관이 있는 지역이 바로 비하르 주라고 한다. 비하르는 인구가 1억이 넘는 엄청나게 거대한 주다. 하지만 동시에 인도에서는 우타르프라데시와 더불어 가장 가난한 지역으로 꼽힌다. 이곳의 빈곤문제는 심각해 1인당 GDP가 북한보다도 낮다고 한다.


특히 비하르 주는 앞서 설명한 것과 같이 불교 신자들의 성지순례 거점이 밀집해 있다 보니 한국의 인도 여행객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성지순례 목적의 불교신자들이 이 비하르 주를 방문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문제는 이 비하르 주가 열악한 환경으로 인해 여행자들에게는 최악의 경험을 선사하는 곳이 될 수밖에 없고, 이러한 사정이 “인도에 가봤더니 정말 최악이었다.”는 감상이 국내에 퍼지게 하는 이유가 된다고 한다.


사실 인도는 아대륙이라는 별칭에서 볼 수 있듯이 그 자체로 하나의 대륙이라 할 만한 곳이다. 비하르와 같이 북한보다도 못 사는 동네가 있는가 하면 구르가온이나 방갈로르처럼 세계적인 IT산업의 중심지도 존재한다. 예를 들어서 IT 회사에 다니셨던 내 아버지는 과거 방갈로르에 방문한 적이 있었고, 그래서인지 인도에 대한 꽤나 좋은 인상을 갖고 계시다. 인도라는 나라가 워낙 크다보니 인도의 어느 지역의, 어떤 부분을 방문하는지에 따라 이미지가 천차만별이 되는 것이다.


비하리 치킨 마살라의 가장 큰 특징은 토마토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보통 인도 커리에는 베이스가 되는 그레이비를 만드는 과정에서 토마토가 들어가는데 비하리 치킨 마살라는 양파만으로 베이스를 만든다. 추측컨대 이것은 물산이 풍부하지 못한 비하르의 특징을 반영할 것이 아닐까? 경험상 부유한 지역일수록 풍부하고 다양한 고기와 채소를 이용하여 맛을 내고, 가난한 지역일수록 고기와 채소는 적게, 그리고 양념을 듬뿍 사용하는 것 같다. 사프란이나 트러플과 같은 고급 향신료에 집착하지 않는다면 양념은 적은 양으로 오랫동안 사용할 수 있고, 품질이 다소 떨어지는 재료의 잡내를 잡아주기 때문에 형편이 넉넉치 않은 가계에는 아주 큰 도움이 된다.


비하리 치킨 마살라도 그렇다. 양파와 닭고기 그리고 향신료 위주의 간단한 재료를 사용하되 강렬한 향신료의 향을 이용하여 토마토가 듬뿍 들어간 치킨 카라히에 뒤지지 않는 강렬한 맛을 선사한다.


비하리 치킨 마살라를 만드는 방법은 그리 복잡하지 않다. 우선 기름에 향신료를 넣고 튀겨 탬퍼링을 한다. 그리고 나서 통마늘과 양파를 오랫동안 볶아 골든 브라운 색으로 만든 다음에 고춧가루와 커리파우더를 섞어 기름이 분리될 때까지 볶아 양념 베이스를 만든다. 그 다음에 미리 익힌 치킨을 넣어서 잘 섞은 뒤 뚜껑을 덮고 10분정도 찌면 된다. 막판에 버터와 가람 마살라를 추가해 풍미를 더한다.


사실 비하리 치킨 마살라는 치킨 카라히와 아주 재미있는 대조를 이루는 프로세스를 통해 만들어진다. 이전에 다루었던 치킨 카라히는 토마토와 치킨, 그리고 최소화된 향신료만으로 완성하는 심플한 요리이다. 반면에 비하리 치킨 마살라는 탬퍼링과 그레이비, 그리고 닭고기를 모두 사용하여 복잡한 맛을 추구한다.


흔히들 인도에는 수백가지의 커리가 있다고들 한다. 이렇게 커리가 다양성을 가질 수 있는 이유는 내가 보기에는 커리라는 음식의 레서피가 모듈화되어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인도의 커리는 대부분 모듈화된 구조를 조립해서 만드는 형식이다. 향신료를 기름에 튀긴 “탬퍼링”, 양파와 토마토를 걸쭉하게 볶은 후 향신료를 섞어 만드는 “베이스(그레이비)”, 그리고 닭고기나 양고기, 생선과 같은 “단백질”, 고수, 가람마살라나 버터와 같은 “토핑”의 크게 4가지 모듈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에다 경우에 따라서는 요리가 끝난 뒤 향신료에 튀긴 기름을 붓는 “타드카”가 추가되어 5가지 모듈 형태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커리의 종류에 따라 이 모듈의 내부를 조금씩 어레인지 해서 다른 요리를 만드는 것이다. 특히 다양한 향신료가 사용되다 보니 향신료의 종류나 비율에 따라 아주 다양한 요리가 가능하다. 예를 들어 커리 중에서 가장 단순한 편인 치킨 카라히는 탬퍼링을 빼고, 베이스에서는 토마토만 사용하고, 향신료 없이 간만 하거나 향신료는 최소한으로만 넣는다. 그 대신에 닭고기와 기름을 넉넉하게 넣어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린다. 반면에 비하리 치킨 마살라는 탬퍼링과 베이스, 그리고 단백질을 모두 챙기되 베이스 파트에서는 토마토를 뺀다. 그리고 향신료는 고춧가루를 위주로 사용한다. 기본 구조가 정해진 상태에서 이렇게 조금씩 변형을 가해서 만들다보니 무수히 많은 변형이 가능한 것이다.


다른 커리들도 이러한 커리의 기본 모듈 구조를 이해하면 어떤 요리인지 대략 파악이 가능하다. 요리하는 입장에서도 위에서 말한 기본적인 5가지 구조를 이해하면 나머지는 각각의 모듈을 조금씩 바꿔서 합체하는 식이라 그렇게 어렵지 않다. 마치 기본 틀을 갖춰놓고 표현만 조금씩 바꿔 무한히 많은 시조를 만들어내는 고전시가와 같은 것이다.


비하리 치킨 마살라는 토마토가 들어가지 않다 보니 부드러움과 감칠맛 보다는 닭고기 본연의 맛과 향신료를 듬뿍 흡수한 기름의 강렬한 풍미가 입안을 감싼다. 깊고 풍성한 토마토 위주의 커리가 아닌 향신료의 날카로움과 기름의 중후함이 직선적으로 감각을 자극한다.


거기에다가 통마늘을 자르지 않고 통째로 넣고 익히는 폭력적인 비주얼 역시 볼거리다. 우리나라에서는 통마늘을 껍질째 그대로 요리에 넣는다는 발상을 하기는 어려운데, 비하리 치킨 마살라는 통마늘을 그대로 양파와 넣고 볶아내다 보니 이런 이색적인 비주얼을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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