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비아의 땅콩 치킨스튜
이번에 만든 음식은 세네갈과 감비아에서 즐겨 먹는 치킨 스튜인 치킨 도모다(Chicken Domoda). 이 음식은 토마토와 야채, 땅콩버터를 넣고 끓인 스프에 닭을 넣고 익힌 스튜이다. 양파와 토마토로 베이스를 만든 뒤 거기다가 땅콩과 단백질을 추가하는 형태이다.
치킨 도모다를 만들기 전에 몇가지 중요한 변화가 있었다. 우선 닭고기가 브라질산 냉동 정육(닭다리살)에서 닭도리탕 용의 국산 뼈있는 냉장 닭으로 바뀌었다. 당연히 냉장 닭이 가공하기도 쉽고 칼질을 하지 않아도 되어서 편리하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브라질산 닭정육을 포기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현지의 조류독감으로 인한 가격상승이었다.
사실 브라질산 닭정육은 굉장히 짜증나는 재료이다. 2kg 단위로 출하가 되기 때문에 살짝 녹여서 4등분을 해서 소분해 보관해야 한다. 말이 쉽지 90% 정도 미묘하게 녹여서 고깃덩어리를 꺾은 다음에 포장을 뜯고 칼질해서 4등분 하는게 상당히 손이 간다. 처음에는 고기를 자르다가 놓쳐서 수채구멍에 쳐박혀 고기를 버린 적도 몇차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닭정육을 사용했던 이유는 가격면에서 월등했기 때문이었다. 보통 인터넷 쇼핑몰에서 보면 가슴살과 다리살이 섞인 국내산 냉장 순살 닭고기가 600그램에 6-7,000원대이다. 뼈있는 닭도리탕용 닭의 경우에는 1킬로그램(뼈무게가 1/3 정도 된다.)에 5,000에서 6,000원대이다. (저렴한 것 기준) 그에 비해 브라질산 닭은 2kg 한팩에 10,000원 안쪽이었으니 4등분을 한 500그램 한덩이가 2,500원 내외였던 것이다. 일반적인 국내산 냉장 닭에 비해서 가격도 저렴하고 무엇보다도 퍽퍽한 닭가슴살을 피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문제는 이렇던 브라질산 정육이 현지의 조류독감이 터졌다는 소식이 들리자마자 2킬로그램에 배송비 포함 거의 2만원 가까이로 올랐다는 것이다. 물론 4등분을 하면 여전히 500그램에 5,000원 안쪽이니 그렇게까지 비싸다고는 볼 수 없다. 하지만 벽돌처럼 굳은 냉동 닭은 소분하는 과정의 번거로움을 생각하면 결코 저렴하다고는 할 수 없는 가격이다.
결국 나는 닭정육(순살 닭다리살)을 과감히 포기하고 냉장닭으로 선회하기로 했다. 뼈가 붙은 경우에는 1킬로그램에 6,000원 안쪽으로도 구하는데 그렇다면 650그램 정도를 1,000원 안쪽에 먹는 셈이니 나쁘지 않다. 다만 뼈를 발라먹어야 하는 귀찮음과 닭가슴살의 퍽퍽함을 견뎌야 하는 단점이 있다.
2번째 변화는 토마토를 냉동에서 토마토 퓨레로 바꾼 것이었다. 사실 어떤 경우이건 생재료를 쓰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생토마토의 경우에는 문제가 있는 것이 보통 1팩 단위로 팔기 때문에 다 쓰지 못하고 버린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최근 자취를 다시 시작한 이후로 온라인 쇼핑몰에서 파는 냉동 방울토마토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냉동 토마토는 생각보다 비싸다. 1킬로그램에 17,000원 정도이니 가끔 쓰는게 아니라면 상당히 부담스런 가격이다. 게다가 내가 인도음식과 기타 중동, 아프리카, 양식을 자주 만들다보니 거의 매일 토마토를 사용하게 되었다. 이런다면 굳이 냉동 토마토를 사용하는 이유가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처음에는 일반 토마토로 재료를 바꾸었다. 어차피 거의 매일 쓴다면 1팩을 남기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뒤에 나오겠지만 이러한 재료에 있어서의 개선은 실패작으로 끝났다. 처음으로 생토마토로 치킨 도모다를 만들었더니 우선 무슨 물을 탄 것마냥 밍밍하고 깊은 맛이 하나도 없었다. 이건 나도 이유를 잘 모르겠다. 토마토와 물을 너무 많이 넣어서 그런 것 같은데, 그렇다고는 해도 정도가 너무 심하다. 내생각에는 훨씬 걸쭉하게 되어야 할 것 같은데 왜 그런 것일까?
그래서 첫번째 치킨 도모다가 실패한 이후로 토마토 퓨레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토마토 퓨레의 경우 다행히도 가격이 그렇게까지 비싸지는 않다. 어차피 자주 쓰는 재료이니 남을 걱정도 없고, 무엇보다도 내가 요리를 하는 방식이 생토마토의 식감을 살리는 것보다는 토마토를 열로 다 작살을 내서 걸쭉하게 만드는 것들이라 아예 퓨레를 사용하는 것이 시간을 절약하는 길이기도 했다.
실제로 외국의 요리 유튜브를 보면 아예 토마토 퓨레를 쓰거나, 토마토를 갈아서 쓰는 경우가 꽤 많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퓨레와 홀토마토를 즐겨 사용하는 이탈리아와 갈은 토마토를 많이 쓰는 인도의 요리 영상들이었다. 요리책에 토마토가 들어간다고 적혀 있다고 해서 우직하게 토마토만 쓸 이유가 없는 것이다.
어쨌거나 첫 치킨 도모다가 실패한 이후로 나는 토마토 퓨레를 이용하여 다시 치킨 도모다에 도전했다. 2번째도 그렇게 만족스럽진 않았는데, 그때는 너무 오래 끓여서 지나치게 걸쭉해졌기 때문이었다. 3번째에나 겨우 성공했는데, 성공한 치킨 도모다는 생각보다 괜찮았다.
치킨 도모다를 만드는 방법은 그렇게 어렵지는 않다. 우선 닭고기를 노릇하게 구워 냄비 밖으로 빼놓는다. 그 다음 양파를 볶아 노릇하게 만든 다음에 거기에다가 토마토 페이스트(나는 케챱으로 대체)와 토마토 퓨레를 넣고 졸여서 걸쭉한 베이스를 만든다. 만약 향신료를 넣는다면 이 단계에서 넣어 풍미를 더해준다. 베이스가 만들어지고 나면 다시 구워둔 치킨, 땅콩버터, 야채, 그리고 물(혹은 육수)를 넣고 20분 정도 푹 끓여준다. (그리고 중간에 소금으로 간을 해준다.)
치킨 도모다는 한국에는 익숙하지 않은 풍미이긴 하다. 양파와 토마토의 깊은 맛과 피넛버터의 고소한 맛이 어우러지는 굉장히 부드러운 음식이다. 보통 식문화라는 것이 경제력과 비례하기 마련이어서 물산이 부족한 곳의 요리는 아무래도 풍성함이 부족한 측면이 있다. 우리의 상식에 치킨 도모다를 많이 먹는 서아프리카 지역은 가난과 내전으로 점철된 가난한 지역이지만 음식은 그렇지가 않았다.
사실 생각해보면 서아프리카가 실패한 지역이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사실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최근에는 부르키나파소와 말리, 그리고 나이지리아 북부지역에서 치열한 내전으로 인명피해가 많이 발생하고 있지만 역사적으로 서아프리카가 언제나 문제투성이의 지역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서아프리카의 역사를 여기서 길게 읊을 생각은 없지만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2에도 등장하는 말리 제국이 바로 서아프리카의 대표적인 국가였다. 특히 말리제국의 황제 만사 무사는 황금을 너무 많이 가지고 있어 그가 메카 순례길에 물쓰듯이 황금을 쓴 덕분에 국제 황금 가격이 출렁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질 정도이다.
물론 일반 민중들의 삶이라는 것은 언제나 고단한 것이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아프리카가 나름대로 역사적으로는 부유함을 자랑하는 지역이었다는 것은 사실이다. 내가 서아프리카의 문화사에 해박하지는 않지만, 야채와 치킨, 그리고 땅콩을 듬뿍 사용하는 리치한 맛을 가진 치킨 도모다가 서아프리카 지역의 음식인 것이 그 지역의 영광스런 과거를 일정 부분 반영하는 것은 아닐까? 물론 도모다 자체는 말리가 아니라, 말리의 서쪽에 위치한 현재의 감비아 지역의 음식이긴 하다. 하지만 서아프리카 전역에서 이런 땅콩스튜를 넣은 스튜 형태의 음식이 널리 퍼져있는 것 역시 사실이다.
역사는 이정도 해 두고, 치킨 도모다는 부드러운 맛이 참 일품인 음식이다. 우선 토마토와 양파가 깊은 수프의 맛을 낸다. 그리고 넉넉하게 넣은 치킨의 맛을 즐길 수 있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땅콩버터의 고소한 풍미가 도모다 특유의 매력을 더해준다. 부드럽고 리치한 풍미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딱 맞을 음식이다. 만약에 강렬한 맛을 원한다면 만드는 과정에서 어레인지를 해서 스파이시한 맛을 추가해줘도 좋을 것 같기도 하다.
최근 세계적으로 한식 열풍이 불고 있다. 한식 열풍은 한식의 매력 덕분이기도 하겠지만 또 한편으로는 2010년대 이후 사실상 선진국 반열에 들어선 한국의 위치를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다. 사실 우리는 외국의 식문화를 판단할 때 현재 그 나라의 위상을 기준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현재 그 나라의 국력과 식문화가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현재는 정치적, 경제적인 이유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과거에는 융성한 문명을 쌓아올렸던 역사를 갖고 있어서 나름대로의 매력적인 식문화를 가지고 있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다.
그래서 나는 자취를 하면서 현재 그 나라의 이미지에 좌우되지 않고, 나의 취향에 맞는 요리를 최대한 찾아서 시도해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