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식열전 (16) 졸로프 라이스

by 이그나티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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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로프 라이스는 서아프리카의 대표적인 음식이다. 조심스럽게 굳이 비슷한 음식을 찾자면 일종의 토마토 리조또에 가까운 음식이다. 하지만 함부로 이런 이야기를 하면 안 되는 것이 마치 이 음식은 김치처럼 서아프리카 식문화의 자존심과 같은 음식이다. 마치 미국의 햄버거나 우리나라의 국밥처럼 어느 지역의 졸로프 라이스가 가장 맛있는가를 두고 은근한 자존심 싸움까지 있다고 하니 이 음식이 현지인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컴포트 푸드인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졸로프 라이스는 같은 이름을 가진 옛 국가의 명칭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이 글에서 무리하게 졸로프 라이스의 역사적, 문화적 배경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하지 않으려고 한다. 나무위키와 챗 지피티를 이용해 조잡한 설명을 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보다는 이 음식이 나의 맥락에서 어떻게 해석되는지를 설명하는 편이 나을 것 같다.


나는 이 음식을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 워낙 유명하기도 했거니와 내가 예전에 가려고 하다가 이런저런 사정으로 못 갔던 이태원의 아프리카 음식점에서도 파는 대표메뉴였기 때문이다. 항상 보면서 저게 도대체 무슨 맛일까, 라는 궁금증이 있었다.


그러던 차에 자취를 하며 이런저런 음식을 만들어 먹으면서 서아프리카 음식을 만들어 보자는 결심을 하게 되었고 그 결과 졸로프 라이스를 시도하게 되었다.


만드는 방법은 기본 구조는 인도 음식과 유사점이 있다. 하지만 탬퍼링이나 타드카와 같은 성가신 과정이 없고 만드는 방식이 직선적이다. 우선 양파를 볶아 캐라멜라이징을 한 뒤에 토마토 페이스트를 넣고 볶는다. 그 뒤에 토마토 퓨레를 넣고 푹 끓여서 되직하게 만든 후 쌀을 넣고 볶은 뒤 물을 부어 찌면 끝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튀긴 닭 따위를 곁들이기도 한다.


사실 아프리카 음식들의 특징이 야채를 한데 넣고 다 갈아버린 다음에 끓여서 물기를 날리고 그 뒤에 단백질이나 탄수화물류 재료를 넣어 익히는 스타일이 많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인 것이 덥고 습한 기후에서 오랫동안 불 앞에서 요리를 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야채를 익힌다는 것은 생각보다 성가신 일인데, 숨이 죽도록 볶으려면 중국식 화구를 사용하지 않는 다음에야 시간이 꽤나 걸리고 손으로 계속 저어줘야 한다. 당연히 갈아서 쓰면 물기만 날아가면 되므로 훨씬 편하다. 물론 야채의 식감을 원하는 경우에는 다르겠지만 스튜 형식의 음식이라면 굳이 생재료를 넣어서 쓸 이유가 없다. (인도인들의 요리 유튜브를 봐도 커리를 만들 적에 그냥 양파, 마늘, 생강, 토마토 퓨레를 넣고 순식간에 물기만 날려 페이스트를 만든 경우가 많다.)


사실 나는 이러한 인식에 발맞춰서 나의 음식 만드는 과정도 조금 바꾸었다. 이전에는 냉동 방울 토마토를 볶아서 커리나 다른 음식의 베이스를 만들었다. 예전에 자취할 때 생토마토를 샀다가 남아서 버린 기억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냉동 방울 토마토는 생각보다 비쌌고 볶는 데에도 시간이 많이 걸렸다.


어차피 지금처럼 커리와 같이 토마토 베이스인 음식을 많이 만든다면 아예 저렴한 토마토 퓨레를 사용하자는 결론에 도달했다. 잘 알아보니 토마토 퓨레 중에서는 실제 토마토에 비해 크게 비싸지 않은 제품도 많았다. 이거다 싶었다.


결과는 대만족이다. 졸로프 라이스를 진짜 토마토를 볶고 졸여서 만들었다면 시간이 엄청 많이 걸렸을 테지만, 토마토 퓨레를 쓰니 물기만 날리면 되어서 엄청 편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만드는 과정이 마냥 쉽지만은 않았는데, 기름이 부족해서 팬의 아랫부분이 탔고, 그것이 밥을 넣으면서 급격히 악화되어 막판에는 아예 거대한, 시꺼먼 누룽지 덩어리가 바닥에 생겨서 그걸 빼고 먹어야 했다.


거기다가 사이드 디쉬로 곁들이려고 일부러 아프리카 스타일로 튀김옷 없이 튀겨서 만든 닭고기는 내가 튀김 기술이 부족해서 안이 전혀 익지 않아서 먹을 수가 없었다. 솔직히 지금도 왜 그런 문제가 생겼는지 잘 모르겠다. 튀김 시간이 부족해서였을까? 하지만 너무 오래 튀기면 겉이 타고 오버쿠킹으로 질겨지지 않겠나? 확실히 튀김기 없이 집에서 팬으로 하는 간이식 튀김은 쉽지 않은 것 같다. 아니면 내가 솜씨가 없어서 그런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러한 실패에도 불구하고 졸로프 라이스 자체는 성공적이었다.


졸로프 라이스를 처음 한입 먹었을 때의 감상은 너무나도 익숙한 맛이라는 것이었다. 생전 처음 먹는 서아프리카 음식이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곰곰히 생각해 보니 피자집에서 슈프림피자의 사이드메뉴로 시킨 오븐스파게티의 맛이 났다. 정확히는 오븐스파게티에 치즈를 덮지 않고, 스파게티 면을 밥으로 바꾼다면 딱 이런 맛일 것 같았다. 아마도 타임과 오레가노의 풍미가 인도 음식에 없는 양식스러움을 더해주는 것 같았다.


맛은 굉장히 안정적이었고, 꽤나 많은 양을 먹었음에도 전혀 물리지 않고 먹을 수 있었다. 솔직히 너무 맛있어서 자주 해먹기로 결심했다. 솔직히 내가 실수로 토마토 페이스트 대신 넣어야 할 케챱을 빼먹었음에도 너무 맛있었다.


이제는 역설적으로 갈 필요가 없어졌지만, 이태원의 아프리카 음식점을 가지 않은 것을 후회하게 되었다. 만약 갔더라면 분명히 만족했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나 자신이 서아프리카 문화에 대한 지나친 거리감이 있었던 것 같다. 치킨 도모다를 해 먹으면서 느꼈던 것은 아프리카 음식이 고기와 기름을 아주 넉넉하게 쓰는 풍요로운 식단이라는 점이다. 우리는 흔히 서아프리카를 떠올릴 때 가난과 내전만을 생각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오히려 탄수화물과 염장 위주의 다른 지역들보다 재료도 풍성하게 쓰는 문화적인 풍요가 엿보였다. (물론 현재 해당 지역의 정치경제적 어려움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어쩌면 헤비한 음식을 좋아하는 나 같은 취향에는 서아프리카 음식이 잘 맞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외국 음식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을 버릴 필요도 있다는 생각도 든다. 우리는 주변의 해외 여행을 다녀온 사람들로부터 외국 음식이 짜더라, 고수 향에서 비누맛이 나더라, 느끼해서 못 먹겠더라, 이상한 향신료 맛이 나더라 등등 공포스런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하지만 막상 내가 외국에 나가서 먹어본 음식이나 한국에서 직접 만들어 먹어본 외국 음식들 중에서는 생각보다 한국인의 입맛에 잘 맞는 것들도 많았다. 물론 내가 이 시리즈를 통해 소개하는 음식들은 한국의 식재료와 내 입맛에 맞게 어느정도 조정을 거친 것이긴 해도 말이다.


물론 내가 입맛 자체가 호기심이 많은 점도 있지만, 그런 점을 감안하더라도 외국 음식에 너무 공포를 느낄 필요는 없지 않을까? 나는 졸로프 라이스의 경우 피자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먹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세계화에도 불구하고 국경의 장벽은 높고 외국과 교류할 일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하지만 인플레이션으로 역설적으로 가격대가 계속 올라가는 한식이나 정형화된 외국음식에 집착할 이유가 점점 줄어든다고 생각한다. 저렴한 재료비로 기존 한국인의 입맛이 적응 가능한 음식이라면 국적 불문하고 시도해 보는 것도 스마트한 선택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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