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음식의 이름은 아쿠아 파차, 그러니까 영어로 번역하면 ‘크레이지 워터’라고 한다. 이 이름은 이 생선찜의 독특한 풍미를 상징한다고 한다. 나는 처음에 이 이름을 들었을 때 피식했다. ‘또 근들갑이구만.’
하지만 이 음식을 다 먹고 나서 나는 “미쳤네, 미쳤어.”를 중얼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정말로 미친 음식이다. 맛도, 만드는 난이도도, 그리고 원가도.
크레이지 워터는 쉽게 말해서 이탈리아식 생선찜이다. 올리브유, 마늘, 방울토마토, 생선, 소금, 그리고 와인과 물만 들어간다. 정확히 재료가 이것밖에 없다. (취향에 따라 바질이나 파슬리를 토핑할 수도 있다.) 나는 와인이 없어서 변호사시험에서 5번째로 떨어진 뒤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해 구입하고 너무 써서 먹다가 남은 백세주를 넣었다.
하지만 맛은 미쳤다. 이 생선찜의 육수, 즉 크레이지 워터는 과장 좀 보태서 서울권의 1군급 국밥집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유명 국밥집과 일본의 유명 라멘집들이 “해내야 한다!”고 밤새 국물을 우려내서 만드는 깊은 감칠맛을 이 이탈리아의 쉐프들은 단 20분만에 ‘딸깍’ 하고 만들어낸다. 벌써 여기부터가 미친 지점이다.
어떤 맛이길래 그렇게 국물맛이 미쳤는가 하면, 생선 육수의 깊은 맛, 올리브유의 고소함, 마늘의 감칠맛, 소금의 짠맛, 토마토의 단맛, 그리고 와인이 주는 향기가 어울려 따라할 수 없는 미친 맛을 만들어낸다. 이 국물은 빵에 찍어먹으면 그 자체로 훌륭한 소스가 되고, 같이 삶은 생선과 같이 먹으면 최고의 스프가 된다.
실제로 ‘크레이지’인 이유는 유튜브에서 본 이탈리아 쉐프의 말에 따르면 소금의 짠맛이 만들어내는 하모니 때문이라고 한다. 실제로 내가 생각해도 된장이나 다대기와 같은 다른 양념 없이도 소금의 짠맛 만으로 모든 국물의 중심을 잡고 있다. 마치 아주 잘 만들어진 시오라멘처럼 말이다.
재료만 단순한게 아니다. 만드는 방법도 정말 미친듯이 단순하다.
우선 올리브유에 마늘을 볶고 거기에 방울토마토를 넣고 다시 잠깐 볶아준다. 그리고 생선을 넣은 뒤에 와인을 넣고 끓여서 알코올을 날려준다. 그 다음에 소금을 탄 물을 붓고 10분간 약불에 찌면 끝이다. 정말 이것뿐이다. 마지막에 취향에 따라 파슬리나 바질과 같은 허브를 토핑하면 된다. 물론 유튜브의 영상들을 보면 생선국물을 미리 만들어 내서 쓰거나 양파 캐러멜라이징을 하는 등 FM대로 하는 방식들도 있지만 의외로 이탈리아의 유명 쉐프들 중에서도 나처럼 극히 간단하게 만드는 경우도 많았다. 본질은 올리브유로 볶은 마늘과 토마토에 소금물과 와인을 넣고 생선을 찌는 것 같았다.
이렇게 조리과정도 미친 이 음식은 가격도 정말 미쳤다. 넣어도 그만, 안 넣어도 그만인 바질을 제외하면 재료비를 5천원 안쪽으로 맞출 수 있다. 생선과 술만 저렴한 것을 쓴다면 말이다. 솔직히 이정도 음식이면 파인 다이닝에서는 3-5만원대의 가격일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재료 자체가 워낙 한국에서도 대중적으로 구하기 쉬운 것들이다보니 실제 재료비는 엄청나게 다운된다. 나는 생선을 냉동 코다리를 사용했는데 어차피 흰살 생선만 쓰면 되는데다 오히려 코다리의 깊은맛이 더 강력한 풍미로 작용했던 것 같다.
나는 이 음식을 만들면서 한가지 반성하게 되었다. 우리가 이탈리아 음식이라는 것에 대해서 너무 편협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라고 말이다.
우리에게 알려진 이탈리아 음식은 파스타, 피자, 리조또, 젤라또, 티라미수, 에스프레소 등등 극히 제한된 종류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실제로 이탈리아 음식은 프랑스 음식에 앞서 유럽의 요리계를 평정했을 정도로 전통이 깊고, 높은 조리기술과 다양한 맛을 자랑한다. 실제로 요리 다큐멘터리나 영미권의 소설을 보면 정말 우리는 듣도 보도 못한 이탈리아 음식들이 끝없이 등장한다. 뭔가 이탈리아 음식이 프랑스 음식에 밀려 2부리그 같은 인식이 있지만 절대로 그렇지 않다. 나는 오히려 프랑스 음식이 이탈리아 음식을 쉽게 누르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괜히 이탈리아 사람들이 자기네들의 음식에 엄청난 자부심을 가진 것이 아니다.
하지만 이탈리아 음식의 진정한 강점은 심플함에 있다. 어디선가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일본에는 일본 전국과 중국에서도 유명한 ‘사이제리야’라는 이탈리아 레스토랑 체인이 있다. 이곳은 저렴한 가격에 제법 재현도가 높은 이탈리아 음식을 제공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사람들은 이탈리아 음식을 어떻게 체인화하나? 라고 의문을 가지지만, 이탈리아 음식은 현란한 조리기술보다는 얼마나 좋은 재료를 사용하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한다. 그래서 대기업이 바잉 파워로 양질의 재료를 다량으로 구할 수만 있다면, 만드는 것은 간단하기에 체인화가 의외로 쉽다고 한다.
내가 크레이지 워터를 만들면서도 느낀 점은, 이탈리아 음식은 비교적 간단한 방식으로 재료 본연의 맛을 확 끌어내는 힘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재료만 정직하게 좋은 것들을 쓴다면 생각보다 간단하게 수준높은 요리를 만들어 낼 수 있다.
당연히 업장에서야 어느정도 표준화가 필요하니 외식의 이탈리아 메뉴가 획일화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집에서도 쉽게 따라할 수 있고, 맛은 더할나위 없이 고급진 이 다양한 이탈리아 음식을 지나치는 것은 인생에서 너무나도 큰 손해라고 생각한다. 크레이지 워터는 정말 ‘딸깍’ 수준의 노동으로 유명 국밥집이나 라멘집 수준의 스프를 만들어낼 수 있는 마법의 요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