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쉬 빈달루는 생선이 들어간 매콤새콤한 인도 고아(Goa) 지역의 커리이다.
고아 지역은 퐁디셰리와 더불어 인도 내에서 굉장히 이질적인 지역이다. 우리는 흔히 인도가 영국의 식민지였다는 사실까지 알고 있지만, 실제로는 그보다는 약간 복잡하다. 포르투갈은 이미 16세기에 인도 고아 지역에 향신료 무역을 위한 식민지를 만들었고, 이곳이 20세기까지도 계속 포르투갈의 영토로 남았다.
이러한 포르투갈 식민지 역사는 고아 지역을 영원히 변화시켰다. 힌두교와 이슬람교 위주의 인도에서는 특이하게도 이곳에는 가톨릭의 교세가 강하고, 문화 역시도 가톨릭-포르투갈 문화가 많이 자리잡았는데 그 대표적인 상징이 매콤새콤한 커리인 ‘빈달루’이다. 빈달루는 포르투갈어 vinha d’alhos에서 유래된 말로 vinha는 와인(혹은 와인식초), alhos는 마늘을 의미한다. 포르투갈에는 이전부터 돼지고기를 와인과 마늘로 마리네이드하는 요리법이 있었는데 이것이 고아로 전래되면서 빈달루라는 독특한 커리 장르를 만들어낸 것이다. 특히 포크 빈달루는 이슬람교와 힌두교의 영향으로 돼지고기를 잘 먹지 않는 인도의 일반적인 다른 지역의 식문화와 비교할 때 굉장히 특이한 사례이다. 현재는 와인을 넣는 것이 아니라 식초를 넣어 신맛을 더한다. 이상할 것도 없는 것이 와인이 잘못 숙성되어 시어버리면 되는 것이 식초이니까 말이다. 따라서 빈달루라는 요리는 현재는 식초를 넣어 신맛을 더한 고아의 특수한 커리를 말한다.
이러한 ‘빈달루’의 존재는 식민주의와 탈식민주의에 대한 우리의 통념에 대해 아주 미묘한 문제를 제기한다. 우리는 일반적적으로 식민주의는 악이고 탈식민주의는 선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러한 통념에 도전할 생각은 없다. 무력으로 남의 나라를 지배하려는 것은 분명히 나쁜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식민지의 역사가 너무나도 오래되어서 식민지의 문화가 정복자의 영향을 받아 화학적으로 변화해버렸다면? 포르투갈이 고아를 정복한 시점은 북방의 바부르가 무굴제국을 세운 것과 거의 비슷한 시기이다. 우즈벡 출신의 바부르와 포르투갈 정복자들의 차이는 뭘까? 둘 다 외부로부터 쳐들어온 정복자로 자신들의 문화(이슬람과 가톨릭)을 강요하지 않았는가? 더군다나 포르투갈의 지배로 고아는 다른 지역과는 다른 독특한 문화와 정체성을 갖게 되었는데, 이것은 탈식민주의의 관점에서 식민지배의 잔재이며 척결의 대상일까? 그러면 빈달루 커리는 포르투갈 식민지배의 상징이므로 더 이상 먹지 말아야 하는 것일까?
물론 나는 일부 백인우월주의자들의 뻔뻔한 논리를 답습해서 식민지는 좋은 것이었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식민지배가 채 40년도 되지 않았던 우리나라와 달리 수백년씩 식민지배가 계속되어 그곳에 아예 식민지 문화가 생겨난 곳의 문화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는 생각보다 쉬운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홍콩은 100년 가까이 영국의 식민지배를 받았지만 아직도 많은 홍콩인과 세계인들은 식민지 시대의 홍콩문화를 그리워한다. (식민지 시대 홍콩을 그린 “영웅본색”을 보고 가슴 한구석이 뜨거워지지 않았던 사람들이 있을까.) 그런데 생각해보면 홍콩은 그리고 홍콩문화는 아편전쟁으로 중국에 진출한 영국 제국주의의 일부가 섞여있는 것이다. 홍콩이 영국의 식민지가 아니었더라면, 그냥 광둥성 홍콩시였다면 그런 문화를 가질 수 있었을까?
피쉬 빈달루는 다른 남인도 지역의 커리와 그렇게 크게 만드는 법이 다르지는 않다. 향신료를 탬퍼링하고 양파를 캐러멜라이징한 뒤에 마늘과 생강을 볶는다. 그리고 토마토 퓨레를 넣고 졸여서 물기를 날린다. 그리고 나서 커리파우더, 설탕과 고춧가루를 섞은 뒤, 물과 식초를 넣어 졸여서 페이스트를 만든다. 충분히 페이스트가 졸아들어 깊은 맛이 나겠다 싶으면 미리 준비한 생선(나는 언제나처럼 냉동 코다리)을 넣고 10분간 약불에 졸인다. 완성된 뒤에는 약간의 레몬즙을 첨가해서 남방의 맛을 추가한다.
그렇게 어렵지는 않은데, 역시나 졸로프 라이스와 비슷하게 바닥이 타는 문제가 발생했다. 물기가 부족한 페이스트 형상의 소스의 경우에는 아무리 약불로 주의를 해도 바닥이 타는 모양이다.
맛은? 충격적이게도 매콤-새콤-달콤한 우리나라의 비빔면 맛이다. 딱 한 입 먹고 나서 ‘아 이거 어디서 먹어본 맛인데.’라는 느낌이 들었다. 아마 인도 커리 중에서 우리나라 사람에게 가장 친숙한 것이 이 빈달루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왠지 우리나라에는 치킨 마크니가 인도커리의 대표주자로 알려져 있고 이것은 그렇게 틀린 말은 아니지만, 고춧가루, 식초, 설탕을 기반으로 하는 양념장을 오만가지 요리에 다 쓰는 한국인의 입맛에는 빈달루가 훨씬 맞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양념장은 덥고 습한 인도 해안지방인 고아의 지리적 요건을 생각해보면 아주 당연한 귀결이라는 생각이 든다. 잘은 몰라도, 이렇게 더운 곳에서는 일주일에 3-4일은 입맛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맵고, 새콤하고, 달콤한 음식은 아무리 땀을 잔뜩 흘려서 음식이 당기지 않아도 당길 수밖에 없는 맛이다.
게다가 이렇게 강렬한 맛이 난다면 약간의 생선의 비린내나 돼지고기의 누린내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나도 유달리 오늘따라 뭐가 잘못되었는지 생선의 비린내가 음식 만드는 동안 약간 나서 걱정했는데, 빈달루의 강렬한 소스는 그런 생선 비린내를 전혀 느끼지 못하도록 체급으로 압살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빈달루를 먹으면서 들었던 생각은 다른 지역의 인도 커리와는 상당히 이질적인 풍미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인도커리는 커민씨드, 터메릭, 커민, 코리앤더, 겨자씨와 같이 은은하면서도 독특한 풍미를 내는 향신료의 맛이 난다. 이러한 향신료는 매우 복잡한 풍미를 형성하면서 절대로 커리에 질리지 않도록 하는 매력이 된다.
하지만 빈달루는 마치 한국음식처럼 혀로 바로 치고 들어오는 강렬한 맛으로 먹는 사람을 압도한다. 맵고, 새콤하고, 신맛으로 복잡한 맛의 레이어를 구성하기 전에 일단 사람의 입맛을 장악하고 보는 것이다. 맛의 미묘한 하모니를 즐기는 사람들은 이것을 별로 선호하지 않겠지만, 화끈한 맛을 좋아하는 직설적인 입맛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이만큼 맞는 것도 없겠다 싶다.
사실 90년대 이후 인도가 개혁개방을 하면서 우리나라에도 “인도에는 카레가 없다.” 류의 인도 바로알기 운동이 시작되었고, 지금은 인도에는 굉장히 다양한 종류의 커리가 있으며 커리는 하나의 메뉴라기보다는 국밥처럼 카테고리에 가깝다는 것이 어느 정도 알려져 있다.
하지만 내가 지난 몇 달간 커리를 만들면서 느낀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도 커리들에는 커리를 커리라고 부를 만한 공통점이 어느 정도 있다는 것이다. 향신료를 기름에 튀기는 탬퍼링이나 타드카, 양파를 캐러멜라이징하고 토마토 소스를 섞어서 만든 그레이비에 향신료를 섞여서 만드는 향신료 베이스 물을 타고 단백질을 섞는 조리법의 기본 구조 등은 지역과 무관하게 비교적 일관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인도 커리는 없지만, 동시에 인도 커리는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것은 2단계의 인식이고 다시 3단계의 인식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도에는 커리의 기본 문법을 따르지 않는 이질적인 커리들도 많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이 빈달루라고 생각한다. 물론 빈달루의 조리법 자체는 다른 커리와 유사점이 많지만 결과물이 완전히 다르다. 피쉬 빈달루는 고아의 남쪽으로 한참 내려가면 있는 케랄라 지역의 생선커리와는 완전히 다른 맛이 난다.
사실 인도에는 커리 아닌 커리가 꽤 있다. 동부 마니푸르 지역에는 응아 아토이바 통바라는 사실상 미얀마나 티벳 요리에 가까운 커리가 있다. 이건 아예 만드는 방법부터가 상당히 다르다. (솔직히 이건 애초에 커리가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거기다가 파키스탄 지역에는 양파 없이 토마토와 닭고기로만 만드는 치킨 카라히라는 커리가 존재한다. 인도 커리가 다 비슷비슷하다고 생각할지 몰라도 그 안에는 완전히 이질적인 커리들도 또 존재하는 셈이다.
매운 음식을 먹으면 언제나 그렇듯이 이번에도 배탈이 났다. 아마도 피쉬 빈달루를 다시 먹는 일은 없지 않을까? 하지만 이것은 내가 유달리 매운 음식을 잘 먹지 못해서이고, 비빔면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비빔냉면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한번쯤 꼭 도전해볼만한 메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