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카이라오아 비스카이코 에라라(Bakailaoa Bizkaiko Erara), 스페인어로는 바칼라오 아 라 비즈카이나(Bacalao a la Vizcaina)는 직역하면 비스카야식 대구, 라는 뜻의 요리이다. 쉽게 말해서 스페인 바스크 지역 스타일의 대구찜이다.
사실 이 요리에 대한 더 자세한 정보를 찾고 싶으면 스페인어로 검색을 해야 한다. 바카이라오아 비스카이코 에라라라는 이름은 이 지역 언어인 바스크어 이름이다. (세상이 좋아져서 바스크어로 검색을 해도 결과가 뜨고 번역까지 사용할 수 있기는 하다.)
굳이 바스크어 이름을 표기한 이유는 바스크를 단순히 스페인의 ‘한 지방’으로 분류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바스크는 스페인보다 오래된 지역이고 지금도 스페인어와는 상당히 다른 독자적인 정체성을 가진 지역이다. 보통 스페인의 지역주의를 말할 때, 카탈루냐 지역을 이야기하는 경우도 많지만 굳이 따진다면 분리주의를 위해 무장투쟁까지 벌인 바스크 지역도 결코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다.
바스크. 사실 우리에게는 바스크 지역의 구체적인 정보보다는 젊은 층에게는 소리소문없이 인기가 있는 바스크 치즈케이크, 그리고 나 같은 ‘틀’ 들에게는 한때 테러리즘으로 악명이 높았던 ETA와 바스크 분리독립운동이 생각날 것이다.
바스크는 스페인 북부와 프랑스 남부의 대서양 연안에 접한 지역이다. 스페인의 바스크 지역은 우선 스페인에서 가장 경제력이 높은 지역이다. 보통 카탈루냐가 다른 지역보다 잘 산다는 이미지가 있는데, 그 카탈루냐보다 강한 경제를 가진 곳이 바스크 지역이다. 한때 우리나라에서도 협동조합 운동이 각광을 받던 시절, 협동조합의 국제적 성공사례로 유명했던 것이 바스크 지역의 협동조합 연합체 ‘몬드라곤’이다. 또한 국제금융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들어보았을 스페인의 은행 BBVA의 본사 역시 바스크 지역의 빌바오에 위치해 있다. 내가 스페인 경제사는 문외한이지만, 아무튼 얄팍하게 알아본 바에 따르면 바스크는 스페인이 산업혁명에 뒤쳐졌다는 통념과 달리 19세기 이후 산업화에 성공하여 일찍부터 근대적 경제 기반을 구축한 지역이라고 한다.
사실 바스크 지역은 스페인의 다른 지역과는 상당히 민족적 기반이 다른 바스크인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다. 스페인은 페니키아, 로마, 게르만, 이슬람의 지배를 거치면서 민족적으로 상당히 혼혈이 많이 된 나라인데, 그에 비해 바스크인들은 원시시대부터 그 지역에 살던 토착 원주민들이 아직까지도 비교적 독자적인 민족구성과 문화를 가지고 살고 있다. 이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바스크어인데, 바스크어는 유럽의 다른 언어들과 달리 인접지역의 스페인어나 프랑스와는 완전히 다르다. 잘 몰라도 애초에 철자만 봐도 공유하는 고유명사들을 제외하면 상당히 다르다.
이러한 바스크 지역의 강한 경제력과 고유의 정체성은 바스크의 문화를 스페인에서도 굉장히 특별한 것으로 만들어주었다. 바스크는 단순히 흙냄새 나는 ‘토착문화’를 보존하는 수준에 그치지 않고, 바스크 문화를 유럽 문화의 메인스트림으로 만들었다.
해축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아틀레틱 빌바오(정식명칭 아틀레틱 클루브)와 레알 소시에다드 정도는 다들 들어보셨을 것이다. 프리메라리가의 전통적 강팀인 이 팀들이 바로 바스크 지역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특히 아틀레틱 빌바오의 경우 모든 선수를 바스크인이나 바스크 지역의 유스팀에서 뛴 선수들만을 선발하는 독특한 순혈주의를 고수하고 있다. 보통 스페인 지역주의를 대표하는 팀으로 FC 바르셀로나 정도를 생각하는데, 아틀레틱 빌바오와 레알 소시에다드 역시 만만치 않다. 게다가 이들은 월클급의 실력을 가진 축구팀들이다.
또 미술과 건축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들어보았을 빌바오의 구겐하임 미술관 역시 유명하다. 세계적 건축가인 프랭크 게리가 설계한 이 미래적인 디자인의 미술관은 도시재생의 성공사례로 항상 거론되곤 한다.
그 외에도 이 지역 고유의 강한 가톨릭 전통과 군사문화 역시 유명한데, 우선 2010년대 이후의 한국 군필자라면 이를 가는 그 베레모가 바로 이 바스크 지역의 전통 문화에서 유래했다. 바스크 지역은 베레모가 상징하듯 전통적으로 상무정신이 강했으며, 이걸 증명이라도 하듯 바스크 지역이 낳은 가톨릭 성인 이냐시오 데 로욜라의 성직자가 되기 전 직업이 바로 군인이었다. 이냐시오 데 로욜라는 전쟁에서 부상을 입은 뒤 성직자가 되어 우리에게도 익숙한 예수회를 설립했다(우리나라의 서강대가 예수회 소속이고, 전 교황 프란치스코 교황이 예수회 출신이었다.). 실제로도 아직도 그의 출생지 인근의 바실리카 데 로욜라는 관광지로 많은 순례객들이 찾고 있다. 정말 아름다운 건축물이라 나도 꼭 한번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축구, 미술, 가톨릭 문화와 더불어 바스크 문화의 현대적인 저력을 입증하는 것이 바스크 고유의 음식문화이다. 보통 스페인의 핑거푸드 타파스가 유명한데, 그와 쌍벽을 이루는 것이 핀초스이다. 스페인 음식에 좀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타파스 말고도 핀초스를 들어보았을 것이다.
핀초스는 타파스와 비슷한 핑거푸드이지만 중요한 차이가 있는데, 바로 바게뜨 위에 핑거푸드를 올리고 이쑤시개로 꽂아 서빙한다는 것이다. 다 먹은 뒤에는 마치 접시 숫자로 계산하는 일본의 회전스시처럼 카운터에 놓인 핀초스를 집어 먹은 뒤 꼬치 개수로 계산을 한다고 한다. 바스크 지역에는 저녁시간 동안 핀초스를 제공하는 식당을 여러군데 돌면서 조금씩 다양한 종류의 핀초스를 와인과 함께 맛보는 것이 중요한 문화적 전통이 되어 있고 이것을 체험하기 위해 많은 관광객이 방문한다고 한다.
이러한 향토음식 이외에도 바스크 지역에는 좁은 지역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이 있어 파인 다이닝의 수준 자체도 높다고 한다. 특히 바스크의 셰프들은 다양한 샘플러 요리를 핀초스에 올려 전통과 현대를 결합하는 창으로 삼는다고 한다.
이런 바스크 요리가 스페인 요리와 갖는 가장 큰 특징은 해산물 중심이라는 것이다. 보통 스페인 하면 우리는 돼지고기 요리를 떠올린다. 하몽, 이베리코 돼지.. 하지만 스페인의 다른 지역과는 달리 바다에 접한 바스크는 일찍부터 해산물 요리를 발달시켰다. 오늘 내가 해먹은 바카리아오아 비스카이코 에라라 역시 대구로 만드는 생선찜이다.
바스크 지역 이야기는 이 정도로 하고, 본격적으로 음식 이야기를 해보자.
언제나처럼 나는 이 음식을 만들기 위해 챗 지피티뿐 아니라 유튜브의 현지 요리 영상도 많이 참고했는데, 내린 결론은 따라하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것이었다. 내가 스페인어를 잘 몰라서 잘은 몰라도 챗 지피티에 나온 간단한 요리법과는 달리 상당히 한국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토착 재료가 많이 들어가는 것 같았다. 그래서 고민끝에 챗 지피티가 알려준 방법과 유튜브의 영상에서 공통적으로 뽑아낸 “최대한 비슷하게 만드는데” 만족하기로 했다. 양파, 고추, 토마토가 중심이 되는 야채 수프에 생선을 졸이는 것.
중요한 변형이 하나 있었다. 음식의 이름과는 달리 대구가 아닌 명태, 냉동 코다리를 썼다는 것이다. 대구나 명태나 저렴하지만, 일단 집에 코다리밖에 없다는게 제일 큰 이유였다. 그리고 큰 틀에선 같은 담백한 흰살 생선으로 극적인 맛차이는 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이 섰다.
그래서 일단 새로 산 스테인레스 냄비에(이 냄비 이야기는 다음 화에 할 것이다) 양파와 고춧가루를 볶았다. 사실 그쪽에서는 우리나라 고추가 아니라 사람 팔뚝만한 현지의 고추를 쓰는 것 같았는데 그런 걸 구하기는 어려운 노릇이다. 아무튼 그 다음에는 토마토 퓨레를 넣고 졸여서 물기를 날렸다. 확실히 가격대가 있는 스테인레스 냄비는 바닥이 타지도 않고 열 전달이 잘 되어 확실하게 토마토 퓨레가 졸아들었다. 그런 뒤에 치킨스톡을 탄 육수를 붓고 끓였다. 끓인 뒤에는 미리 해동한 생선을 넣고 10분간 약불로 끓였다.
음식 자체는 내가 앞부분에 떤 근들갑과는 별개로 어마어마한 별미까지는 아니었다. 사실 애초에 비주얼 자체가 현지의 이 음식과는 다른데, 현지의 이 음식은 스프를 아주 걸쭉하게 만들어 생선 위에 소스처럼 뿌려먹는다. 나처럼 명태탕이 된 것은 어딘가 잘못되었다는 것일 것이다. 당연히 이 음식 자체는 현지에서 먹으면 분명 맛있을 것이다. 내가 만든 괴식을 보고 현지 음식과 비교한다면 아마 현지 사람들이 굉장히 속상할 것이다.
여하튼 간에 어디가 잘못되서인지 니맛도 내맛도 아닌 밍밍한 국물요리가 되고 말았다. 아니 맛이 없지는 않았다. 부드러운 토마토 양파 수프에 생선을 넣어 먹으니 든든했고, 빵에 찍어 먹기에도 참 좋았다.
하지만 국물맛이… 뭔가 꽉 차있지 않은 느낌이었다. 뭐가 문제였을까? 치킨스톡을 너무 먹게 넣어서? 아니면 생선을 굽지 않고 바로 국물에 투입해서? 챗 지피티가 할루시네이션을 일으켜셔 물 양을 너무 많이 알려주었나? 아무튼 잘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인 만족도는 높았다. 최근 눈을 뜨게 된 바게뜨와 곁들여 먹기 좋았고, 또 먹고 나니 국물맛이 편안하고 소화도 잘 되었다. 이 정도면 합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