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식열전 (22)
오늘은 특정한 요리가 아닌 요리하는 과정에 관한 이야기를 한번 해보려 한다. 그 이야기는 ‘빈곤 프리미엄(poverty premium)’에 대한 이야기이다. 상식적으로 부자가 돈을 많이 쓰고, 빈자는 돈을 적게 쓴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절대량만 따진다면 아마 그럴 것이다.
하지만 소비액의 비교라는 관점을 떠나, 빈자는 빈자이기 때문에 소모하게 되는 비용이 있다. 이것이 빈곤 프리미엄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더 저렴한 가격으로 재화와 서비스에 접근하는 데 제한적이기 때문에, 가난으로 인한 프리미엄을 추가적으로 지불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설명하자면 이런 것이다. 나는 예전에 미국의 원 달러 샵(우리나라로 치면 천원샵)에 대한 뉴스 클립에서 이런 취지의 댓글을 본 적이 있었다.
“가난한 사람들은 원 달러 샵에서 물건을 사면서 같은 양의 물건을 오히려 비싼 값을 주고 사게 된다. 왜냐하면 1리터짜리 세제 1통을 마트에서 사는 것이 300밀리리터짜리 세제를 원 달러 샵에서 3번 사는 것보다 훨씬 저렴하기 때문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1번 쇼핑하는 비용은 적지만 평균으로 따지면 더 많은 비용을 지출하게 된다.”
물론 나는 이러한 논리에는 백 퍼센트 동의하진 않는다. 어쨌거나 대용량을 사면 그만큼 많이 쓰게 되기 때문에 무조건 마트에서 대용량을 사는게 더 저렴하다고만은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취지 자체는 이해한다. 가난한 사람들은 수중에 돈이 없어서, 좀 학술적으로 말하자면 현금 흐름이 제약되어 있어 장기적으로는 비합리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례가 바로 빈곤 프리미엄이다.
생각해보면 이런 사례는 굉장히 많다. 가난한 사람들이 식비를 아끼기 위해 탄수화물과 당분 위주의 식사만 하다가 성인병에 걸려 병원비를 지출하는 경우와 같은 예를 들 수 있을 것이다. 또 다른 예로는 차를 살 돈이 없어서 매번 렌터카나 카셰어링을 하다가 몇 년 후에는 차를 사는 것보다 돈을 더 쓰게 되는 그런 경우도 있을 수 있겠다.
커리부어스트와 ‘빈곤 프리미엄’이 무슨 관련이 있는지 의문을 제기할 사람이 있을 것이다. 사실 내가 커리부어스트를 만들면서 냄비의 바닥이 벗겨졌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세라믹 편수냄비를 쓰는데 자꾸 냄비 밑바닥에 음식물이 타서 눌러붙는 현상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같은 조건에서 이런 일이 자꾸 생긴다는건 냄비가 갈 때가 되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좀 억울했다. 예전에는 이보다 냄비를 좀 더 오래 썼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최근 배달음식을 전혀 먹지 않고 커리 같은 요리를 너무 자주 해먹어서 그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으로 애초에 싸구려 세라믹 냄비가 아닌 스테인레스 냄비를 샀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세라믹을 산 것은 사용하기 전에 나라시하기 귀찮아서 그런 부분도 있지만, 가격적인 측면도 크게 작용했다. 아무래도 없는 살림에 자취를 하다 보면 한푼이라도 아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그러다보니 내구재를 싸구려로 사게 되는 습관이 생긴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자취를 시작하는 시점에 처음부터 튼튼한 스테인레스 냄비를 사용했더라면 결과적으로는 냄비를 2번 사지 않아도 되어 비용을 절약했을 것이다. 조금 싼 냄비를 사려고 하다가 어차피 비싼 냄비를 사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내몰려 비용을 2번 지출하게 된 셈이다.
가난은, 빈곤은 그 자체로 추가적인 비용 지출을 강제한다. 돈이 많았으면 쓰지 않아도 될 돈과 시간을 돈이 없다는 이유로 울며 겨자먹기로, 혹은 자기도 모르게 쓰는 경우가 있다. 나는 이렇게 금전적 제약으로 인해 비합리적 선택을 함으로써 역설적으로 지출하게 되는 ‘빈곤 프리미엄’이라는 개념을 주방에서 뼈저리게 느꼈다. 역시 돈은 많고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