캅사

괴식열전 (23)

by 이그나티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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캅사는 중동식 필라프, 혹은 중동식 치킨 비리야니이다. 한국어로는 번역하기가 마땅치가 않은데 이런 카테고리의 요리가 없기 때문이다. 굳이 따진다면 굴밥이나 콩나물밥 같은 느낌이지만 막상 조리법을 뜯어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우리나라에서 밥은 그냥 밥일 뿐이고, 밥 안에 무언가를 넣고 밥을 짓는 경우가 그렇게 일반적이지는 않다. 물론 위에서 말한 콩나물밥이나 굴밥처럼 밥을 지을 적에 무언가를 넣고 같이 밥을 짓는 경우도 없지는 않다.


하지만 필라프나 비리야니 계열은 한국에서는 좀 익숙하지 않은 방식이다. 우선 베이스가 되는 스튜를 만든 다음에 그 위에다가 생쌀을 올리고 찐다. 그러면 스튜의 국물이 쌀알에 스며들어 밥이 지어지는 것이다. 사실 중앙아시아, 인도아대륙, 서아시아, 그리고 유럽에서는 이렇게 밥솥을 사용하지 않고 밥과 요리가 홀인원인 스타일이 더 흔하다.


이러한 필라프-비리야니 계열의 음식이 흔한 것도 이 지역의 역사를 생각하면 그리 이상할 것도 없다. 아시아 대륙 동쪽 끝에 고립되어 근대 이전까지는 북방의 국경만 잘 막으면 되었던 우리나라와 아시아의 다른 지역은 지정학적으로 차이가 있었다. 대륙이 끊어지지 않고 중국에서부터 포르투갈까지 쭉 연결되어 있다. 그러다보니 그 중간지대에서 무언가 군사적으로 강력한 세력이 일어나면 불과 몇십년 사이에 대륙의 상당부분을 순식간에 휩쓸어버리는 일이 종종 일어났다. 그리고 그런 군사적 정복은 문화의 혼합을 초래했다.


얼핏 생각해봐도 몽골평원에서 흥기하여 지금의 아나톨리아 지역까지 뻗어나온 돌궐(튀르크) 계통의 여러 민족들, 아라비아에서 출발하여 지금의 위구르와 중국 서부지역까지 뻗은 이슬람 문화, 칭기즈칸의 몽골제국, 티무르의 제국, 쿠샨왕조나 무굴제국처럼 카이바르 고개 건너편에서 출발하여 인도 북부를 통치한 여러 정복왕조들, 그리고 근대의 러시아 제국과 소련까지.


의외로 굉장히 짧은 시간에 강한 군사력을 갖춘 집단이 아시아 대륙 서쪽 끝의 유럽과 동쪽 끝의 한중일 정도를 제외하면 삽시간에 확 쓸어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보니 중앙아시아, 러시아, 인도, 이란, 아랍, 터키, 마그레브(북아프리카) 지역의 음식에는 뭔가 일맥상통하는 지점이 있다. 고기를 꼬치에 꿰어 구워먹는 케밥 계열이라던가, 오늘 소개하는 캅사와 같은 필라프-비리야니 계열의 밥요리와 같은 것들이 그 사례이다.


내가 생각해 낸 인류 역사의 아이러니가 하나 있는데, 서로 치열하게 전쟁을 벌이는 사이일수록 음식문화가 닮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중동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요르단-시리아-레바논 요리는 서로간의 나쁜 정치적 관계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비슷하다. 한국, 중국, 일본 역시 잊을만하면 대규모 전쟁을 주고받는 사이이지만 음식문화에는 간장과 쌀과 같이 일맥상통하는 부분들이 있다. 수백년간 정말 지독하게 치고박고 싸운 유럽의 음식문화가 상호 영향을 주고받은 것은 더욱 말할 필요도 없겠다.


나는 이것이 인류 문화의 아이러니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지리적으로 가까운 나라들끼리 싸우기도 많이 하지만, 음식문화를 많이 주고받을 수밖에 없다. 교류가 아무래도 많으니까. 그리고 식생과 기후의 유사성으로 인해 재료와 요리법도 비슷하니까.


사실 캅사는 후무스와 케밥을 제외하면 내가 처음으로 제대로 먹어보는 중동요리이다. 중동요리는 우리나라에 팔라펠과 후무스 정도가 알려져 있을 뿐 샤와르마나 캅사와 같은 대표메뉴도 생소할 정도로 아직은 저변이 넓지 못하다. 하지만 치킨과 기름을 듬뿍 사용하며 매운 맛이 강한 이 중동요리들은 한국인의 입맛에도 잘 맞을 거라고 생각한다.


사실 이전에 중동에서 자주 먹는 아다스 수프를 만들어본 적이 있었는데 전부 만족스럽지가 않았다. 한번은 시나몬과 카다몸이 없어 인도의 달 커리 같았고, 다른 한번은 강황과 터메릭을 넣지 않았다가 도너츠를 끓인 것 같은 맛이 났다.


그 이후 한동안 용기를 잃고 중동음식에 도전하지 않았다. 하지만 인도 요리의 조리법을 유튜브로 찾아보는 과정에서 알고리즘이 “너 중동요리 만드는 것도 볼래?” 라고 제안해왔고, 나는 읽지도 못하는 아랍어가 현란하게 쓰인 캅사 만드는 영상을 보면서 ‘뭐야 해볼만하잖아?’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번에도 챗 지피티와 유튜브의 중동 쉐프들의 도움을 받아서 캅사 만드는 법을 터득해서 실제로 해보았다. 만드는 방식은 의외로 간단하다. 우선 마늘과 양파를 볶은 뒤에 닭고기를 넣고 마이야르를 준다. 그다음에 각종 향신료(강황, 터메릭 등이 들어간 커리파우더, 시나몬, 카다몸, 소금, 후추, 고춧가루 등)와 토마토 혹은 토마토 퓨레를 넣고 끓여서 졸인 다음에 물을 붓고 20분간 끓인다. 이미 이 단계에서 국물이 정말 맛있어진다.


그 다음에 닭을 꺼낸 뒤 불려둔 생쌀을 토마토 육수에 붓고 뚜껑을 덮어 20분간 밥을 짓는다. 밥이 다 지어지고 나면 그 위에다가 다시 치킨을 올리고 뚜껑을 덮어 뜸을 들인다. 5분이 지나면 드디어 완성이다.


만드는 과정에서 시행착오가 반복되었다. 우선 기존에 내가 커리 만드는 데 너무 익숙해 있다보니 미묘하게 다른 중동식 요리 테크트리에 익숙치 않아서 손발이 꼬였다. 양파를 볶은 뒤 닭을 한번 볶아서 마이야르를 주어야 하는데 그 과정을 까먹었다. 그래서 나는 육수를 만든 뒤에 닭을 빠뜨려 삶기만 했다.


거기다가 물 양이 너무 많았다. 물이 쌀의 한 1.5배 정도 되어야 하는데, 내가 조리법에 적힌 숫자를 잘못 읽어서 2배 가까이 넣었다. 결국 나는 쌀을 넣기 직전에 국자로 물을 퍼내야만 했다.


마지막으로 지금 깨달은 건데 1가지 실수를 더 했다. 뜸을 들이기 직전 밥위에 국물이 고여 있어서 그것을 퍼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밥안으로 스며들어서 뜸들이는 동안 완성이 되어야 했다. 밥을 먹으면서 아랫부분에는 국물이 덜 스며들어서 밥이 조금 밍밍했는데 그게 내가 2번째로 국물을 함부로 퍼내서 그런 것 같다.


하지만 이러한 실수들은 어떻게 보면 사소한 것들이었다. 사실 요리에는 2가지 실수가 있다. 작은 실수와 큰 실수. 작은 실수는 맛에 약간의 차이를 주지만 음식 자체가 무너지지는 않는 실수이다. 그리고 사람에 따라서는 내가 실수한 그 방식대로 똑 같은 음식을 만드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서 인도 커리의 경우 조리법에는 팬에다가 재료를 넣는 순서가 요리법에는 딱 정해져 있지만 실제로는 그렇게까지 그 순서가 중요하진 않다. 큰 실수는 잘못했을 경우 요리 자체가 무너지는 실수이다. 아예 재료를 태워버리거나, 간이 완전히 실패한다거나 하는 등등의 실수들이다. 이런 실수는 음식 자체를 음식 쓰레기로 만들어버린다. 오늘 내가 한 실수는 작은 실수였다.


사실 이 실수들이야말로 오늘 요리를 하는 과정에서 가장 큰 즐거움을 준 요소였다. 중간에 나는 물을 지나치게 많이 넣었다는 것을 깨닫고 서둘러 국자로 수프를 빼냈다. 기름기가 가득한 국물을 버리기가 아까웠던데다, 한번 맛을 보고 싶다는 충동에 덜어둔 수프를 한입 먹어 보았다. 그런데 그 수프가 솔직히 캅사 자체보다 더 맛있었다. 치킨 토마토 국물에 각종 향신료가 들어가 정말로 깊은 맛이 났기 때문이었다. 솔직히 이것 때문에 다음번에는 캅사 국물만 따로 만들어볼까 생각중이다.


돼지고기를 졸이는 시간을 깜빡하여 우연히 동파육을 만들었다는 소동파의 이야기처럼 의외로 요리에서의 실수는 신선한 발견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혹은 오늘처럼 재미있는 경험이 되기도 한다. 사실 요리의 매력은 여기에 있는 것 같다.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한 길이 여러가지가 존재하고 그 중 무엇을 택하더라도 크게 차이는 없다. 심지어는 목적지가 좀 달라도 큰 틀에서 보면은 실패가 아닐 때도 많다. 요리는 자유 주제 에세이처럼 열린 프로젝트이다.


이런 요리의 매력은 때로는 현실이 반대이기 때문에 배가되는 것 같다. 나는 아직 사회생활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서른이 넘어서도 학교와 학교 언저리를 떠나지 못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항상 정답이 존재하고, 또 정답에 도달하는 길이 비교적 명확하게 규정되어 있다. 꼭 그렇지 않을 때도 있지만, 정해진 순서대로 혹은 효율적인 순서대로 정답에 도달하지 않으면 점수를 받을 수 없다. 심지어는 도달하는 과정 자체가 문제화되는 경우도 많다.


한국의 교육제도는 ‘참말나라 거짓말나라’ 류의 ‘로직 퍼즐형’ 테스트와 ‘다음 중 판례의 태도에 비추어 틀린 것을 고르시오’ 류의 통암기형 시험으로 양분되어 있다. 하지만 스타일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형태의 시험들은 정해진 방식대로 무언가를 할 것을 학습자에게 요구한다. 그리고 그것에 따르지 않으면 학습자에게 페널티가 부여된다.


물론 이러한 게임적 감각을 즐기는 사람들도 많고, 그런 사람들은 한국의 교육제도 안에서 재능을 꽃피우며 모두의 사랑과 두둑한 대가를 받는다.


하지만 요리는 그렇지가 않다. 요리는 좀 방법이 달라도 되고, 최악의 경우에는 그냥 처음 생각했던 것과 다른 요리를 만들어도 된다. (계란 후라이를 하다가 스크램블 에그를 하는 식으로 말이다.) 내가 음식을 돈받고 파는게 아닌 이상에야 요리 안에는 ‘큰 실수’를 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내가 그때그때 상황과 판단에 맞추어 다르게 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이 자유는 그 자체로 나에게는 즐거운 것이고, 또 오늘과 같이 신선한 경험을 하게 하기도 한다.


여기까지 글을 읽은 사람들 중에서는 ‘아니 그래서 캅사가 맛이 어쨌다는 거냐고!’라고 짜증이 나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이제부터는 캅사 자체의 이야기를 좀 해보자.


결론부터 말하면 캅사는 맛있었다. 중동식 토마토 스프에 끓인 닭은 향기롭고 든든했다. 그리고 시나몬과 카다몸의 첨가로 인도와는 다른 불타오르는 듯한 풍미의 중동의 향신료와 닭고기 국물, 토마토 풍미가 스며든 밥 역시 다층적인 맛의 레이어를 선사하면서 무척이나 맛이 있었다. 특히 밥과 닭고기를 함께 먹으니 탄수화물과 지방과 단백질이 한데 어우러지면서 정말 균형잡힌 풍부한 맛이 났다.


사실 나는 오래전부터 캅사를 먹고 싶었다. 하지만 국내의 중동 레스토랑은 너무 가격대가 높았다. 중동 레스토랑만이 아니라 에스닉 요리 전반이 다 그렇다. ‘이국적’이라는 태그가 붙으면 가격이 확 뛰어버린다. 우리의 오랜 친구인 중식, 일식이나 최근 국내 식문화에 그나마 안착한 베트남 쌀국수 정도가 아닌 이상에야 외국 요리들은 값이 무조건 비싸다. 개인적으로는 서구권의 케밥과 같이 이국적인 음식이 저렴한 가격으로 일상의 식문화 속으로 파고들기를 기대해 보지만 비즈니스 모델이 그렇게 성립하지가 않는 모양이다. 업장의 정확한 사정을 내가 알 수는 없으니 사장님들에게도 다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소비자 입장에서는 큰맘 먹지 않으면 외국 음식을 먹기 힘들다는 것은 아쉬운 일이다.


그래서 입맛만 다시던 차에 내가 직접 만들어 본 캅사는 정말 맛있었다. 비리야니와 더불어 종종 해먹게 될 음식일 것 같다. 정말 만족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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