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식열전 (25)
치킨 카라히는 파키스탄 풍의 토마토 치킨커리이다.
이전에 인도의 커리는 하나의 장르라고 보아야 할 정도로 다종다양한 종류를 갖고 있다고 설명한 적이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러한 커리들에 있어 내적인 공통성이 하나도 없는 것은 아니다. 남인도와 북인도의 커리가 아무리 다르다고 해도 그렇다고 해서 유럽의 스튜와 같은 음식인 것은 아니다.
내가 인도 요리 전문가는 아니지만, 최근 몇 달동안 취미로 계속 커리를 만들면서 깨달은 몇가지 커리의 공통적인 요소가 있다.
하나는 본격적으로 요리를 하기 전에 기름에다가 커민씨드, 겨자씨, 커리잎 등을 넣고 튀겨서 향미유를 만들어 그 기름을 요리에 사용한다는 것이다. 혹은 타드카라고 하여 요리가 끝난 뒤 그런 향미유를 만들어 토핑하듯 부어주기도 한다.
다른 하나의 특징은 커리를 볶아 카라멜라이징을 한 후 다시 토마토를 넣고 졸여서 일종의 야채 페이스트를 만들어 거기에다가 각종 향신료를 섞어 일종의 ‘바디’를 형성한다는 것이다. 남인도와 동인도(세븐 시스터즈) 지역의 요리가 아무리 특이하다고 해도 결국에는 이런 문법에서는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것 같다.
또한 강황, 터메릭, 코리앤더(고수)와 같은 향신료를 사용한다는 점 역시 커리의 중요한 특징이다. 이는 인도 커리를 넘어 동남아 커리와 일본 커리까지 하나로 묶어주는 중요한 키워드이다. 예를 들어서 일본의 양식 ‘카레’는 만드는 방식이 서양의 스튜와 무척이나 닮았지만 강황을 비롯한 마살라 계열의 향신료를 사용한다는 점에서 여전히 인도 커리와 중요한 접점을 갖고 있다.
그런데 치킨 카라히는 이러한 일반적인 커리의 문법과는 일선을 긋는 아주 특이한 커리이다. 이 북인도와 파키스탄에서 즐겨 먹는 커리는 위에 내가 언급한 일반적인 커리의 특징들과는 다소 다른 DNA를 가진 음식이다.
내가 치킨 카라히를 만들기로 결심한 것은 유튜브의 숏츠에 뜨는 파키스탄 식당 요리사들이 이 커리를 만드는 호쾌한 장면에 반했기 때문이었다. 파키스탄의 요리사들은 중식에서나 쓸 법한 두꺼운 무쇠 웍과 비행기 엔진 같은 강한 화력으로 기름부터 가열했다. 그런 뒤에 커팅한 닭고기를 밀어넣어 말 그대로 튀겨버린 다음에 기름을 따라내고 거기에다가 숭덩숭덩 썰은 토마토를 넣고 뚜껑을 덮어 쪄버린다. 그런 다음에 토마토가 물렁물렁해질 때쯤 뚜껑을 열고 쇠주걱으로 토마토 껍질을 걷어낸다. (커다란 주걱으로 토마토를 뒤져서 껍질만 걷어내는 장면은 정말 달인의 솜씨다.) 생토마토를 요리할 경우 최후까지 사람을 괴롭히는 이 껍질을 능숙한 손놀림으로 걷어내는 장면은 묘한 카타르시스를 주었다. 그런 다음에 흐물흐물해진 토마토를 으깨어 닭과 함께 섞으면서 강불로 볶는다. 오래 볶지도 않는다. 그런 뒤에 요리가 끝나고 치킨 카라히는 손님 상으로 나간다.
여기에는 양파 카라멜라이징도, 마살라 계열의 향신료도 없다. 그저 토마토와 닭고기, 그리고 대량의 기름으로만 완성되는 거의 중식을 방불케 하는 호방한 불쇼만이 있을 뿐이다. 개인적으로 중식의 가장 큰 매력은 강력한 화력을 이용해 순식간에 음식을 완성하는 호쾌함이라고 생각하는데, 치킨 카라히는 이러한 중식의 매력을 갖고 있다.
즉 말하자면 치킨 카라히는 양파 카라멜라이징, 강황이나 터메릭 류의 마살라 계열 향신료 없이 토마토와 닭고기만 이용하여 만드는 심플한 커리이다. 이 커리의 존재는 우리가 커리를 함부로 내가 처음에 요약했던 것처럼 정의내리려고 해선 안된다는 점을 말해준다. 커리는 마살라 계열의 향신료로만 한정짓기에는 훨씬 범위가 넓은 요리이다. 마치 비트겐슈타인의 가족 유사성처럼 각각의 커리들은 단단하고 고정된 정의가 아닌 인접한 요리와의 유사성을 통해 무한히 확장해나가는 모습을 보인다. 그런 점에서 커리가 하나의 장르라는 최초의 테제는 한바퀴 돌아 다시 한번 유효한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 요리는 이렇게 아름답지 않았다.
실수연발, 경험부족의 연속이었다. 우선 나는 다량의 기름을 사용하여 닭을 튀기려고 하였지만 실수로 기름이 충분한 온도로 올라가기 전에 탬퍼링을 위해 커민씨드를 넣는 실수를 저질렀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 커민씨드가 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일단 닭고기를 투입하기로 했다.
하지만 그 순간부터 순살 정육에선 대량의 수분과 기름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고, 닭고기는 유튜브 쇼츠와는 달리 튀겨진다기보다는 삶기기 시작했다. 여기서부터 망했음을 직감했다.
어찌저찌 닭고기가 익은 후, 나는 기름을 그릇에 따라내고(이 부분은 성공이었다) 토마토 퓨레를 넣었다. 생토마토가 없었고 파키스탄 요리사들도 최종적으로는 토마토를 부숴 퓨레 형상으로 만들었으니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여기서 예상밖의 상황이 발생했는데 가열된 퓨레가 끓으면서 사방으로 튀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 토마토 퓨레가 튀는 현상은 몇 주 전부터 나를 괴롭히는 악몽이다. 다른 재료로 층층히 위를 덮어주지 않고 퓨레 위주로 하여 가열할 경우에는 무슨 마녀들의 수프처럼 부글부글 끓으면서 시뻘건 토마토 국물이 사방으로 튄다. 나는 요리를 끝낸 후에 걸레를 들고 테이블과 바닥을 닦는 굴욕을 겪지 않으면 안 되었다. 하지만 굴욕보다 문제는 토마토가 자꾸 튀니까 신경이 쓰여서 토마토를 충분히 졸이지 못하고 조급하게 요리를 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도 향신료를 너무 안 넣으면 안될 것 같아서 나는 고춧가루를 투하했고, 얼마간 더 볶다가 도저히 퓨레가 튀는걸 견딜 수 없어서 불을 끄고 그릇에 담았다. 챗 지피티에는 기름과 토마토 퓨레가 분리될 정도여야 한다고 했는데 그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다. 소금간을 못한 것은 덤이었다.
이러한 실수의 연발에도 불구하고 결과물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애초에 토마토와 치킨의 체급 자체가 높아서 어지간한 실수에도 불구하고 태우지 않은 이상에야 먹을만 했다. 소금간을 빼먹어서 밍밍하긴 했지만 저염식이라고 생각하고 먹으니 그럭저럭 먹을만했다. 역시나 재료가 조리법보다 중요하다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 한번 인식하게 된 계기였다.
다시 한번 도전하고 싶다. 그래서 이 실패를 설욕하고 싶다. 하지만 토마토 퓨레가 튀는 현상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게 고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