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식열전 26
필라프는 중앙아시아 일대에서 먹는 쌀요리이다. 외관상으로는 볶음밥 같지만 실제로는 볶음밥이라기보다는 우리나라의 굴밥이나 콩나물밥처럼 밥과 재료를 넣고 같이 찌는 형태의 요리에 해당한다. 우리에게는 볶음밥과 같은 형태의 냉동식품으로 더 익숙하긴 하다. 최근에는 우즈벡 음식점이 대도시권을 중심으로 조금씩 생기면서 ‘쁠롭’이라는 형태의 요리도 점차 알려지고 있다.
사실 내가 필라프를 하기로 마음먹은 계기는 아주 우연한 가챠운 실패 때문이었다.
나는 얼마 전에 인터넷 쇼핑몰에서 냉동 닭다리를 1킬로그램 주문했다. 그 중 절반을 자메이카 커리 치킨으로 만들어 먹었는데, 고기의 상태가 정말 형편없었다. 무슨 인간의 생명을 억지로 늘려놓아 결국에는 몸뚱아리가 누네띠네마냥 부서지는 SF 영화마냥 살이 푸슬푸슬하게 부스러져 내리고 고기와 뼈 사이에는 피가 떡져 있었다. 누가 보아도 그냥 먹기는 어려운 고기였다.
하지만 문제는 남은 절반의 닭다리를 버리는 것이었다. 내가 사는 동네의 음식물쓰레기 배출 규정에 따르면 닭뼈와 같은 단단한 뼈는 음식물쓰레기로 배출이 불가능했다. 그럼 냉동 닭다리를 해동시켜 살과 뼈를 분리시켜 버린단 말인가? 예전에 그런 참사를 겪은 적이 있는데 다시는 하고 싶지 않은 일이었다.
곰곰히 생각하다가 최근에 필라프 요리법을 어디선가 본 기억이 났다. 이 폐급 닭고기를 필라프 육수를 내는데 쓰면 어떨까? 라는 생각이었다. 필라프의 생명은 육수인데, 출처를 알 수 없는 나의 기억에 따르면 저급 닭고기는 치킨스톡을 내는데 쓴다고 한다. 그리고 닭고기 살과 뼈 사이에 맛을 내는 성분이 있어서 뼈째로 끓이면 국물이 더 맛있다는 이야기도 어디선가 들은 기억이 났다. 그렇다면 이 폐급 닭다리도 살은 먹지 못하더라도 엑기스만 국물로 빼서 필라프의 육수로 사용하면 어떨까? 라는 발상에 도달했다.
우선 하룻밤 해동시킨 닭다리살을 물에 넣고 5분동안 끓여서 역한 냄새와 불순물을 뺐다. 그리고 다시 물을 갈아서 닭다리살을 넣고 1시간동안 끓였다. 중간중간 냄비가 넘쳐서 중간에 뚜껑을 열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아슬아슬한 수준까지 육수가 줄었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주방에는 삼계탕이나 닭곰탕에서 나는 향기로운 닭국물 향이 퍼졌다. 여기서부터 나는 성공을 예감했다.
다음에는 닭다리를 들어내고 육수를 대접에다가 부은 다음에 냉동양파, 냉동당근, 그리고 마늘을 기름에 볶아서 향을 냈다. 그리고는 쌀과 버터를 넣어서 볶았다. 어느 정도 볶아진 다음에 나는 소금을 넣는 것을 잊어버리고 미리 덜어둔 닭고기 육수를 넣었다. 그리고 뚜껑을 덮고 15분간 약불에 끓였다. 버터를 넣은 이유는 혹시라도 풍미가 부족할 것을 걱정했기 때문이었다.
15분이 지나자 물이 완전히 쌀에 흡수되었다. 나는 불을 끄고 뜸을 10분간 들였다. 뚜껑을 열자 향기로운 냄새와 유리 유튜브에서 보던 비주얼이 냄비에 드러났다. 이정도면 성공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주걱으로 조심조심 퍼서 사진을 찍고 먹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제서야 소금을 넣지 않은 것을 깨달았다. 지난번에도 랑가르 왈리 달에 소금을 넣지 않아서 참사가 발생했는데 또다시 사고가 난 것이다. 나는 어떻게 해결할지를 고민하다가 일단 강제 저염식이라 오히려 잘 되었다며 스스로를 위로하며 먹기 시작했다.
맛 자체는 성공이었다. (간을 빼고는) 부드럽고 고슬고슬한 밥알이 닭고기 육수, 야채, 그리고 버터 풍미와 조화를 이루는 부드럽고 감미로운 맛이었다. 나는 이 필라프 요리가 맛없는 냉동요리 정도를 제외하고는 한국에 별로 퍼지지 않은 이유가 이해가 가질 않았다.
생각해보면 필라프는 볶음밥보다 훨씬 효율적이고 간편한 요리이다. 필라프는 쁠롭, 캅사, 뿔라우, 필라프 등으로 이름은 다양하지만 기본 구조는 동일하다. 육수와 익힌 고기를 준비한 후, 야채를 볶아 향을 내고 거기에다가 쌀을 넣고 볶은 뒤 간을 하고, 거기에다가 미리 준비한 육수와 고기를 넣어 찌면 된다. 볶음밥의 경우는 화구의 화력과 웍을 돌리는 요리사의 실력이 퀄리티에 상당한 차이를 만들어 내지만 필라프 계열의 경우에는 정해진 순서를 차근차근히 따른다면 초심자도 비교적 실패할 확률 없이 만들 수 있다. (냄비 바닥이 타는 참사를 제외하고는)
그러나 향기로운 풍미에도 불구하고 소금간의 부재는 점차 미각을 질리게 만들었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소금을 넣기로 했다. 사실 한국인의 상식으로는 소금을 1작은술 정도 뿌리고 마구 비벼서 간을 맞추면 될 것 같은데, 내가 주걱으로 눌러 담은 필라프의 형태가 너무나도 아름다웠기 때문에 그런 야만스런 짓은 하고싶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것은 소금을 뿌려먹는 것이었다. 소금통을 갖다두고, 숟가락으로 소금을 떠서 마치 스테이크에 시즈닝을 하듯이 소금을 고르게 흩뿌려서 먹기 시작했다. 이 응급처치는 소금간을 빼먹은 실패를 완전히 해결하지는 못했지만, 예상보다는 상당히 괜찮은 방법이었다.
아무리 고르고 뿌린다고 해도 결국 덜덜 떨리는 손으로 소금을 뿌려봐야 밥 위에 소금이 내려앉은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이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러한 불균형이 오히려 묘한 대조를 만들었다. 소금이 올라앉은 부분의 밥은 입안에서 거칠고 직설적인 소금맛을 강조했고, 반대로 그렇지 않은 부분은 기름기 있는 베이스가 되어 거친 소금맛을 뒤에서 받쳐주었다. 짠맛과 밍밍함의 이러한 대조는 생각보다 괜찮은 경험이었다. 신포도 논리이기는 하지만 소금이 균일하게 퍼졌다면 오히려 밥이 빨리 물렸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생각해보면 요리에 있어서 불위에서 음식을 만드는 과정은 극히 일부분에 불과한지도 모른다. 맛집프로를 보면 가게 주인이 선선히 “뭐 대단한 비법이 있나요? 그냥 좋은 재료를 쓰고 정성스럽게 만드는거죠.”라는 말을 하면서 주방을 구석구석 다 보여주는 경우가 제법 있다. 이걸 거짓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이 주인들의 말이 진짜라고 생각한다. 요리에는 생각보다 대단한 비법이 없고, 요즘에는 제품이 좋은게 많아서 현란한 맛도 초보자가 쉽게 낼 수 있다.
실제로 재료가 요리가 되어 손님에게 나가는 과정에서 불위에서 음식을 하는 것은 어쩌면 5에서 10퍼센트 정도에 불과할지 모른다. 메뉴를 구상하고, 괜찮은 재료를 적합한 가격에 구하고, 재료를 손질 및 보관하고, 조리도구를 관리하고 준비하며, 요리가 끝난 후 음식물 쓰레기를 처리하고, 설거지와 청소를 하는 것. 이러한 일련의 과정에 들어가는 시간과 노력이 직접적인 요리에 들어가는 것보다 훨씬 크다. 인도나 프랑스 요리와 같은 경우는 좀 다르겠지만, 중화요리 같은 경우에는 요리 자체는 불이 올라간 뒤 5분 안에 끝나는 경우도 흔하다.
이런 상황에서는 불 밖에서의 상황이 더욱 중요한지도 모른다. 좋은 닭다리를 구하는데 실패하고, 이것을 어떻게 유효적절한 방법으로 폐기할 것인가는 요리의 ‘비법’에 해당하지는 않았지만, 오늘 내가 한 요리의 과정을 지배한 핵심적인 문제였다. 그런 의미에서 폐급 재료를 재생시킨 방법을 배운 것은 그 자체로 좋은 경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