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동야채

괴식열전 28

by 이그나티우스


괴식열전 (12) 양배추 샐러드 편에서 나는 자취를 하는 1인가구가 신선한 야채를 먹는 일의 어려움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거기서는 양배추채를 먹는 것으로 잠정적 해결책을 찾았다고 썼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나는 여러 차례에 걸쳐서 양배추채를 소금과 식초에 절여 1주일간 먹는 방식을 선택했다. 처음 1, 2번은 괜찮았는데 이후로는 계속 4, 5일 정도 지나자 양배추의 색이 변색되는 현상이 발생했다. 배탈이 나거나 한 적은 없었지만, 아무래도 변질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문제는 원점으로 돌아온 셈이었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처음에는 비용지출을 감수하더라도 아예 세척된 샐러드를 사서 먹는 것을 고민해 보았다. 건강이 관련된 문제인 만큼 희생은 불필요하다는 생각에 점점 다다랐다. 하지만 너무 적은 양과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은 결정을 망설이게 했다.

대량으로 다소 저렴하게 파는 샐러드도 있었지만 이것들은 세척이 되지 않아 “반드시 씻어서 드세요(오염되었을 수도 있으니 안 씻고 먹어서 배탈나면 내가 책임 안 진다는 뜻).” 라는 말이 적혀 있었다. 이런 것들은 구입할 경우 십중팔구는 귀찮아서 안 먹게 될 것이 뻔했다. 그리고 귀찮음을 이겨낸다고 해도 며칠이나 갈까 싶었다. 야채종류는 칼이 닿는 순간부터 급격하게 변질된다는 것이 나의 경험으로부터의 지식이다.

그러던 와중에 예전에 실패했던 방식이 다시 눈길을 끌었다. 냉동 야채믹스를 가볍게 삶아서 먹는 방식이었다. 이전에 이 방식을 포기한 가장 큰 이유는 야채를 삶을 물 끓이는데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려서였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나는 빨리 물을 끓일 수 있는 고성능 전기인덕션을 구입한 상황이다. 지금이라면 금방 물을 끓여서 냉동야채를 데쳐 먹을 수 있다. 본 요리를 하기 전에 가볍게 처리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이 부가적인 과정이 귀찮음으로 작용해 점차 야채 섭취를 포기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점은 여전히 걱정이지만, 일단은 이 방법을 사용할 경우 비용적으로 저렴할 뿐 아니라 무엇보다도 보관이 절대적으로 간편하다. 냉동야채는 보관에 있어서 압도적인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사실 보관이라는 차원은 음식을 만들고 섭취하는 데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다. 인류가 발달시켜 온 수 많은 식재료 처리방식-발효, 염장, (식초) 절임, 건조, 유탕처리(튀기기), 냉동, 냉장, 통조림, 병조림, 레토르트, 동결건조 등-들은 기본적으로는 보관기간을 늘리기 위함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김치처럼 새로운 종류의 음식이 탄생하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이러한 방식들은 식재료를 최대한 오랫동안 상하지 않고 보관하는 방식들이다.

인류에게 있어 하나의 저주는 영양학적으로 풍부한 식재료일수록 빠르게 부패한다는 것이다. 생야채, 육류, 어류와 같이 영양소가 풍부한 재료들은 하나같이 상온에서 하루만 놔두어도 금세 부패한다. 반면에 상대적으로 영양학적으로 불균형한 건곡식이나 당류와 같은 것들은 보관기간이 긴 편이다. (물론 이러한 등식이 백퍼센트 맞는 것은 아니다. 견과류나 대추야자처럼 영양학적으로 우수한데도 오래 보관이 가능한 것들도 있으니까.)

이런 상황에서 식재료의 영양소 파괴를 막으면서 최대한 오랫동안 보관하고 섭취하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문제이다.

이러한 인류사의 오래달리기에 거의 종지부를 찍은 것이 냉동과 냉장고의 발명이다. 발효나 염장과 같은 전통적인 기법들은 결국 재료에 화학적 변성을 초래하고 맛에 있어서의 손실을 가져온다. 솔직히 아무리 육포가 맛있다고 해도 스테이크를 이길 수는 없는 법이다. 하지만 냉동과 콜트체인 시스템은 식재료의 파괴를 최소화하면서도 보관기간을 획기적으로 연장시켰다.

미국 등지에서 근대적인 정육산업이 발달한 것은 19세기 이후의 냉동보관기술의 발달과 철도의 등장 덕분이었다. 물론 통조림이나 병조림과 같은 기술의 도입도 근대적인 보관기간 연장에 큰 공헌을 하였지만, 기본적으로는 냉동과 냉장 그리고 콜드체인 유통 시스템이 우리의 식탁을 훨씬 풍성하게 만든 셈이다.

물론 이러한 냉동과 냉장에 대한 안티테제도 점차 고개를 들고 있다. 팜 투 테이블이나 지산지소와 같이 유통과정을 최대한 짧게 하여 탄소발자국을 줄이고 건강한 식생활을 만들자는 식문화가 그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콜드체인 유통의 보완재라고 봐야 한다. 우리의 생활은 이미 냉동과 냉장 없이는 성립할 수가 없으며, 대단히 귀족적인 소수를 제외하면 이러한 ‘따서 바로 먹는’ 스타일의 식사는 불가능하다. 팜 투 테이블 철학은 고귀한 것이지만 이것이 표준이 될 수는 없다.

현장에서 실제로 음식을 만들고 섭취하는 입장에서 본다면 채소와 과일을 섭취하는 데 있어서 가장 큰 장벽은 비용과 보관이다. 만약 식재료에 투입할 예산이 무한하거나, 반대로 모든 채소나 과일이 상온에서 1개월 이상 보관 가능하다면 문제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야채나 과일의 섭취를 취향의 문제로 거부하지 않는 이상엔 말이다.

하지만 현실은 언제나 제약 위에서 성립하는 법이다. 내가 채소나 과일 섭취를 위해 투입 가능한 비용은 제한되어 있으며, 식재료는 빠르게 부패한다. 따라서 이러한 점을 고려해서 식단을 짜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러한 딜레마는 비록 나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현대의 도시를 살아가는 1인가구에게는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문제이다. (거의 무한대의 식재료 예산을 가진 상류층이나 매일 근처의 식료품 판매처에서 재료를 구입할 수 있을 정도로 시간이 굉장히 많은 소수를 제외한다면)

사실 우리는 푸드 데저트 문제를 사회적이고 경제적인 문제로 생각한다. 교통이 불편한 격오지나 미국과 같은 다문화국가에 존재하는 인종적이고 경제적으로 고립된 집단이 거주하는 슬럼화된 지역의 문제로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가 푸드 데저트 문제에서 종종 간과하고 지나가는 부분이 보관에 관한 기술적인 측면이다.

푸드 데저트 문제의 상당부분은 신선한 식재료라는 것이 보관기간이 그리 길지 않다는 데서 출발한다. 교통이 불편하거나 경제적으로 빈곤한 지역의 상점의 경우 신선한 재료를 유통하고 보관하는 콜드체인을 갖추는 데 드는 비용을 감당할 수 없고, 그것이 푸드 데저트 문제를 발생시킨다고 생각한다. 물론 신선한 식재료를 구입하는 데 드는 개인의 구매력이 낮은 문제도 있겠지만 말이다.

사실 생각해보면 이것은 반드시 인종적인 게토나 지방의 격오지에만 해당하는 문제는 아니다. 1인가구가 다수 거주하는 도시부의 주거지역의 경우에도 이런 문제가 점차 확대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러한 지역들은 새벽배송 시스템의 도입과 군데군데 위치한 소형 슈퍼마켓 및 식자재마트의 덕분에 전형적인 푸드 데저트 지역과 같은 심각한 문제를 겪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1인가구 입장에서는 신선한 재료를 공급받는 데에는 일정부분 장벽이 있다고 느낀다. 우선 슈퍼마켓이나 마트, 인터넷 쇼핑몰에서 판매하는 신선한 식재료의 경우에는 대개 규모의 경제가 작동하여 1인가구 입장에서는 구입하기가 쉽지 않다. 앞서서 살펴본 양배추의 문제처럼 양배추는 한통을 사는게 가장 저렴하고 신선하지만 1인가구 입장에서는 그것을 상하기 전에 다 먹기가 어렵다. 그리고 불편함 역시 무시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신선한 채소나 과일이라는 것이 기본적으로는 고기나 튀김보다는 맛이 없기 때문에 일정 수준 이상의 불편함과 비용을 초래할 경우에는 1인가구 입장에선 외면하기 쉽다. 이론상으로는 그러면 안되지만 사람은 생각보다 순간순간의 불편함에 민감한 존재이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신선한 채소와 과일, 그리고 육류와 생선과 같은 식재료의 상품화 및 유통에도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옆나라의 사례를 들어 비판하는 것 같아서 미안하게 되었지만, 일본의 편의점을 보면 ‘건강’을 중시한 마케팅이 한창이다. 물론 이러한 것은 상술에 그치는 경우도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꽤나 개인의 영양을 고려한 상품이 상당히 개발되어 있다. 소분 포장되어 바로 섭취 가능한 샐러드나 신선한 유제품과 같은 식품이 콜드체인을 통해 편의점에 충분히 공급된다. 그에 비한다면 한국에서 라스트 1마일을 담당하는 편의점은 점차 푸드 데저트 현상을 겪고 있다. 최근 들어서는 많이 개선되기는 했지만 아직도 담배나 술과 같은 기호식품, 유탕처리된 과자나 라면과 같은 전형적인 탄수화물과 지방 위주의 상품을 파는 곳이 많기 때문이다. 특히 샐러드나 신선한 과일과 같은 부분에 있어서 취약한 곳이 많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한국 편의점의 시스템을 비판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이 일본과 다른 편의점 비즈니스 모델을 갖게 된 것은 다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개인의 입장에서는 한국의 대도시의 생활 환경이 1인가구의 건강에 적대적이라는 사실을 인지하는 점이 중요하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한마디로 말해 항상 조심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1인가구의 입장에서는 어떤 식으로든 규칙적으로 신선한 야채와 과일, 그리고 육류와 수산물을 공급받음으로써 영양적인 균형을 유지할 수단을 강구해야 한다. 그것은 매일 샐러드 배달을 비용지출을 감수하고 사용하는 것이 될 수도 있고, 나처럼 냉동 야채 믹스를 사용하는 것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방법이 무엇이 되었간 간에 한국의 대도시에 사는 1인가구는 건강한 식재료의 조달을 위한 나름대로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손쉽게 불균형한 식사에 찌들게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keyword
토요일 연재
이전 27화기나따앙 마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