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조아다

by 이그나티우스

페이조아다는 검은 강낭콩에 돼지고기와 소시지를 넣고 끓인 브라질의 전통 스튜 요리이다. 국내에는 지명도가 높은 편이 아니지만, 브라질의 대표 요리 중 하나로 언제나 꼽히는 메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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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페이조아다를 처음으로 접한 것은 부산에 위치한 한 슈하스코 레스토랑이었다. 구운 고기를 무한리필로 제공하는 스타일의 브라질의 식사 형식을 슈하스코라고 한다. 과거에는 여행 다큐멘터리에서나 보았을 이 요리도 글로벌화의 진전으로 한국의 대도시권에서는 그럭저럭 볼 수 있게 되었다.


보통 슈하스코 레스토랑이 고기 요리에만 집중하는 곳과 간이 샐러드바를 갖춘 곳이 있는데 내가 간 곳은 후자였다. 사실 그 시점에서 이미 나는 페이조아다라는 음식을 알고 있었고, 그래서 호기심에 먹어보았다. 페이조아다는 특유의 검은 색감으로 인해 처음에는 약간 무섭게 느껴지지만 막상 먹어보면 굉장히 부드럽고 호불호가 덜 갈리는, 누구에게나 부담없이 다가가는 맛이다. 어마어마한 맛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괜찮은, 질리지 않는 음식이다.


첫인상이 좋았던 페이조아다는 다른 곳의 슈하스코에서 1번 정도 더 먹었던 것 같은 기억이 난다. 하지만 이런 페이조아다는 샐러드바에 딸린 반찬에 가까운 것이라 족발까지 들어가는 브라질 현지의 페이조아다와는 다소 차이가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하지만 한국에선 브라질 음식을 접하는 일이 그렇게 흔하지 않다보니 나의 그런 아쉬움은 마음속에 잠들어 있었다.


그러다가 최근 나는 닭고기와 생선 위주의 식단을 재편하면서 다시 한번 페이조아다에 접근하게 되었다. 한국에 대량의 닭고기를 공급하는 브라질의 조류독감 파동 이후로 우리나라의 닭고기 가격은 무시무시하게 올랐다. 사실 닭다리살에서 뼈를 발라낸 정육은 전통적으로 무난하게 저렴한 부위였는데 이제는 돼지고기에 못지 않은 가격대가 되어버렸다. 닭고기가 돼지고기와 비슷한 가격이라면 굳이 닭고기만을 고집할 이유가 없고, 다시 1번 돼지고기가 들어간 음식을 시도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사실 처음에는 어머니가 택배로 보내주신 소시지가 있었기 때문에 잠발라야를 만들려고 생각했지만, 페이조아다를 처음으로 만들어 보면 어떨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잠발라야는 이전에도 몇번 먹어보았기 때문에 다음에 먹어도 괜찮을 것 같았다. 사실 처음에는 페이조아다에 돼지고기 내장이나 귀, 족발과 같은 부속고기가 많이 들어간다고 해서 포기하려고 했는데, 그러지 말고 삼겹살과 소시지만으로 약식이긴 해도 한번 도전해보자고 결심하게 되었다.


일단 소시지는 있기 때문에 돼지고기만 구하면 되었다. 소시지가 고기 양을 확보해주기 때문에 500그램 이상의 고기를 부담스럽게 살 필요가 없었다. 내가 늘 이용하는 인터넷 쇼핑몰을 검색해보니 마침 미국산 찌개용 삼겹살이 꽤 저렴한 가격(5천원대)에 파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고민에 빠졌다. 왜냐하면 이전에 미국산 냉동 목살을 샀다가 엄청나게 질기고 엄청나게 누린내가 심해서 버린 일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미국에서 생산하니 비위생적이거나 하지는 않겠지만, 품질은 장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나는 용기를 내어 미국산 삼겹살과 검정 강낭콩을 인터넷 쇼핑몰에서 주문하고 배송되기를 기다렸다. 새벽배송이 도착하자마자 바로 다음날 나는 페이조아다에 도전했다.


세상에는 2가지 요리가 있다. 하나는 숙련이 필요한 조리기술을 요하는 요리이다. 주로 프랑스 요리가 이런 스타일이 많다. 이러한 요리들은 만드는 사람의 기술이 떨어지면 애초에 제대로 된 요리가 나오지 않는다. 다른 하나는 요리라기보다는 조립과 가열에 가까운 요리가 있다. 이것들은 정해진 분량대로 재료를 넣고 그냥 가열만 하면 되는 밀키트 수준의 요리들이다. 주로 스튜나 전골 계열에 이런게 많은데 가장 대표적인게 부대찌개다. 부대찌개를 실패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원인을 분석할 필요가 있을 정도로 부대찌개는 개인의 솜씨가 거의 맛을 좌우하지 않는다.


페이조아다는 굳이 따지자면 2번째, 조립에 가까운 요리라고 보아야 할 것 같다. 브라질의 컴포트 푸드라는 심리적 진입장벽에도 불구하고 만드는 과정 자체는 어렵지 않다.


애초에 페이조아다에 들어가는 재료들 자체가 한국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이다. 검정 강낭콩, 양파, 삽겹살, 소시지, 월계수잎, 기타 간단한 조미료 정도만 필요하다. 브라질 현지의 정통 페이조아다는 족발, 내장, 귀와 같은 희귀 부위도 들어간다는데, 만들어보니 그렇게까지 넣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리고 설령 그런 희귀부위들도 우리나라에서 마음만 먹으면 구할 수 있는 것들이다. 족발, 돼지 간, 천엽, 염통, 머릿고기, 돼지귀 등은 우리나라에서도 흔히 먹는 재료이고(예를 들어서 국밥에 자주 들어가지 않는가), 인터넷 쇼핑몰이나 정육점에서 마음만 먹으면 구할 수 있는 것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페이조아다는 생각보다 한국에서 재현하기 쉬운 음식이다.


만드는 과정 역시 별로 어렵지 않았다.


우선 전날 검정 강낭콩을 하룻밤 정도 물에 불려둔다. 그리고 삼겹살과 소시지를 각각 볶아서 덜어둔다. 그리고 양파를 투명해질 때까지 볶은 후 삼겹살, 소시지, 강낭콩을 넣고 재료가 다 물에 잠기도록 물을 부어준다. 소금, 월계수잎, 기타 향신료를 넣고 2시간 이상 푹 끓이면 된다.


물론 어김없이 나는 이 쉬운 과정도 제대로 못해서 소시지를 볶으면서 냄비를 태워먹어서 중간에 요리를 멈추고 바닥을 닦아내는 설거지를 1번 해야만 했다. 사실 처음에 삼겹살을 구우면서 이게 돼지가 정말 괜찮을지 걱정을 많이 했는데, 굽고 나서 한조각 먹어보니 웬걸 유명 삼겹살 구이 식당에서 먹은 것보다 훨씬 고기가 좋았다. 최근 몇 년간 이렇게 수준높은 삼겹살은 처음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 좋은 삼겹살을 스튜용으로 쓴다는게 아깝게 느껴질 정도였다. 보통 구이용 삼겹살보다 찌개용 삼겹살이 퀄리티가 떨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건 전혀 아니었다.


2시간이나 걸리는 요리다보니 평일에는 하기 어렵고 휴일에나 할 수 있을 것 같긴 하지만, 만드는 과정 자체는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중간중간에 바닥을 저어주면서 물을 조금씩 추가해 주었는데, 국물을 먹어보니 삼겹살, 소시지, 콩, 양파가 우러난 국물이 아주 일품이었다. 물론 이 과정에서도 내가 또 뭘 그렇게 잘못했는지 바닥에 걸쭉한 국물이 눌러붙었다.


인터넷에서 이런 댓글을 본 적이 있었는데, “페이조아다는 흰쌀밥과 같이 먹는 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봐도 밥과 잘 어울리는 음식이었기 때문에 나 역시도 갓 지은 쌀밥을 준비했다.


처음 먹어본 자작 페이조아다의 맛은 정말 최고였다. 콩의 고소함과 삼겹살의 부드럽고 깊은 맛이 어우러지면서 익숙하면서도 생소한 맛을 느낄 수 있었다. 거기다가 풍부하게 넣은 소시지를 씹는 맛 역시 즐거운 경험이었다. 전형적인 컴포트 푸드, 대단히 현란하고 자극적인 맛은 아니지만 부드러우면서도 질리지 않고 언제까지나 먹을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포근한 맛이었다.


재미있는 것은 의외로 잘 안질렸다는 것이다. 내가 물조절을 잘 못해서 뒤로 갈수록 너무 뻑뻑해지는 부분이 걸리긴 했는데 이건 내가 실수를 해서 그런거고 맛 자체는 슴슴함에도 불구하고 뒤로 갈수록 질리지 않았다. 내가 혹시나 싶어서 커민과 후추를 넣어서 그런걸까? 아니면 월계수잎의 힘일까? 아무튼 신기했다.


푹 끓여서 그런지 제법 큼직하게 썰었던 삼겹살이 녹아서 국물이 되었고 조그만 고기조각들만 남아 있었다. 그것이 국물에 중후함을 더해주었지만 그토록 맛있는 돼지고기를 국물용으로 쓴 것이 여전히 아깝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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