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 물라키타투, 민 쿠르람부, 체팔라 풀루수
전에도 이야기 한 적이 있지만 한국에는 주로 북인도 지역의 커리가 소개되어 있다. 치킨 마크니, 팔락 파니르, 램 코르마 등등. 물론 고아 지역의 빈달루 커리도 간혹 소개되는 경우도 있지만, 빈달루 커리는 일종의 크레올 문화의 유산으로 남인도에서도 굉장히 특이한 카테고리라고 보아야 한다.
반면에 첸나이, 하이데라바드 등이 위치한 남인도 지역의 커리, 그리고 스리랑카의 커리는 국내에는 거의 소개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이 지역의 커리가 북부 인도의 커리의 아종인 것도 아니다. 묽은 스프, 타마린드와 코코넛 등 북인도 지역과는 뚜렷이 차별화되는 지점을 가진 것이 남인도 커리이다. 게다가 이쪽은 깔끔하게 매운 맛을 강조하여 한국인의 입맛과도 상통하는 측면이 있음에도 국내에서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우리가 미국, 인도, 중국, 브라질과 같은 큰 나라를 이해하는 데 가장 크게 저지르는 실수가 그 나라들을 하나의 균일한 지역으로 보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크기가 작기 때문에 지역색이 강한 부산조차도 꼼꼼히 따져보면 서울과 본질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은 문화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큰 나라들은 다르다. 애초에 연방제로 운영되어 지방정부가 상당한 자치권을 갖는 경우가 많고, 심지어는 한 나라 안에서 문화나 인종조차 다른 경우가 많다.
인도가 그러하다. 흔히들 인도는 그 자체로 하나의 대륙이라 하여 ‘인도 아대륙’이라는 말을 즐겨 쓴다. 실제로도 남인도와 북인도는 상당히 다른 문화를 갖고 있고, 애초에 인종부터가 인도-아리아인과 드라비다인으로 다르다. 그리고 이걸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커리 문화이다.
사실 여기까지는 우리나라에도 인도에 조금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상식적으로 잘 알고 있는 내용들이다. 나는 거기서 구체적으로 각론을 좀 파고들어 보고자 한다. 사실 지금까지는 내 어줍잖은 지식으로 남인도에 대한 허접한 강의를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자료를 검색하면서 국내에는 애초에 이러한 생선 커리들의 기초적인 종류조차도 거의 소개가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론 요즘은 영어 번역기를 통해 인도 웹사이트를 직접 검색할 수 있는 시대여서 내가 구태여 이러한 정보를 한국어로 소개하는 것이 의미가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간단하게 나마 남인도 피시 커리에 대해 한국어 웹에 처음 소개하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 싶어서 키보드를 잡게 되었다.
내가 소개하려는 것은 무궁무진하게 많은 남인도의 피시 커리들 중 민 물라키타투, 민 쿠르람부, 그리고 체팔라 풀루수이다.
우선 이 3가지 커리가 선정된 이유는 저렴한 냉동 생선을 쓸 수 있고, 코코넛 밀크를 쓰지 않아도 맛의 구조가 완전히 무너지지는 않기 때문이다. 내가 돈이 없어서 값비싼 생선을 구할 수 없는데다 인도 현지에서 먹는 생선은 한국에서 구할 수가 없다. 게다가 코코넛 밀크는 한국에서는 끔찍하게 비싸서 정량대로 넣다가는 배달비보다 식비가 많이 나오는 참사가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한국의 일반 자취생 가정에서 간단하게 따라할 수 있는 남인도 피시 커리를 찾다 보니 이 3가지 요리에 도달하게 되었다.
물론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이 3가지 커리에도 코코넛 오일, 코코넛 밀크가 들어간다는 것이다. 단, 가정식으로 자주 먹는 이 요리들의 특성상 코코넛을 사용하지 않아도 음식으로서 성립은 한다. 특히 민 쿠르람부의 경우 코코넛을 쓰지 않는 체티나드 지역 스타일이 하나의 카테고리로 성립해 있다.
그럼 이 3가지 커리에 대해 구체적으로 좀 더 자세히 알아보자.
민 물라키타투(Meen Mulakittathu)는 인도 서남부 해안의 케랄라 지역에서 먹는 케랄라 스타일의 피시 커리이다. 현지의 말라얄람어로 민은 생선이라는 뜻이고, 물라키타투라는 뜻은 고추가 들어갔다는 뜻이다. 한마디로 인도식 매운탕이다.
이 3가지 피시 커리는 사실 기본적으로는 모두 비슷비슷한 구조를 갖고 있다. 향신료를 탬퍼링하고, 양파와 토마토를 볶아서 페이스트로 만든 뒤, 커리 등 향신료를 넣고, 육수와 신맛을 더하는 페이스트(타마린드 등)를 넣고 끓여서 육수를 만든 뒤 거기에다가 생선을 넣는 구조로 되어 있다.
민 물라키타투가 갖는 특성은 우선 인도 남부와 동남아 등지에서 신맛을 주기 위해 흔히 사용되는 타마린드 페이스트 대신에 블랙 코쿰(black kokum)이라는 재료가 쓰인다는 것이다. 그게 뭔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고, 우리나라에서 구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한 듯하다. 어떤 차이를 주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내 생각에는 케랄라 지역에서 타마린드보다 쉽게 구해서 사용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참고로 이전에 내가 집에서 민 물라키타투를 만들 때에는 그냥 타마린드 페이스트를 넣고 했기 때문에 엄밀히 내가 만든 것은 민 물라키타투가 아니다. 하지만 또 아닌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이 기가 막힌 역설은 뒤에서 다시 설명하겠다.)
하지만 민 물라키타투의 더 큰 특징은 고춧가루를 많이 사용해서 완전히 시뻘겋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 커리는 외관만 보면 우리나라의 갈치조림이 아닐까 싶을 정도의 비주얼을 가지고 있다. 강황의 빛깔이 감도는 다른 2개의 피시 커리와는 달리 민 물라키타투는 그냥 시뻘겋다. 모르긴 몰라도 고대로부터 향신료 교역의 중심지였던 케랄라 지역의 역사를 반영하는 것이 아닐까?
다음으로 민 쿠르람부(Meen Kuzhambu)는 인도 동남부 타밀나두 지역에서 즐겨 먹는 피시 커리이다. 애초에 민 쿠르람부라는 말 자체가 타밀어로 피시 커리라는 뜻이다. 스펠링을 보면 쿠잠부라고 읽어야 할 것 같은데 그게 그렇지가 않단다. 타밀어로는 r와 l 사이의 미묘한 말음이 있는데 그걸 zh라고 표기하는 모양이다. 한국어로 어떻게 표기할지 챗 지피티와 머리를 싸매고 고민한 결과 쿠르람부라고 발음하는 것이 가장 그나마 근접하겠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민 쿠르람부는 타마린드 페이스트를 사용했다는 점에서, 그리고 뒤에 소개할 체팔라 풀루수에 비해서는 걸쭉하다는 점이 특징이다. 사실 우리나라의 한정된 재료로 만들기 위해서는 민 쿠르람부, 그 중에서도 정확히 말하자면 타밀나두의 체티나드 지역 스타일의 민 쿠르람부가 가장 만들기가 편하다. 체티나드 민 쿠르람부는 코코넛 밀크를 사용하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뒤집어 말하면 보통의 민 쿠르람부는 코코넛 밀크로 만든다는 뜻이 된다.
내가 오늘 만들어 본 것 역시 이 체티나드 민 쿠르람부인데, 만드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겨자씨와 커민씨드와 커리잎을 차례대로 기름에 튀겨 탬퍼링을 한다. 그리고 양파를 캐러멜라이징하고 커리파우더와 고춧가루, 그리고 소금을 섞는다. 그런 뒤에 토마토를 넣고 졸여서 양념 페이스트를 만든다. 그리고 물과 타마린드 페이스트를 부어서 스프를 만든 후 끓여서 베이스를 만든다. 그 뒤에 미리 손질해 둔 생선을 넣고 10분간 끓인다.
이 요리는 걸쭉한 향신료 국물에 생선의 육수가 스며들어 크림이나 코코넛을 사용하지 않았음에도 제법 깊고 중후한 맛을 낸다. 마치 우리나라의 대구탕처럼 말이다. 개인적으로는 일반적인 북인도 커리보다 한국의 매운탕과 통하는 지점이 많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체팔라 풀루수는 타밀나두 북부의 텔루구어를 사용하는 안드라 프라데시 지역의 피시 커리이다. 체팔라는 현지의 텔루구어로 생선을 의미하고, 풀루수는 타마린드가 들어간 스튜를 뜻한다고 한다. 이 역시 타마린드 피시 커리라는 뜻이다. 다른 2가지 피시 커리와의 가장 큰 차이는 조사한 바에 따르면 국물을 넉넉하게 해서 담백하고 깔끔하다는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솔직히 유튜브의 요리영상만 봐서는 잘 모르겠다.
사실 내가 체팔라 풀루수를 만들 때에는 챗 지피티에서 조사한 한국식으로 어레인지된 레시피와 내가 텔루구어로 되어 있는 유튜브 영상을 보고 멋대로 만든 것이라 국물을 넉넉하게 쓰는 특징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솔직히 민 쿠르람부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을 만들어 먹었던 것 같다.
사실 여기서 재미있는 반전이 하나 있다.
내가 앞서서 인도의 지역적 특수성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 적이 있다. 하지만 우리는 동시에 남인도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인접한 지역이라는 것 역시 이해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위 3가지 커리는 각각 차이점이 분명히 있다. 하지만 내가 인도 현지인들이 유튜브에 올린 영상을 보면서 교차검증한 결과 그 3가지 특성이 항상 실제에 부합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예를 들어서 민 물라키타투는 타마린드 대신 블랙 코쿰을 사용하는 것이 특징이라고는 하지만 막상 유튜브 영상에는 타마린드를 버젓이 쓰는 경우도 있었다. 마찬가지로 코코넛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하는 체티나드 민 쿠르람부의 조리 영상을 보아도 코코넛 밀크를 나중에 추가하는 경우도 있었다. 체팔라 풀루수 역시 딱히 다른 2가지 커리보다 국물을 넉넉하게 쓰지 않는 듯한 영상도 있다.
당연히 이름이 다르니 3가지 커리가 차이가 나는 부분은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지의 재료와 맥락을 100퍼센트 재현할 수 없는 외부자가 보았을 때에는 3가지 커리가 그렇게까지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느낌은 부정하기 어렵다.
여기에는 여러 이유가 있을 수 있다. 우선 방금도 말했듯이 내가 100퍼센트 재현하지 못하는 그 미묘한 디테일에 차이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이 3지역이 서로 인접해 있다 보니 교류를 통해 식문화가 어느정도 영향을 받는 부분도 있을 것 같다.
애초에 인도 커리 자체가 만드는 방법이 사람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같은 커리라고 해도 유튜브 영상을 보면 만드는 방법이 제각각이어서 이게 같은 요리가 맞나 싶을 정도이다. 우리나라도 제육볶음 레시피 영상을 봐도 만드는 방법은 천차만별이다. 아니 커리의 경우는 그보다 더 심해서 완전히 다른 음식을 같은 음식이라고 말하는 경우도 있다.
즉, 케랄라 지역의 요리라고 해도 타밀나두 지역과 비슷해지는 부분이 있을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추측을 하게 된다. 결국 어떤 커리를 만든다고 할 때, 완전히 오소독스한 방식을 찾기란 쉽지 않고 어느 지점에서 타협을 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이것은 내가 조악하게 현지 커리를 재현한 데 대한 변명이 아니라 실제 감상이다. 내가 커리를 완벽하게 재현한다고 해서 나에게 무슨 이득이 있겠는가?
이렇게 알 듯 모를 듯 한 것이 커리의 또 다른 매력이 아닐까, 아니 요리 자체의 매력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