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발라야는 굳이 설명이 필요 없는 한국에도 잘 알려진 대표적인 케이준 음식이다. 생각해보면 나는 꽤나 이른 시기부터 케이준 음식에 대해 알고 있었다. 아직도 생생히 기억나는데 나는 초등학교 1학년 때 길을 걷다가 넘어져서 턱이 찢어진 적이 있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곳이 바로 백병원 앞이었고 운좋게 바로 응급실로 실려가 응급조치를 받을 수 있었다.
그날 저녁 나는 턱에 덕지덕지 반창고를 붙이고 아버지가 사오신 당시 한국에 처음 들어온 파파이스를 먹었다. 그게 내가 처음으로 먹어본 케이준 음식이었다. 어린 내게도 복잡미묘한 케이준 스파이스는 좋은 인상이었고 이후로도 자주 파파이스를 갔지만 어느 순간부터 케이준 치킨은 한국식 치킨에 밀려 설자리를 잃었다. 다행히 한번 철수했던 파파이스가 최근 다시 개업하여 홍대에 있는 파파이스를 몇차례 간 기억이 난다. 버터밀크 치킨은 한국식 치킨과는 다른 굉장히 색다른 메뉴이니 추천한다.
내 개인 이야기는 이쯤 하고, 아무튼 잠발라야는 검보와 더불어 가장 잘 알려진 케이준 요리인데 그래도 혹시나 생소한 독자들을 위해 설명한다면 케이준 양념으로 맛을 낸 미국 스타일의 빠에야라고 부르면 쉽게 이해가 될 지 모르겠다. 빠에야는 쌀에 야채와 해산물을 넣고 찐 음식이다.
사실 이 요리의 조리법을 공부하면서 알게 된 사실인데, 케이준 문화라는 것이 내가 알고 있던 것보다 훨씬 복잡한 것이었다.
보통 케이준이라고 하면 파파이스나 맘스터치의 케이준 감자튀김 정도가 우리나라에 알려진 전부일 것이다. 케이준이라고 하면 대충 어떤 느낌인지 알겠는데 뭔지는 잘 모르겠는 경우가 많다.
케이준 문화가 무엇인지를 이해하려면 미국 루이지애나 주의 독특한 사회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루이지애나는 미국의 다른 주들과는 아주 다르게 굉장히 이질적이지만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3개의 집단과 지역으로 크게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우리나라에도 루이 암스트롱과 재즈로 잘 알려진 뉴올리언스를 중심으로 한 크레올 문화이다. 크레올 문화는 노예로 끌려온 흑인, 현지의 인디언, 뒤에 설명할 프랑스계 백인, 스페인계 백인, 그리고 미국인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만든 혼혈 문화이다. 민족주의자들은 문화의 혼합이 타락을 불러온다고 하지만 사실은 정 반대이다. 인류의 많은 위대한 문화유산은 이런 문화적 혼혈지대에서 태어나는 경우가 많다. 아무튼 이 크레올 문화가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뉴올리언즈의 이미지이고 나도 이것이 케이준 문화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케이준 문화는 크레올 문화와 관련이 깊지만 같은 것은 아니다. 케이준 문화는 루이지애나 중부 내륙지역에 자리잡은 프랑스계 이주민 후손들의 고유의 문화이다. 프랑스계 이주민이 여기로 들어오게 된 데에는 복잡한 내력이 있다. 우리는 흔히 캐나다의 프랑스계 이주민들이 퀘벡에만 산다고 알고 있지만 그렇지 않다. 퀘벡 외부에도 노바 스코샤, 뉴 브런즈윅과 같은 지역에도 프랑스인들이 이주했고, 이러한 퀘벡 바깥의 프랑스계 이주민을 ‘아카디안’이라고 불렀다. 이들은 퀘벡과도 또 다른 별개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프랑스계 이민자의 후손들이다.
하지만 캐나다의 프랑스 식민지가 아주 복잡한 전쟁과 외교를 통해 영국으로 흡수되었고, 영국인들은 퀘벡 밖에 사는 아카디안들을 탄압하고 추방하는 정책을 폈다.
그 결과 많은 아카디안들이 아메리카 대륙의 또 다른 프랑스 식민지인 루이지애나로 이주했다. 그리고 그들의 후손들이 지금의 루이지애나의 아카디안, 프랑스계 이주민들인데 케이준이라는 단어 자체가 아카디안의 준말, 변형어이다. (아카디안에서 A가 빠짐.) 현재에도 소수의 프랑스계 루이지애나인들이 현지화된 독특한 프랑스어를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 아카디안들의 케이준 문화는 순수 프랑스 문화는 아니다. 위에서 말한 다국적 계통의 크레올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자연히 케이준 문화는 프랑스 문화와 크레올 문화의 혼합이라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오늘 내가 만든 잠발라야 역시도 순수한 프랑스 음식이라고 보기는 어려운, 크레올의 영향을 굉장히 많이 받은 케이준 음식이다.
루이지애나의 3번째 집단은 북부지역에 거주하는 남부 백인들이다. 루이지애나의 북부지역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재즈가 울려퍼지는 특유의 루이지애나 문화보다는 텍사스, 아칸소와 같은 전형적인 미국 남부의 문화에 가깝다. 당연히 이런 지역에는 프랑스계 아카디안 이민자나 흑인들이 많이 살지 않는다. 미국의 현 하원의장인 마이크 존슨이 이런 북부 루이지애나의 백인 문화권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재미없는 지리학 강의는 이정도로 하고, 잠발라야라는 음식 자체에 대해 조금 더 생각해보자. 잠발라야는 대표적인 케이준 음식이긴 하지만 앞서 말한 것과 같이 프랑스풍 음식은 아니다. 오히려 스페인의 빠에야나 서아프리카의 졸로프 라이스와 더 비슷하다. 나도 먹으면서 이게 프랑스 음식이라는 생각이 거의 들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것이 뉴올리언즈는 아주 잠깐 스페인 식민지였던 시기가 있었고, 그 결과 스페인의 문화적 영향도 어느정도 받았던 것이다.
잠발라야의 만드는 과정은 이렇다.
우선 소시지와 고기를 볶는다. 나는 고기가 따로 없어서 햄과 소시지만 썼다. 들어가는 육류는 아마도 자유로운 것 같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볶아서 팬 밑바닥에 탄 그을음을 남기는 것이다. 나는 기름을 너무 많이 써서 실패했는데 유튜브 영상을 보니 케이준 잠발라야를 만들 때는 대개 밑바닥에 시꺼먼 그을음을 만든 뒤에 나중에 야채를 볶을 때 음식에 섞이도록 하는 경우가 많았다. 심지어는 아예 밀가루를 익혀서 루로 만들어서 흑갈색을 더하는 경우도 있었다. 아무튼 잠발라야라는 음식 자체가 거무죽죽한 특유의 케이준 색감이 돌아야 한다. 이런 점을 보면 프랑스 음식 같다. 물론 나는 여기에 실패했기에 프랑스 스러움을 느끼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햄과 고기를 볶은 뒤에 팬에서 빼고 다시 양파를 볶아서 투명하게 만들고, 거기에다가 피망과 샐러리, 기타 야채를 넣는다. 챗 지피티에서 조사를 하다 알아낸 것은 케이준 음식에 있어서 양파, 샐러리, 피망이 삼위일체라고 한다. 즉, 절대로 빠질 수 없는 필수 요소라는 것이다. 샐러리의 향긋한 향만 생각해도 무슨 이야기인지 알 것 같았다. 하지만 슬프게도 나는 고작 잠발라야 한접시를 만들기 위해 비싼 피망과 샐러리를 살 수가 없어서 샐러리는 빼고 양파와 냉동 파프리카만 넣었다.
아무튼 야채까지 익힌 뒤에는 토마토 퓨레를 넣고 졸여서 물기를 날려준다. 그리고 타임, 오레가노, 후추, 고춧가루, 소금, 마늘을 넣는다. 사실은 파프리카, 카이엔 페퍼, 흑후추, 백후추, 마늘가루, 양파가루, 오레가노, 타임, 소금이 들어가는 케이준 파우더도 넣어야 하는데 역시나 구하기가 어려워서 최대한 재현만 했다. 그리고 나서 아까 구운 뒤 빼둔 각종 육류를 넣는다.
그러고 나서 쌀을 넣는다. 우리나라와는 달리 밥을 짓지 않고 쌀을 넣은 뒤에 육수를 부어 찌는 형태를 취한다. 쌀과 물을 넣고 20분간 약불에 찐 뒤에 다시 5분간 뜸을 들인다. 그러면 완성이다.
졸로프 라이스와 마찬가지로 한국인에게도 아주 익숙한 맛이다. 풀스펙의 케이준 스파이스를 사용하지 못했으니 대략적인 흉내만 낸 편이긴 하지만. 애초에 케이준 음식 특유의 재료들이 우리에게도 그렇게 낯설지가 않다. 양파, 샐러리, 피망, 파프리카, 마늘 등등은 우리가 흔히 쓰는 재료들이 아닌가. 어딘가 패스트푸드에서 먹었을 법한 맛에 소시지와 고기가 듬뿍 들어갔으니 맛이 없을 리가 없다.
하지만 나는 기대만큼은 아니었는데 풍미가 강하지가 못했다. 이게 내가 물조절을 잘 못한 것인지, 아니면 케이준 파우더를 사용을 안해서 그런지 잘 모르겠다. 빠에야, 졸로프 라이스, 잠발라야와 같은 음식들은 물조절이 생각보다 어렵다. 너무 적으면 밥이 잘 안 지어지고, 너무 많으면 죽이 된다. 오늘도 물을 너무 많이 넣었나 싶었는데, 또 시간이 지나니 물을 먹어서 괜찮은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잘 모르겠다.
완성된 잠발라야를 먹었을 때, 처음에는 반쯤 죽처럼 되어 실망했지만 막상 먹다보니 밥이 물을 많이 먹어 주어서 괜찮았던 것 같다. 기본적으로는 얼마전에 먹었던 졸로프 라이스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토마토 소스에 밥을 넣고 찌는 개념이라 그런 것 같다. 하지만 졸로프 라이스와 다른 장점은 육류가 풍부하다는 것이다. 물론 졸로프 라이스도 치킨이나 생선튀김을 곁들이는 경우가 많지만, 잠발라야는 애초에 밥반 고기반인 느낌이라 굉장히 풍성한 맛을 느낄 수 있다.
솔직히 초이왕이나 삼바르와 같은 외국 요리는 호불호가 갈릴 수 있어 추천하기 어렵지만, 잠발라야는 도저히 된장찌개와 김치가 없으면 식사가 안되는 극단적 한식 원리주의자만 아니라면 누구나 가볍게 즐길 수 있는 메뉴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 한국에 소개되는 양식이라는 것이 햄버거, 피자, 파스타와 같이 정형화되어 소개가 되고 다양성이 소거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 잠발라야같이 그렇게 부담스럽지 않으면서도 현지 맛 체험이 가능한 메뉴가 좀 더 소개된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