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식열전 (15) 발륵 부우라마

by 이그나티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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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륵 부우라마. 터키음식에 환장하는 나로서도 처음 들어보는 굉장히 생소한 요리이다. 물론 터키에서는 굉장히 유명한 요리라고 하니, 그만큼 내가 아직도 공부할 것이 만다는 뜻일 것이다. 이 발음하기도 어려운 요리는 너무나도 생소해서 나는 아직도 발륵 부우마라인지 부우라마인지 혼동이 된다. 터키 분들에게는 정말로 죄송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막상 이 음식을 먹어보면 그렇게까지 생소한 음식은 아니다. 발륵 부우라마는 쉽게 말해서 터키식 생선찜이다. 단, 우리나라의 갈치조림처럼 무와 고춧가루를 넣고 푹 졸여낸 음식은 아니다. 사실 국물을 넣고 찌듯이 조려낸다는 점은 같은데, 매운 양념이 전혀 들어가지 않는다. 그래서 비주얼은 갈치조림 같지만(국물이 자박하게 깔린), 맛은 황태국이나 맑은 대구탕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어느 쪽이건 우리에게 익숙한 감각이다.


단, 발륵 부우라마에는 레몬이 들어가는데 이것이 한국 사람들 입장에서는 굉장히 낯설게 느껴질 것이다. 이걸 받아들이느냐 마느냐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것 같다. 나는 굉장히 좋았다. 왜냐하면 맵고 단조로운 맛을 별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이 음식은 만드는 입장에서도 굉장히 좋은 음식이다. 우선 만들기가 굉장히 간단하다. 맨 바닥에 양파를 깔고, 그 위에 당근과 감자를 깔고, 흰살 생선을 깐다. 나는 언제나처럼 냉동 코다리를 사용했다. 그리고 올리브유를 골고루 뿌려준다. 다시 그 위에 토마토와 레몬을 깔고 올리브유를 한층 더 뿌려준다. 간을 간단하게 하고 물을 자작하게 부은 뒤 냄비 뚜껑을 덮고 중약불로 20분에서 25분정도 찌면 끝이다. 중간에 뒤집을 필요도 없고, 불을 다시 조절할 필요도 없다. 거의 전자레인지마냥 그냥 놔두고 애니 한편 보고 오면 된다.


또 한가지 장점은 재료들이 우리나라에서는 쉽고 저렴하게 구할 수 있다는 점이다. 대개 에스닉 요리라는 것이 재료를 구하기가 어려운 것이 문제이다. 사프란처럼 한국에서는 비싸고 구하기 어려운 향신료가 들어가거나, 양고기나 염소젖 치즈처럼 한국에서는 비싸거나 구하기 어려운 식재료가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조리법은 입수해도 실제로 따라하기는 어려운 경우가 많다.


실제로 터키음식의 경우 양고기를 많이 쓰고, 한국에서는 잘 사용하지 않는 유제품이 들어가는 경우가 많아서 실제로 따라하기는 쉽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래서인지 우리나라의 터키음식점에서도 거의 케밥 위주의 메뉴만을 취급한다.


하지만 발륵 부우라마는 한국에서도 구하기 쉬운 양파, 당근, 감자, 흰살생선, 올리브유, 토마토, 레몬이라는 간단하고 상대적으로 저렴한 재료만이 쓰인다. 그나마 레몬과 올리브유가 희귀한 재료인데, 이것도 양 숄더랙 같은 재료에 비한다면야…


마지막으로 이 음식은 실패할 확률이 전혀 없는 음식이다. 대개 음식이 실패를 하는 이유가 불조절에 실패하기 때문이다. 나는 유튜브에서 “이 영상 하나로 스테이크 굽는 법 마스터!”라는 영상을 10개 넘게 배웠지만 아직도 내 스테이크는 덜 익거나, 오버쿠킹 되거나, 질기기 짝이 없다. 물론 좋은 고기를 안 써서이기도 하겠지만 스테이크 불조절이 그만큼 어렵다. 다른 요리들도 불조절에 실패해서 망치는 경우가 부지기수이다. (그 다음이 간조절 실패) 특히 팬에다가 굽거나 튀기는 요리는 숙련된 사람이 하지 않으면 실패하기가 딱 좋다.


하지만 이 음식은 마치 부대찌개처럼 모든 재료를 때려놓고 물 붓고 끓이면 땡이라 실패할 확률이 없다. 마치 전기면도기가 베일 위험이 거의 없는 것처럼 이 음식은 망칠 위험이 별로 없는 것이다. 아침에 전기면도기로 쓱쓱 면도하는 기분으로 요리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장점이다.


나는 이 음식을 요리하고 만들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해 봤다.


우선 재미있는 것은 이 음식이 다른 터키 음식처럼 전형적인 중앙아시아 스타일이거나 중동 스타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터키 음식은 중앙아시아 스타일의 고기 꼬치구이 종류들과 커피나 팔라펠 같은 중동 스타일의 메뉴가 많다. 중동 계열의 메뉴들의 경우에는 중동 특유의 시나몬이나 카르다몸 향이 물씬 나는 것들이다.


그런데 발륵 부우라마는 그 어느 것에도 속하지 않는다. 굳이 따진다면 소위 요즘 ‘지중해식 식단’이라고 부르는 남유럽 음식과 닮았다. 사실 이 발륵 부우라마처럼 야채와 생선, 올리브유를 넣고 쪄버리는 스타일의 요리가 지중해 해안지역 전역에 존재한다. 이탈리아의 아쿠아 파차, 스페인의 페스카도 엔 살사 데 토마토, 포르투갈의 칼데이라다, 그리스의 프사리 플라키 등등. 이런 음식들은 재료나 조리방식이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요리의 기본 구조는 크게 다르지가 않다.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도 아닌 것이 우리는 터키를 이슬람권이라고만 생각하지만, 사실 터키(정확히는 터키아 위치한 아나톨리아 반도)는 더 오랫동안 지중해 문명권이었다. 고대 그리스 시절부터 터키는 그리스, 이탈리아, 북아프리카, 스페인을 포괄하는 지중해 문명의 일부분이었고, 현재의 정치적 긴장관계와는 무관하게 그들과 많은 문화를 공유한다.


생각해보면 중근동 지역에서는 분쟁이 심한 지역일수록 역설적으로 식문화가 비슷하다. 그리스와 터키는 엄청나게 사이가 좋지 않지만 그들의 식문화는 아주 비슷하다. 케밥과 수블라키, 그리고 이 발륵 부우라마와 프사리 플라키처럼. 고기 꼬치구이, 올리브유, 치즈, 생선, 빵과 같은 재료를 기반으로 하는 메뉴를 선호한다는 점에서 터키와 그리스는 굉장히 비슷한 식문화를 갖고 있다. 비슷한 사례로 이스라엘과 인근 중동국가의 요리들도 팔라펠이나 후무스와 같은 메뉴를 공유하는 아주 비슷한 식문화이다. 물론 식문화의 유사성과 무관하게 중근동의 인근 국가들끼리 사이가 안 좋고 상시 분쟁상태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화적 차이와 분쟁이란 과연 무엇일까를 생각하게 한다.


그리고 또 한가지 생각해볼 부분은… 이슬람권은 막연히 내륙문명이라는 그런 고정관념이다. 사막, 낙타, 대상, 오아시스, 테크니컬 트럭, 유전, 베두인 복장, 사막 위의 신도시와 같은 것들이 우리가 생각하는 중동의 이미지이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그것이 이슬람권의 전부는 아니다.


이슬람권 내에는 의외로 해양문화권이 많다. 예를 들어서 단일 국가로서 제일 인구가 많은 이슬람 국가는 인도네시아인데 이곳은 섬나라이다. 또 오만이나 말레이시아처럼 과거 해상제국을 만들었고 지금도 중요한 해상국가인 나라들도 있다.


또 중요한 것이 오늘 이야기하는 터키이다. 터키는 섬나라는 아니지만 3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반도국가로 흑해와 지중해는 터키의 사회와 문화에 아주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생각해 보면 최근 증가세인 터키 여행 덕분에 우리나라에도 이미 터키의 고등어 케밥과 같은 요리들이 소개되지 않는가?


해상국가일수록 생선요리가 많다. 일본, 한국,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 포르투갈과 같은 해상국가들은 하나같이 풍부한 해산물 요리를 갖고 있다. 터키도 다르지 않은 것이다. 터키와 같이 삼면이 바다인 나라에 해산물 요리가 많은 것이 당연하고, 거기에 관심이 없던 내가 오히려 이상한 것이었던 셈이다.


사실 이 일을 계기로 나는 앞으로 새로운 해산물 요리를 찾기 위해 알제리, 모로코, 오만, 예멘처럼 이슬람권이지만 해상국가인 나라들의 요리를 좀 더 찾아볼 생각이다. 내가 단순히 힙스터 기질이 있어서 외국 음식을 찾는 것은 아니다. 애초에 나는 매운 음식을 잘 먹지 못해 한식의 소화능력이 떨어진다.


게다가 더 중요한 것은 지금 물가가 엄청나게 빠르게 오르고 있다는 점이다. 끝없는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식자재 수급이 점점 어려워진다. 같은 메뉴를 끝없이 반복할 경우 식비는 무조건 늘어나게 되어 있다. 대체재를 찾아 메뚜기가 뛰듯이 끝없이 움직이지 않으면 살림살이를 감당할 수가 없다. 다행히 나는 호기심 많은 입맛을 갖고 있고, 조금이라도 식비를 아끼기 위해 생소한 국가의 요리로 언제든지 갈아탈 준비가 되어 있다. 생각해보면 코다리로 터키 음식을 해 먹는다는 발상은 1년 전의 나로선 하지도 못한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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