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미 Mar 25. 2022

밤꿀 차 한 잔

하루키처럼 살 순 없어도 에세이는 쓸 수 있지 


 커피를 좋아한다. 다음 날의 커피를 떠올리며 잠자리에 들만큼. 커피가 인생의 낙인 사람이 커피를 사양하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코로나 확진의 여파였다. 그 좋던 믹스커피보다, 금방 내린 뜨거운 아메리카노보다 따뜻한 물을 찾았다.      

 쿨럭쿨럭 기침을 할 때마다 귓속까지 따끔따끔한 기분이 들었다. 한밤 중에도 기침 때문에 몇 번이나 깨고, 걸걸하게 쉰 목소리는 쉽게 돌아오지 않았다. 그럴 때 텀블러에 꿀 세 스푼 넣고 뜨거운 물을 담아 맛 미ᅟ견 목에 코팅을 한 것처럼 편안해졌다.      


 밤꿀 차는 시이모의 선물이었다. 기관지가 안 좋을 때는 밤꿀 차만 한 게 없다고. 하루 한 잔은 약이 된다고 남편을 통해 보내온 것이었다. 며칠 전에 지구에 벌이 사라지고 있어서 꿀 구하기가 힘들다는 뉴스를 봤다. 나는 꿀이 담긴 병의 뚜껑을 열며 언젠가 꿀을 먹지 못하는 세상에 대한 상상 한다. 인간과 벌. 벌은 곤충을 뜻하기도 하지만 잘못을 하거나 죄지은 사람에게 주는 제재나 고통을 뜻하기도 한다. ‘벌’이라는 단어가 가진 이중적인 의미가 새삼 와닿았다. 전염병과 기후위기의 시대. 인간이 꿀을 먹지 못하는 건 아주 작은 벌에 불과하다는 생각에 마음이 가라앉았다. 



 밤꿀 차를 홀짝이며 읽은 책은 <다른 삶>. 프랑스에서 살고 있는 곽미성 작가의 신간이었다. 쌍둥이 형제와 함께 격리된 방에서 종일을 부대끼며 내게 필요한 것은 상상력이었다. 정신만은 완전히 딴 세상으로 떠나보내고 싶은 마음이 투영된 선택.      


때로 스스로의 한계를 빨리 인정하는 것이 자신에 대한 예의일지도 모른다

모두의 삶에 정답이 하나일 수는 없다     


- 9년 11개월에 대한 예의 中      


 <애매한 재능>의 저자답게 재능에 대한 곽미성 작가의 생각이 눈에 띄었다. 이래서 내가 책을 읽지! 삶에 대한 서로 다른 해석을 발견할 수 있는 귀한 순간. 그래, 에세이 <애매한 재능>도 삶에 대한 나의 정의일 뿐이다.

     

 일주일 동안 쌍둥이와 격리생활을 가지면서 밤꿀 차를 여러 잔 마셨다. 밤꿀 차는 다른 꿀차와 다르게 씁쓸한 맛이 느껴진다. 그 씁쓸함 때문에 호불호가 나뉘는 모양이었다. 약을 먹고 몽롱한 기운에 누워서 검색창에 하릴없이 ‘밤꿀 차’를 검색해보고 알게 된 정보였다. 


 아픈 동안 낮잠을 자주 잤다. 잠만 한 도피가 없었다. 자고 일어나도 해가 중천일 때는 일을 했다. 일은 시간을 때우는 괜찮은 방법이었다. 쿨럭이는 목소리로 방송 출연자 섭외를 했다. 평소라면 가장 하기 싫어하는 일이었다. 숱한 거절의 말을 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격리 생활을 하는 동안만큼은 전화 섭외가 재밌었다. 핸드폰을 통해 낯선 목소리를 듣는 게 좋았다. 방에 갇혀있지만 타인과 연결되어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라도 바깥을 상상하는 일이 좋았다. 

매거진의 이전글 위스키 한 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