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영감에 대해 가지고 있던 생각이다. 위대한 발명가 에디슨도 천재는 99%의 노력과 1%의 영감으로 만들어진다고 했다는데, 아니 1%만 있어도 천재 소리 듣는 영감을 감히 내가 가지고 있을 리 있나. 심지어 영감은 한자 '신령 영'과 '느낄 감'이 결합되어 만들어진 단어다. 그래서 국어사전에도 '신령스러운 예감이나 느낌'이라는 뜻이 '창조적인 일의 계기가 되는 기발한 발상이나 자극'의 뜻보다 앞서 있다. 신령스러운 예감이라니, 역시 나 같은 평범한 사람이 가질 수 있는 게 아니었어.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영감이라는 것을 포기하지 못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업무적인 측면에서도 그렇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는 공간을 만들고 싶은 욕심이 항상 마음속 한편에 있으니까 말이다. (내가 영감이라는 걸 가지고 있어야 주든 말든 할 것 아닌가) 컨셉진의 81번째 주제는 바로 '영감'이었다. 성냥에 감각 있는 디자인의 패키징을 더하면서 최근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오이뮤의 브랜드 스토리와 배달의민족 마케터 출신으로 최근 <기록의 쓸모>를 쓴 이승희 님, TBWA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이자 <평소의 발견> 저자 유병욱 님과의 인터뷰. 그들이 이야기하는 영감이란 본래 거창함보다는 사소함에 가까운, 일상 속 어디서나 건질 수 있는 것이었다. 어마 무시한 능력자들의 전유물은 아니라는 생각에 조금은 다행이다 싶었지만, 그렇다고 누군가 내게 당신의 삶엔 영감이 있나요?라고 질문을 던진다면 자신 있게 그렇다고 대답하기는 여전히 어려웠다.
TV와 컴퓨터 모니터에 묻어있는, 지하철 맞은편 사람이 흘리고 간, 큰 소리에 깜짝 놀라 뒤돌아보는, 차가운 얼음처럼 혀 끝으로 느껴지는, 길 건너 간판의 글씨체가 보여주는, 옆 자리에서 재잘거리는, 고소한 향기와 함께 바람결에 불어오는, 버스 창밖으로 가로수가 남긴. 수많은 일상의 영감들을 모두 그대로 흘려보내고 있으니까 말이다. 그나마 최근에 책을 통해 느끼는 감정, 그와 관련된 경험, 생각들을 이렇게 끄적이게 된 것이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선가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무언가를 창작하는 것은 수건을 쥐어짜는 것과 같아서, 말라붙은 수건을 백날 쥐어짜 봤자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고. 평소부터 한 방울, 한 방울의 영감을 잘 적셔놓아야 할 필요가 있다고.
일단 두 가지만 해보자.
첫째, 보고 듣는 것에 만족하지 말고 직접 다양한 경험을 해볼 것.
둘째, 짧은 글이든 그림이나 사진이든 느낀 바를 기록해서 지나가는 영감을 놓치지 말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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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우연히 한 작은 책방에서 발견한 뒤 '당신의 일상이 조금 더 아름다워집니다'라는 문구에 반하여, 그 이후로 정기구독을 하고 있는 월간지 컨셉진. 매월 새로운 주제를 던져주고, 그로부터 파생되는 브랜드나 상품, 장소에 대한 소개와 인터뷰, 에세이와 사진, 독자들의 이야기 등이 담긴다. 처음 접했을 때에는 한창 브랜드 마케팅과 고객 인터뷰 관련 업무를 하고 있던 때라 브랜드나 상품에 대한 소개가 눈에 들어왔었는데, 지금은 서비스 기획 업무를 하다 보니 할 말은 하면서 불필요한 것들은 덜어내는 구성이라든가 독자들을 끌어당기고 참여를 유도하는 콘텐츠로 자연스레 시선이 향하게 된다. 본인의 단단한 취향을 드러내는 에디터의 짧은 글과 사진을 읽으며 느끼는 감정은 덤이다.
"생산자의 입장에 한번 서 보면 작은 것들을 더 볼 수 있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명함을 한번 만들어보면 '디자인을 할 땐 이런 점도 신경 쓰고, 종이는 어떻게 골랐겠다'라는 걸 알게 되잖아요. 그럼 명함 받았을 대 '어떻게 이렇게 만드셨어요?'라는 얘기를 할 수 있게 되죠. 그리고 예전에 배달의민족에서 함께 일한 장인성 상무님이 해주신 말인데요. 요즘 유튜브 채널을 시작했는데, 시청자 입장일 때는 '재밌다'하고 끝이었대요. 근데 요즘은 직접 편집을 하니까, '저렇게 장면 전환할 땐 카메라가 몇 대 필요했겠네', '음악이 몇 초 단위로 바뀌네' 같은 게 보이기 시작해서 너무 신기하다는 거예요. 확실히 뭔가를 만들어본 사람 입장에 서면 디테일을 발견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런 게 보일수록 영감을 더 많이 받을 수 있고요."
(p. 61)
일이든, 일상이든, 혹은 전체적인 삶의 방향이든. 더 나아지고 싶은 것은 뭐든 될 수 있다. 영감이란 무엇이든 더 나아지고 싶은 마음을 먹게 하는 것이다. 물론 그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에게도 마찬가지다. "영감이라는 단어가 크리에이티브한 작업을 하는 사람들한테 주로 쓰이지만, 사실 모든 사람이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삶을 산다고 생각해요. 슈퍼에서 물건을 파는 분들도 언어로 커뮤니케이션하면서 결과물을 내는 거고요. 그래서 모든 사람에게 영감이 필요하고, 중요한 것 같아요. 영감을 찾으면서 살면 감사하며 살게 되거든요. '나 오늘 이런 것도 봤고, 저런 것도 봤다' 하면서 스스로 인생의 의미를 찾아가는 일인 것 같아요. 그렇게 의미 부여를 하는 거죠. 그래서 하루를 살아도 '오늘도 잘 살았다' 느낄 수 있게 된 게 달라진 점이에요."
(p. 66)
"회의를 할 때도 아이디어가 잘 안 나오고 답이 없다고 해서 늦게까지 남자고 하는 게 아니라 팀원들에게 시간을 줘요. '어떻게든 되겠지, 괜찮아'하고 그다음 날로 미루고 그때까지 알아서 시간을 쓰라고 해요. 몰아세우지 않고 새로운 뇌로 다시 일할 때 훨씬 결과물이 좋았거든요. 저랑 같이 일했던 팀원들도 나중에 저와 헤어질 때, 제일 좋았다는 얘기가 '어떻게든 되겠지'래요." 그의 말을 들어보니 영감은 곧 순간이라는 말과 같은 뜻이었다. 영감이 있을 때, 어떤 순간이 내 안에 쌓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작은 영감이 모여 커다란 결과물이 만들어진다. "예전에 저의 스승이신 박웅현 CCO님이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어요. 대단한 순간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받아들이는 내가 있는 거라고요. 그 말을 듣고 보니까 맞더라고요. 정말 좋은 것들이 제 주위에도 있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