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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Z

간첩과 만난 병사에게 닥친 공포

by 루파고

칠흑 같은 밤을 보았다. 그 전까지는 그런 어두운 밤이 있을 것이라곤 상상하지 못했었다. 설악산에도 그런 어둠은 있었다. 지금의 어둠은 수 킬로미터 앞에 그 누구의 인기척도 느낄 수 없을 정도다. 설악산에도 그런 어둠은 없었다. 설악산에서는 언제나 내 근처 어딘가에 누군가 있었다. 확인한 적은 없지만 누군가 어딘가에서 야영을 하고 있을 것이었다.

나는 산이 그냥 좋았다. 내가 원하기만 하면 자유가 있었다. 누군가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그런 자유 말이다. 시끄러운 세상에서 귀를 닫고 싶을 때면, 복잡한 것들로부터 마음의 평정이 필요할 때면, 어지러운 시선들로부터 눈을 감아버리고 싶을 때면 나는 산을 찾았다. 그곳에는 산이라고 선을 그어놓은 곳 밖에서는 찾을 수 없었던 것을 찾아낼 수 있었다. 적어도 내가 원한 것들 중 어느 하나라도 그곳엔 항상 있었다. 줄을 설 필요도 없고, 시간에 쫓길 필요도 없고, 내 자리를 찾아 다닐 필요도 없었다. 그 흔한 시계의 알람이나 삐삐 소리조차도 그곳에는 없었다. 내가 조금만 부지런을 떨면 그 어떤 곳에서도, 그 어떤 세상의 명작동화도 내게 주지 못했던 감동을 주었다. 그것들은 나를 시인으로 만들었고, 비록 가사를 알 수 없지만 어디선가 꼭 들어본 듯한 멜로디만 으로 휘파람 가수가 되기도 했다. 가끔! 아주 가끔은 화가가 되기도 하고, 건축가가 되기도 했다. 내가 원하기만 하면 환경운동가가 될 수도 있고, 동물보호가, 자연보호주의자가 될 수도 있었다. 내게는 그런 곳이 산이었다. 그 중에서도 기암절벽으로 꽉 찬 설악산의 천화대나 용아 장성 같은 곳은 내게 여러 가지 즐거움과 안식을 주는 장소였다. 그러나 그런 설악산조차도 DMZ에는 비교할 수 없었다. 물론, 인위적인 것으로 치자면야 설악산보다 훨씬 훼손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도 극히 일부일 뿐, 수십 년 동안 그 누구의 손도 닿지 않은 철책 너머에는 미지의 것들이 있었다. 그냥 있었다. 누가 뭐라고 해도 그것들은 그냥 있었다. 소리를 질러도 그것들은 그냥 있었다. 그 안쪽을 드나드는 수색대라 불리는 군인들도 기껏해야 항상 지나다니는 길 외에는 알지 못했다. 군데군데 미확인 지뢰지대라는 역삼각형 경고문이 매달려 있는 길가의 표식만이 민정경찰 딱지를 붙이고 있는 군인들의 출입 한계선이었다. 가을철이 되면 본부의 지시대로 싸리비 백 개를 만들기 위해서 미확인 지뢰지대를 넘어서야만 했다. 싸리비는 겨울철에 보급로와 소초 주위에 쌓인 눈을 쓸기 위해서 꼭 필요한 물품이었다. 보급 차량이 다니는 길 주변의 싸리 나무는 기껏 수십 센티미터를 넘지 못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눈에 띄는 싸리나무는 언제나 싸리 빗자루 후보 일 순위였기 때문이다. 나는 군대에 가서야 싸리비가 싸리 나무로 만들어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시골 출신의 고참 선임병들은 군대에서의 경험 때문인지 이미 고향에서부터 알고 있었던 것인지는 알 수는 없지만 싸리나무에 대해 박식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내게 참싸리와 개싸리 두 가지 싸리나무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지만 평생을 도시에서 나고 자랐던 내게는 참싸리나 개싸리나 그게 그거처럼 보였다. 물론 나는 고참이 되어서도 그것들을 구별할 수 없었고, 지금 역시 마찬가지다. 이제는 싸리나무가 어떻게 생긴 것인지 기억조차 가물가물하다. 어쨌든 우리는 미확인 지뢰지대를 수시로 출입했다. 그렇지 않으면 싸리비 백 개를 만든다는 건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것이었다. 우리는 그렇게 해서라도 싸리비 제작을 마쳐야만 했다. 그리고 그걸로 한 겨울을 났다. 이 미터 가까운 길이의 싸리비가 닳아서 일 미터도 채 되지 않는 길이가 되어갈 즈음에는 기나긴 겨울이 다 지나가고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었다. 보급로 옆 양지바른 곳에는 새싹들이 얼어붙은 땅을 비비고 솟아올랐다. 하지만 봄이 오고 있다는 걸 제일 먼저 알려주는 것은 새싹이 아니었다. 싸리나무에 새싹이 트기 전에 솟아오른 봉오리들이 제일 먼저 봄을 예견할 수 있게 했다. 영하 이십 도는 보통이고, 체감온도 영하 삼십 도에 육박하는 해발 천이백 미터 가까운 능선에서 맞이하는 겨울은 설악산의 겨울과는 너무 달랐다. 나는 겨울철이면 설악산에서 계곡을 찾아, 아니! 빙벽을 찾아 다녔었다. 청빙이라고 부르는 파란색 얼음이 되어버린 계곡 위에 텐트를 치고도 살아보고 눈으로 설동을 파서 그 안에서 자 보기도 했다. 강풍을 이기기 위해 눈으로 바람벽을 만들기도 했지만 그땐 설동도 텐트도 없이 비박을 할 때였다. 한번은 선배가 챙기기로 했던 텐트 폴대가 없어서 텐트 플라이만 천막처럼 쳐 두고 일주일을 지낸 적도 있었다. 그래도 설악산에서의 추위가 군대에서의 추위보다 나은 것도 있었다. 적어도 방한을 위한 의류는 군대 보다 좋은 편이라고 할 수 있었다. 물론, 그때는 요즘처럼 우모복이나 고어텍스 같은 기능성 등산의류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았다. 집에서 입던 골덴 바지와 홑겹으로 된 코오롱 땀복이 전부였지만 그래도 군복보다는 따뜻했다. 능선 위에 홀로 우뚝 솟아있는 시멘트 블록 초소도, 크게 파묻혀 밖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벙커도 앞은 훤하게 뚫려 있었다. GOP에서 이등병과 일등병 시절을 보냈던 나는 거친 겨울바람을 온몸으로 맞아야만 했다. 병장 전역을 앞둔 왕 고참들은 그 세찬 바람이 조금이라도 덜 들이닥치는 곳에 자리를 잡고 코까지 골며 자곤 했는데, 그들의 내공은 지금의 나로서도 이해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적어도 내가 병장 말 호봉이 되었을 때도 그들의 내공을 가질 수 없었다는 것을 확신한다. 나는 GOP에 두 번 다시 들어가지 못했기 때문에 나의 내공이 어느 정도인지 확인할 수 없었다. 하긴, 나는 이등병 때도 K2 소총을 든 채 달빛 아래 졸아 본 적은 있었다. 그 추위에도 초병 근무를 서다가 선 채로 졸 수 있었다는 걸 생각해보면 그 당시에도 군기가 많이 빠져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한번은 무릎을 초소 벽에 부딪치며 잠에서 깨었지만 나는 모른 척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고참은 <너! 졸았지? 이 자식아!> 하면서 윽박질렀던 것이다. 그땐 왜 그 생각을 못했는지 모르겠지만, 분명히 그는 경험에 의한 것이었으리라 추측해본다.

추운 겨울바람보다 예쁜 초승달이 더 기억에 남는 밤이었다. 나는 생전 처음으로 동물원 밖에서 올빼미를 보았다. 그것도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삼십 분 정도 서로 마주 보았다. 푸드덕거리는 소리와 함께 초소 앞 나무 위에 자리를 잡은 올빼미는 기지개를 펴는지 긴 날개를 펴서는 내게 큰 덩치를 자랑하는 듯했다. 물론, 그 녀석의 바램대로 나는 그 녀석은 큰 덩치를 보고 놀라고 있었다. 다시 날개를 모은 채 굵은 나뭇가지에 앉아있는 올빼미의 모습은 미야자키 하야오의 <마녀 배달부 키키>에서나 나올 것 같은 모습이었다. 감동적이었다. 눈물이 났다. 바람이 너무 매서워서다. 오해는 하지 말자. 지금도 그 올빼미의 위엄하신 풍채가 기억난다. 오뚝이 같은 몸매에, 머리는 거대한 녀석이 코는 어디로 갔는지 찌그러져서 구멍만 두 개 뚫어놓은 것 같이 못생긴 녀석이었다. 눈은 정말 컸다. 꿈뻑 꿈뻑 거리는 그 녀석의 눈은 오히려 거대해 보였다. 꼭 눈에 빨려 들어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목 부위는 깃털이 겹쳐 있었는데, 그 녀석은 삼십 분 내내 한 자리에서 쉴 새 없이 두 가지 행동을 반복했다. 그 녀석의 목은 좌로 백팔십 도, 우로 백팔십 도가 돌아갔다. 정말 신기했다. 그런 모습을 볼 수 있었다는 것은 내게 큰 행운이었다. 그리고 가끔씩은 고개를 숙여 깃털 여기저기를 정리했다. 그러고 보니 그 부리는 맹수의 부리라고 하기에는 너무 못생겼던 것 같다. 하지만 강해 보였다. 고참은 내내 잠들어 있었지만 나는 그 장면을 고참과 공유하고 싶지는 않았다. 시끄러운 소리에 그 녀석이 날아가 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음 근무자가 교대근무를 왔을 때, 그 녀석은 DMZ의 먼 곳으로 날아가 버렸다. 아마 그곳에 그 녀석의 가족과 친구들이 살고 있을 것이었다. 나는 가끔 초소 안에서 재미있는 녀석들을 만나기도 했다. 족제비가 누군가 먹다 남긴 건빵을 훔쳐먹다 내게 들켜 매우 놀란 표정을 하고 있던 장면은 내 기억 속에 한 장의 스틸컷처럼 남아있다. 언젠가는 초소 안에 들어온 뱀도 한 마리 있었다. 청설모, 다람쥐도 있었다. 지나는 길에는 얼어 죽은 까마귀, 허물 벗은 뱀, 까마귀 떼에게 쫓겨나간 독수리 부부, 거대한 몸집의 멧돼지, 이중 철책 사이로 뛰어다니는 고라니. 사실, 그 녀석이 고라니 인지, 사슴 인지, 노루 인지는 알 수 없다. 내 눈엔 그냥 그 녀석들이 다 그 놈이 그 놈이었으니까. 우리 부대는 그 녀석 때문에 며칠을 고생했다. 이중 철책 사이에 있다는 건 어딘가 구멍이 났다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왜 하필 우리 부대가 근무 중일 때 그 녀석이 그곳에 왔는지는 알 수가 없지만, 아무튼 그 녀석 덕에 개고생을 했다. 우리는 모든 철책을 다 조사했지만, 우리 부대가 관할하는 구간에서는 구멍 난 곳이 없었다. 결론은 다른 곳에서부터 왔다는 것인데 초병들이 다들 얼마나 놀랐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DMZ의 동물들 이야기가 아니다. 겨울이야기도 아니다. 추운 겨울이 지나고 나서 일어난 사건에 대한 이야기다. 새싹이 보이기 시작한 건 정말 잠깐이었다. 난 워낙 연두색을 좋아하는 편이라, 사월부터는 역마살이 끼어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편이다. DMZ가 연두색으로 물들어 숲이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내내 온 산의 연두가 미친 듯이 내 심장을 두드려 대는 통에 나는 철책을 넘는 상상도 했었다. 월북이나 탈영 같은 것을 상상한 것은 아니다. 그저 연두가 좋았을 뿐이다. 지금도 나는 온 세상이 연두로 물이 들어갈 즈음이 되면 심장이 자제하지 못할 정도로 쿵쾅거린다. 그럴 때면, 언제나 나는 이미 설악산 비선대 근처에 있었다. 아무튼 DMZ는 온통 연두였다. 그날은 야간 A조 근무였다. 일몰 전, 우리 분대는 <한 마리 잡아 집에 가자!>를 외치고는 각자의 초소로 향했다. 주간 근무와 교대하는 것이다. 그날 우리가 감시해야 할 초소는 다른 초소와는 구간이 제법 떨어진 곳이었다. 당시 상병 말 호봉이었던 호랑이 같은 고참과 아직 군인의 모습이 완전치 않은 이등병 말 호봉이었던 나는 주간 근무자와 초소를 교대했다. 이제 겨울이 지나간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산간이라 아직 춥기는 마찬가지였지만 고참은 교대하자마자 헬멧을 뒤집어 동그란 부분이 바닥에 가도록 하여 엉덩이에 깔고 앉아서 잠이 들었다. 그는 앉자마자 살짝 코까지 골며 자고 있었다. 나는 가끔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정말 간첩이 넘어온다면 과연 이들은 간첩을 잡을 수 있을까? 총은 쏠 수 있을까? 나는 해질 무렵의 북한 쪽 군인들을 살폈다. 쌍안경으로는 북한군의 모습이 아주 조그맣게 보인다. 언제쯤 생산된 제품인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 쌍안경이지 성능은 형편없다. 북한군은 오후 나절부터 북한군 초소 근처에 불을 질렀다. 하루 종일 여기저기서 연기가 솟아올랐다. 고참들은 북한군이 화전을 일구는 것이라 했다. 북한군은 보급이 부족해 직접 화전을 일구어 먹을 것을 해결한다고 했는데 연민이 생기기까지 했다. 북한군 한 명이 초소 밖으로 나와 쪼그리고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저 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지, 어떤 식으로 초병근무를 하고 있을지 궁금했다. 벌써 오십 분이 지났는지 아래 초소에 있던 초병 둘이 우리 초소로 넘어왔다. 밀어내기 근무다. 우리는 초소를 인계하고 다음 초소로 넘어갔다


역시 다음 초소도 마찬가지다. 고참의 코 고는 소리가 멀리서부터 들릴 정도였다. 어처구니가 없다. 초소를 이동하는 사이 해는 산등성이 너머로 숨어버렸다. 이번에 근무하는 초소는 폭이 꽤 넓은 곳이다. GP로 들어가는 보급 통로가 있는 곳이지만 앞에는 경사가 매우 가파른 지형으로 거의 절벽에 가까웠다. 어떻게 틈만 나면 잠을 잘 수 있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지만 고참은 초소 교대와 동시에 전과 같은 자세로 잠을 잔다. 역시 마찬가지다. 단지 잠을 자는 위치만 바뀌었을 뿐이다. 하루 중 제일 어두운 때는 해가 지기 전과 해가 뜨기 전이다. 만약 간첩이 침투하고자 한다면 그 시간이 가장 좋은 타이밍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고참들은 관심이 없다. 어스름이 내려앉아 사방이 어둠으로 가득 찼다. 내 두 눈은 어둠에 적응하고 있었다. 산비둘기도 이제 잠을 자려는지 어느새 특유의 울음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진짜 밤이 찾아온 것이다. 동화책의 한 부분이 기억났다. <공주는 잠이 들었습니다. 밤이 되고, 낮이 되고, 또 다시 밤이 찾아왔습니다.> 이런 구절처럼 초소 앞의 직사각형으로 뚫린 창문 없는 창 앞이 딱 동화책 안에 펼쳐진 그림 같았다. 멀리 북한의 초병들이 서 있었던 초소의 실루엣이 매력적이다. 왠지 북쪽 산 너머에 큰 불길이라도 솟아 오를 것 같았다. 나는 고참 몰래 초소의 틀에 턱을 괴고 섰다. 그리곤 머리를 앞으로 내고 초소 좌우측도 둘러보았다. 새로운 풍경이다. 항상 같은 틀 안에서 보이던 DMZ가 상당히 이색적으로 느껴졌다. 나는 잠시지만 사색에 잠겼다. 혹시 지난번 올빼미가 내게 뭔가 메시지를 남긴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헛된 상상이다. 그런데 초소 앞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나는 설마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고개를 더 앞으로 내밀어 부스럭거리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내가 그렇게까지 한 것은 초소 안의 고참 코 고는 소리가 방해되기도 해서였다. 초소 앞은 거의 낭떠러지나 마찬가지였다. 그 때문에 나는 아무리 고개를 내밀어도 소리의 근원을 확인할 수 없었다.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다시 들렸다. 나는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하나는 또 노루일 것이다라는 생각이었고, 다른 하나는 간첩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었다. 나는 근무 나오기 전에 비윤리적인 구호긴 하지만 <한 마리 잡아 집에 가자!>라는 말이 떠올랐다. 우리는 항상 그런 말을 했었다. 간첩을 잡으면 헬기 타고 집에 간다고 말이다.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소리였지만, 그 당시에는 그 말이 지금의 로또 당첨보다 더 뜬구름 잡는 소리였다. 하지만 내게는 기회가 온 것일지도 몰랐다. 나는 살며시 K2 소총의 장전상태를 확인했다. 크레모아 격발장치 두 개의 위치도 다시 확인했다. 수류탄 두 발과 스물다섯 발씩 장전되어 있는 탄창 두 개를 확인했다. 총 칠십오 발이다. 나는 아주 조용히 고참을 불렀다.


“김상병님!”


고참은 아주 작게 코를 골고 있었는데 내 목소리가 들리지도 않는 것 같았다. 나는 조금 더 크게 고참을 불렀다.


“김상병님!”


그러나 그는 깨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런 긴박한 상황에 말이다. 난 화가 났다. 집에 갈 수 있을지도 모르고 간첩에게 목이 베어져서 죽게 될지도 모르는 판국에 코까지 골며 자고 있으니 말이다. 순간 나는 화가 치밀어 올라 모험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야! 김상병! 간첩이야!”


나는 김상병의 눈이 떠지는 것을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내 두 눈은 모두 절벽 아래를 주시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간첩인 것 같습니다!”

내 말에 김상병은 아주 조심스럽고 느리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리는 아주 조심스럽게 장 전했다. 총알 하나가 약실로 들어가는 것을 손 끝을 통해 느꼈다. 총알이 약실로 들어가 물리는 느낌이 상당히 짜릿했다. 김상병은 적외선 안경을 정말 조심조심 꺼내고 있었다. 클립을 여는데 몇 초, 뚜껑을 여는 데 몇 초, 적외선 안경을 꺼내는 데는 십여 초가 걸렸다. 김상병은 적외선 안경을 초소 창틀 위로 살며시 들고는 조심스럽게 소리가 난 방향을 보았다. 나는 힐끗 김 상병을 쳐다봤다. 언제 쓴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벌써 헬멧까지 쓰고 있었다. 정말 신속한 솜씨였다. 아마도 그 솜씨는 가끔 불시에 순찰을 나오는 중대장의 기습 공격 덕분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훈련은 몰라도 최대한 신속하게 복장을 갖추는 기동훈련만큼은 최고의 실력일 것이었다. 하지만 가파른 경사 때문에 적외선 안경은 무용지물이었을 것이다. 절대로 볼 수 없는 각도라는 것은 세 살 박이 애들도 알 정도다. 김상병이 적외선 안경을 바닥에 내려놓으려는 찰나, 다시 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에는 좀 더 가까워진 것을 알 수 있었다.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총구를 그쪽으로 돌렸다. 물론,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보고 해야 돼지 말입니다!”

나는 조용히, 아주 조용히 물었다.


“아니! 아직은 안돼! 확인해야 해!”


김상병은 나를 자제시키려 했지만 나는 언제라도 상황실에 보고할 마음의 준비를 했다. 우리는 초조하기만 했다. 김상병은 원통 안에 들어있는 수류탄을 꺼내기 위해 천으로 된 주머니에서 찍찍이라고 불리는 벨크로를 뜯어내려 했다. 적막한 공간에서는 그 소리마저 크게 들릴 것 같았다. 우리는 아주 조심스럽게 찍찍이를 조금씩, 아주 조금씩 떼어내기 시작했다. 식은땀이 흘렀다. 다행히도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김상병 역시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우리는 이제 수류탄이 담긴 원통을 분리해서 수류탄을 꺼내는 작업을 해야 했다. 혹시 모를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풀로 붙여 둔 종이도 떼어냈다. 종이에는 소대장의 도장이 찍혀 있었다. 우리는 각자가 가진 수류탄 두 개를 모두 해체했다. 몇 분이 걸렸는지도 모르겠다. 지금도 모르겠지만 그때도 얼마나 걸렸을지 알 수가 없었던 기억이 난다. 우리는 소리가 난 방향을 두고 온 정신을 집중했다. 언제라도 방아쇠만 당길 수 있게 안전장치도 해제했다. 이제 만반에 준비가 되었다. 우리는 아무 말도 없었다. 김상병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알 수 없었지만, 나는 머리 속이 복잡했다. 일단 간첩을 쏘아서 명중시킨다면 우리는 정말로 헬기를 타고 집에 갈 것이고 우리가 명중시키지 못한다면 거꾸로 우리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나는 죽을 때 죽더라도 크레모아 두 발과 수류탄 두 개는 모두 던지고 죽고 싶었다. 그래야 억울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나는 어릴 때 텔레비전에서 보았던 전우라는 6 25전쟁 드라마가 기억났다. 그들은 죽기 전에 전우의 품에 안겨서 할 말을 모두 하고 죽었다. 만약 내가 총에 맞아 죽게 된다면 김상병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생각했다. <형이라고 생각했어요.> 그건 너무 유치했다. 게다가 양심적으로 그렇지도 않았다. 내가 나이가 더 많았기 때문이다.

<저희 엄마에게 사랑한다고 전해주세요!> 그래~ 그게 제일 필요한 말이었다. 내게 남은 힘이 단 한마디를 할 수 있을 정도라면 그 말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결정했다. 소리는 간간히 들려왔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나는 간첩이 우리를 약 올리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얼마나 그러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갑자기 뒤에서 문이 열렸고 우리는 정말 민첩하게 총구를 뒤로 돌렸다. 이미 손가락에는 힘이 들어갈 찰나였다. 아! 그런데 그들은 우리 밑 초소에 있던 근무자들이었다. 그들의 그때 표정은 거의 오줌을 쌀 정도였다. 살면서 그 이후로 그렇게 절망적인 표정을 본 적이 없다.


“에이~ 씨팔! 놀랬잖아! 이 미친 새끼들이 어따 총을 들이대고 지랄이야! 죽고 싶어? 이 개새끼들아! 이 병신 같은 새끼들이!”


밀어내기로 온 그들 중 한 명은 전역을 얼마 앞둔 말년 병장이었다. 그때 다시 초소 전방에서 뭔가 뛰는 소리가 들려왔다. 김상병과 나는 다시 총구를 돌렸다. 말년 병장이 어쨌건 신경 쓸 상황이 아니었다. 노루, 고라니, 사슴 그 셋 중 하나였다. 나는 총을 쏠 뻔했다. 간첩이 아니어서 쏘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정말 총을 쏴버리고 싶었다. 약 삼십 분 정도의 시간 동안 김상병과 나는 다른 세계를 다녀온 것이었다.


“씨팔!”


나도 모르게 욕이 튀어나왔다. 총을 쏠 마음이 거의 확실했지만, 미련과 걱정 때문에 쏘지 못했다. 아마, 김상병도 마찬가지였으리라 싶다. 그 일 퍼센트는 혹시라도 명중시키지 못할 것이란 불안한 마음 때문이었다. 만약, 그 녀석을 명중시킨다면 휴가라도 갈 수 있겠지만, 그 반대라면 영창 감이었기 때문이다. 그 순간의 선택만큼은 짧지만 길었다. 그리고 지금에 있어서는 그 동물이 내 총에 맞았던 맞지 않았던 밤에 총을 쏘지 않은 게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 녀석에게도 가족이 있을 텐데, 내 총에 맞는 불상사가 벌어졌다면 그 심적인 고통은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내가 불교 신자는 아니지만 살생이라는 것은 그저 누군가의 생명을 앗아간다는 것 이상의 고통이 있을 것이다. 만약, 내가 총을 쏴서 그 녀석이 맞았다면 난 가끔씩 악몽을 꾸게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김상병과 나의 총구에 겨누어졌던 말년 병장은 우리의 행동에 순간 난처함을 느꼈다고 했다. 나중에 그 총이 언제라도 발사할 수 있는 총이었다는 것을 알고는 십 년 감수했다는 사자성어의 뜻을 재발견했다고 말했다. 말년 병장은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하라고 했던가? 그는 다행히 별 사고 없이 전역했다. 하지만 그는 전역하기 며칠 전까지도 초병근무를 서야 했다. 그는 전에 없이 암구호를 철저히 하는 습관을 들였다. 전역을 거의 앞두고서야 진짜 군인이 된 것이었다. 지금도 가끔씩 그 당시 기억을 하면 아찔하기만 하다. 그 후 OP에 있는 열상감지기에 북한군의 침투로 의심되는 징후가 나오기도 했지만, 다행히 별 사고 없이 GOP생활을 마칠 수 있었다. 나는 DMZ의 끝판 왕, 강원도 화천의 아름다운 대한민국의 자연이 아직도 눈앞에 아른거린다. 전역 후 ‘대한민국의 호랑이가 있다면, 그들이 살 수 있는 곳은 화천 뿐이다’라는 기사를 보면서 내가 근무했던 화천이 얼마나 험준한 지역이었는지 새삼스러웠다. 그리운 곳이다.

지금은 설악산이 자연을 향한 내 집요한 갈망을 채워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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