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할 용기라면 뭐든 할 수 있다면서?
있는 힘을 모두 주어 꽉 안아 주고 싶지만, 터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다섯 살배기 딸아이는 낑낑거리고 있지만 얼굴에 미소가 가득하다. 연우는 아이를 내려놓을 생각이 없었다. 그저 이렇게라도 계속 품 안에 가두어 놓고 싶었다. 내려놓는 순간 아이가 사라져 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함 때문이다. 연우는 지금 꿈속에서 아이를 안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 그는 언젠가부터 현실에서도, 꿈속에서도 이미 아이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각인시켜 두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각인되기 전까지 연우는 모든 것이 괴롭기만 했다. 그저 슬퍼만 하기에는 너무 괴롭게 느껴졌다. 언젠가부터, 그러니까 두어 달 전 딸아이 혜영이의 생일날부터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라도 스스로와 타협하지 않고서는 모든 게 무의미하다는 것을 인지한 것이다.
타협은 다름 아님 정리였다. 처음엔 극단적인 정리가 아니었다. 연우는 홀로 키웠던 혜영이를 놓아주는 게 스스로도 사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타협에 원하지 않는 살이 붙기 시작했다. 아내 정희와 지내왔던 삶이 끝났고, 결론은 연우 스스로를 정리하는 것으로 결정 났다. 연우의 삶 속에서 정희가 사라진 지는 벌써 한참 오래다. 같은 하늘 아래, 같은 땅을 디디며 살고 있음에도 그들은 이미 서로가 소통하는 방법을 잊고 살아왔다.
연우가 마지막으로 정희를 만난 건 딸 혜영이와 작별 인사를 하던 날이다. 혜영이는 말을 하지 못했다. 사고 때문은 아니다. 혜영이는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선천성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다. 연우가 혜영이와 마지막 작별 인사를 나눈 것 역시 눈빛으로만 나눌 수 있었다. 연우는 아내가 혜영이와 작별 인사를 나누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삼 년이나 떨어져 살았었는데 혜영이가 제 엄마를 알아보았을지 조차 알 수 없었다. 연우는 집안 어디에도 아내의 흔적을 남겨두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다시 돌아오지 않겠다는 말을 남기고 떠났고, 이미 다른 남자의 아내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연우는 가족을 이룬 지 삼 년을 채우지 못하고 깨어지기 시작했다. 비록, 완전체가 아닌 가족 구성원이었지만 연우는 혜영만 있으면 가족이 완성된 거라고 자족했다. 연우는 외롭지 않았다. 연우의 외로움은 혜영이 가득 채워주었기 때문이다. 연우의 눈은 공허했던 깊은 빛을 가지고 있었지만, 가족을 이루면서 더 깊어졌고 사랑으로 가득 찬 눈빛으로 바뀌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연우는 가족을 이루기 전에 가졌던 깊은 공허의 눈빛보다 더 깊은 심연의 우주 같은 눈빛으로 바뀌어 있다. 스스로와 타협하면서부터 더욱 깊어지는 것 같다. 연우의 세상은 두 쪽으로 갈라져 버렸다. 혜영이 있는 세상과 혜영이 없는 세상이다. 연우는 두 세상을 오간다. 연우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차라리 정신분열증에 걸리면 좋겠어!’ 그는 현실을 잊고 망상 속에서 사는 게 훨씬 더 행복할 거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망상 속에는 혜영이 보란 듯이 살아있었다. 혜영은 어느 공간에 있어도 없는 듯했고, 없는 듯해도 있었다. 혜영의 눈빛이 없었다면 연우는 혜영의 존재조차 인식하지 못했을 것이다. 혜영의 눈빛은 연우의 눈빛과 닮아 있었다. 사랑으로 깊어진 눈빛이었다. 검색 눈동자는 연우를 가득 채웠다. 영우의 눈에도 혜영이 가득 찼다. 태어나던 날 보았던 그 눈빛보다 더 깊어진 혜영의 눈동자는 아마도 연우가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혜영의 눈빛은 단 한 번 변했었다. 혜영과 연우가 작별인사를 하던 그날이 그랬다. 혜영의 눈빛은 지금 연우의 눈빛과 꼭 닮아 있었다. 연우는 다섯 살 아이의 눈에서 고독을 보았다. 연우는 그 눈동자를 잊을 수 없었던 것이다. 혜영의 고독한 눈빛은 그대로 연우에게 남아 버렸다. 연우는 아마 혜영이 이렇게 말하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아빠 혼자 남게 해서 미안해요! 사랑해요!’ 혜영의 눈빛을 읽을 수 있었던 연우는 혜영이 남긴 마지막 메시지를 기억했다. ‘사랑해요!’ 연우에게 있어 마지막 사랑은 떠나고 없다. 꼭, 혜영이 만한 나이에 가족을 잃고 세상에 혼자 남아 버린 연우에게는 이미 익숙했던 것이었지만 혜영이 떠난 세상은 지난 고독과는 달랐다. 상실의 고독! 연우는 익숙함 속에 쉽게 빠져들었다. 익숙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고통이 복원되지는 않았다. 이제는 슬픔을 잊기에는 힘든 나이가 되어버린 것이다. 머리는 잊으라 했지만, 가슴은 자꾸만 깊숙이 품어버렸다. 연우 말고는 그 누구도 들여다볼 수 없는 곳에다 깊숙이 숨어버린 것이다.
연우의 정리는 혜영의 생일 다음날부터 시작되었다. 제일 먼저 빚을 정리하는 것이었다. 재개발이 확정된 지역의 오래되고 조그만 평수의 아파트가 제일 우선이었다. 부동산에 매물로 내놓은 집은 불과 세 시간도 지나지 않아 계약이 됐다. 연우는 하나도 아깝지 않을 것 같았지만 도장을 찍는 그 순간만큼은 미세하게 고민하는 자신을 자책했다. 모두 버리겠다는 의지에도 불구하고 내면 어딘가에서는 세상에 대한, 삶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다는 것에 스스로 한심함을 느꼈다. 연우는 삼일 만에 집을 비웠고, 은행에 대출금을 갚고 나니 일억 원 정도 되는 돈이 통장에 남아있었다. 연우는 막상 집을 정리하자 마음먹은 것의 첫 발을 떼었다는 것에 자신감이 생겼다. 이제 세상의 물질적인 빚은 없었다. ‘그래도~ 세상에 빚지고 산 건 많지 않았구나.’ 연우는 그래도 주변에 손을 벌리지 않고 어떻게든 살아왔다는 것에 은근히 만족했다. 이제 남은 것은 마음의 빚이다.
연우는 빈 노트를 열어 자신의 도와줬던 사람들을 써 내리기 시작했다. 그중에는 이제 빚을 갚을 수 없는 사람들도 보였다. 마음의 빚이다. 그저 고맙다는 말 한마디로 전하지 못한 채 남겨진 것이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빚을 갚고 싶지만 언젠가부터 연락조차 되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동안 열심히 산다는 핑계로 힘들다는 핑계로 무심하던 사이 연우에게서 떠나버린 사람들이 있었다. 연우는 그들을 갚지 못하는 빚으로 분류해야 할지 고민했다. 한 번에 전부 리스트를 작성하는 것은 어려웠다. 연우는 노트를 몇 페이지 넘겨 이번에는 용서해야 할 빚을 써 내리기 시작했다. 이상하게도 나쁜 기억은 너무도 많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세상에 미워하는 사람들, 용서하기 싫었던 사람들, 자신을 힘들게 만들었던 사람들, 돈을 빌려 갚지 않은 사람들, 쓸데없는 것들로 얼굴 붉혔던 사람들, 길을 가다 어깨를 부딪혔던 모르는 사람들, 교통사고로 마주친 사람들마저도 기억 속에서 스멀스멀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연우는 노트를 펼칠 때만 해도 고마운 사람들이 미워한 사람들보다 많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예상과는 달리 용서해야 할 사람들의 목록은 두 배를 넘어서고 있었다.
연우는 우선, 마음만으로도 용서를 받아줄 사람들을 솎아내기 시작했다. 목록이 한결 가뿐해지기 시작했다. 연우는 더 이상의 추가는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 때까지 목록을 써 내리고서야 다음 단계로 넘어설 수 있었다. 다음으로는 흔적 지우기다. 자신이 이 세상에서 생명을 얻은 후부터 생명이 흩어지는 순간까지 연우 자신의 모든 흔적을 지우는 과정이다. 그리고 역시 기억을 더듬어 목록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우선, 인터넷이다 트위터, 페이스북, 포털사이트, 블로그, 카페 등에 남긴 글들과 댓글 등 주민등록증, 운전면허증, 자격증 두 개, 도서관 대출증, 통장 네 개, 신용카드 두 장, 체크카드 한 장, 하이패스카드 그리고 어딘가에 처박혀 있을 일기장들과 연우의 추억들을 모두 모아둔 상자 속의 물건들이 우선적으로 지역 나 흔적 지우기 목록에서 내려졌다.
연우는 눈을 감은 채 흔적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가장 어릴 때의 기억부터 시작했다. 보험증권도 있었고, 아주 조금이지만 투자해 두었던 주식도 있었다. 연우의 의도와는 다르게 아무거나 툭툭 튀어나오는 것들이 있었고 그것들이 먼저 노트 위에 기록됐다.
마지막으로 어떻게 죽을 것인가 하는 문제만 남았다. 연우는 눈을 감았다. 죽는 방법을 생각하기 위해서다. 인터넷 같은 곳을 뒤적이고 싶지는 않았다. 자신에게 있어, 이 세상과의 마지막 연결고리를 끊어내는 방법을 타인들의 생각이 기대고 싶지는 않아서다. 연우의 머릿속에서 몇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제일 먼저 튀어나온 것은 어딘가에 목을 매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맘에 들지 않았다. 몸에 생채기가 남는 것도 그랬지만, 힘이 빠져버린 괄약근으로 인해 똥을 쌀 거라고 생각했다. 화장실에 가서 모두 쏟아내고 목을 맬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결국, 제일 먼저 생각나고 제일 먼저 폐기됐다. 그다음은 드라마에서처럼 지나는 트럭에 몸을 던질까 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 방법은 문제가 있을 것 같았다. 드라마에서처럼 식물인간이 되거나 불구가 된 상태로 살아남는 것이 문제였다. 결과적으로 아프기만 하고 죽지는 못하게 되거나 의식이 없이 살지도 죽지도 못하는 상태가 되어버리는 것이 우려되었다. 결국, 이 방법도 바로 폐기되었다. 농약을 먹고 죽는 방법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 역시 죽는 경우보다 목이 타는 고통 때문에 참을 수 없어 제 발로 병원을 찾아간 사례들이 제법 있다고 들었던 기억이 났다. 게다가 아픈 것을 잘 참지 못하는 연우는 그 고통 자체가 두려웠다. 결국, 두려움 때문에 농약도 폐기되었다. 욕조에서 손목을 긋고 누워서 잠이 드는 것도 생각해 보았다. 나름 드라마틱해 보였다. 역시, 그것도 누군가 자신을 발견하게 되면 죽지도 못할 게 뻔했다. 연우는 자신이 생각하는 자살 방법이 생각보다 몇 가지 되지도 않고, 완벽하지도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중 다시 몇 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높은 건물에서 뛰어내리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문제가 많았다. 대부분의 건물들은 옥상이 폐쇄되어 있거나 기업체들의 현관에서부터 폐쇄되어 올라갈 수도 없을 것이고 떨어져서도 나무에 걸리거나 해서 죽지 않는 경우도 허다했다. 그 아이디어 역시 곧장 폐기 처분되었다. 연우는 연예인들이 자주 사용하는 방법들을 고려해보기로 했다. 수면제를 입에다 쏟아붓고 잠이 드는 방법은 다른 것과는 차이가 없을 거라고 생각이 들었다. 차 안에서 연탄을 피워 자살하는 방법을 생각해 보았다. 그러나 이미 자신의 구닥다리 소나타는 팔아 버렸기에 결국 누군가 차를 빌려야만 했다. 결국, 렌트를 해야만 하는 것이다. 연우는 자신의 자살 때문에 제 이, 제 삼의 누군가에게 피해가 되는 짓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같은 맥락으로, 차를 타고 바다로 돌진하는 방법 역시 연탄가스 자살과 동시에 폐기됐다.
연우는 자살하는 방법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다. 마지막으로 떠오른 방법은 한강에서 뛰어내리는 방법이었다. 수많은 한강의 다리 중 연우는 한강대교를 선택했다. 연우에게 있어 한강대교는 수많은 기억을 가져다준 곳이었다. 왜 그랬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아내 정희와 결혼하기 전, 그들은 한강대교에서 보는 서울시의 전경을 무척 좋아했었다. 그들은 자주, 그것도 아주 자주 테이크아웃 커피를 손에 들고 한강대교를 수도 없이 건너 다녔었다. 연우는 유일하게 사랑했었던 두 여자 정희와 혜영을 생각하며 자신을 내던질 곳이라면 한강대교 만한 곳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연우는 곧장 한강대교를 향하려다 생각을 고쳐먹었다. 벌건 대낮에 한강대교에서 투신한다면 지나는 차량과 사람들의 이목을 사게 될 것이며, 결국 자신의 목적 달성에 실패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차라리 북한산 백운대에서 아침까지 기다렸다가 해가 뜨는 것을 지켜본 후 뛰어내리는 것도 꽤 낭만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자살하려고 하는 마당에 세상의 모든 것을 끊어 내려는 마당에 낭만을 찾고 있다는 것이 우습고 한심했다. 그냥! 아무도 모르게, 아무도 보지 않는 시간 때 한강에 투신하기로 결정했다. 연우는 새벽 세 시를 적정 시간으로 잡았다. 연우는 정리하기로 한 목록을 다시 한번 펼쳤다. 편지를 쓰고, 전화 통화를 하고, 인터넷을 뒤적여 탈퇴, 삭제 등을 하며 보내는 시간이 생각했던 것보다 오래 걸렸다. 특히, 인터넷을 뒤적이다 옛적에 써 내렸던 일기 형식의 글들을 하나하나 다시 읽어 내렸다. 이미 찾았던, 이제 기억조차 나지 않는 옛 추억이 자신의 속에 숨어 있던 기억을 찾아 헤매고 다녔다. 연우는 이틀 동안 웃기도 울기도 하며 시간을 보냈다. 걸려오는 전화는 아예 받지 않았다. 혹시라도 누군가 눈치를 채는 것을 바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사 일째 되던 날, 연우는 목록에 작성된 모든 것을 정리할 수 있었다. 다 처리하고 나니 홀가분했다. 이젠 당장 죽더라도 여한이 없을 것 같았다. ‘아~ 이게 죽기 전에 마음이구나!’ 연우는 생각했다. 도를 깨우칠 것 같은 기분이었다. 불교에서 말하는 <공>이라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인가 싶었다. <비움>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었다.
연우는 용산역에서부터 걷기 시작했다. 재개발이 시작된 용산에 모습은 혜영이 태어나기 전, 정희의 뱃속에 혜영을 두고 추억 삼아 왔던 것이 마지막 기억이었다. 불과, 육 년이 채 되지 않았는데 용산은 기억 속의 그곳과는 많이 달랐다. 멀리 보이는 건물들의 불빛들이 한편으로는 아름답고 또 다른 관점으로는 징그러워 보였다. 멀리 63 빌딩에 꼭대기 쪽일 것이라고 추측되는 하늘 어딘가에서 빨간 불빛이 점멸되고 있었다.
새벽 두 시가 조금 넘었다. 이제, 자신이 이 세상과 함께할 시간은 불과 한 시간 정도라고 생각하니 숨 쉬는 것조차도 반갑고 고마웠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에 대해서도 고마웠고, 귀를 파고드는 도심의 불규칙적인 소음들조차도 아름답게 속삭이는 듯했다. 운동화 밑창에서 느껴지는 보도블록이 자신을 반겨주는 것 같았다. 이제 한강대교가 보이기 시작했다. 횡단보도만 건너면 한강대교에 도착하는 것이다.
연우는 왼쪽으로 갈까, 오른쪽으로 갈까 하는 고민을 했다. 미처 그런 것까지는 생각지 않았었다. 연우는 해가 지는 서쪽 방향으로 결정했다. 한강물도 역시 서쪽으로 흘러가니 서쪽으로 뛰어내리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연우는 아무도 없는 횡단보도를 걷기 시작했다. 저 멀리 뒤편에서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횡단보도를 다 건너기 전에는 사이렌 소리가 연우 근처까지 다가오는 듯했다. 연우는 거리낄 게 없었지만, 자신의 계획에 차질이 생길까 봐 걱정이 되었다. 연우는 횡단보도를 두세 걸음 남겨두고서야 몸을 돌려 사이렌의 정체를 확인했다. 백여 미터 뒤편에 경찰의 순찰차량이 다가오고 있었다. 연우의 마음이 불안해졌다. 오십 미터, 삼십 미터, 십 미터, 식은땀이 흘렀다. 다행히 순찰차는 우회전을 해서 올림픽대로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연우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다시 한강대교를 향했다. 드디어 숙명의 한강대교에 첫발을 들이댔다. 그래! 숙명이었다. 자신의 생명을 마무리할 곳이 한강대교다.
연우는 미리 생각해두었던 위치를 바라보며 거리를 좁혀가기 시작했다. 멀리 신호등 불빛이 보였다. 반대편 차로에서 차량 몇 대가 빠른 속도로 달려오고 있었다. 등 뒤에도 차량 엔진 소리가 들려왔다. 바닥으로 헤드라이트 불빛이 보였다 불안했다. 연우는 자신의 마음을 붙잡으려 노력했다. 자살을 앞두고 있는 자신이 불안해할 이유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의 습격을 두고 두려워한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연우는 헤드라이트의 차량을 보낼 즘 되어서야 목적했던 장소에 도착했다. 시계는 두 시 사십오 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까짓 게!’ 연우는 시계를 보며 죽는 것마저도 시간을 지켜야 하는가 하는 생각을 했다. 우스웠다. 자신이 죽는 데 있어서까지 시간 약속을 지켜야 할 필요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연우는 시계도 시간도 불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이상은 세상 일에 연연하고 싶지도 않았다. 자신의 생활에 대한 미련도 없었다. 연우는 고개를 돌려 오른쪽 신호등을 보았다. 파란 불이다. 아마, 잠시 동안은 기다려 봐야 할 것이었다. 지나는 차량이 없는 타이밍을 기다려야 했다. 멀리 네 대의 차량이 강한 헤드라이트 불빛을 밝히며 다가왔다. 연우는 그 시간이 세상에서 가장 긴 시간인 것만 같았다. 마침 딸 혜영이 기억났다. 자신을 향해 웃어주고 있었다. 연우는 두 팔을 벌려 폐를 최대한 열었다. 마지막으로 세상의 공기를 맘껏 들이켜 마시고 싶었다. 연우는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거친 소음을 내며 첫 번째 차량이 지나갔다. 등 뒤에서 센 바람이 옷을 흔들며 스쳤다. 이어 세 대가 다시 연우를 스쳐 지나갔다. 그중 한 대의 차량에서 브레이크 라이닝의 날카로운 금속성 소리를 내며 귀를 괴롭히자 짜증이 났다.
연우는 고개를 왼쪽으로 돌려 지나가는 차량들을 확인하고 한강대교의 아치형 금속 구조물 사이에 섰다. 그리곤 재빨리 난간 위에 올라섰다. 시커먼 밤이라 그런지 금속 구조물이 유난히 더 검은색으로 보였다. 칠흑 같은 어둠의 색이었다. 연우는 그 색이 꼭 죽음의 색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음침하고, 음산해서 마음속까지 어둠으로 채워버리는 듯했다. 경사는 얼마 되지 않아서 쉽게 걸어갈 수 있는 금속 구조물의 첫판을 내리기 위해 음산함이 묻어나는 금속 구조물에 두 손을 짚었다. 그 순간, 연우의 두 손은 한강 쪽으로 미끄러지며 넘어졌다. “으악!” 미끄러지는 순간 연우의 입에서는 비명이 터져 나왔고, 머릿속에서는 ‘죽을 뻔했네!’라는 생각을 했다. 한강대교 위에서 내려다보이는 한강은 생각보다 높았다. 연우는 어이가 없었다. 죽음이 전혀 두렵지 않다고 생각했던 자신이 우스갯소리처럼 행동했다는 것에 허탈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연우는 난간에 걸터앉아 한동안 웃어댔다.
그러는 사이 한강대교에는 몇 대의 차량이 헤드라이트 불빛을 길게 비추며 지나갔다. 멀리 서는 오토바이 몇 대가 다가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흔히 말하는 청소년 폭주족 같았다. 브레이크 라이닝이 갈리는 긴 금속성 비명소리와 함께 폭주족들이 인도를 사이에 두고 멈춰 섰다. 오토바이가 세 대나 되었다. 세 명 모두 헬멧을 쓰지 않았다. 연우는 얼빠진 듯 웃다가 그들과 눈을 마주쳤다.
“아저씨~ 자살하려고?”
그중 한 명이 거슬리는 오토바이 머플러 소리와 함께 소리쳤다. 연우는 대답할 수 없었다. 결국, 누군가에게 들켜버린 것이 한심 해서였다.
“아저씨! 자살하려면 다른 데로 가~ 여긴 하도 자살하는 사람이 많아서, 다리에다 기름칠해 놨거든. 그래서, 요즘은 여기서 안 뛰어내려.”
아까 그 폭주족이 친절하게도 설명했다. 하지만 연우는 이미 이곳에서 자살할 생각이 없었다. 전혀 대답이 없는 연우와는 더 이상 상대하기 싫었는지 폭주족들은 작별 인사를 남기고 떠났다. 작별 인사는 <빠라바라바라밤>이었다. 연우는 폭주족치곤 예의 바른 녀석들 같다고 생각했다. 연우의 두 손에는 음침하고 음산한 죽음의 색을 띤 한강대교의 기름이 묻어 있었다.
금속 구조물에는 연우의 손이 미끄러지며 만든 작품들이 생동감 넘치게 그려져 있었다. 그것은 죽기 위한 몸부림이 아니라, 살기 위한 몸부림이 남긴 자국이었던 것이다. 자신의 생존 본능이 남긴 것이었다. 연우는 난간에서 일어났다. 그리곤 더 이상 고민하지 않았다. 몸을 돌려 뛰어내렸다
*
파란 바다. 화창한 날씨다. 이미 많은 시간을 흘러왔다. 연우는 아직까지 자신이 살아 있다는 게 믿어지지가 않았다. 한참을 스트레스 속에서 고민했다. 분명히, 죽기 위해서였지만 살기 위해 몸부림쳤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정리했다고 생각했지만 그의 의식과 다르게 본능만은 생존을 위해 움직였던 것이다. 연우의 몸은 정신의 통제 속에 있지 않았던 것이다.
연우는 이제, 바다 위에서 다시 죽음을 두고 고민하고 있었다. 뿌연 물거품을 두고 멀리멀리 향해가고 있다. 연우의 손에는 아직 죽음의 색이 지워지지 않았다. 손톱 깊숙이까지 검은 기름이 박혀 그대로였다. 죽음의 색이 몸에 밴 것이다. 연우의 옆쪽에는 다른 사람 이연우와 비슷한 표정을 한 채 멍하니 서 있다. 너무도 닮아 있었다. 단지 다른 것이 있다면, 손톱에 낀 죽음의 색이 있고 없음이었다 연우는 심통이 났다. 벌써 한 시간째, 연우는 그 남자를 의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연우는 날이 밝자마자 지하철 타고 인천 연안부두로 향했다. 그리곤 제주로 향하는 배를 탔다. 제주로 가던 중 배에서 뛰어내리기로 마음을 먹은 것이었다. 그럼, 누구도 자신을 찾지 못할 것이고 살아날 수 있는 가능성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연우는 지금까지 옆의 사내를 곁눈질로 쳐다보고 있었다. 처음엔 그저 풍경을 감상하러 나온 것인 줄로만 알았다. 십여 분쯤 지나서는 자신을 감시하는 줄 알았다. 그리고 지금은 비슷한 목적으로 같은 자리에 서 있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자신의 거울을 들여다보는 듯한 그의 표정과 몸에서 나오는 기운 때문이었다.
“저기요~ 아저씨!”
연우는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다. 죽으려면 빨리 뛰던가, 아니면 자리를 피해 주라고 말하고 싶었다.
“외롭지요?”
사내가 말했다. 하지만 고개를 돌리지도 않았다. 그는 한 시간 내내, 두 손으로 난간을 잡고 상체를 난간에 기댄 채 자세한 번 바꾸지 않았었다. 연우와는 달리 그는 고개 한번 돌려본 적 없었다. 그런데 그는 연우에게 뜬금없는 질문을 던진 것이었다. 연우는 생각했다. ‘외롭던가? 그동안 외로웠던가?’ 그의 말을 듣고 보니 외로웠던 것 같기도 했다. 아니! 외로웠던 것이 맞는 것 같았다. 주변에 사람들은 많이 있었지만 마음을 열고 대화를 나눌 만한 사람이 없었다. 자신의 외로움을 누구와도 공유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단지, 자신의 마음속에서 혜영이를 놓아주기 전까지만 해도 그다지 허탈하지도 않았었다. 혜영이는 언제나 자신의 말에 귀 기울여주었었기 때문이다.
“외롭긴 했죠.”
연우는 힘없이 말했다. 굳이 그에게 거짓말을 하고 싶지는 않아서다.
“나도 외롭다오~ 나 스스로 외롭게 살긴 했지만 말이오.”
그가 말했다.
“저는 꼭 외로웠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주변에 사람들이 많이 있었어요. 저는 그저 말하기 싫어서 깊은 대화를 나누지 않았을 뿐입니다.”
연우의 말에 그에 끙~ 하는 신음 소리가 들려왔다.
“왜 그러시죠?”
연우는 그의 부정적인 반응이 궁금해서 물었다.
“당신은 진정으로 외로움을 느낀 것 같지는 않군요. 외롭다는 건 누가 옆에 없어서 외로운 것이 아니거든요. 명절날 가족과 친지들이 수십 명이 왁자지껄해도 외로운 건 외로운 거예요. 가족이 많다고 외롭지 않은 게 아니라는 거죠.”
그는 연우에게 자신의 외로움에 대해 설명하고자 하는 것 같았다.
“저는 아니에요. 저는 가족이 없어서! 아니~ 사라져 버려서 외로운 거예요.”
연우는 사내에게 다시 말했다.
“그럼, 당신은 외로움이 뭐라고 생각하시오? 아까 내가 외로우냐고 물었을 땐 분명 외롭다고 했는데, 지금은 다시 외롭지 않다고 자신에 대해 항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는 아직까지도 연우에게 고개를 돌리지 않고 말했다.
“글쎄요~ 무슨 말씀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우리 어차피 비슷한 마음을 먹고 같은 자리에 서 있는 것 같은데…… 그쪽에서 먼저 물었으니, 먼저 그 말씀하신 외로움이 뭔지 설명해 보시지요.”
연우는 쓸데없이 말다툼하기 싫어 그에게 사연을 말해 보라는 것이었다. 사내는 잠시 긴 한숨을 내시고는 다시 말을 시작했다.
“나는 사업을 했습니다. 내 그릇에는 적다고 더 크다고도 할 수 없는 사업이었죠. 우리나라에서 제일 높은 분까지도 모시게 되며 승승장구했습니다. 그런데 참~ 빚을 많이 졌습니다. 그런데! 빚보다 무서운 건 사람들의 눈이더군요. 그리고 그보다 무서운 건 사람의 입이라는 것을 알기까지 그다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무섭다는 건, 정말 많이 순화시킨 표현입니다. 나라는 인간은 순식간에 인간 말종이 되어버리더군요. 나는 나 스스로 부끄러운 점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말에 반기를 들지 못했습니다. 떳떳하지 못했어요. 하지만 가족들에게, 지인들에게만큼은 단 한 번도 떳떳하지 않은 적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나 스스로 다가서기를 꺼려하게 되더군요. 자격지심 같은 거라고나 할까요? 나는 점점 고립되어가고 있었습니다. 가족들이 가족의 울타리 안으로 들어오라며 손짓을 하는데 나는 그것조차도 두려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언젠가부터 가족들도 나를 손가락질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겁니다. 나는 외로웠습니다. 점점 더 깊은 외로움 속에 빠져들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지금 저 깊은 바닷속에 외롭게 지내고 있습니다. 가끔 이 배가 지나갈 때 다시 이 자리에 서서 지난 결정을 두고 후회하고 있지만, 다시는 돌아올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지난달 어느 중년의 노신사 한 명이 내 설명에도 불구하고 그냥 뛰어내렸습니다. 그는 외로움이 무엇인지 모르고 있었습니다. 외로움이 무엇인지 깨닫고 외로움을 이겨낼 방법을 알았다면, 그는 절대 입에서 저 깊은 바닷속에 몸을 던지지 않았을 겁니다. 연우 씨도 이제는 외로움에 대해 다시 생각해봐야 합니다. 그리고 그 외로움을 이겨내야 합니다.”
그는 드디어 연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의 얼굴에는 소라와 따개비가 잔뜩 붙어 있었다. 흉측했다. 그러나 연우는 그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연우는 그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순간 그가 귀신임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럼~ 외로움이~”
연우가 그에게 외로움이 무엇인지 물어보려면 찰나, 그는 배 난간을 잡고 올라 멋지게 다이빙하듯 뛰어내렸다. 그의 모습은 커다란 배의 스크루가 만들어내는 거대한 물살에 빠져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외로움에 대해 몇 가지 미스터리 같은 말만 남기고 사라진 것이다 연우는 외로움이 무엇인지 더 이상 고민하고 싶지 않았다.
연우는 사내가 서 있던 자리에 섰다. 그리고 난간 위에 올라섰다. 연우는 사내가 뛰어든 흰 물보라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물보라는 한시도 같은 모습을 하지 않았다.
“아저씨! 이야기 좀 해요! 잠깐만요!”
연우는 깜짝 놀라 소리가 나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십 대 초반의 여자 아이였다. 그러나 연우는 고개를 돌려 다시 바다를 보았다. 그리고는 잠시 후 뛰어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