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을 만나다
생각의 씨앗이 만든 귀신 이야기
바람이 분다. 초여름 밤의 선선한 바람이 한낮의 끈적했던 피부와 옷가지를 말려주었다. 희태는 동아리 모임 술자리에서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버스 막차를 놓치지 않으려면 어지간히 뛰어서는 어림도 없다. 손목시계의 바늘은 희태에게 여유를 줄 생각이 없어 보인다. 막차를 타는 방법은 딱 두 가지 있다. 하나는 그야말로 눈썹이 휘날리는 속도로 뛰어야 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지름길을 이용하는 것이다. 하지만 지름길은 쉽게 결정할 일이 아니다. 성당 옆 공동묘지를 관통해서 지나가야만 하기 때문이다. 희태는 선배들에게서 성당 옆 공동묘지 귀신을 보았다는 경험담을 들은 적이 있다. 그 이후로는 공동묘지 근처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평소 같으면 동기 자취방에서 하룻밤 신세를 지면 되지만 오늘만큼은 어떻게든 집에 가야 했다. 이틀째 집에 들어가지 않은 것도 문제고 할아버지 제사가 있어서다. 열두 시 전까지는 집에 꼭 들어가야만 한다. 희태는 엄마에게서 받은 문자메시지를 떠올렸다. <아빠가 오늘도 안 들어오면 다음 달 용돈은 없대. 알아서 해!> 희태의 용돈 문제는 전공을 낙제하는 것보다 더 심각한 문제다. 등록금이야 다행히 장학금으로 해결해 왔지만, 용돈만큼은 절대 포기할 수 없다. 얼마 전부터 공을 들이고 있는 동아리 후배를 꼬시기 위해서는 작업 자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소주를 한 병 정도 마시긴 했지만 아직은 정신이 또렷했다. 첫 번째 방법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냈다. 혹시라도 막차를 놓치면 집에 갈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다. 희태가 다니는 대학은 워낙 변두리에 있어서 정문으로 다니는 버스 노선은 달랑 하나다. 그마저도 막차가 일찍 끊어졌다. 후문까지는 걸어서 삼십 분, 뛰어서 십 분 이상의 거리지만 버스 정류장까지 가기 위해서는 공대 건물과 학생회관 사이를 가로질러 공원을 거침없이 내달려야 한다. 캠퍼스를 거쳐 가는 시간만 해도 최소 십 분은 걸린다. 지금부터 죽자 사자 뛰어야 하는 거리만 버스 정류장까지 이십 분 이상은 예상하고 있다. 후문을 거치지 않고 성당 공동묘지를 관통해서 간다면 도합 십 분도 채 걸리지 않을 것이다. ‘그래! 까짓 거, 요즘 세상에 무슨 귀신이냐?’ 희태는 술김에 용기가 생겨 성당 공동묘지로 가는 것으로 마음을 굳혔다. 공동묘지가 가까워질수록 불안함이 점점 더해갔지만 이미 돌이킬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바람이 계속 분다. 대신 이따금씩 분다. 어쩔 땐 세게 불기도 한다. 돌풍처럼 몰아치기도 한다. 성당의 첨탑 꼭대기에는 네온사인으로 된 것인지, 플랙스 간판으로 된 것인지 모를 빨간 십자가 한 개가 빛을 발하고 있다. 성당 주위에 빛이라고는 달랑 그것 하나뿐이다. 그러고 보니 빛이 하나 더 있다. 보름달이다. 달이 구름 속에 숨었다 나오기를 반복하며 약을 올렸다. PCS 전화기 액정 화면의 빛으로는 어둠을 밝히기엔 역부족이었다. 캠퍼스에서 출발할 때만 해도 분명히 달이 구름 밖에 있었는데, 희태가 공동묘지 근처를 뛰기 시작했을 무렵에는 달이 구름 뒤로 완전히 숨어버렸다. 희태는 겁이 덜컥 났다. 공동묘지가 보일 즈음, 공동묘지의 비석들이 달빛에 비춰 보였었는데 지금은 비석들의 윤곽조차 흐릿했다. 희태는 뛰기를 포기했다. 그보다 더 이상 뛸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희태는 달을 가린 구름이 빨리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일 분도 채 지나지 않아 달이 고개를 내밀었다. ‘이때다!’ 희태는 전력을 다해 뛰었다. 최대한 빨리 공동묘지를 벗어나야만 한다. 공동묘지를 가로질러 가는데 걸리는 시간은 어림잡아 일 분에서 이 분 정도일 것이다. 희태가 공동묘지의 절반 정도를 지날 무렵, 바람이 갑자기 거세게 불었다. 시원했다. 땀이 식어 내렸다. 희태는 그것이 힘들어서 나는 땀인지 식은땀인지 정체는 알 수 없었다. 어쨌든 바람은 희태의 땀을 식혀주었다. 이제 방향을 틀었다. 공동묘지 출구까지는 이제 대략 일 분 이내다. 달빛은 등 뒤에서 비추는 것 같다. 이번에는 돌풍이 불었다.
“으아악!”
희태는 미친 듯이 비명을 질렀다. 옆 쪽에서 흰 옷을 입은 귀신이 벌떡 일어나는 것을 본 것이다. 정확히 귀신이다. 그다음부터 희태는 공동묘지를 어떻게 벗어났는지 아무런 기억이 없다. 그저 미친 듯이 뛰었다. 희태 눈에 보이는 것은 버스 정류장과 막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이었다. 다행히도 아직 막차는 지나가지 않았다. 희태는 손목시계를 보았다. 예상했던 것보다 시간이 단축됐다. 칠 분이 걸렸다. 희태는 등 뒤로 싸늘함을 느꼈다. 등 뒤를 돌아보기 두려웠지만 용기를 내서 돌아보았다.
“으아악~~~”
희태는 다시 한번 비명을 질렀다. 머리가 긴 여자다. 게다가 소복을 입은 귀신이다. 그러나 실제로 희태가 본 건 귀신이 아니었다. 흰 티를 입은 여학생이 잠시 땅바닥을 보고 있던 차에 희태가 여학생의 정수리를 보게 된 것이었다. 희태는 막차를 기다리던 사람들에게 연신 미안하다며 사과했다. 잠시 후 버스가 도착했다. ‘이제 드디어 집에 갈 수 있다!’ 희태는 용돈을 날리지 않게 된 것이다. 희태는 버스 정류장에서 내려 다시 전철을 탔다. 어느 구간을 지나면서 전철은 다시 지하철이 될 것이지만, 희태는 전철이 지하로 숨어 달리기 전에 내려야 한다. 이제 남은 문제가 하나 더 있다. 열두 시 전까지는 집에 도착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철에서 내려 어두운 골목길로 접어들었다. 이십이 년을 나고 자란 익숙한 동네인데 오늘따라 어색해 보인다. 희태는 공동묘지에서 본 건 괜한 두려움 때문에 헛것을 본 것이라고 믿었다. 그렇다고 생각하고 싶었다. 무신론자에다 귀신은 없다고 믿던 희태에게 있어 공동묘지에서 본 것은 절대 귀신일 리가 없었다. 미신이나 종교보다는 과학을 신봉하는 희태에게는 귀신의 존재는 있을 수 없다. 하지만 평생을, 새벽에도 수도 없이 지나다녔던 골목이 너무도 낯설게 느껴졌다.
*
‘내가 왜 이러지?’ 희태는 스스로를 다스리며 골목길로 들어섰다. 하지만 머릿속에서는 흰 소복을 입은 귀신의 모습, 곁눈질로 보았던 실루엣이 그대로 떠올랐다. 오래된 시멘트 블록으로 세운 담벼락이 달빛을 반사했다. 거칠게 부는 바람은 이상한 소리를 만들어 스산한 느낌이 더해졌다. 희태는 에라 모르겠다 싶어 무작정 뛰었다. 게다가 열두 시까지는 이십 분도 채 남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희태는 앞만 보고 뛰었다. 옆을 보면 아까 보았던 귀신이 다시 달려들 것만 같았다. 초등학교 때 백 미터 달리기 이후로 이렇게 열심히 달려본 적이 없는 것 같았다. 희태는 모퉁이를 돌아 첫 번째 대문으로 뛰어들었다. 철제 대문이 열리는 소리는 거의 때려 부수는 듯 요란했다.
“야! 이 자식아! 식사하러 오셨던 할아버지가 놀라서 돌아가시겠다!”
현관문을 열기도 전에 아버지의 호통 소리가 들려왔다.
“시간 맞춰 오느라 그런 거예요!”
희태는 거친 숨을 헐떡거리며 대꾸했다. 그러나 속마음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할아버지께서 오셔서 식사를 하신다는 건가?’ 희태는 귀신의 존재에 대해 잠시 고민했다. 역시 귀신이란 것은 과학적인 방법으로 절대 검증할 수 없다는 자신의 확신을 깨뜨릴 순 없었다. 거실에는 이미 할아버지 제사 준비가 끝나 있었고 소파에는 큰아버지가 앉아 있었다.
“어? 언제 오셨어요?”
희태는 꾸벅하며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야! 이놈아! 너는 큰아버지께서 오셨는데 똑바로 인사는 안 하고 언제 오셨냐니! 그게 니 예법이야?”
희태의 아버지는 벌써 한 소리했다. 희태가 실수했다는 말도 꺼내기 전에 혼이 난 것이다. 희태 큰아버지는 경북 안동의 종갓집 종손이다. 웬일인지 서울까지 온 것이다. 희태의 집은 안동과는 별개로 할아버지 제사를 따로 지냈다. 그런데 전례 없이 할아버지 제사를 함께 지내자며 올라온 것이라는 것이다.
“큰아버지. 안동 큰집에서는 제사를 어쩌시고, 그것도 혼자 올라오셨대요?”
희태는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가방을 내려놓으며 물었다.
“그래~ 희태 이 녀석이 그래도 뭔가 눈치는 있는 모양이긴 하구나! 어제 니 할아버지께서 내 꿈에 나오셔서는 그러시더구나. 오랜만에 희태도 보고 싶고 해서 오늘은 니기 집에 오신다고 하시더구나.”
큰아버지가 대답했다.
“아니~ 형님! 그렇다면 예전에는 아버지께서 우리 집 제사에는 오지 않으셨다는 거잖아요?”
희태 아버지는 놀란 듯한 표정으로 섭섭하다는 말을 했다.
“그거야! 니가 큰집에 안 내려온 게 문제지 아버지가 안 오신 게 문제는 아니지 않냐?”
“아니! 그래도 우리 정성이 있지! 거 참! 노인네가~ 귀신이 뭐 기력이 달릴 것도 아니고 길 막히는 도로에서 차를 타고 다니실 일도 아닌데 뭐가 힘들다고 여기를 안 오신 거예요. 대체~ 거 뭐냐? 영화에서처럼 뿅 화면 여기저기 나타날 수 있는 게 귀신인데 참말로 아버지 섭섭하네요.”
희태 아버지는 농담이 아니었다. 정말 섭섭했던 것이다.
“이놈아. 아버지한테 섭섭하다 하지 말고, 니가 아버지 제삿날에 큰 집으로 내려오면 되잖아? 희태 녀석이야 공부 핑계로 못 온다고 하니 그렇다 쳐도 넌 지금 하는 일도 없으면서 뭐가 그리 바쁘다고~ 아마 아버지가 니기 집에 안 오시는 이유가 바로 그기라~”
“근데, 우리 아버지지만 참 별난 분이시네. 정말~ 형님 꿈엔 왜 또 나타나가지고서는~?”
희태 아버지는 제사상을 정리하고 향에 불을 붙이며 말했다.
“니가 아니고 희태가 보고싶다고 오신다잖냐? 그러니까 내도 올라온 기고~”
큰아버지와 희태 아버지는 익숙한 몸짓으로 제사를 준비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십 년은 된 듯한 거실의 오래된 괘종시계가 열두 시를 알리는 종소리를 울렸다. 할아버지가 살아있을 때부터 있던 물건이다. 희태의 할아버지는 희태가 중학생 때 교통사고로 죽었다. 횡단보도를 건너다 공사장 덤프트럭에 치여서 현장에서 즉사한 것이다. 무단횡단이었다. 시골이라 동네 사람들 대부분이 무단횡단을 일상처럼 해왔었다. 할아버지가 죽던 그 해 인근에 석회 광산이 개발되면서 덤프트럭이 동네를 지나다니게 됐고, 무단횡단으로 인한 교통사고로 죽은 사람이 네 명이나 되었다. 나중에야 민원이 들어가면서 덤프트럭이 다른 길로 다니게 되었지만 인구 수도 많지 않은 동네에서 네 명의 죽음은 동네 인구의 오 퍼센트에 달했다. 동네 인구가 줄어들었다는 게 티가 날 정도였다. 어쨌든 희태의 할아버지는 오늘 제삿밥을 받으러 서울 희태의 집으로 온다고 한다. 물론 큰아버지의 꿈에 나타난 할아버지의 말이란다. 큰아버지는 제주가 되어 할아버지의 제사를 진행했다. 할아버지가 왔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귀신이란 존재를 믿지 않는 희태는 ‘할아버지께서 오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희태 차례가 되자 절을 하며 할아버지에게 속으로 말했다. ‘제가 보고 싶어 오셨다고 들었어요. 정말 고마워요. 할아버지. 보고 싶어요. 명절 때 뵐게요. 맛있게 드시고 가세요. 할아버지는 우리 엄마 음식 좋아하셨잖아요.’ 희태는 두 번 큰 절을 하고 반절 후 고개를 들었다.
“앗! 할아버지!”
희태의 눈에는 아주 잠시였지만 할아버지가 살아생전 가장 좋아하던 굴비를 뜯고 있는 것이 보였다. 희태의 외침에 큰아버지는 물론 희태 가족들이 희태와 제사상을 번갈아 보았다. 그리고 큰아버지는 의외로 담담하게 말했다.
“희태 눈에 할아버지가 보였구나! 정말 오늘 희태 만나러 오신 모양이다. 내가 오늘 니들 집에 오길 정말 잘한 것 같다 아이가~ 어때? 할아버지께서 어떤 모습이시더냐?”
희태는 눈을 비볐다. 정말 믿을 수가 없었다. ‘오늘 공동묘지에서 본 것도 역시 귀신이었단 말인가? 버스 정류장에 여학생은?’ 희태는 하루에 세 번이나 귀신을 보았다는 생각에 온몸에 있는 털이 모두 곤두섰다. 그리고 희태의 믿음이 깨져 나가고 있었다. 절대로 귀신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과학적 믿음이 불신되는 순간이었다.
“할아버지께서는 굴비를 바르고 계셨어요. 저를 보며 웃고 계셨어요.”
희태는 아주 찰나 같은 순간에 보았던 할아버지의 모습을 설명했다. 그리고 버스 정류장에서 보았던 여학생을 기억했다. 여학생은 놀라지도 않았고, 그 이후에는 보이지도 않았었다. 버스 탈 때는 어디 갔는지 보이지도 않았던 것이다. 희태는 여학생의 얼굴이 기억나지 않았다.
그날 밤 희태는 꿈을 꾸었다. 할아버지가 나타난 거다. 할아버지라는 것을 어떻게 알고 있는지 이해되지도 않았다. 할아버지의 모습은 머리가 짓눌린 상태였다. 아까 제사상에 앉아 있던 모습이 아니었다. 그런데 할아버지의 모습이 전혀 징그럽거나 혐오스럽지가 않았다. 표정조차 알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짓이겨진 얼굴에서 환한 미소를 느낄 수 있었다. 그런 모습을 느끼는 자신이 이해할 수 없었다. 꿈이지만 꿈이 아닌 것 같은 묘한 기분이었다. 할아버지께서는 계속 웃고만 계신다. 아무 말씀도 없다. 한참을 보던 할아버지는 손을 내밀었다. 희태는 할아버지의 손을 잡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꿈이지만 희태는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언젠가 들었던 이야기가 기억난 것이다. 돌아올 수 없는 강, 성경에서 말하는 요단강 같은 것들이었다. 이제 할아버지 손을 잡으면 그 강을 건너 돌아오지 못하고 영원히 꿈에서 깰 수 없을 것 같았다. 기분은 정말 편했다. 알아볼 수 없는 얼굴을 한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싶지는 않았다. 할아버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희태는 한 발을 뒤로 빼었다. 그런데 아주머니 한 명과 젊은 청년 한 명 그리고 할아버지 또래의 할머니 한 명이 더 나타났다. 모두 처음 보는 사람들이다. 모두들 희태를 보며 웃고만 있었다. 그 이상 아무런 행동도 말도 없다. 얼마나 그러고 있었을까? 희태는 갑자기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이상 그들과 마주하다가는 죽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희태는 잠에서 깨어나고 싶었다. 그런데 꿈에서 깨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런 방법을 알 리가 없었다. 꿈과 현실 속에서 계속 허둥거렸다. 그들은 아까보다 더 환하게 웃었다. 이젠 할아버지가 한 발을 다가오더니 희태의 손목을 잡았다. 희태는 할아버지의 손을 보았다. 피다! 할아버지가 잡은 희태의 팔에는 빨간 피가 묻었다. 아프지는 않은데, 피는 계속 번져 바닥으로 뚝뚝 떨어졌다. 그런데 피는 계속 추락하기만 한다. 바닥이 보이지 않는다. 희태는 발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아래에는 희태의 가족과 큰아버지가 희태의 발을 잡으려 위로 손을 뻗치고 있었다. 그들은 뭐라고 말을 하는 것 같은데, 희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희태야! 일어나!”
희태는 방금 전 소리를 들었다. 분명히 엄마 목소리였다.
‘응! 엄마!’ 희태는 말을 했지만 소리가 되어 나오지 않았다. 그저 마음속에서만 나온 말이었다. 희태는 엄마의 목소리가 자꾸 마음에 걸렸다. 엄마 말대로 꼭 일어나야만 할 것 같았다. ‘어휴~ 우리 엄마는 꿈속에서까지 나를 귀찮게 하시는구나!’ 희태는 엉뚱한 생각을 하며 어쩔 수 없이 눈을 떴다. 아니! 갑자기 꿈에서 깨는 방법을 알 수 있었다. 엄마의 목소리 덕분이다. 희태는 잠에서 깨며 눈을 떴다. 온몸이 축축했다. ‘날이 환하다. 악몽이었군!’ 희태는 침대에서 일어나 앉았다.
“희태야! 밥 먹어! 큰아버지 식사하시고 바로 내려가셔야 한대~”
역시 엄마 목소리는 희태를 악몽에서 깨운 것이 분명했다. ‘어쩌면 할아버지께서 나를 데리러 오신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희태는 식사 자리에서 큰아버지에게 꿈 이야기를 했다. 어른들은 희태의 꿈 이야기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정말, 할아버지께서 희태 널 데리러 오신 것일지도 모르겠구나.”
큰아버지는 정말 다행이라며 비슷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역시 우리 엄마는 귀신도 무서워하는 공포의 목소리를 가지고 있는 것 같아. 나는 엄마 덕분에 목숨을 건진 거네.”
희태는 농담으로 꿈 이야기를 마무리했지만 정말 죽었을지도 몰랐을 꿈과 이상한 경험 그리고 어젯밤 귀신을 보게 된 것들이 결코 우연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할아버지께서 희태에게 몸조심하라는 말씀 하시려고 오신 걸지도 모르겠데이~ 혹시 니 꿈에 나왔다는 그 아지매하고 따라들은 누군지 모르겠나?”
큰아버지는 아무래도 꿈에 나온 다른 사람들이 신경 쓰이는 모양이었다. 물론, 희태 역시 신경 쓰이기는 마찬가지였다. 정작 당사자는 희태 본인인데 불안한 마음이 오죽하겠는가. 희태는 기억나는 대로 다른 세 명의 인상착의를 설명했다. 그런데 큰아버지의 안색이 좋지 않다.
“음~”
큰아버지는 수저를 내려놓고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왜요? 그래 뭐 짚이는 거라도 있어요?”
희태 아버지가 물었다.
“니 혹시 광천이 기억 하제?”
“그럼요. 나랑 같은 반이었는데~”
“아마도, 그 할매는 광천이 어매 같데이~ 그리고 음~”
큰아버지는 뭔가 떠오르는가 싶었다. 희태네 가족은 밥상을 물리고 거실로 자리를 옮겼다.
“희태야~ 혹시 니가 봤다는 그 아지매 있지. 어케 생겼더나?”
큰아버지는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
“볼에 점이 하나 있었어요. 너무 잠깐이라 잘 기억나지는 않아요. 그런데 왜요?”
희태는 의아한 듯 대답했다.
“복순이 아는가 모른 감네? 그리고 그 젊은 친구는 아랫동네 살던 그 누구더라? 암튼 아마도 아버지하고 비슷한 시기에 교통사고로 죽은 사람들 아잉가 싶다.”
“정말로 말입니까?”
큰아버지의 말에 가족들은 모두 매우 놀라는 눈치였다.
“아니! 그런데~ 아버지가 그 사람들하고 왜 같이 다니신대요? 그리고 왜 희태한테 오셔서. 뭐 꼭 데려가겠다고 오신 건 아니겠지요?”
희태 아버지는 내심 걱정이 되는 표정이었다.
“희태 니 혹시~ 그 사람들 어디서 본 적 없나?”
“절대요. 절대로 처음 보는 사람들이었어요.”
“희태는 어쨌든 몸조심하고 다녀라~ 내사 안동 내려가서 광천이네 좀 가봐야겠다. 그 집서도 아마 광천이 엄니 제사 지냈을 텐데~”
*
큰아버지가 안동으로 내려간 후 희태는 학교로 향했다. 지난밤의 기억이 많이 찜찜했다. 평소 아무 생각 없이 다니던 길이지만 희태는 길을 건널 때도, 도로 옆을 지날 때도, 지하철을 타고 내릴 때도, 버스를 기다리고 탈 때도, 인도를 걸을 때도 모든 게 신경 쓰였다. 어디선가 갑자기 무엇이라도 튀어나와 사고가 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고라는 것이 희태만 조심한다고 방지되는 것이 아니긴 하지만, 그래도 만반의 대비는 하고 싶었다. 희태는 어쨌거나 학교까지는 무사히 도착했다. 꿈 때문에 괜히 과민 반응해서 다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오전 강의 시간 내내 희태는 강의 내용은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구내식당에서도 희태는 오만 가지 상상을 다 했다. ‘식당에 불이 나는 건 아닐까?’, ‘건물이 무너지는 건 아니겠지?’, ‘걸어가다가 넘어졌는데 목이 꺾이는 건 아닐까?’, ‘누군가 살인자가 나를 죽이는 것은 아닐까?’, ‘나한테 차였던 여자애가 복수하는 건 아닐까?’, ‘실험실이 터져서 파편에 맞아 죽는 건 아닐까?’ 희태의 상상은 끝을 볼 수 없었다. 식판을 앞에 두고서는, 밥 먹다가 목에 음식이 걸려서 식도가 막혀 죽는 건 아닐까? 누가 독을 타지는 않았겠지? 희태는 상상에 끝이 보이지 않았다. 희태는 이상하게 어제 먹다 만 술이 급하게 당기기 시작했다. 육 교시까지만 하면 오늘 강의는 끝이 난다. 늦어도 네 시면 모든 강의는 끝난다. 희태는 동아리의 친한 선배에게 술을 사달라고 졸랐다. 술 한잔하면 이 정신병 같은 상황을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차피 죽고 사는 게 운명이라면, 내가 피해 갈 수는 없는 거야. 만약에 할아버지가 나를 데리러 오신 거였다고 해도 나는 할아버지의 손을 잡은 것도 아니잖아.’ 희태는 스스로 그렇게 위안을 삼았다. 해가 지기도 전에 희태는 취기가 올랐다. 이미 소주 한 병을 마신 것 같다.
“형은 죽는 게 뭐라고 생각해?”
희태는 선배에게 심각하게 물었다.
“야~ 우리가 무슨 사춘기도 아니고 죽고 사는 걸 걱정하냐? 그냥 즐겨 이 자식아! 니가 살려고 해도 죽을 놈이면 죽고, 니가 죽을 놈이면 아무리 도망가도 죽는 거야. 술이나 마셔! 왠 쓸데없는 고민을 하고 있어? 인생이란 말이다! 내가 얼마 산 건 아니지만, 내 생각엔 그래! 그냥 도망치지 않고 살면 되는 거야! 이 순간을 살면 되는 거 아니냐?”
선배는 혀가 만신창이가 되어 말했다. 희태 생각에는 선배가 하는 말이 되려 진리처럼 와 닿았다. ‘그래! 도망친다고 도망을 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도망을 친다고 해 봤자 얼마나 도망가겠어?’ 희태는 선배의 조언에 취해갔다. 술이 어느 정도 취해가자 희태는 도망가는 건 비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직접 부딪혀 보는 것이 더 낫지 않겠나 싶었다. 그렇다면 이 상황이 벌어진 것을 처음부터 다시 부딪히는 것이 해결법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희태는 학교 후문의 성당 공동묘지에서 본 것이 일생 최초의 귀신이었다. 그리고 버스 정류장에서 다시 여학생을 확인해야 했다. 마지막으로 할아버지와 꿈에 나타난 세 명이 문제였다. 희태는 여차하면 안동까지 내려갈 각오까지 했다. 하지만 혼자서는 자신이 없었다.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다. 희태는 귀신이 없다며 항상 과학적 반증에 중심을 두었던 자신이 이제 와서 귀신을 봤다며 지인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부끄러웠다. 하지만 귀신이 정말 있는 것인지 확인하면 될 일이었다. 희태는 선배에게 공동묘지에서 귀신을 목격했던 것을 이야기했다. 역시 희태의 예상대로 희태가 항상 떠들어 댔던 <귀신은 없다>라는 주장에 있어 그것 보라며 웃어댔다.
“그러니까, 형! 도와줄 거야? 말 거야?”
희태는 선배의 얼굴에서 걱정을 하는 표정이 스쳐가는 것을 확인했다. 이미 학교 내에서는 귀신이 나온다는 소문이 있던 공동묘지의 귀신을, 귀신이 없다고 믿던 희태마저 목격담을 설파하고 있으니 고민이 되지 않을 리 없었다.
“그럼~ 우리 사람들 좀 더 모아 볼까? 여럿이서 가면 무섭지는 않을 거 아냐?”
희태는 새로운 제안을 했다. 선배는 아직까지 캠퍼스 근처에 남아 있는 학생들을 수소문했다. 아직 아주 늦은 시간이 아니었기 때문에 세 명을 수소문해서 공동묘지 귀신을 체험할 멤버를 조직했다. 그들 역시 이미 맨 정신은 아닌 상태였지만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시간은 열 시 삼십 분. 그들은 희태가 귀신을 보았던 시간인 열 시 오십오 분경의 시간에 맞춰 출발했다. 물론, 이번에는 뛸 이유가 없었다. 오늘은 희태가 귀신을 보았던 어제보다 날씨가 더욱 험난했다. 바람은 더욱 세고, 그만큼 구름의 속도가 빨랐다. 달은 어제보다 더 차서 동그랗다. 영화에서나 보던 음산한 분위기다. 구름은 수시로 구름 뒤에 숨어들었다. 희태는 오는 길에 단골 주점에서 비상용 랜턴 하나를 빌리긴 했지만, 역시 생각처럼 큰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오히려 어둠에 적응하는 데 있어 더 방해가 되는 것 같았다. 희태가 랜턴을 꺼 버리자 일행들은 당장 랜턴을 켜라고 아우성이었다. 그만큼 모두들 긴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드디어 공동묘지의 거의 한가운데까지 이르렀다. 지금은 여럿이 함께 있어서 그런지 희태는 혼자 미친 듯이 뛰어갈 때와는 다르게 심적인 안정감이 있었다. 어제와 다른 것이라면 그들이 거의 한가운데 도착했을 쯤부터 성당의 십자가에서 나오던 빨간빛이 깜빡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십자가에서는 약하게 지지직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보름달은 구름 뒤에 숨어버리려 했다. 희태는 일행들을 모으고 랜턴 불빛을 사방에 비추어 보았다. 직진성이 강한 랜턴은 공동묘지를 넓게 비추지는 못했다. 다섯 명의 귀신 모험가는 랜턴이 비추는 곳을 따라 눈을 움직였다.
“앗!”
희태는 랜턴이 비추며 지났던 누군가의 비석 위에서 두 눈동자와 마주쳤다. 다른 네 명의 입에서도 작은 신음 소리가 들려왔다. 희태가 다시 랜턴을 비추었지만 이미 두 눈동자는 사라지고 없었다. 야옹~ 야옹~ 잠시 후 그쪽에서 고양이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켜~ 켜~ 하는 소리가 들렸다.
“고양이였나 봐! 휴~”
희태가 말했다. 희태는 물론 모두들 짧은 한숨을 쉬었다. 그러자 잠시 후 아기가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뭐지?”
선배는 말을 더듬으며 나지막이 말했다.
“누가 아기를 버리고 간 건 아니겠지?”
다른 일행이다. 역시 목소리를 떨고 있었다. 모두 아기 소리가 아니길 바랬다.
“저건, 고양이 소리야! 가끔 아기 소리처럼 들린다고 들은 적이 있어. 그게 바로 저 소리인가 봐.”
또 다른 일행이 설명했다.
“아~”
다들 그 이상의 반응은 없었다.
“이제 가자! 뭐! 귀신은 없는 것 같아! 희태가 잘못 본 거겠지.”
선배의 목소리는 이미 다급했다.
“그래! 가자!”
모두들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동시에 같은 말을 뱉어냈다. 모두들 더 이상 말은 없었지만 발걸음은 출구를 향했다. 들어올 때보다 빠른 걸음인데 사실 뛰는 거나 다름없었다. 그때였다. 세찬 바람이 불며 다섯 명 모두 찢어지는 비명을 질러댔다. 이미 달은 구름 뒤로 사라지고 없었다. 달이 다시 살며시 고개를 내밀었을 땐, 공동묘지에는 세 사람만 남아 있었다. 하지만 모두 제멋대로 바닥에 누워 있었다. 눈은 뒤집어진 상태로 기절한 것이다. 한 명은 입에 거품까지 물고 있었다. 그럼 나머지 두 명은 어디에 있을까? 그들은 이미 공동묘지 밖에까지 줄행랑을 치고 없었다. 희태의 선배와 일행 중 한 명이었다.
“야! 애들은?”
희태 선배는 정신없이 뛰다가 멈춰 뒤돌아보았다. 세 명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다시 돌아가 봐야 할 것 같았지만 자신이 없었다. 그 둘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한편 공동묘지에선 일행 중 한 명이 먼저 정신을 차렸고 희태와 남은 일행을 깨웠다. 정신을 차린 그들은 미친 듯이 웃어댔다. 나중에는 아예 뒤로 누워 몸을 굴리기까지 하면서 웃어댔다.
“이야~ 이건! 너무 어이없지 않아?”
희태는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듯했다.
“그나저나, 선배들 정말 의리 없다. 우리를 찾으러 오지도 않네?”
희태들은 희태 선배를 골탕 먹일 작전을 짰다.
“우리 이대로 집에 가야 돼! 절대 연락하지 말고 서로 연락도 받지 않는 거야! 그리고 내일 학교에서는 얼이 빠진 척하자고. 자꾸 헛것이 보이는 척하고 말이야. 귀신에 홀린 척을 하는 거야.”
셋은 계획대로 그 자리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희태는 기절을 하는 바람에 오늘도 역시 막차를 타야 했다. ‘그때 그 여학생이네?’ 희태는 여학생에게 인사를 할까 싶었지만, 그냥 모른 척했다. 희태는 막차를 타고서야 여학생이 버스를 타지 않은 것을 알 수 있었다. ‘어찌 된 거지? 이 차가 막차일 텐데~’
*
다음날 학교에서는 약속대로 희태 일행은 얼빠진 모습을 해봤지만 그들의 연기는 너무 허술했다. 결국, 공동묘지 귀신의 정체를 이실직고하고 말았다.
“그게 뭔지 알아?”
“미안해! 우리도 너무 무서웠다니까~ 그래도 우리는 너희들 구하러 가긴 했어. 물론, 입구까지만~”
“됐어!”
“그러니까! 그게 뭔 줄 알려달라고~”
“그게 뭐였냐 하면~ 커다란 비닐이었어. 농사지을 때 쓰는 비닐 같은 거 있잖아. 흰색 비닐! 그게 갑자기 바람이 불면서 벌떡 일어난 건데, 우린 긴장하고 있어서 다들 기절해 버린 거야! 그래도, 형은 우리보다 심장이 튼튼한가 봐! 기절은 안 했으니까!”
성당 공동묘지의 귀신 소문은 이렇게 일단락되었다.
“너 그런데, 그거 알아? 우리 학교 근처에 귀신 소문이 하나 더 있더라고. 음대에서는 이미 유명한 이야기야!”
선배가 말했다.
“뭔데요? 이젠 귀신 이야기는 무섭지도 않아요.”
희태는 이제 다시 귀신은 없다고 믿고 있었다.
“너도 가끔 가봐서 알 거야. 공동묘지 지나서 버스 타는 곳 말이야. 거기서 너네 학번 여자애가 막차 기다리다가 실종됐는데, 아직 못 찾았다나 봐! 가끔, 거기서 그 여자의 귀신을 봤다는 애들이 있어~”
희태는 선배의 말을 듣고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
에피소드
희태는 두 번 다시 막차를 타지 않았다. 그리고 할아버지의 모습을 본 것은 끝까지 해결할 수 없는 미스터리로 남았다. 희태는 이제 귀신은 존재한다고 믿는다. 희태는 영원히 인생에서 도망치지 않고 살기로 했다. 귀신도 마다하지 않는데 뭐가 두렵겠냐는 것이다. 희태에게는 귀신이 자주 보인다. 그러나 이젠 겁이 나지 않는다. 귀신을 보는 것도 꽤 즐거운 일이다.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으니까.
최근에는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귀신과 대화를 해보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