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릇과 자기함정 '설마'

오묘한 소양을 담아내기

by 루파고

우리는 대개 사람의 소양을 그릇에 비유하곤 한다. 그릇을 두고 인성에 비유하기도 한다. 담는다는 의미만 두고 본다면 상대방의 진심의 배려라 할지라도 그릇이 작으면 담아내지 못한다. 배려를 담아내지 못해 철철 흐르는 상황은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관심과 사랑을 이해하지 못해 시기하고 질투하는 게 아마 그런 느낌 아닐까 싶다. 담는다는 의미로 좀 더 접근해 보자. 그릇의 크기를 떠나 다르게 해석해 볼 수도 있다. 만약 그릇에 구멍이 났거나 잘 보이지 않는 실금이 가 있을 경우는 어떨까? 아무리 사랑을 퍼다 줘도 금세 바닥을 드러낼 것이다. 구멍의 크기가 크면 속도는 더 빠르겠다.

인간은 누구나 기억의 상실로 인한 실금 정도는 가 있을 것 같다. 생명과 맞바꿀 수 있을 것 같던 사랑도 시간이 가면 흐려지는 걸 보면 말이다. 고로, 새지 않는 그릇은 없다고 본다. 그릇의 재질도 한몫할 것이다. 고집이 세고 독선적인 사람과 우유부단하고 물러 터진 사람의 경우를 비유하면 될까?


사람의 그릇은 정해진 것이 없다. 때론 크기가 변하기도 하고, 상황에 따라 재질을 바꾸기도 한다. 모양은 각기 다르고, 컬러도 다르다. 던져도 흠집 하나 나지 않는 그릇도 있고, 살짝만 건드려도 흠집이 나는 그릇도 있다. 줄줄 새는 줄도 모르고 꽉 찼다고 착각하게 만들며, 채워도 채워도 절대 채울 수 없다.


독을 담아도 물이 되기도 하고, 물을 담아도 썩어버리기도 한다. 차가운 물도 금세 따뜻할 수도 있고, 뜨거운 물을 담아도 얼음이 되기도 한다. 겨울에 따뜻한 물이 되기도 하고, 숨쉬기 힘든 뙤약볕 아래에도 계곡물처럼 시원하게도 한다.


내 그릇은 오롯이 내가 마음먹기 달렸다.



설마가 사람 잡는다는 말이 있다. 그러고 보니 선무당이 사람을 잡는다는 말도 있다. '설마'라는 단어를 타인에게 적용할 경우도 있지만 자신에게 적용할 땐 심각한 문제가 뒤따른다. 스스로를 마취시키거나 우매하게 만들게 된다. 즉 자기 함정이다.

비슷한 느낌의 '자아도취'라는 말이 있는데 이 같은 경우엔 초긍정적인 자신을 만들어낼 수 있다. 하지만 '설마'는 충분히 의심할 수 있는 사안도 모른 척 넘어가게 한다. 설마 하는 생각은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한다. '설마'는 자기 최면을 유도하는 악마일 수도 있다.


당장 지금도 '설마'가 파둔 몰락의 구덩이 안에 발을 쓱 담그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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