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배나무집 셋째 딸 Vol.3
첫째, 둘째, 셋째, 넷째 딸과 첫째 아들은 아빠를 많이 닮았다. 막내딸과 막내아들은 엄마를 닮았다. 아빠는 막내딸과 막내아들에게 특히 더 정을 줄 수밖에 없었다. 아빠는 딸 중에서도 가장 총명한 셋째 딸을 신뢰했고 어릴 때부터 많은 정성을 들였다. 셋째는 호기심 많고 무엇이든 배우는 것을 좋아했다. 항상 밖에서 놀기 바빴던 형제들과는 달리 서재에서 서예를 하는 아빠를 도와 먹을 갈았다. 그렇지 않으면 아빠가 틀어둔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들으며 곁에서 글을 배웠다. 그녀는 서재의 수많은 책을 섭렵했다.
열세 살이 되던 해였다. 벚꽃이 다 지고 초록이 시작될 무렵 아빠는 특별한 선물을 주었다. 학업 성취에 대한 약속이었다. 그녀의 엄마 역시 어릴 때 같은 선물을 받았다. 송골매 알이었다. 그녀는 알을 부화시키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에 다녀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부화가 시작되었다. 아기 송골매는 안쪽에서부터 부리로 알에 구멍을 내고 세상 밖으로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녀는 송골매의 어미가 되어 아기 송골매가 혼자 힘으로 알을 깨고 나오기를 응원했다. 조금씩 조금씩 아기 송골매의 촉촉한 털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녀는 아기 송골매가 나올 수 있도록 조금 도와주었다. 너무 많이 도와주면 안 된다는 아빠의 조언이 있었기 때문에 최대한 새끼 혼자 알을 깰 수 있을 정도만 도와준 것이다. 드디어 아기 송골매의 머리가 알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알을 깨고 세상의 빛을 본 녀석은 어미와의 탯줄이 없었다. 그녀는 그 자리에서 탯줄도 없는 녀석의 이름을 지어주었다. 아기 송골매는 <알맹이>가 됐고 그녀는 알맹이 엄마가 되었다. 알맹이 역시 처음 본 순간부터 그녀를 엄마로 인지한 듯했다. 알맹이는 영혼의 탯줄로 이어진 교감으로 그녀를 따랐다. 언니들과 동생들 역시 알맹이를 무척이나 귀여워했지만 도도한 알맹이는 항상 일편단심이었다. 학교에 다녀온 그녀는 넷째, 다섯째와 함께 개구리를 잡으러 갔다. 때론 도마뱀, 도롱뇽 같은 녀석들을 잡기도 했다. 동생들은 징그럽다고 피했지만 그녀는 알맹이의 엄마이기에 두렵지 않았다.
“알맹이를 굶겨 죽일 수는 없잖아. 니들은 이모가 되어서 어쩜 그렇게 생각이 없니?”
그녀 역시 징그럽고 무서운 개구리, 도마뱀, 도롱뇽을 잡는 게 죽기보다 싫었다. 삼 년 전에는 엄마와 화단에 꽃을 심던 중 기겁한 적이 있었다. 모종삽 대신 손으로 흙 놀이를 하다가 흙 속에 있던 지렁이를 만진 것이다. 가뜩이나 징그럽고 끔찍한데 미끈거리고 물컹했던 감촉이 머릿속에서 떠나지를 않았다. 그녀는 손가락에 피가 터지도록 시멘트 바닥에 손을 문질렀다. 그랬던 그녀가 지렁이보다 더 무섭고 징그러운 것들을 잡아오는 것이다. 심지어 어린 알맹이를 위해 개구리를 갈기갈기 찢어서 알맹이 부리에 직접 넣어주었다. 그녀의 정성은 누가 봐도 혀를 찰 지경이었다.
알맹이는 무럭무럭 자랐다. 그녀의 성장 속도에 비해 너무도 빠르게 커나갔다. 알맹이는 언젠가부터 온 방 안을 헤집고 다니기 시작했다. 오리 새끼처럼 뒤뚱대며 걷는 모습이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었다. 언니들과 동생들 모두 그 모습을 함께 보고 예뻐했지만 알맹이를 위해 해주는 것이라곤 기껏 안아주는 정도였다. 그러던 어느 날, 알맹이는 얼마 되지 않는 거리였지만 조금씩 날개 짓을 시작했다. 날기 시작한 것이다. 알맹이의 성장 속도는 그녀의 바람보다 빨랐다. 그래도 알맹이는 예쁘기만 했다. 급기야는 한시도 그녀에게서 떨어지려 하지 않는 알맹이를 떼어놓고 학교에 가는 것이 힘들 정도였다. 언젠가부터 언니 동생들에게 안기려고 조차 하지 않았다.
덩치가 커지기 시작한 알맹이의 먹는 양이 많아져 감당하기 어려웠다. 매일 잡아다 먹이는 개구리도 이제는 한계에 달하고 있었다. 그녀는 어느새 동네에서 <개구리 공주>라는 별명이 붙어버렸다. 알맹이는 날개도 커지고 눈매도 사나워지기 시작했지만 그녀에게는 마냥 예쁘기만 했다. 언니 동생들은 그즈음부터 알맹이를 무서워하기 시작했다.
아빠는 그녀에게 두 번째 선물을 주었다. 팔꿈치까지 들어가는 두터운 가죽 장갑 한 짝과 알맹이를 위한 발찌와 투구였다. 아빠는 그녀를 데리고 장복산 아래 소작을 준 계단식 논 주변으로 가서 알맹이를 훈련시키기 시작했다. 알맹이가 직접 사냥을 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처음 밖으로 나온 알맹이는 약속이나 한 듯 그녀의 가죽장갑 위에 섰다. 긴 두 다리를 곧게 세우고 주변을 돌아보는 알맹이의 모습이 늠름했다. 마스크를 쓴 알맹이는 곧 당장에라도 전투에 나갈 전사의 모습 같았다. 하지만 그녀의 손 위에서 가끔씩 푸드덕 거리며 날개 짓을 할 뿐 날 생각은 없어 보였다. 날아오르도록 던졌지만 알맹이는 다시 그녀 손 위로 내려앉았다. 아직 엄마 곁에 있는 게 마음이 편한 모양이었다. 그날 저녁 아빠는 손가락만 한 피리 비슷한 것을 목걸이로 만들어 그녀의 목에 걸어주었다. 원래 엄마가 쓰던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처음으로 아빠에게서 비밀 한 가지를 알게 되었다.
“널 보면 항상 니 엄마가 생각나.”
다음날부터는 아빠는 알맹이에게 먹이라며 토끼를 한 마리 들고 왔다. 빨간 눈에 귀엽고 착하기만 한 토끼였다. 하지만 그것만은 도저히 할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학교에 다녀왔을 때 마당 옆에 아빠 키보다 높은 커다란 새장이 설치되어 있었고 그 안에는 알맹이가 두려움에 온 몸을 떨고 있는 토끼를 쳐다보고 있었다.
“이제, 알맹이는 혼자 사냥을 할 줄 알아야 해! 언제까지나 니가 개구리를 잡아 먹일 수는 없는 거야. 사냥하는 법을 가르치거나, 사냥을 하는 방법을 터득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해. 그러면 알맹이는 어른이 되는 거야.”
탁구공보다 작은 알에서 태어난 알맹이는 날개를 쭉 펴면 아빠의 한쪽 팔 길이 정도가 될 정도로 많이 커져버렸다. 아빠는 그녀에게 엄마의 피리를 불어보라고 했다. 그녀는 힘껏 피리를 불어보았지만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아빠에게서 요령을 배우고 수십 차례 반복해서 연습을 하고서야 가까스로 피리에서 소리를 내는 데 성공했다. 그런데 알맹이는 그 피리 소리에 반응했다. 이상하다는 듯이 고개를 돌리는 알맹이의 모습이 생소했다. 그녀는 이제야 알맹이와의 탯줄이 생긴 거라고 생각했다. 피리를 불면 알맹이가 그녀를 쳐다보았다. 날개를 푸드덕 거리기도 했다.
매주 그녀는 아빠와 함께 장복산에 올라가 알맹이의 사냥법을 가르쳤다. 가을 추수가 끝날 무렵이 되자 알맹이의 사냥 실력은 일취월장해서 까투리 두세 마리 정도는 잡을 수 있었다. 눈이 내리지 않는 진해의 겨울은 알맹이의 놀이터였다. 언니 동생들은 연을 날리고 그녀는 알맹이를 날렸다. 알맹이가 높이 떠올라 날개를 펴고 상공을 맴돌 때면 놀란 짐승들이 꼬리를 감추고 숨어버렸다. 하지만 알맹이는 언제나 백발백중 사냥에 성공했다. 알맹이는 그녀의 피리 소리가 들리면 영락없이 그녀의 장갑 위로 내려앉았다. 완전히 성장한 알맹이는 보기만 해도 늠름하고 멋졌고 마냥 든든했다. 언젠가 한 번은 그녀의 팔을 쪼아 피부에 구멍이 났다. 그 덕에 알맹이는 호되게 혼이 났다. 알맹이는 가끔씩 마당의 우리에 들어가지 않으려 큰 날개를 펴고 푸드덕거렸다. 게다가 사냥을 가서는 피리 소리에도 들은 척, 만 척 말을 듣지 않고 계속 사냥을 하다가 그녀에게 혼이 나기도 했다.
그녀가 열네 살 되던 해 어느 봄날, 장복산에서 사냥을 떠난 알맹이는 그녀의 피리 소리에도 불구하고 돌아오지 않았다. 그 날 그녀 머리 위 상공에는 또 다른 송골매 한 마리가 더 보였다. 그녀는 목이 터지도록 피리를 불었지만 알맹이는 영영 그녀에게 돌아오지 않았다. 그것이 그녀와 알맹이의 마지막이었고 그녀에게 남은 것은 장갑, 피리 그리고 추억뿐이었다. 투구는 알맹이가 가져가 버렸다.
다음 해 가을, 알맹이는 수렵꾼의 총에 맞아 죽어버렸다. 진청색의 높디높은 가을 하늘을 거침없이 날아다니며 날짐승들을 호령했고, 더 높이높이 날고자 했던 송골매 알맹이도 수렵꾼의 눈에는 그저 총에 맞아떨어진 꿩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에겐 그저 박제로 만들어 팔아버릴 이름 없는 송골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셋째 딸의 이름은 홍지유다. 그녀의 아빠는 지혜로울 지, 지혜로울 유 두 자로 이름을 지었다. 그녀의 태몽엔 공자, 맹자, 노자께서 합동 출연하셨다고 했다. 그래서 지혜로울 지자 돌림에다 같은 뜻의 지혜로울 유자를 썼다. 지유는 이름처럼 어릴 때부터 총명하고 지혜로웠다. 그녀가 이름을 따라간 것인지, 원래 총명한 아이였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형제들 역시 그녀의 지혜로움을 부러워했다. 그러나 그녀의 성격은 상당히 고집이 세고 외골수적인 편이었다. 쓸데없이 고집을 피우는 경우는 없었지만 그녀의 고집은 집념으로 나타났고 외골수적인 부분은 어느 한 가지에 꽂히면 다른 것은 쳐다보지도 않게 했다. 게다가 지유는 심각할 정도로 창의적인 편이었다.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그녀의 인기는 언제나 절정의 위치에 있었다. 밝은 성격이어서 친구도 많은 편이었지만 정과 사에 대한 획을 그어두고 그 선을 넘는 것을 그녀 스스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런 고집스러움 덕분에 다투기도 많이 했지만 그것은 며칠 가지 못했다. 상대방은 언제나 먼저 지유에게 찾아와 사과했다. 잘 생각해보면 지유의 말에 틀린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유의 총명함은 선천적인 것이었겠지만, 지혜만큼은 아빠의 서재에서 만들어진 것이었을 것이다.
*
“아저씨. 요즘 왜 지유가 안 보여요?”
그녀의 소꿉놀이 영자는 며칠째 지유가 보이지 않자 걱정이 됐다. 참다못해 지유를 찾아온 것이다.
“요즘, 지유가 많이 아파. 하지만 며칠 있으면 다시 만날 수 있을 거야. 걱정하지 않아도 돼.”
친구 영자는 지유 아빠가 건네준 초콜릿을 손에 받아 들고 신이 나서 돌아갔다. 군것질거리가 귀했던 당시 영자의 손에 들린 초콜릿은 일 년에 한 번 오는 생일에도 구하기 힘든 것이었다. 영자의 얼굴엔 어떻게 아껴 먹을 것인지 고민하는 것이 그대로 보였다.
지유는 알맹이가 떠나고 열병을 앓았다. 엄마가 세상에서 자취를 감춘 이후로는 누군가 그녀를 떠난다는 것을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측은한 눈빛으로 바라보던 아쉬움만 남은 엄마의 사랑의 눈빛이 그녀의 기억 속에서 되살아났다. 억지로 기억을 억누르고 있었지만 엄마의 눈빛은 자꾸만, 자꾸만 떠올랐다. 지유의 열병은 엄마에 대한 그리움, 엄마가 주던 사랑의 집착이었다. 지유는 알맹이가 엄마의 현신인 줄 알았다. 지유는 아빠의 책들 중에서 불교의 윤회설에 관한 부분을 읽었던 적이 있었다. 아빠가 건네준 알맹이는 엄마가 다른 모습으로 돌아온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지유는 알맹이가 떠난 이후론 불교도, 윤회론도 믿지 않기로 했다.
지유의 꿈에 엄마는 알맹이가 함께 장복산 일대를 날아다니고 있었다. 하지만 엄마는 지유에게 시선을 주지 않았다. 지유는 엄마처럼, 알맹이처럼 날고 싶었다. 아무리 폴짝폴짝, 높이높이 뛰어보아도 기껏 한두 뼘 정도밖에는 뛰어오를 수가 없었다. 지유는 날고 싶었다. 한 번이라도 좋으니 날고 싶었다. 엄마는 끝내 지유를 쳐다보지 않았다.
지유는 꼬박 닷새 동안 열병을 앓았다. 지유는 닷새 동안 정신적인 성장을 하고 엄마의 그리움을 조금은 극복할 수 있었다. 아빠는 엄마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힘들어하는 지유에게 송골매의 알을 선물로 주었던 것이다. 다른 데 정을 줄 수 있다면 엄마의 빈자리를 빨리 극복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지유 엄마가 키웠었던 송골매의 추억을 지유에게도 만들어주어 그리움을 삭혀낼 수 있기를 바랐었다. 아빠가 원한 방향은 아니었지만 알맹이마저 떠나간 후 지유는 생각보다 빨리 엄마의 그리움을 극복했다. 심장이 터질 듯한 꽤 심한 성장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