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배나무집 셋째 딸 Vol.2
수령이 적어도 십 년 이상 되어 보이는 왕벚나무의 꽃잎이 가느다란 봄바람에 벚꽃비가 되어 온 마을을 적시고 있다. 철 모르고 늦게 핀 개나리는 끝까지 꽃잎을 떨구지 못하고 연두색 새싹과 함께 있다. 개나리는 ‘내가 봄의 표상이오!’라고 하는 듯 벚꽃에 힘겹게 대항하고 있었다. 하지만 온 동네를 흰색으로 덮어버린 벚꽃의 위용은 개나리 정도가 나설 자리가 아니다. 그저 흐드러진 벚꽃들의 부족한 몇 가지를 채우는 정도만으로도 그들은 맡은 역할을 다 했다고 할 수 있다.
돌담 너머로는 숲밖에 보이지 않는다. 다양한 수종의 나무들이 노랗게, 하얗게, 빨갛게 봄을 물들이고 있다. 수십 년은 되었을 것 같은 돌배나무는 하얀 배꽃을 틔우려 꽃봉오리를 준비하고 있다. 돌배나무는 처음부터 돌배나무가 아니었다. 나이가 많아지면서 너무 키가 커져버린 배나무는 어느샌가 돌담보다 큰 키를 가지게 되었다. 돌배나무는 가을이 되면 동네 아이들의 간식거리가 되어주기로 맘을 먹었다. 누가 봐도 상당히 멋들어져 보이는 아름드리 와송 세 그루 아래에는 잘 가꿔진 연못이 물레방아를 떠받치고 있다. 연못 안에는 빨갛고 노란 잉어들이 수면 주위에서 뻐끔대고 있다. 그 주변으로는 육 미터는 충분히 넘어 보이는 장신의 단감나무 수십 그루도 새싹을 틔울 준비를 한다. 그 뒤로는 춘향이가 타고 놀았을 것 같은 키가 높은 그네가 어린아이 둘을 태워 놀아주고 있다. 아직 잎이 틔지 않은 느티나무 아래, 원목으로 만들어진 투박한 의자에는 살집이 없는 삼십 대 초반의 여인이 아이들과 살가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아이들은 모두 여자의 딸들이다. 간간이 깔깔거리며 웃고 떠드는 청량한 소리가 들려온다. 삼십 대 여인 곁에는 네 살배기 여자 아이가 발장난을 치며 그네 위 여자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다. 아이 역시 언니들처럼 그네가 타고 싶었던가 보다.
네 살 아이는 집안의 셋째다. 위로 줄줄이 언니가 둘이 있는 데다 아래로도 여동생이 한 명 있다. 딸만 넷이나 되는 딸 부잣집이다. 사내아이를 원했던 그 집 부부는 다행히도 금슬도 좋았다. 중등학교 선생님으로 근무하고 있는 남편은 성실하고 착한 남자다. 집안끼리 약속된 혼인으로 맺어진 부부였지만 이미 어린 시절부터 함께 자라 정이 깊었던 사이다. 아이가 여섯 살이 되던 해 또 한 명의 식구가 늘었다. 또 딸아이였지만 그들 부부는 만족했고 역시 행복했다. 남자의 어머니는 그들 부부가 손을 잇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다행히 그들 집안에는 그런 문제로 인한 고부간의 갈등은 없었다. 언제부턴가 어머니와 며느리는 집 뒤편의 장독대 뒤에서 새벽마다 정화수를 떠 놓고 기도를 드렸다. 신령님께서 아들을 점지해 주시길 빌고 또 빌었다.
보름달이 두둥실 떴던 겨울의 추운 밤. 며느리는 또 한 명의 식구를 낳았다. 신령님께 드렸던 기도와 정성이 받아들여졌는지 여섯 번째 아이는 아들을 보내주신 거다. 온 집안에 경사가 났다. 비누 사업으로 큰 성공을 해서 집안의 누구보다도 돈을 많이 번다던 친척도 직접 축하해주기 위해 먼 길을 찾아왔다. 그들 집안에서는 아들의 출생이 그 어느 집안보다 큰 경사였다. 아들의 백일잔치에는 삼백 명이 넘는 하객이 찾아들었다. 엄청나게 큰 잔치였지만 그들은 무리 없이 행사를 치렀다.
그녀가 열두 살이 되던 국민학교 5학년 때, 집안의 두 번째 경사가 났다. 일곱 번째 아이! 두 번째 아들이 한 번 더 그들에게 선물이 되어 주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잔치도 없었고 웃음도 없었다. 두 번째 아들을 마지막으로 그들의 엄마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게 된 것이다.
막내는 누나들에게서 엄마의 사랑을 대신 받으며 자랐다. 막내에게는 누나들이 곧 엄마였다. 일곱 아이들의 엄마가 막내를 낳고 세상을 등지던 날, 엄마는 아이들을 전부 불러놓고 부탁했다. 아빠를 믿고 착하고 예쁘게 살아 달라고…… 여섯째 아이, 첫째 아들은 엄마의 유언을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저 누나들과 엄마의 분위기가 평소 같지 않고 어두운 분위기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끼고는 말똥말똥 쳐다볼 뿐이었다. 이제 갓 태어난 막내는 아빠의 품에 안겨 세상모르고 자고 있었다. 막내는 엄마와의 마지막 시간을 영혼으로 나누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탯줄로 이어졌던 교감을 끊은 지 얼마 되지 않았음이 좀 더 아쉬웠을 수도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출생과 동시에 가장 슬픈 이별을 해야 하는 고통을 모르는 것이 더 좋은 나았다. 이 집안의 일곱 아이들을 모두 받은 산파는 엄마의 두 손을 꼭 잡고 무릎을 꿇은 채로 중얼거렸다. 개신교를 믿던 산파가 엄마를 위해 기도하던 중 엄마의 마지막 숨결은 희미하게 꺼져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