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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배나무집 셋째 딸 Vol.4

by 루파고

동네 언니 영숙은 지유의 첫째 언니 지혜의 친구였다. 형제가 없는 영숙은 지유를 친동생처럼 좋아했다. 항상 혼자 놀아야만 했던 영숙은 형제가 많은 지유네 집이 마냥 부러웠다. 언제나 시끌벅적한 것도 좋았지만 집도 크고, 마당도 넓은 데다 집 안에 있는 화원은 숲이라고 해도 될 정도라서 정원 안에서 숨바꼭질을 하면 서로 어디에 있는지 찾아내기도 힘들 지경이었다. 때론, 정원을 관리하는 아저씨에게 정원을 망친다며 혼이 난 적도 있었지만 동네 어디에도 지유네 집만큼 좋은 놀이터는 존재하지 않았다. 정원 안에는 지유의 형제들이 가장 소중하게 보존하는 곳이 있었다. 바로 엄마가 평생을 가꿔온 화단이다. 아무리 숨을 곳이 없어도 엄마의 화단에는 절대 들어가지 않았다. 엄마는 언제나 화단 가꾸기에 열심이었었다. 그래서였을까, 딸들 모두 엄마가 키운 꽃들을 좋아했었다. 특히 문주란을 좋아하던 엄마는 언젠가 화분에 있던 다른 식물 하나를 화단에 옮겨 심었다. 엄마는 그것이 행운나무라고 했다. 행운을 주는 나무인데, 나무에 꽃이 피면 그 집에 행운과 행복이 찾아온다는 것이었다. 여섯째인 첫째 아들 지행이 태어나던 해, 행운나무에 처음으로 꽃이 피었다. 행운나무에 꽃이 피는 것은 불규칙해서 백 년을 키워도 꽃 한번 피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게 귀하기에 꽃이 피면 행운이 온다는 뜻으로 행운나무라고 했다. 첫째 아들 지행은 집안에 행운을 가져다줄 아들이라 해서 이름도 지행이 됐다. 사실 그 이름을 지은 건 둘째 언니 지숙이었다.

“엄마. 얘는 행운나무에 꽃이 피고 태어났으니까 행운이 있는 아기잖아요. 그러니까 이름을 지행이라고 지었으면 좋겠어요.”

지숙은 산후조리 중인 엄마에게 부탁을 했고, 지형이라고 지으려 했던 아들의 이름을 지행으로 바꿔서 출생 신고했다.

지유는 알맹이가 사라지고 열병을 앓은 후부터 영숙 언니를 더 따랐다. 영숙은 그런 지유를 더 예뻐해서 어디를 가더라도 지유를 데리고 다녔다. 지유는 그런 영숙 언니가 더더욱 좋았다. 가끔은 큰언니 지혜보다 영숙 언니가 친언니였으면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지유는 ‘그건 안돼!’ 라며 그런 생각을 한 자신을 자책했다.

“그런 생각을 해서는 안 되는 거야. 절대로!”

지유는 착한 아이였다. 영숙 언니는 지유가 자신을 만나 놀러 갈 때마다 주머니 가득 사탕이며 뻥튀기며 군것질거리를 가득 채워 나오곤 했기 때문에 지유랑 놀라가는 것이 더 좋기도 했다. 친구인 지유 큰언니 지혜는 절대 그런 일이 없었다. 욕심이 많은 지혜는 영숙에게 군것질거리를 나눠주는 법이 절대로 없었다. 한 번은 영숙이 지유를 데리고 교회엘 갔다. 이제 중학교에 갓 입학한 지유는 교회당의 모습이 낯설기만 했다. 지유는 영숙이 교회에 가는 이유를 알고 있었다. 교회에서는 가난한 집의 외동딸 영숙에게 끊임없이 군것질거리를 제공했고, 영숙은 아이들을 꾀어 교회로 데리고 갔다. 영숙의 손에 이끌려 교회에 온 다른 아이들도 그것이 싫지 않았던지 그 녀석들 역시 친구들을 꾀어 교회로 데려갔다. 일주일에 한두 번이나 오는 고물장수 아저씨를 기다려 집안에 굴러다니는 고물과 엿을 바꿔먹는 것보다는 교회에 가서 두어 시간 앉아있다가 과자며 사탕이며 실컷 얻어먹고 오는 편이 나을 것이었다. 그러나 지유는 다른 아이들과는 달랐다. 여느 아이들처럼 군것질을 좋아하지도 않는 데다 기억 속의 강렬한 모습을 보았기 때문에 교회 가는 날을 기다리곤 했다. 막내 지명이 태어나던 날, 엄마의 곁에서 엄마의 두 손을 꼭 잡고 기도를 하던 산파 할머니가 기억 속에서 떠올랐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엄마의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렸던 더하기 모양의 목걸이는 지유의 뇌리에 또렷하게 각인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 더하기 모양의 목걸이. 교회에서는 누구나 하나씩 목에 걸고 있는 것을 보았고 교회에서는 ‘하나님, 아버지’를 찾으며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동네 아주머니 한 명도 교회에서 기도하는 것을 보았는데 아주머니는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고 있었다. 아저씨의 병이 낫게 해 달라는 내용의 기도였다.

“하나님은 제가 기도해도 소원을 들어주나요?”

지유는 검은 옷을 입고 단상에 서서 기도하던 아저씨에게 물었다. 아저씨는 하나님이 지유의 소원을 들어주실 거라고 했고 부모님을 모시고 오면 소원을 꼭 들어주실 거라고 했다.

“하나님. 엄마가 보고 싶어요. 엄마가 돌아오게 해 주세요. 알맹이도 돌아오게 해 주세요. 아저씨는 부모님을 모셔오라고 하는데 저는 지금 아빠밖에 없어요. 아빠는 제가 모시고 올 테니까 엄마는 하나님이 데려다주세요. 꼭 부탁드릴게요.”

지유는 아주머니들이 하는 것을 흉내 내며 두 손을 모아 기도했다. 엄마가 꼭 돌아올 것만 같아 행복해졌다.

“엄마만 돌아온다면 알맹이 너처럼 배신하는 녀석 따윈 없어도 돼! 난 엄마가 있으니까!”

지유는 엄마가 당장에라도 돌아올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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