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돌아오는 날

돌배나무집 셋째 딸 Vol.5

by 루파고

6월의 진해는 벌써 한여름이다. 지유는 아빠가 쉬는 일요일을 손꼽아 기다렸다. 일요일이 다가올수록 엄마가 돌아올 날이 다가오는 것 같았다. 토요일 밤, 지유는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내일 당장에라도 엄마를 만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다음 달이면 엄마의 생일인데, 이번 엄마 생일은 모두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지유는 기억 속에서 엄마를 그려보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엄마 얼굴이 생생하게 떠오르지 않았다. 엄마가 웃고 있는 표정은 기억이 나는데 정확하게 그려지지 않았다. ‘엄마 미안해!’ 지유는 너무 미안했다. 엄마가 떠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얼굴이 희미해서 스스로가 미웠다. 지유는 어느새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아니야! 엄마. 우리는 내일이면 만날 수 있는걸.’ 지유는 애써 눈물을 참고 침대에 엎드렸다. 이불을 머리까지 뒤집어쓴 지유는 소리 내어 펑펑 울어버렸다. 엄마에 대한 그리움은 물론이고 엄마를 잊은 자신에 대한 괴로움과 화가 겹친 이상한 슬픔이었다. 지유는 그렇게 울다가 잠이 들어버렸다.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난 지유는 아빠의 서재로 찾아들었다. 아빠는 두 남동생 지행, 지명과 놀아주고 있었다.

“지유 왔구나? 오늘 일찍 일어났네~ 아침부터 책 읽으려고 왔어?”

순간, 지유는 남동생들에게 아빠를 빼앗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빠는 언니도 동생도 아닌 지유만의 사랑이었다.

“아빠! 아침밥 먹고 저랑 어디 좀 가요.”

지유가 아빠에게 어디로 가자는 부탁을 한 건 처음이었다. 아빠 역시 놀라는 눈치였다.

“어? 그래. 무슨 부탁이니? 우리 지유가 하는 부탁이라면 아빠가 꼭 들어줘야지.”

지유는 벌써부터 신이 났다. 형제들을 다 뿌리치고 아빠와 둘만의 시간이 될 것임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저랑 어디 좀 가 주셨으면 해서요.”

“어딘데? 우리 지유가 가고 싶은 데가 있다니 놀라운 걸?”

아빠는 지유의 부탁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아침밥 먹고 저랑 요 앞에 좀 가 주세요. 얼마 안 걸릴 거예요.”

“그러자. 언니하고 동생들도 데리고 가는 거야?”

“아뇨! 아빠랑 저랑 둘이서만 가요.”

“그래? 그러지 뭐. 아빠도 지유랑 산책이나 다녀오는 기분으로 가야겠네? 준비할 것 있어?”

“그냥, 저랑 같이 가 주시기만 하면 돼요.”

지유는 아침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했다. 형제들은 벌써부터 아빠의 등에, 팔에, 무릎에 매달리고 안기고 붙들고 있었다. 아빠의 모습은 마냥 행복해 보였다. ‘엄마가 있으면 아빠가 좀 덜 힘들 텐데.’ 지유는 아빠 옆에 엄마가 형제들을 함께 돌보는 것을 상상했다. 두 언니와 바로 아래 동생 지호는 아빠에게서 용돈을 얻고는 전쟁에서 승리한 표정으로 뛰쳐나갔다. 지서는 아직 아빠 목에 매달려 있었고, 막내 둘은 아빠의 무릎 위에서 떠나질 않았다. 얼마 후 유모가 막내 둘을 데리고 나갔지만 지서는 끝까지 아빠에게서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지유가 아빠를 독차지하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아챈 모양이었다. 결국 지서를 데리고 가야 했다.

교회는 지유 걸음으로도 이십 분 정도의 거리였다. 하지만 지서의 속도에 맞추고 지서의 알아듣지 못할 수다를 들으며 가다 보니 삼십 분 가까이 걸려서야 도착할 수 있었다. 아빠는 동네를 지나며 만난 동네 사람들과 인사를 주고받았다. 구십 도에 가까운 깍듯한 인사를 하는 사람도 여럿 있었다.

“아빠. 왜 저 아저씨들은 저렇게 인사해?”

지서는 지나가며 만났던 아저씨의 인사를 흉내 냈다. 지서에게는 쉬운 인사가 아니었는지 구십 도 가까이 상체를 숙이자 무릎이 앞으로 꺾이며 고꾸라졌다. 바닥을 구른 지서는 까르르 웃었다.

“아빠. 이렇게 인사하는 거 너무 힘들어.”

지서가 말했다.

“응~ 지서야. 저 아저씨는 우리 집 일을 도와주시는 분이야.”

“아빠! 우리를 도와주시는 분이면 우리가 저렇게 인사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이번에는 지유가 궁금해 물었다.

“음~ 그게 말이지. 저 아저씨는 우리 땅에서 농사를 짓고 있어. 너희들이 먹고 있는 밥은 저 아저씨들이 농사를 지어서 우리에게 조금씩 나눠주시는 거야.”

아빠는 지유가 알아듣기 쉽게 설명을 했다. 지유는 알맹이를 데리고 사냥을 하던 장복산 아랫동네의 계단식 논에서 일하던 아저씨들이 기억났다. 언젠가 한 번은 아빠가 지유의 눈높이를 맞춰 쪼그리고 앉아서 손가락을 가리키며 <쩌어어기 까지가 우리 땅이야~>라고 설명해 준 적이 있었다. 하지만 지유는 아빠가 말하는 ‘쩌어어기’가 어딘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당시 지유는 ‘쩌어어기’가 ‘저기’보다 조금 더 먼 곳을 말하는 것이겠거니 하며 어림짐작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지유는 교회 앞에 검은색 옷을 입은 아저씨가 서서 자신을 보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아빠! 저기예요. 저 아저씨가 아빠 데리고 오면 엄마를 데려다준다고 했어요.”

지유는 벌써 신이 나서 아빠에게 자랑을 시작했다. 지유의 말에 지서의 작은 눈이 휘둥그레졌고 덩달아 아빠의 팔을 당겨 교회 쪽으로 끌기 시작했다. 아빠는 지유와 지서에게 끌려가고는 있었지만 의심스럽게 생각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얼마 전부터 동네에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던 것이다. 학생을 통해서도 들었던 적이 있는데 바로 그곳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어서 오세요. 지유 아버지. 저는 이 교회 목사 이주환이라고 합니다. 지유가 아버지를 모시고 온다기에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자~ 안으로 들어오세요.”

“아니. 괜찮습니다. 지유가 끌고 와서 오긴 했는데 무슨 일로 저를 보자고 하셨죠?”

“아닙니다. 제가 아니고 주님께서 홍명덕 형제님을 기다리고 계셨던 겁니다.”

“내 이름을 어떻게 아셨는지 모르겠고, 목사님께서 지유에게 무슨 말씀을 하셨길래 지유에게 엄마를 데려다준다고 거짓말을 하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순진한 아이에게 이게 뭐 하시는 겁니까? 다시는 지유에게 엉뚱한 소리도 하지 마세요. 아니! 지유가 이 곳에 오는 일이 아예 없으면 좋겠군요. 그리고 동네에서 흉흉한 소문도 나 있는데 이건 너무 노골적이지 않습니까?”

지유는 아빠가 다른 사람에게 화를 내는 모습은 처음 보았다. 홍명덕은 학생들을 가르칠 때보다 더욱 또박또박 말을 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잘 모를 수도 있었겠지만 지유는 아빠의 말투에서 충분히 감지하고 있었다. 오늘은 엄마를 절대 만날 수 없다는 것을. 홍명덕은 지유와 지서의 손을 잡고 다시 집으로 향했다.

“아빠! 화났어요?”

지유는 아빠가 자기 때문에 화가 났을까 봐 걱정이 되었다.

“아니야~ 아빠가 지유한테 화난 게 아니야. 저 아저씨 때문이야. 지유 너~ 저기 다시는 가면 안돼! 알았지?”

홍명덕은 쪼그리고 앉아 지유를 마주 보며 말했다. 지유에게 꼭 다짐을 받고 싶은 것이었다. 그러나 지유는 엄마를 만나는 것을 절대 포기할 수 없었다.

“아빠. 그럼 다시는 엄마를 볼 수 없는 거예요? 저 아저씨가 분명히 엄마를 만나게 해 준댔어요. 아빠를 모시고 가면 꼭 소원을 들어준다고 했단 말이에요. 하나님이~”

지유는 다시는 엄마를 볼 수 없을 것 같은 불안함에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아빠가 오면… 엄마, 엄마를… 하나… 하나님이 소원을… 엄마가 온다고 했단 말이에요.”

지유의 울음에 지서가 따라 울기 시작했다. 두 딸은 서럽게도 울었다. 홍명덕 역시 갑자기 죽은 아내가 보고 싶은지 오랜만에 하늘을 바라보았다.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눈물이 하염없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홍명덕은 지서를 업고 지유는 아빠의 뒷주머니를 손에 꽉 쥔 채 집으로 돌아왔다. 세 부녀의 한바탕 눈물 섞인 울음은 이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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